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 극장판: 새로운 시대의 문 후기
본 포스트는 포케후지를 지지하는 시설에서 작성되었습니다
1회차 땐 전개 따라가기 급급해서 인상에 남는 거만 휘갈겼는데 다시 보니까 보이는 게 생각보다 훨씬 많았어서 정리해봄.. 종합하자면 말장판은 ‘지금 이 순간’ 에 관한 이야기이다. 본가겜 육성스에서 주구장창 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함..
1. 아그네스 타키온과 후지 키세키
타키온의 목표는 다른 이들처럼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우마무스메’ 라는 종이 가지는 가능성, 그 극한을 보는 것이다. 그녀는 다리의 불안을 잘 알기에 본가겜에서 그러하듯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플랜을 여럿 둔다. 플랜 A, 제가 직접 극한을 목견하는 것과 플랜 B, 다른 이를 통하여 극한을 엿보는 것.
타키온은 극한을 직접 제 다리로 이루기 위해 달리지만, 야요이상에서 그녀가 세계의 틈새에서 마주한 것은 극한이 아닌 그녀의 한계였다. 극한에 들어섰다간 네 다리가 산산조각 날 것이라는 세계의 경고. 내 다리로는 극한을 볼 수 없다고? 그렇다면 다음 경기에서 한계까지 밀어붙여 누구도 잊을 수 없는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그만두자. 내게는 ‘누군가를 이긴다’ 가 아닌, 더 큰 목표가 있으니까.
그리하여 그녀는 사츠키상에서 후지의 말처럼 ‘강함을 과시하며’ 무모하게 달린다. 그러나 그러면 뭣 하나? 연약한 내 다리로는 극한을 볼 수 없는데. 타키온은 극한에 가닿을 수 없는 다리로, 어차피 다시는 달리지도 않을 다리, 망가져도 상관없으니 이 다리의 극한이라고 보겠다는듯 발버둥 친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그녀를 맞이한 것은 영광이 아닌 후들거리는 다리, 비참 뿐이었다. 그녀는 은퇴를 선언한다. 진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실 이는 그녀의 착각이다. 그녀의 진정한 목표는 우마무스메의 극한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는 후지 키세키에게서 정글 포켓으로 건너가 그녀에게 전달된다. 야요이상이라는 최후의 경기에서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된 두 사람이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은 모르고 후지 키세키는 아는 것이 하나 있다. 포케는 두 사람의 매개로서, 주인공으로서 후지의 깨달음을 타키온에게도 전하게 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엄연히 따졌을 때 타키온 최후의 경기는 사츠키쇼지만.. 레이스 관둘 결심. 을 하게 된 것은 야요이상이라는 점에서 최후가 맞다고 생각함)
2. 후지 키세키와 정글 포켓
사실 이 얘기 하고 싶어서 감상문 쓰기 시작함ㅋㅋ 공식이 포케후지를 끝장나게 말아줘서.. 포케와 함께 할 때의 후지는 만능 엔터테이너, 가 아닌 우마무스메 그 자체라서 더 좋은 듯. 그래서 여름 축제~합동 레이스 사이의 서사가 정말 아름다웠다 무튼 이것도 적어보자면
더비 이후 여름 축제에서 후지는 포케의 약점만을 계속 찌른다. 어떻게 보면 답지 않게 무심하다고 할 만큼. 포케-타키를 다루면서 쓸 건데 미리 말해두자면, 더비에서의 승리는 가짜 승리이다. 그래서 포케는 더비를 이기고도 내내 시무룩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후지는 포케를 오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타키온 이야기를 한다. 타키온은 강했어, 마치 과시하는 것처럼. 너는 그녀의 달리기를 어떻게 봤어? 뭐 이런, 안 그래도 심란한 포케 속을 휘젓는 이야기들을.
그런데 그건 캐붕이라기보다는, 그녀 자신의 타키온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타키온의 행적은 다름 아닌 후지 키세키 자기자신의 행적이다. 앞일 따위 상관 않고 무모하게 달려 다시는 달리지 않는, 혹은 달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만 건. 작중 후지가 어떤 이유로 부상을 입고 레이스에서 은퇴했는지까진 서술되진 않지만, 적어도 후지 키세키는 타키온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잘 안다. 왜냐, 그녀는 달리지 못하는 우마무스메로 지내며 달릴 수 없음의 비참을 오래도록 경험했기 때문에.
후지 키세키는 부상으로 클래식 3관에 도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정글 포켓은 그녀와 다르게, 자기자신의 다리로 사츠키쇼를 지나 더비를 달려 이겼다. 그것만이 중요하다. 더비에 출전하지도 않은 타키온 따위, 존재하지도 않는 만약 따위보다, ‘실제로’ 더비를 달려 이긴 포케가 시대의 진정한 강자다. 그러나 이건 여름 합숙 시점에서 후지 키세키만이 아는 것이고, 정글 포켓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후지는 포케에게 내재된 타키온의 존재감을 과소평가한다. 자기자신의 존재감을 과소평가한다.
