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카페타키] 자작나무 숲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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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자작나무 숲. 어둠이 내린 백색의 나무 사이에 그들은 서 있었다. 오롯이 맨하탄 카페와 아그네스 타키온, 단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공간. 검은 정적 속에 하얀 숲이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 높이 솟아오른 자작나무를 올려다보며 타키온이 말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실체를 가진 풍경이군. 이전에는 명확한 형태를 지니지 않는 꿈이지 않았나. 여전히 심상 풍경의 시간대는 밤이지만. 이전보다 자네의 무의식이 안정되어 있어서일까? 실로 흥미로워. 이 공간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열기가 서린 목소리가 서늘한 공기를 울렸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에는 와중에도 타키온은 연구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에 놀란 것은 아니다. 카페가 아는 아그네스 타키온이란 본래 그런 우마무스메니까. 단지 이 공간에 타키온이 존재한다는 것에 카페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지금 카페와 타키온은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 타키온이 만든 실험 도구로 타키온은 카페의 꿈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직 카페가 트윙클 시리즈를 뛰고 있을 시절에도 했었던 실험이었다. 그때 카페는 자신의 꿈속에 침입한 타키온 탓에 악몽을 꾸고 한동안 후유증이 남았다. 그런 카페에게 시무룩하게 커피를 건네던 타키온이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왜 드림 트로피 리그를 뛰고 있는 지금에 와서 다시 이 실험을 할 마음이 들었는지. 연말 대청소로 이과 준비실을 정리하다가 꿈 공유 기계를 재발견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패한 도구는 버리는 게 맞지 않냐면서도 기계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타키온에게 결국 카페는 한 번만 더 써보고 또 실패하면 버리자고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든 타키온의 입술에서 뜨거운 숨이 피어올랐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열이 새하얗게 얼어붙어 자작나무 숲 사이로 흩어졌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페도 고개를 들어 무수하게 자라난 하얀 나무의 끝을 가늠했다.

주위를 채우는 것은 밤의 어둠. 그럼에도 새하얀 나무들이 검은 밤을 빛내고 있었다. 분명 카페에게는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칠흑에 어우러지는 백색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마치-"

다시 입을 여는 타키온에게 카페가 시선을 향했다. 타키온과 카페의 눈동자가 맞았다. 노란 눈동자가 붉은 상이 맺혔다. 붉은 눈동자를 부드럽게 휘며 타키온이 이었다.

"이국의 풍경인 것 같군. 스칸디나비아반도 쪽인가. 자네가 가보고 싶다던 맨해튼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일세."

질문으로 말을 마친 타키온이 매끄러운 미소를 걸고 카페를 바라보았다. 카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새어 나온 숨이 눈앞에 안개를 만들었다가 서서히 걷혔다.

하얀색, 빛, 밝음. 그런 것들과는 예전부터 익숙하지 않았다. 그림자에 있는 것이 익숙했다.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카페에게는 모든 것을 가리는 어둠이 차라리 편안했다. 그림자 속에서는 카페에게 친숙한 이들이 선명했고, 카페가 꺼리는 이들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하얀 나무가 싹을 틔우고, 숲이 되어 카페의 꿈을 빽빽이 채웠다. 스스로 숨기지 않는 명징함이. 카페가 물끄러미 타키온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백의. 승부복으로도 항상 걸치는 상징을 타키온은 지금도 입고 있었다.

타키온은 카페가 인지하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카페는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잘 모르겠어요."

지금 깨달은 것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응달 속에서 자라난 하얀색의 근원을. 그 결정을 모르는 것처럼 타키온은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런가. 자네에게도 짐작 가는 게 없단 말이지."

그리고 타키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해외에서 온 관광객처럼 주변 경치를 눈에 하나하나 담았다. 그것이 단순한 연구자의 눈과는 달라 보여서 카페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이곳은 자신의 꿈, 자신의 무의식, 자신의 영역. 그 안을 들여다보는 타키온을 보며 미묘한 초조함, 껄끄러움, 어쩌면 부끄러움 같은 감정이 속을 울렁였다.

"나는 연구자로서 객관적인 관찰의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주지하고 있다만."

어딘가 감탄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타키온이 말했다. 감탄? 카페는 타키온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 아그네스 타키온이?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는 표정에서 카페는 여전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약간의 환희를 띠고 타키온이 말했다.

"그런 관점을 떼어놓고 내 사견을 말하자면, 이 풍경은 내 미적 감각에 맞는 것 같군."

가만한 시선이 타키온의 유들유들한 미소에 닿았다. 밤의 자작나무 숲에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눈송이는 바람 없이 조용히 내려 그들의 발치에 내려앉았다. 이것은 마치 하얀 콘페티였다. 이전에는 불청객이었던 존재를 고요히 맞이하는 식. 그러니 카페는 타키온에게 말했다.

"마음에 드신다면 타키온 씨를 여기에 묻어드릴게요. 이 숲 아래에."

그런 말을 카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사람에 따라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에 타키온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고요하게 선 자작나무 숲 사이로 유쾌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카페는 가만히 노란 눈동자에 그 모습을 담았다. 한바탕 웃고 난 후 타키온이 카페에게 즐거움이 서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참 로맨틱하지 않나. 나를 비료로 자라난 자네의 무의식이 어떨지 나도 궁금하군. 부디 그때는 나도 관찰할 수 있게 해주게."

그런 타키온을 카페는 조용한 미소로 비추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새하얀 자작나무 숲. 어둠 사이로 무수히 자라난 숲을, 간간이 웃음소리를 울리며 카페와 타키온은 걸어갔다. 그들의 꿈이 끝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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