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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타키] 선물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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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준비했어요."

정적인 공기를 흔드는 한마디에 타키온이 카페를 돌아보았다. 한낮임에도 어둑한 이과 준비실의 커튼 사이로 빛 한 줄기가 새어들었다. 맥락 없이 꺼내진 말이었지만, 타키온의 명석한 두뇌는 빠르게 정답을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이었군! 꽤나 늦은 선물 아닌가. 원래 산타는 이브의 밤에 오가지 않나. 그래도 자네가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만큼은 반갑군. 기왕이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내 실험에 어울려주는 것으로 부탁하네만."

타키온이 히죽거리며 영롱한 색깔로 빛나는 플라스크를 흔들었다. 그 작태에 카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이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연구로 끌어들이는 솜씨가 과연 타키온다웠다. 하지만 그간 어울려온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라서, 카페는 침착하게 답했다.

"실험에 어울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형태가 없는 것만은 맞아요."

수수께끼처럼 곧바로 선물을 말하지 않고 에둘러가는 카페를, 타키온이 짙은 미소로 바라보았다. 타키온 자신만큼은 아니었지만, 카페도 꽤나 짓궂은 구석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타키온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자네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궁금하군. 일반적으로 친구 사이에서 비물질적인 선물이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기 소원권과 같은 것을 교환하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역시 내 실험에 어울려주는 것 아니겠나?"

타키온의 추측에 곧바로 답하지 않고 카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머그잔에 담긴 검은 액체가 입술을 적시는 소리를 들으며, 타키온은 가만히 카페를 응시했다. 먼저 화두를 꺼내어 놓고 뜸을 들이다니. 왠지 카페의 페이스에 말리는 듯했다.

잠시간의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어쩐지 공기의 온도가 내려간 듯했다. 마치 레이스에서 그림자 속에 숨어 뒤를 노려오는 카페의 추격을 받는 듯한 오싹한 긴장감. 하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타키온에게 다시 시선을 맞춘 카페가 대답했다.

"그보다 더 깊고, 넝쿨처럼 얽히는 것. 자유보다는 속박에 가까운 것이에요."

타키온이 그 의미를 곰곰이 떠올려보는 사이, 카페는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걸음으로 타키온에게 다가왔다.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깊게 기대어 카페를 올려다보는 타키온에게 카페는 손을 뻗었다. 양팔 사이에 타키온을 가둔 카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타키온의 얼굴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갔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타키온을 어둠 속에 가두었다. 그림자 아래에서 타키온은 당황하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카페의 얼굴. 타키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런 스킨쉽을 할 사이였던가, 우리는. 바로 곁에 있었으나, 항상 거리를 두고 앉는 사이. 같은 방을 공유하지만, 철저히 분리된 공간. 친구로조차 정의되지 않은 관계.

그럼에도 카페는 멈추지 않고, 타키온의 의식을 넘어 다가왔다. 타키온의 바로 눈앞에서 카페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카페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두근거리는 혼란 속에서 타키온은 결국 그를 따라 눈꺼풀을 닫았다.

마침내 둘의 거리가 제로에 수렴하고, 카페와 타키온의 이마가 맞닿았다. 뜨거운 체온이 이마를 넘어 느껴졌다. 닫힌 눈꺼풀 속에서 타키온은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그 열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서늘한 피부를 넘어 뜨거운 맥박이 맞닿은 이마로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카페는 다가왔던 때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여전히 양팔 속에 타키온을 가둔 채로 카페가 가만히 타키온을 내려다보았다. 둥근 달과 같은 눈동자에 비치는 얼굴은 붉었던가. 평소라면 매끄럽게 굴러갔을 혀도 어떠한 낱말도 꺼내놓지 못했다.

혼란 속에 남겨진 타키온에게 카페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떠셨나요, 제 선물."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에 타키온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황에 찬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타키온이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카페가 가만히 눈을 한 번 깜박였다. 닫혔다 열린 두 눈에는 어떤 거리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도리어 분해서 타키온은 씁쓸한 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 허탈해하는 타키온에게 카페가 차분히 답했다.

"평범한 선물은 주고 싶지 않았어요. 범상한 물건이라면 분명 쉬이 잊힐 테니까. 보다 깊이, 찌르듯이 파고드는 기억을. 당신에게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주고 싶었으니까."

언뜻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담은 열에 타키온이 끌어올려진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다. 분명 타키온에게는 전해졌다. 깊게 파고드는 기억이. 하지만 그건 다른 누군가로부터였더라도 그랬을까? 빠르게 회전하는 두뇌로는 내포된 감정을, 그리고 자신에게 숨어있던 감정까지도 정확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는 선물이었다. 아니, 이것을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선물이라기엔..., 저주에 가깝지 않나."

한숨을 쓸어내리듯 손으로 얼굴을 덮는 타키온을 카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페의 혈관에도 뜨거운 피가 빠르게 돌고 있었다. 그것을 카페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리듬을 새기며 카페는 말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언제까지고 간직되는 선물보다는 대를 이어오는 저주가 더 강한 법이니."

타키온으로부터 손을 떼어, 기도하듯이 양손을 모은 카페가 이윽고 선언했다.

"이 순간을 계속, 계속 생각해 주세요."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에 타키온이 체념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아직도 빠른 맥박에 숨이 가빠졌다. 길고 긴 레이스를 마친 것처럼 심장이 고장날 것처럼 뛰었다. 고통스러운 고동에도 타키온은 자신이 카페에게 이기지 못했음을 알았다. 커피처럼 오래 입안을 감도는 쓰린 맛을 곱씹으며 타키온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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