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

FIRE DANCE

무도가(Dancer)

폐허 by 필멸
9
0
0

부채춤: 발단

일사바드의 섬나라 사베네어에는 유랑 극단이 하나 있는데, 그 극단에는 무술 무용에 능한 무도가들이 여럿 있었다. 오네드웨스프는 그 중 한 명으로 그는 극단을 처음 만들었던 늙은 무도가였다. 그는 전쟁 난민으로 부채꼴 결정Ornedwesfv 산을 떠나 일찍이 일사바드에 정착한 비나 비에라족의 후예였다. 그는 나이 든 노인 비에라였지만 늙지 않는 비에라족의 특성상 겉모습은 청년과 다름없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 무도가를 동경하는 이들이 끊이질 않았다. 오네드웨스프는 재능 있는 공연가들을 데리고 극단을 꾸리고 유랑하며 그들과 일생을 함께 하다 스톤Stone 성씨를 가진 중원부족 여성과 만났다. 스톤은 오랜 시간 활과 함께 세계를 방랑해 온 궁술사였다. 특히 노래를 잘 부르곤 했는데 사람들은 혼을 울리는 스톤의 노래를 옛 궁병의 노래와도 같다고 여겨 그를 음유시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오네드웨스프가 선보이곤 했던 춤사위에 매료되어 10년이 넘도록 극단을 쫓아다녔다. 공연을 올리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났고 항상 화려한 꽃다발을 한 아름 가져다 주곤 했다. 오네드웨스프는 나이와 단장이라는 책임 때문에 번번이 스톤을 거절했으나 특수 마물에게 습격 당하는 위기에서 극단을 구해주었던 그 용맹함에 반하여, 에오르제아에서 가장 화려한 꽃밭에서 스톤에게 극단에 함께 해줄 수 있겠냐며 청혼했다.

극단에 음유시인이 생기고 나서 그들이 올리는 공연은 이전보다 더 인기를 끌었고 그저 춤을 추기만 하는 것을 넘어 그들만의 투척무기인 차크람을 이용한 호신술을 익혔다. 그들의 춤은 다채로워졌고, 단장인 오네드웨스프는 마침내 환상과도 같은 녹색 부채를 들고 추는 부채춤을 익혔다. 그리고 그때쯤 금슬좋은 두 부부 사이에서 비나 비에라가 태어났다. 그 비에라는 화목한 극단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 부모인 두 사람 뿐 아니라 단원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 그 아이는 정말이지, 남을 미워하는 법이 없었다. 무언가를 싫어하거나 원망하는 법을 익히기 전에 아이는 용서와 포용을 배웠고 상처 받고 우는 것보다도 기뻐서 웃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춤은 관객의 혼을 온화하게 어루만지고 불길하고 어두운 감정들을 승화시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는 그들이 세계에 전하는 춤과 노래 만큼이나 따스하고 상냥한 무도가로 자랐고 아주 어린 시기에 여성 비에라로 성별이 확정되었다. 성별이 정해졌을 때부터 아이는 무대에 섰다. 아이는 공연가의 자질이 있었고 사람들은 극단의 새로운 무도가를 열렬히 환영하며 응원했다.

부채춤: 전개

아이가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공연을 하러 에오르제아로 갔을 때였다. 그들은 그때 림사 로민사에서 공연을 한 번 마친 뒤 그리다니아로 이동했다. 공연은 저녁부터 예정되어 있었고 아이는 낯선 이국의 땅을 밟은 것에 마음이 들떠 틈만 나면 여기저기 둘러보곤 했다. 예정되어 있던 리허설이 끝나 모두가 분주한 틈을 타 아이는 미 케토 야외음악당을 몰래 빠져나가 그리다니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때 그리다니아는 예의 ‘굽은가지 목장 살인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조사 끝에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남은 후였지만 경비를 서는 쌍사단 병사들이 그리다니아부터 검은장막 숲 전역을 돌아다녀 이전에 온화하고 울창했던 숲은 도리어 삼엄한 느낌을 주었고 어디를 가도 이방인을 보는 시선이 매우 날카로웠다. 일사바드의 유랑 극단은 긴장감이 팽배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에 가득 찬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초대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정령에게 허락받지 못한 외지인들을 고깝게 여기던 그리다니아인들은 어디서 왔을지 모르는 낯선 극단을 반기지 않았다. 그런 시선을 아이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딜 가나 밝게 인사하며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누군가의 숨겨진 악의를 알아차리기엔 아이는 너무 어렸고 또 순수했다.

아이는 도중에 길을 잃었고 누구도 아이에게 친절히 길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돌아가는 길이 늦었다. 가죽공예 길드 근처에 세워 둔 작은 캠프로 돌아갔을 땐 이미 캠프는 불에 타고 있었고 크게 다친 단원들과 다투는 사람들, 몰려오는 쌍사단 병사들과 구경꾼들로 요란스러웠다. 그럼에도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여즉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덜컥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를 한 남자가 붙잡았다. 그는 남성 라바 비에라였는데 회색빛 칼을 한 자루 차고 있었다.

“어쩌려고.”

그는 화려하고 기묘한 이국의 복장을 한 아이가 다른 곳에서 온 존재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봤다. 요 근방에서 보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에오르제아에 낯선 종족인 탓이 컸다. 그는 비에라들이 폐쇄적인 종족이고 여성 비에라라면 더욱이 그렇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아이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당돌하게 소리쳤다.

“당연히 불을 끄고 사람들을 구해야죠! 저 안에 엄마와 아빠가 있다고요!”

