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

HB(1)

전사(Warrior)

폐허 by 필멸
10
0
0

“그러고보니 내일은 저 아이 생일 파티인데. 너도 올 거니?”

비술사 길드 마스터 투뷔르가임은 길드에 찾아 온 달의 수호자 소년에게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소년은 도끼술사 길드 소속이고 그곳의 마스터인 뷔른쵠이 돌보고 있지만 비술사 길드에 친구가 한 명 있는 탓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처음 뷔른쵠에게 소개 받았을 땐 얼굴에 어두운 빛이 가실 줄 모르는 침울한 소년이었는데 최근엔 많이 밝아진 모양인지 곧잘 웃곤 했다. 말소리를 들었는지, 지하 계단에서부터 짧은 보폭으로 뛰어오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벽 뒤에서 유독 조그만 라라펠이 툭 튀어나왔다.

“쟤를 왜 불러요? 야, 오지마.”

“누가 가고 싶대?!”

소년은 발끈하여 소리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년은 내심 신경 쓰이는지 콧방귀를 끼며 요정을 데리고 도로 내려가는 조그만 비술사가 벽 너머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봤다. 요즘은 요정을 처음으로 소환한 것에 들떠 별 일 없는데도 하루종일 요정을 꺼내 데리고 다니곤 했다. 소년은 어물거리며 투뷔르가임에게 생일 파티에 대해 물었다.

“생일 파티… 진짜예요?”

“그래. 우리 비술사 길드에 어린 아이는 없으니까 저 아이의 생일엔 다같이 생일 파티를 해.”

소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일 파티는 고사하고 생일을 축하받는 경험도 없었으니 대체 뭘 하는 것인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당초에 그에겐 생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일 년 중 달리 기념할 만한 날은 새해 첫날과 성탄절 정도였다. 크리스마스엔 온 림사 로민사에 화려한 장식이 걸리고 캐롤송이 울리니까. 소년은 달력 위 모두가 기념하는 날에만 빨간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었다. 그나마도 제 자신에겐 사치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뷔른쵠이 자신을 거두기 전까진 크리스마스는 악몽 같았다. 형형색색 화려한 거리에 모두가 웃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모두 선물을 한아름 팔에 안고 함박눈을 맞으며 눈밭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이름을 부르며 한참 뛰어 놀던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별빛축제를 보고 싶다며 그리다니아까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하다는 성탄절도 누군가에겐 공평하지 않은 듯 했다. 소년의 자리는 환한 가로등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였고 모두가 따스함을 나누는 불 근처엔 얼씬도 하지 못했다. 함박눈은 도깨비눈이 되어 싸늘한 밤바람와 함께 사정없이 몰아쳤다. 그 누구도 소년에겐 선물을 주지 않았고 시퍼렇게 얼어버린 손을 잡아 줄 어른도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소년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초에 소년에겐 이름이라고 할 만한 것이 달리 없었다. 아무도 소년을 찾지 않았고, 그도 달리 자신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름보다는 오늘 먹을 물과 음식이 더 중요했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사랑보다는 따듯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는 거처도 없고 가진 것도 하나 없었지만 참으로 오래 그 거리에서 살아남았다.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소년은 장터에 숨어들었다. 큰 욕심을 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짝 마른 볼품없는 사과 하나면 족했다. 손이 파들파들 떨려와서 깨진 손톱이 살을 짓누를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소년은 인파에 섞여 들어갔다. 그때 소년은 아주 어렸고 또래 보단 컸지만 성인 보단 작았다. 며칠은 먹지 못해서 걸어다닐 힘도 없었는데, 막상 절도를 각오하고 나니 잔뜩 힘이 들어간 전신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그날 과일 장사는 몹시 성행했고 과일이 마구 쌓인 매대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소년은 가장자리로 파고들어서,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숨기고 앙상한 손을 그 사이로 뻗었다.

소년의 손은 정말로 사과에 닿았지만 그대로 잡지 못한 채 떨어졌다. 잡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잡고 꺼낼 수 있었고 이 정도 인파라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걸린다고 해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손에 정말로 사과 하나가 닿았을 때, 어찌 할 수 없는 수치심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소년은 그대로 뒤돌아 달아났다. 그리고 도망치는 소년의 손목을 잡아 챈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도끼술사 길드마스터, 뷔른쵠과의 만남이었다.

소년은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괜시리 절도에 대한 죄책감 탓에 우악스럽게 그 손을 움켜 쥔 바다늑대 루가딘에게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쳤다. 소년은 고래고래 소리치고 비명을 질렀다. 소년은 제대로 된 말을 배운 적도 없었으므로 놔달라는 말도, 결백을 주장하는 말도 하지 못했다. 뷔른쵠은 악을 쓰며 발버둥 치는 소년을 조용히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평소 호탕하고 큰 목소리로 소리치곤 했던 사람 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왜 사과를 가져가지 않았지? 방금이라면 가져갈 수 있었을텐데.”

소년은 크게 움츠러들다가, 몇 개 알지 못하는 단어를 어눌하게 중얼거렸다.

“훔치면… 다른 사람의… 불행이니까.”

“그렇군.”

뷔른쵠은 그 뒤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과일 상인에게 다가가 잘 익은 과일을 몇 개 사서 소년에게 건네줬다.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쾌하게 웃는 길드 마스터를 쳐다보았다.

“하하하! 넌 싹수가 바른 아이군. 괜찮다면 도끼술사 길드에 들어와라.”

그것이 꼭 여덟 해가 되던 날이었다.

그 뒤로 소년은 도끼술사 길드에 소속되어서 낮은 수련으로, 밤은 돌고래 주점 일을 도우며 지냈다. 숙박은 급여 대신 여관의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지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방을 정리하고 운동을 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9시부터 길드 훈련이 시작됐다. 점심은 길드원과 다같이 먹었고 끝나고 나서는 상급 도끼술사들은 임무를 나가고 그처럼 신입이나 아직 어리고 미숙한 길드원들은 개인 훈련을 했다. 그리고 저녁 쯤엔 하나 둘씩 해산했다. 가끔은 다같이 주점으로 몰려 갈 때도 있었으나 어떤 경우에도 소년은 그 사이에 끼어들진 못했다. 술을 못 먹는 나이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가게에서 술과 음식을 즐긴다면 소년은 그것을 만들고 날라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에 달리 불만은 없었다. 일을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며 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니 친구나 가족을 바라는 것은 더 없는 사치라고. 가끔은 뷔른쵠이 옆자리를 권했지만 소년은 구태여 거절했다. 그에게는 생명을 빚졌기에 달리 바랄 것이 없었다. 그는 제 분수를 잘 알았기에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열 넷이 되도록 그에겐 이름이 없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