이후 후지는 포케의 목걸이(꿈)에 흠집이 난 것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만약’ 을 상상하는 건 레이스를 은퇴한 당사자, 후지 본인뿐만 아니라 터프에 남은 이들 또한 그렇다는 걸, 포케 또한 그렇다는 걸 깨닫는다. 레이스에 만약, 이란 없지만 그럼에도 만약을 그리게 된다고 고백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과거의 자신, 환영을 고백한다. 타키온이 있었을 만약, 을 두 다리로 잔디를 내달리던 너 또한 겪고 있었니? 나는 달리지 못하는 이만이 만약을 경험하는 줄 알았단다.
하지만 네게는 만약, 이 필요 없어. 너는 ‘지금’ 달리고 있잖아.
후지 키세키는 알고 정글 포켓은 모르던 것, 후지는 포케에게서 만약의 그림자를 걷어낸다. 동시에 자기자신에게서도 걷어낸다. 후지 키세키는 만약이 아닌 현실에서 더비를 달리는 포케를 보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달리고 싶어졌다. 섣불리 결정하기엔 몸이 예전같지 않고, 제 시대 또한 한참 전에 지나 축제 때는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저 부러워만 하던 터프 위에 남은 이들 또한 만약을 경험한다면, 모두가 그 실체 없는 환영과,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면. 그렇기에 후지 키세키는 다시 달릴 것을 결심하고 버드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대신 그곳을 헤치고 나와 태양 아래에 선다.
후지 키세키는 정글 포켓에게 전한다. 과거(타키온)도, 미래(만약)도 의미 없다고. 의미를 가지는 건 현재뿐이라고. 아침 해 아래에서 정글 포켓은 후지 키세키와 함께 지금을 달리며, 최초의 꿈을 되찾는다.
3. 아그네스 타키온과 정글 포켓
작중 포케가 승리한 G1 레이스는 둘뿐이다: 더비와 재팬컵. 그러나 그 둘의 의미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먼저 더비. 타키온을 영영 이기지 못한 채로, 타키온의 달리기에 완패한 자신에게 절망한 포케가 더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기실 포케가 짊어진 두 사람 분의 꿈 때문이었다. 더비에서 포케는 주변을 보지 않았다. 그저 타키온의 환영을 쫓았을 뿐이다. 그 환영을 추월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음에도 그녀는 멀어져만 갔고, 급기야는 ‘타키온을 영영 이기지 못하리라는 공포’가 실체화되어 앞길을 막았다. 포케는 더비에서 이겼으나, 동시에 가상의 타키온에게, 자기자신의 두려움에 진 것이다. 더군다나 포케는 후지와는 달리 ‘미래조차 포기하는 달리기’ 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니까. 그러한 달리기의 압도적인 힘에 굴복되었으니까. 그러니 더비에서의 포효는 복받침이 아니라 차라리 절규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재팬컵. 타키온은 사츠키상에서의 라스트런이 모두의 기억에 남기를 바랐다. 광속의, 한순간의 반짝임을. 그러나 그녀가 간과한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당시의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잔인하게도 타키온은 포케와의 두 번의 만남을 통해 이를 절실히 깨닫는다. 첫째, 재팬컵 전 타키온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케는 그녀에게 합동 훈련을 청하고, 타키온은 당연하게도 이를 거절하며 묻는다. 카페군이나 단츠군도 있지 않나? 포케는 이를 긍정하며 쉬이 그녀를 지나친다. 은퇴 선언 직후, 그녀의 멱살까지 잡으며 분해하던 그때와는 다르다. 둘째, 재팬컵에서. 달리던 포케는 한순간 타키온과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그녀는 타키온이나 타키온의 환영을 보는 대신 그녀를 지나쳐 잔디를 달리고 있는 이들, 오페라오와 탑로드, 도토 등을 본다. 그곳에 타키온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를 달리는 이들을 직시하자 타키온의 환영은, 그녀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포케의 두려움은 산산조각 나 부서진다. 달리지 않는 이는 그저 과거의 망령, 혹은 존재하지 않는 만약의 미래에 불과하므로. (사실 이런 이야기는 본가겜 육성스에서 자주 보이는 전개이기도 함.. 마루젠스키의 환영을 쫓아 달리던 그래스에게 나를 봐!! 라고 외치던 엘이라던가.. 과거를 쫓지 말고 지금을 사세요)
따라서 재팬컵이야말로 포케에겐 진정한 승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녀는 후지 키세키를 통해 주변을, 현재를, 지금을 중요시 하게 되었다. 그러니 재팬컵에서의 포효야 말로 복받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정글 포켓을 아그네스 타키온은 지켜본다. 달리지 않는 이가 설 자리는 없다고 소리치는 듯한 그녀를, 지금을 달리는 이만이 유의미하다고 외치는 듯한 그녀를, 그래, 달리지 않으면 침잠할 뿐이다. 타키온의 진정한 목표가 우마무스메의 극한을 목격하는 것 뿐이라면 포케의 달리기를 보고 오히려 안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을 달리는 모두가, 포케도 단츠도 카페도 언젠가는 극한에 도달할 것이라고 타키온은 예감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무엇인가?