남자의 눈이 얼핏 흔들리는 듯 했다. 그는 하루종일 할 일 없이 그리다니아 곳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야외음악당 근처에서 불한당들이 작당모의를 벌이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그리 옆에서 연초를 태우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고, 아이가 찾는 사람들이 무사하지도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아이가 저 속에 가봤자 크게 다치기만 할 뿐이라는 것도. 그는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드는 아이를 무작정 붙잡긴 했지만 자신이 왜 붙잡았는지도 몰랐고 대책없이 불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무모한 아이를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타인과 시시껄렁하고 의미없는 농담이 아닌 대화를 몇 십 년이 넘도록 한 일이 없었다. 아이를 대한 적은 살아 생전 거의 없었다. 그는 결국 언덕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아이를 덥석 붙잡아 어깨에 둘러메고 현장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아이는 어깨 위에서 난동을 부리며 남자의 등을 쳐댔다.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고 그 끝엔 울기까지 했지만 남자는 아이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말도, 울음을 달래줄 자신도 없었다.

부채춤: 절정

사상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었고,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의 부모였다는 것은 불행이었다. 남자는 아이에게 현장에 다시 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이는 기어이 다 타버린 캠프에 몇 번이고 갔다. 장례식은 그들의 고향인 일사바드에서 치뤄졌고 아이를 데리고 있었던 남자는 뜻하지 않게 그 길에 동행했다. 장례식은 통상적인 방식도 아니었고 일사바드의 전통적인 방식도 아니었다. 그들은 유랑 극단이었고, 그 이름에 걸맞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뤘다. 그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슬픔이 가득 차서인지 그들의 노래는 구슬펐고 춤은 느릿했다. 많은 이들이 각지에서 온 꽃을 두고 갔다. 아이는 종일 울다 지치면 잠들었고 일어나면 다시 울었다. 남자는 아이가 잠들었을 때 마야의 환상샘에서만 피는 꽃을 몇 송이 꺾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온통 젖은 채로 물을 뚝뚝 흘리며 아직 꽃을 두지 않은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남자가 준 꽃을 망자에게 바치고 마지막으로 춤을 췄다. 보는 모든 이들이 눈물 흘렸지만 남자는 울지 못했다. 누군가의 죽음에 눈물 흘리기엔 그의 인생은 너무나 공허하고 말라있었다.

단장과 그 부인이 죽었음에도 극단의 결속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돈독해졌다. 그들은 수석 무도가를 새로운 단장으로 임명하자는 의견을 냈다. 남자는 상황 수습을 돕다 식이 끝나고 새 단장이 임명되는 밤 떠나고자 했다. 멀거니 훈향 해변을 보고 있는 남자의 곁으로 눈이 벌겋게 부은 아이가 다가왔다.

“이제 어디로 가요?”

⋯⋯글쎄. 어디론가 가겠지.”

“저도 가면 안 돼요?”

“극단인지 뭔지는 어쩌고? 난 집도 없고 달리 갈 데도 없는데.”

“공연은 재밌긴 하지만 엄마처럼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그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차가운 물음에 아이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검이 한평생 품고 살았던 화신과도 같은 불꽃이 그 눈엔 없었다. 복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는 듯 아이는 멀리 바다를 내다보며 대답했다.

“자유롭게 춤추고 싶을 뿐이에요.”

남자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더 묻는다면 오로지 복수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의 소년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난 어린 아이가 따라다닐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런 건 제가 정할 거예요.”

아이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먹먹하고 잠겨 있었지만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아이는 남자가 대답하지 않자 목에 건 로켓 목걸이를 꺼내 열었다.

“뭐지?”

“무도가의 증표예요.”

아이는 목걸이를 돌려 남자에게 보여줬다. 목걸이 속엔 연분홍색 크리스탈이 하나 들어 있었다. 원래는 하나였을 크리스탈이 반으로 갈라진 채였다.

“처음 받았을 땐 하나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부서져버렸죠. 전 너무 속상해서 울면서 아빠한테 새 것을 달라고 했어요.”

“이런 크리스탈이 두 개씩이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맞아요. 사실, 이건 아빠의 소울 크리스탈이에요. 아빠가 은퇴하며 줬었거든요. 그땐 그렇게 귀한 것인 줄 몰랐지만⋯⋯ 그러니, 여분이 없었어요. 그때 저를 달래주면서 아빠가 한 얘기가 있어요.”

남자는 아이가 더 이야기 하게 내버려뒀다.

“춤은 원래, 두 사람이 마주보고 추는 것.”

아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오른쪽 크리스탈 조각을 내밀었다.

제 댄스 파트너가 되어주세요.

부채춤: 결말

아이는 그 길로 일사바드 유랑극단을 떠났다. 극단은 아이의 앞길을 축복하며 두 사람이 가는 길을 따듯하게 배웅했다.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떠나면서도 제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아이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한 순간의 변덕이라고. 아버지의 유품씩이나 되는 크리스탈을 받아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런 이유를 붙였다. 그는 그 밑에 깔린 깊은 늪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가 부모를 잃게 된 사건의 시발점에 굽은가지 목장의 사건이 있어서라고. 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방관했고 그 결과 몇 사람이 죽고 다쳤으며 아이는 혼자가 되어버렸다고. 불길 속에 홀로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 어렸을 적의 소년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떠나는 날 남자는 그것이 주제 넘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불 속에서 춤추는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 밖에 알지 못했던 아이는 마찬가지로 세계에 사랑받았다. 부모를 잃어도 아이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강하게 아이를 감쌌다. 불꽃이 태워버린 소년은 공허한 남자가 되었지만 아이는 영영 꺼지지 못할 불꽃을 파트너로 선택하고 혼자가 아닌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허락된 역할은 그 곁을 함께 걷는 것이었다. 반쪽 짜리 크리스탈을 손에 쥔 채, 그 아이가 걸어갈 길을 지켜보는 것. 그렇게 어떤 여행이 시작됐다.

BGM

Raon-빛이 있으리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