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이과 준비실에서 아그네스 타키온은 생각했다. 안정 상태. 타키온이 정의하는 현재는 그러했다. 자주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운동장의 소음도 지금은 적막했고, 완성되어 타키온의 손을 떠난 연구는 아직 새로운 과제로 옮겨가지 않았다. 방해도, 실험도 이루어지지 않는 완벽한 안정의 상태. 물론 정의하기에 따라 여전히 공기 분자는 대류 현상을 일으키며 활발히
새하얀 자작나무 숲. 어둠이 내린 백색의 나무 사이에 그들은 서 있었다. 오롯이 맨하탄 카페와 아그네스 타키온, 단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공간. 검은 정적 속에 하얀 숲이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 높이 솟아오른 자작나무를 올려다보며 타키온이 말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상징성이 느껴지는 풍경이군. 이전에는 어두운 운동장이지 않았나. 여전히 심상
봄, 트레센 학원의 입학식, 그날 아그네스 타키온은 맨하탄 카페와 만났다. 기념할 만한 입학식이라고 하나, 타키온에게 그런 겉치레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흩날리는 벚꽃잎,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학생들, 그들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간판들. 그런 일련의 행사가 타키온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예식에 불과했다. 어차피 입학은 정해진 사실이고 그에 뒤따르는 절차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카페의 물음에 타키온은 앞으로 쏠려있던 귀를 쫑긋 들어 올려 뒤에서 들려온 소리를 들었다. 시선은 여전히 정면의 책상을 바라보는 채였다. 타키온의 눈앞에는 그가 띄워놓은 데이터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타키온은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는 일찍이 자신의 다리가 가진 한계를 깨달아 사츠키상 이후로 출주를 무기한 중
https://youtu.be/smdmEhkIRVc?si=YoisXc_kHSuY37IE (비비 - 밤양갱) “이제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겠네.” 식탁 머리에서 타키온은 그렇게 선언했다. 카페는 들어 올린 커피잔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대로 타키온의 선언을 맞았다. 그리고 몇 초간 대답을 헤매다, 잔을 받침 위에 돌려놓고, 아주 긴 숨을 내쉬었다. 혼란스러
비가 오면 귓가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언제나 그치지 않는 목소리가 선명한 윤곽을 가지고 뇌를 파고든다. 짓누르는 공기의 무게로 비를 알았다. 몸을 감싸는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킨다. 떠도는 흙의 냄새, 피부를 감싸는 습기, 귀를 울리는 노이즈가 좋지 못한 것들을 부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것들은 나의 친구였지만, 항상
교사 한편의 어느 조용한 교실. 이질적인 두 면이 만나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과 준비실. 알코올램프 위에 올라간 약품이 부글거리는 소리와 입술 사이로 커피를 들이켜는 소리만이 작게 울리는 교실에서, 맨하탄 카페와 아그네스 타키온이 있었다. 평소처럼 수집품인 소파에 앉아 블랙커피를 마시던 카페는 잔 너머로 타키온을 힐끔 내다보았다. 타키온은 여느 때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