후지 키세키의 깨달음은 정글 포켓에게 이어져 내려왔고, 정글 포켓의 깨달음은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닿았다. 그리하여 타키온은 경기장을 박차고 뛰져나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4. 이야기의 끝
쓰다보니 개길어졌는데 다시 보고나니 정말 우마무스메다운 이야기였음.. 본가겜 육성스 클리셰 다 나옴 그것도 엄청 세련된 방식으로…
정리해서 쓰고나니 카페 육성스의 상당 부분이 포케한테로 옮겨졌다는 느낌이 있어서 족금 그렇긴 하네유 근데 머 어차피 우마무 세계관의 패러랠월드는 우마무스메의 수만큼 있으니까?? 괜찮을지도??? 하지만 말장판을 본 사람들 모두가 카페 육성스도 같이 봐줫음 좋겟다 제발…… 포케와는 좀 다른 방식이긴 한데 쨋든 저 바보무스메가 타인(이 경우는 카페)를 통해 저 스스로의 본능을 마주한다는 흐름은 비슷하니께
아 그리고 말래미들은 왜 그렇게 레이스에 집착하나?? 에 대한 해답을.. 2회차 관람을 통해 조금 알게 된 거 같음. 첨 볼 땐 넘겼는데 다시 보니 시작부터 그러더라 “다른 세계에서 온 이름을 받아 달리는 아이들”.. 경주마의 혼이 우마무스메라는 형태로 저 세계에 태어난 거라면.. 레이스에서 싸워서 이기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본능이 맞지…
~외에 인상 깊었던 장면?들~
1. 유리 구슬 목걸이 (꿈)
유리 구슬 목걸이는 포케 꿈의 은유이다. 한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크리스탈 목걸이에 최초로 꿈을 불어넣은 것은 후지 키세키다. 포케의 최초의 소원은 이러했다: 후지 키세키처럼 달리고 싶다. 그녀처럼, 누구에게도 비할 바 없는 압도적인 달리기를, 최강의 달리기를 보여주고 싶다!
이후 포케의 꿈이 타키온의 빛(환영)에 바라 길을 잃었을 때, 흠집난 목걸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 또한 후지 키세키이다. 이번에 그녀는 승부복을 입고 포케 앞에 선다. 다시 한번 구슬에 꿈을 불어넣어 공중에 던지고, 포케는 그걸 받는다. 그리고 멈추었던 후지 키세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 포케의 꿈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 포케는 다신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녀의 달리기를 함께 하며 처음을 되찾는다. 그녀의 꿈은 과거의 망령인 아그네스 타키온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최강이 되는 것이다. 후지 키세키는 쟝포에게 꿈을 선사하였고, 잃었던 꿈조차 되찾아 주었다. 그녀는 포케의 꿈 그 자체이다.
2. 그리고 타키온
아그네스 타키온은 정글 포켓보다 먼저 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포케를 스쳐지나가며 그녀 목에 걸린 크리스탈 구슬을 본다. 구슬에는 그녀의 꿈이 담겨 있다. 구슬에 담긴 무지개빛은 이내 타키온의 눈동자조차 물들인다.
3. 후지 키세키가 그림자에서 태양 아래로 나오기까지
후지 키세키는 포케에게 제가 이루지 못한 더비의 꿈을 맡긴다. 그 꿈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 서 있다. 그림자에 짙게 깔린 후지 키세키의 얼굴은 포케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포케가 그 꿈을 수락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늘 아래에서 웃을 뿐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포케가 길을 잃고 홀로 방황할 때 후지 키세키는 더비의 꿈을 맡겼던 장소에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버드나무 아래가 아닌, 그 밖에 서 있다. 버드나무 맞은 편, 인공 조명으로 어둠을 밝히는 자판기 앞에. 주변은 여즉 어둡다. 그녀는 어둠 속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포케에게 꿈을 되찾아줄 것을 약속한다.
포케는 해가 뜨기 전, 흐린 하늘 아래에서 약속을 기다린다. 마침내 후지 키세키는 승부복을 입은 채 등장한다. 이 씬은 후지의 시점에서 잠시 진행되는데, 그녀는 버드나무를 ‘헤치고’ 밖으로 나온다. 시야를 가리는 버드나무 이파리가 점차 걷히며 하늘 또한 밝아지고, 포케의 당황한 얼굴이 가까워진다. 그녀는 마침내 그림자에서 나와 태양 아래에 선다.
4. 타나베 트레이너
작중 타나베 트레이너는 선글라스를 쓴 채라 맨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작중 그의 눈이 보이는 때는 단 네 번 뿐이다.
첫째, 회상 속에서. 젊은 시절의 타나베는 동경이 가득 담긴 순진한 눈으로 스승의 이야기를, 더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둘째, 정글 포켓이 마침내 더비를 우승했을 때. 선글라스 속 그의 두 눈은 더비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몇십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그는 후지 키세키와 마주보더니, 주먹을 맞부딪친다.
셋째, 승부복을 입고 포케와 함께 뛴 후지 키세키에게 물을 건네었을 때. 멈추었던 후지 키세키가 마침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넷째, 재팬컵에서. 쟝포는 마침내 과거나 미래(만약)이 아닌, ‘지금’ 을 마주하며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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