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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마짱] 된장국이 맛있게 끓여져서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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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바다로 흘러가는 거예요. 부서지는 파도 소리 속에서 네가 말했다. 샘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내리고 내려서 가장 낮은 곳으로, 모든 것은 흘러가는 거예요. 나긋한 목소리가 바다의 고동 소리에 흐려졌다. 예외는 없어요. 모두 언젠가는 바다에 다다라요. 그러니까 슬프지 않아요. 나에게는 슬프게 들리는 목소리가 자꾸만 밀려드는 물결에 부딪혀 부서져 갔다. 그렇게, 육중하게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가 너의 흔적을 지워간다.

그럼 안녕히.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어도, 그러모은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거스르지 못하는 흐름으로 너는.

그리고 꿈은 끝났다.

깨어났을 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에 드는 컷이 그려지지 않아 새벽까지 만화를 그렸다. 마짱의 일상을 그린 4컷 만화는 이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보람도 잠시, 졸린 눈꺼풀은 좀처럼 뜨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가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거기에 못 이겨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나갔다.

하품하며 넘겨본 인터폰 너머로는 마짱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방문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자 나른한 기분은 단숨에 풀렸다. 담당을 오래 세워둘 수 없어 서둘러 문을 열었다.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느긋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마짱에게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아침부터 어쩐 일일까. 갑자기 찾아온 마짱은 현관에서 머리를 잠깐 정돈하고, 다소곳이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마루로 올라왔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자고 있었나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침 흘린 자국이라도 있었나.

“머리가 까치집이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손을 들어 머리를 정리했다. 차라리 방에 들어가서 빗으로 빗고, 세수도 하는 게 나을지도. 하지만 그전에 마짱에게 주스라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생각난 대로 부엌에 가서 주스를 따라왔다. 그사이 마짱은 소파에 앉아 옆에 가방을 내려두었다. 얌전하게 앉은 마짱의 앞에 주스가 담긴 컵을 내려놓고, 서둘러 방으로 가서 간단하게 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왔다.

다시 돌아왔을 때 마짱은 그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앞에 놓아둔 주스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여름이라 오는 길은 더웠을 거다. 주스가 아니라 보리차가 나은지 물어보려는데 마짱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침, 드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짱이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릎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배가 고픈 걸까? 밥솥에 보온 된 밥이 남아있었다. 내가 조금 적게 먹으면 둘이서도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아침 먹을까?”

이번에는 마짱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아직 안 드셨다면, 아침 드세요.”

보온병의 뚜껑을 열자, 보온병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고소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따끈한 된장국의 냄새.

“된장국을 끓여왔어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나는 부엌에서 국그릇과 밥 한 공기, 몇 가지 반찬을 가져와 소파 앞 탁자에 차렸다. 국그릇을 내려놓자, 마짱이 빈 그릇에 된장국을 따랐다. 김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퍼져나갔다. 덕분에 잊고 있던 허기가 들었다.

“맛있게 드세요.”

마짱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한술 떴다. 하얀 밥을 입에 머금고 된장국을 조금 마셨다. 조금 딱딱해진 밥에도 스미는 된장국은 맛이 있었다. 평범한 된장국인데도 어쩐지 맛이 깊어서, 밥을 몇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쉽게 삼켜버리기 아까워서, 천천히 씹으며 그 맛을 되새겼다. 평소보다 오래 첫술을 삼킨 나에게 마짱이 물었다.

“어떤가요?”

따스하게 입안에 남은 여운을 곱씹던 내가 대답했다.

“맛있어.”

마짱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입가에 미소가 패였다. 단순히 맛있다는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으러 고민하는 사이 마짱이 말했다.

“아침에 된장국을 끓였는데 무척 잘 되었어요. 마짱이 먹어봐도 퍼펙트,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맛이에요.”

잔잔한 목소리를 넘어서 느껴지는 뿌듯함에 나도 미소 지었다. 퍼져나가는 그리운 냄새에서, 입안을 적시는 따뜻한 맛에서 마짱의 정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선생님한테도 먹게 해주고 싶었어요.”

마짱이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들어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착각이 늪처럼 차올랐다.

“선생님은 저와 같은 것을 느끼기로 했어요.”

꿈꾸는 듯한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이 흘러가기로 했어요.”

창문으로 넘어온 아침 햇살이 뺨을 간지럽혔다. 언젠가 저물 빛은 지금은 반짝이며 따스함을 주었다.

“그래서 맛보여주고 싶었어요.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마짱이 천천히 눈을 떴다. 부드러운 눈동자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촉촉한 눈망울의 빛이 어른거리며 어딘가 그립고 따스한 기분을 퍼뜨렸다. 된장국에서 올라오는 김은 지금도 따뜻했다. 나는 밥을 다시 떠서 된장국을 삼켰다. 그런 동작을 몇 번인가 반복해서, 천천히, 꼭꼭 음미하며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깨끗이 비운 그릇 앞에서 눈을 들어 마짱을 바라보았다.

“다시 된장국을 먹게 되면, 오늘을 떠올릴게.”

높낮이가 작은 목소리가 말했던 것들, 사뿐한 움직임으로 해냈던 행동들, 부드러운 표정이 보여줬던 것들을 모두 기억해 내지는 못하겠지만,

“네가 무척이나 맛있는 된장국을 끓여주었다는 걸 기억할게.”

그래도 흐린 기억을 더듬어서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짱은 내 말을 끝까지 듣고 있다가, 웃었다.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은 미소였다. 하지만 기억은 조금씩 테두리를 잃고, 결국에는 번진 유화처럼 막연해지고 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웃음을 내 두 눈 안에 담았다. ‘마짱의 전용 렌즈’인 두 눈 안에.


모티브 : 짜파게티 맛있게 끓여졌다고 침대에 들고 와서 아내한테 먹어보라고 하는 남편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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