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타키] 홍차맛 커피
교사 한편의 어느 조용한 교실. 이질적인 두 면이 만나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과 준비실. 알코올램프 위에 올라간 약품이 부글거리는 소리와 입술 사이로 커피를 들이켜는 소리만이 작게 울리는 교실에서, 맨하탄 카페와 아그네스 타키온이 있었다.
평소처럼 수집품인 소파에 앉아 블랙커피를 마시던 카페는 잔 너머로 타키온을 힐끔 내다보았다. 타키온은 여느 때와 같이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입가에는 부자연스럽게 활짝 지어진 미소, 눈에는 괴기스럽도록 형형한 빛을 품고 있어, 다른 누가 보아도 꺼림직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도 타인은 의식도 하지 않는 우마무스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그네스 타키온이었다.
그런 타키온을 두고도 카페는 조용히 잔을 내려놓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나 거리낌을 불러일으킬지 몰라도, 이 풍경은 카페에게 익숙했다. 입학하던 해부터 줄곧 같은 공간을 공유해온 사이였다. 카페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 약간의 관성마저 붙고 말았다. 대화도 없이 간간이 약품과 커피 또는 차를 끓이는 소리만이 울리는 조용한 공간에.
그리고 고요 속에서 문득 작은 속삭임이 카페의 귀를 간질였다. ‘친구’ 의 목소리. 오직 카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어떤 경고를 실어 보냈다.
“카~페~!”
간드러진 목소리가 갑자기 회전했다. 줄곧 플라스크를 들여다보던 타키온이 의자를 빙글 돌려 카페를 향했다. 싱글거리는 미소. 그럼에도 보기 좋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 표정. 그 모습에 카페가 미간을 좁혔다.
카페를 바라보는 타키온의 손에는 검은 액체를 담은 머그잔이 들려있었다. 이미 수십번은 반복되었을 상황에 카페가 곧바로 타키온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안 마셔요.”
“왜 그러는가, 카페~. 이게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나.”
“당신이 들고 있는 시점에서 정상적인 액체는 아니겠죠. 당신이 마셔요.”
“이건 내가 마시면 의미가 없단 말일세.”
“그럼 버려요.”
“그러지 말고, 카페~.”
타키온이 애원하는 소리를 냈지만, 카페는 눈살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자신에게 유리할 것 없다는 걸 카페는 지겹도록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버린 카페를 향해, 이제 타키온은 의자에서 내려와, 카페의 공간인 소파 맞은편에 앉아 열변을 토했다.
“들어보게. 이건 홍차맛 커피야.”
“역시 좋을 것 없는 거였군요.”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나! 조금쯤 귀를 기울여주게. 내가 이걸 만든 이유는 자네를 위해서이기도 하네.”
“또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조용히 노려보는 카페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타키온은 목을 가다듬고 변론을 이어갔다.
“사츠키 상 이후부터 우리는 한배를 타지 않았나.”
예상치 못한 지적에 카페가 미간에 힘을 풀었다. 사츠키 상, 타키온의 압도적인 승리, 그 뒷모습에서 잠깐 겹쳤던 ‘친구’의 그림자, 이어지는 타키온의 무기한 출주 중지 선언. 카페의 마음속에 어떤 얼룩을 남긴 타키온은 그 직후 카페를 찾아와 조력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조력자와 피험자로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겠지.”
카페는 눈동자를 움직여 머그잔 안에서 찰랑이는 검은 액체를 힐끔 보고, 타키온의 눈동자에 자신의 눈을 맞췄다. 여전히 흥분이 서린 목소리로 타키온이 머그잔을 내밀었다.
“이걸 마시면 나에 대한 자네의 이해는 더 깊어지지 않겠나?”
자신의 변론을 마치고 매끄러운 미소를 띠는 타키온을 카페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바라봐도, 오랜 시간 한 공간을 공유했음에도 짐작할 수 없는 진의에 카페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 아그네스 타키온이 이해를 논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톱니바퀴의 이가 엇나간 듯이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누군가 이해해 주지 않아도, 괴짜로 불리며 가장자리로 몰려도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카페의 타키온에 대한 인상은 그러했다. 맨하탄 카페 안에서 아그네스 타키온의 인성을 높게 평가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더라도 타키온을 경멸하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그런 평가는 타키온의 앞에서 무용해질 테니까.
그런 타키온이 스스로 이해를 입에 올렸다는 것에서 카페는 동요했다. 어째서 이제 와서. 머그잔 안의 액체는 잔잔한 수면 위에 주위를 비추었다. 카페를 기다리는 타키온의 입술은 여전히 호선을 그렸다.
이해. 같은 길을 가게 된 동지끼리라면 그런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독처럼 검은 액체를 건네는 타키온을 앞에 두고 카페는 천천히 그가 내민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타키온 씨.”
“그래, 그대로 마시면 된다네.”
“저는 역시 우리 사이에 이해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카페는 들어 올린 머그잔을 그대로 타키온에게 되돌려 주었다. 무참히 깨어지는 타키온의 미소를 바라보며 카페가 말했다.
“당신 말대로 저희는 이제 한배를 탔죠.”
우마무스메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에 도달하는 것. 닿지 않는 ‘친구’를 앞질러 ‘친구’에게 닿는 것. 불가능한 것을 넘어서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조차 없는 목표였다. 일본 더비 우승, 천황상 제패, 3관 달성 같은 확실한 목표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해를 바라는 꿈이 아니었다.
재능은 있었어도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이유로 트레이너가 붙는 것도 늦었다. 그렇더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렇게 길은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해하지 않아도,”
그 길에서 우리가 만났으니까.
“우리의 길이 겹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내민 카페의 손에 들린 머그잔으로 타키온이 눈동자를 내렸다. 석양이 비치는 블라인드 같은 붉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감겼다. 카페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본래 이해를 바라고 이 길을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곱씹으며, 타키온이 가슴 앞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카페를 향해 애원했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마셔주면 안 되나~? 이렇게 부탁하지!”
도통 들어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타키온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뜬 카페가 머그잔을 들고 창가로 갔다. 그리고 창밖으로 검은 액체를 쏟아버렸다.
“카~페~!”
“아무래도 조용히 있기는 틀린 것 같네요.”
카페가 빈 머그잔을 타키온의 실험대에 내려놓았다. 재빠르게 달려와 머그잔이 완전히 비었다는 걸 확인한 타키온이 울상을 짓는 모습을 뒤로 하고, 맨하탄 카페는 이과 준비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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