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

그 초코보는 왕이 될 상인가?

초코보 육아일기(1)

폐허 by 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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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한산했을 오후 세 시의 바닷가. 림사 로민사의 두 길드에서 나온 사람들로 항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쪽에선 비술사 길드 접수원이 책을 탑처럼 쌓아놓고 있었고 반대쪽에선 도끼술사 길드 소속 도끼술사가 터질 듯 가득 찬 배낭을 옮기고 있었다. 책으로 된 탑 옆에 유독 체구가 작은 사막 부족 라라펠이 서 있었다. 그는 다 낡은 책을 들고 있었고 가벼운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마법 아카데미에서 교복으로나 입을 것 같은 옷을 깃까지 세워 단정하게 차려 입었다. 그는 제 키보다 높게 쌓인 책을 보며 황당한 듯 말했다.

“아니… 접수원님? 이거 다 못 들고 간다니까요?”

“마법의 인벤토리에 넣으면 다 돼~”

한편 반대편엔 꽉꽉 들어 찬 커다란 짐들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엔 성인만큼이나 키가 큰 달의 수호자 미코테가 있었다. 날이 다 닳은 낡은 도끼를 등에 멘 그 소년은 가장 앞에 있는 가방을 슬쩍 열며 눈을 빛냈다. 그는 앞마당에 나온 것마냥 후줄근한 복장이었는데, 딱 달라붙는 민소매 차림이라 여기저기 상처 난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와, 이거 비스마르크 특제 샌드위치!”

“가는 길에 드십쇼. 이건 멀리 이슈가르드에서 즐겨 먹는 어둠… 어쩌고 알이랍니다.”

“맛있겠다! 근데 이슈가르드가 어디야?”

그날은 막 전사와 학자가 된 두 소년이 림사 로민사를 떠나는 날이었다. 뷔른쵠이 거둔 전사는 줄곧 도끼술사 길드에서 자랐고 안갯빛 마을에 본가를 둔 학자는 매일 비술사 길드에 출석하며 성실하게 마법을 배워왔다. 그리고 성년을 조금 앞둔 어느 여름, 고향을 떠나 모르도나를 거쳐 다날란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양쪽 길드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앞길을 축복하는 의미로 우르르 배웅을 나왔고 4시에 마침내 길드 마스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어린 초코보를 하나씩 데리고 왔는데 흑와단 전용 갑주를 입고 있는 군용 초코보였다.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초코보다. 튼튼하고 건강한 어린 초코보니 너희의 여행길에 훌륭한 벗이 되어 줄 거다.”

“우아. 쪼코보다! 지짜 처응 봐써.”

전사는 출발도 전에 기어이 뜯어서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뷔른쵠이 건넨 초코보를 껴안고 복슬복슬한 털을 마구 쓰다듬었다.

“사람은 배신하지만 초코보는 한 번 벗으로 인정한 주인을 절대 버리지 않아. 그러니 마음을 다해 아껴줘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야, 양상추 흘렸잖아!”

학자는 옆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전사에게 가볍게 핀잔을 줬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 역시 처음으로 초코보를 받아 들뜬 것이 눈에 선했다.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떻나?”

“으음… 양상추?”

“누가 지금 먹는 거로 이름 붙이라 했냐?”

“그럼 노란색이니까… 누렁이?”

“이 아이가 불쌍해지기 시작했어…….”

“야! 그럼 넌 뭐로 짓는데.”

학자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버디? 벗이니까.”

“헐, 그거 괜찮은데? 왠지 멋있어. 나도 버디라고 할래.”

“그럼 구분이 안 되잖아, 아니 그 전에 나 따라하지 말라고!”

“떄럐햬지 먤럐규…… 우억!!”

친구를 놀린 값으로 전사는 결국 출발도 전에 림사 로민사 앞바다에 풍덩 빠지고 말았고, 쫄딱 젖은 채 항구로 기어 올라오는 전사를 보고 모두가 웃었다. 옷이 다 마르기도 전에 승선시간이 되어 양쪽 길드원들은 가져 온 짐과 선물을 하나씩 배에 실었고 두 소년은 존경하는 스승과, 그리고 아버지와도 다름 없었던 마스터를 가볍게 포옹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자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편지 할게요.”

“다녀올게!”

그리고 모르도나로 향하는 배가 출발했다.

떠나기 전에 상상했던 뱃길은 가본 적 없는 이국으로의 설레는 바다 항해였다. 여름의 햇빛이 바다에 내려 눈부시게 빛나고 나아가는 뱃길에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을 터였다. 운이 좋다면 갈매기 울고 돌고래떼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길드원들이 챙겨 준 음식을 나눠 먹고 먼 타지에 대해 적인 책을 읽으며 앞으로의 여행길을 상상하는, 그런 가슴 벅찬 여행의 첫 발이었어야 했을텐데. 배에 타고 나서 두 소년이 한 일이라곤 좁아터진 자리에서 서로를 밀며 싸우고 작은 비스킷 하나를 두고 다투다 객실에서 쫓겨나 갑판에서 누구의 초코보가 더 잘났는지 유치하게 겨루는 일이었다.

“당초에 네 초코보는 너무 작아!”

“그야 내가 라라펠이니까 작지. 너 군용 초코보들은 튼실하게 키워야해서 특수식 먹이고 운동 관리하면서 키우는 거 알지? 라라펠용 초코보들은 그 중에서도 더 특별해! 라라펠 군인들이 타야 하는데 무작정 크면 탑승이 불편하니까. 완전 엘리트 초코보 같은 거야.”

“윽…… 하지만 우리 킹(KING)은 덩치도 크고 이렇게 활기차고 귀엽고 멋있다고!”

“이름이 킹이 된 거야?”

“응. 쑥쑥 자라서 세상에서 제일 크고 멋진 초코보가 되라고…….”

미묘한 작명에 학자는 표정을 구겼으나, 이름이 별로냐며 울상짓는 표정에 결국 대충 대꾸하고 말았다.

“뭐… 양상추보다 낫긴 하네.”

“그치? 킹. 너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넌 이제 킹이야.”

“초코보가 어떻게 말하냐?”

‘킹’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사의 초코보는 아는지 모르는지 전사의 말을 무시하고 천방지축처럼 갑판을 뛰어다녔다. 전사는 이름을 부르면서 초코보를 쫓아 갑판을 함께 뛰어다녔고 학자는 질렸다는 듯 얌전한 제 초코보를 갑판 구석으로 데려가 바닥에 앉은 채 그들이 날뛰는 모습을 가만 구경했다. 그리고 한바퀴를 돌아 학자의 앞을 지나갈 때, 전사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알아챘다. 학자는 바닥으로 떨어져 몇 번 굴러가다 멈춘 작은 수첩을 들어올렸다. 맨 앞에 ‘초코보 육아일기’라고 크게 적힌 수첩 첫 장엔 오늘 날짜와 함께 이름을 고민한 흔적이 가득했다. 맨 위엔 오늘 날짜가 적혔고 가운데엔 초코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글자를 적는 줄이 있는 공간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오늘 있던 일이 몇 줄 적혔고 남는 공간엔 이름 후보였던 것처럼 보이는 단어들이 돌아다녔다. 학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수첩을 읽다 비는 공간에 제 펜을 꺼내 몇 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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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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