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ㅁㅇ님 커미션(2022) / 1차 / 추리 / 5,000자(크롭)
번쩍, 소리 없는 빛이 짙푸른 하늘에 균열을 내고 사라진다. 뒤이어 내리치는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궂은 날씨 속에서, 투박한 바퀴 두 쌍이 젖은 모래 위로 긴 자국을 그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서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카트의 운전석에 앉은 F가 말했다. 그 앞의 투명했던 가림막은 이미 빠짐없이 빗물이 흘러내려 분간할 수 없이 흐려진 지 오래였고, 운전석 뒤의 두 사람 역시 기껏 입은 우비가 무색하게 얼굴로 들이치는 빗방울들을 하릴없이 감내해 가며 이동하고 있었다. 날씨가 이러니 어디 떠밀려갔을 수도 있지. 연기 같은 H의 음성이 하얀 습기를 머금고 떨어졌다. 그의 창백한 낯은 어둠 속에서 유독 도드라졌다. U는 그가 자칫 어느 순간 바람에 날려가 버릴 것만 같다는 감상을 떨칠 수 없었다.
“뭘 그렇게 보나?”
ㅤ“멀미는 괜찮으신가 해서요.”
조교의 덤덤한 대꾸에 교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가느다란 숨을 내쉬었다. 바다 위에서 토하기 전에 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정작 초대장을 보낸 자가 지금 곁에 있지 않다는 것이 작은 흠이지만.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덜덜거리며 나아가던 카트가 곧 해변 구석에 멈춰 섰다. 먹구름 아래 검게 물든 바다가 휘몰아치고 뻗으며 점점 몸을 불리고 있었다. 카트가 한 차례 휘청이고 운전자는 내려서 모래밭 위에 발을 딛었다. U와 H는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파도에 떠밀려온 것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F가 떨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C.”
또 한 번 내리친 번개가 그들이 찾던 것―시신을 적나라하게 비췄다.
*
“…C 교수는 먼저 방으로 올라갔었지, 8시쯤인가?”
H가 젖은 안경을 닦으며 흔들의자에 몸을 뉘었다. 앞뒤로 가볍게 흔들리는 의자가 벽난로 타는 소리에 작은 소음을 더했다. 짧은 기침. 천천히 말라가는 머리와 옷자락에서는 소금기와 담배 냄새가 섞인 흐릿한 향이 났다. 지친 기색으로 벽난로 앞에 서 있던 U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빗속에서 사람을 옮기고 온 것치고는 퍽 단정한 차림새지만, 그 역시 젖어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대본을 쓰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방에서 나올 일은 없었을 텐데…….”
ㅤ“G 씨가 그랬는데, 10시 20분쯤엔 방에 안 계셨대.”
쿠키가 가득 담긴 쟁반을 내려놓으며 E이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을 얹었다. 그새 또 식당엘 다녀온 모양이었다. 향긋한 냄새가 끼치자 H가 자연스럽게 쟁반 위로 손을 내밀었다. 달라는 뜻이다.
“그럼 그 사이에 방을 나왔단 소린가?”
이야기를 잇는 동안, 그의 마른 손에는 순식간에 과분할 정도로 수북한 쿠키가 쌓였다. H가 자신의 손과 E의 말똥한 눈을 한 번씩 느릿하게 들여다보았다. ……. 그리고 이내 별말 없이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오독거리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가 남는군요. 그 사이 1층으로 내려온 사람은 없었고……”
ㅤ“그러면 역시……”
행적을 짚어보는 U의 입에도, 말을 꺼내던 E의 입에도 하나씩 쿠키가 물렸다. 고소한 밀가루와 버터 맛이 짙게 퍼지고 있었다. H를 태운 의자가 만족스럽게 까딱였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좌우로 데구륵 굴러가고, 쿠키 씹는 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가 한참이나 거실의 침묵을 메웠다.
“……역시 방을 다시 봐야 할까요?”
가장 먼저 다시 입을 여는 데 성공한 것은 E이었다. 입가에 부스러기가 묻은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였다. 뒤이어 U도 정갈한 동작으로 남은 조각을 꿀꺽 삼켰다.
“묻었잖아, E.”
ㅤ“어, 그래? 고마워!”
E이 입을 닦아내는 동안, 까끌한 쿠키 조각을 오래도록 입에서 굴리고 있던 H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선 시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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