by 연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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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편의점 야간 알바생이 딸기 맛 우유를 계산대 위로 밀어놓았다. 초점 없는 눈이다. 그것을 집어든 회사원은 역시 하는 둥 마는 둥 목례를 흘리고, 유리 문을 어깨로 밀어 젖혔다. 자잘한 종소리가 생채기처럼 귀에 거슬렸다. 까만 겨울날의 밤거리는 영 친절하지 못했고, 우유갑으로 젖은 손에 찬 공기가 닿기 무섭게 이 소시민은 직전의 구매를 약간
※ 트리거 워닝: 현관 앞의 수상한 사람 그날은 하루 종일 햇빛이 지겹도록 내리쬐었다. 1304호는 블라인드를 쳤다. 그는 아늑한 그림자 안에 들고 싶었고, 네모난 살들이 빗금을 메우며 어둑해지는 양이 퍽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볕이나 좀 더 받는다 해서 마를 빨래도 아니었다. 하여, 8월의 해는 아직 지지 않았어도 그만 저녁을 차릴까 싶었다. 몸을 일으
번쩍, 소리 없는 빛이 짙푸른 하늘에 균열을 내고 사라진다. 뒤이어 내리치는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궂은 날씨 속에서, 투박한 바퀴 두 쌍이 젖은 모래 위로 긴 자국을 그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서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카트의 운전석에 앉은 F가 말했다. 그 앞의 투명했던 가림막은 이미 빠짐없이 빗물이 흘러내려 분간할 수 없이 흐려
해가 빠르게 떨어지고 온통 깜깜해진 바다 위, 호화 크루즈의 그랜드 볼룸에서는 테이블들이 저마다 벨벳을 뒤집어쓴 채 둥그런 불을 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레이디 R.” 단정히 차려입은 여성이 귀빈을 맞았다. 높은 굽의 붉은 구두가 연회장으로 한 걸음 내딛자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일제히 단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사람은 그리고, 무수한
책상 위에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그것을 집어드는 이는 없었다. 끓는 물――약 화씨 200도에 달했을 검은 액체의 군집이, 실내의 공기를 고작 일부조차 데우지 못한 채 자기 본연의 온도로 느릿하게 복귀한다. 변화하던 물질이 생동을 멈추고 초기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을 혹자는 죽음이라 칭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곳의 모든 인원은 일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