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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카페] 향수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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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이과 준비실에서 아그네스 타키온은 생각했다. 안정 상태. 타키온이 정의하는 현재는 그러했다. 자주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운동장의 소음도 지금은 적막했고, 완성되어 타키온의 손을 떠난 연구는 아직 새로운 과제로 옮겨가지 않았다. 방해도, 실험도 이루어지지 않는 완벽한 안정의 상태.

물론 정의하기에 따라 여전히 공기 분자는 대류 현상을 일으키며 활발히 움직였고, 계를 넘어오는 태양광선에 열에너지는 시시각각 변화했으므로, 이과 준비실의 내부는 안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타키온의 정신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안정 상태에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타키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는 비상사태다. 생명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며, 정적인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적인 생명은 곧 죽음이었다. 그러니 타키온은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논리의 비약으로, 그 자신도 알고 있듯이 그는 단순히 지루했다. 초침의 소리마저 헤아릴 정도로. 지금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 몰두할 연구 과제는 찾지 못했고,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그에게 자극을 선사해 주지도 않았다.

새로운 인물. 거기까지 생각한 타키온이 문득 그의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은 깜박임 없이 검은 화면만을 보였다. 오늘 카페는 외출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파티용 장식을 사러 유키노와 상점가를 돌 거라고 어제 카페가 그에게 전했다.

지금쯤이면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실제 시각은 그렇게 늦지 않았음에도 타키온은 그렇게 느꼈다. 지금 그는 심심했으니까. 카페와 자신은 서로 돌봐주고, 돌봄 받는 관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그가 자신을 신경 써줘야 하는 건 당연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당연하지 않았으나, 타키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카페는 타키온의 옆에 있어야 했다. 그의 정적 상태를 깨기 위해.

마음을 정한 타키온이 카페에게 연락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마찰면이 매끄럽지 않은 문에서 둔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과 준비실의 공기에 이질적인 입자가 섞여 든 것을 의식하기 이전에, 카페의 귀환을 눈치챈 타키온이 활짝 웃었다.

"카페! 왜 이렇게 늦었나! 크리스마스라는 종교적 의식을 깊이 생각할 정도로 자네의 신앙심이 깊지는 않을 텐데. 오히려 종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친구'의 존재를 맹신하는 자네는 이단 아니겠나. 왜 그런 것에 그렇게 시간을 쓴 건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다행이야. 어서 앉아서 다과를 차려주게. 외출에서 돌아왔으니 나를 위한 케이크 정도는 사 왔겠지?"

크리스마스가 현대에 와서는 종교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본인도 파티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전부 누리고 있으면서도 타키온은 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의 입술만큼이나 갈색의 꼬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페가 기분이 상한 기색도 없이 그에게 대답했다.

"제가 당연히 타키온 씨를 위해 무언가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 주세요. 쿠키라면 조금 사 왔지만…."

카페가 손에 든 꾸러미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동시에 붉은 눈동자가 환히 열렸다. 카페가 목도리와 외투를 가지런히 걸어두는 사이, 타키온이 총총히 카페의 공간으로 넘어왔다. 당연한 것처럼 소파에 앉은 타키온이 미리 우려둔 홍차의 향기를 음미하듯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제야 타키온은 카페가 들어왔을 때부터 실려 온 이질적인 입자를 감지했다.

타키온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타키온의 후각 신경에 감지된 입자의 근원은 카페였다. 달콤하고,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가까이하고 싶은 향. 평소 카페에게선 맡을 수 없는 향기였다. 그것을 깨닫자, 타키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옷 정리를 마치고 차분하게 소파에 앉는 카페에게 타키온이 말했다.

"카페, 오늘 자네에게선 낯선 향이 나는데."

그 목소리에 카페가 타키온을 바라보았다. 가는 눈이 된 타키온 앞에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내린 카페가 말했다.

"유키노 씨가 골드 시티 씨한테 추천받은 향수가 있다고 해서 향수 가게에 들렀어요. 유키노 씨가 골라주었는데 이상한가요...?"

차분한 카페의 대답에 타키온이 팔짱을 끼고 못마땅하게 팔을 두드렸다. 추궁하기 전에 먼저 실토하는 태도는 좋았지만, 그 실상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키노가 향수를 골라준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사실은 그 부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문제는 카페가 왜 지금껏 쓰지 않았던 향수를 걸칠 생각을 했는지다.

향수는 근본적으로 타인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쓰는 물건이다. 옷, 시계, 귀걸이부터 해서 인간이 타인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쓰는 사치품은 얼마든지 있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원초적인 욕망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통념상 그런 사치품 사이에서 향수는 좀 더 내밀한 욕망과 연관되어 있었다.

시각에는 사각이 있었지만, 후각에 사각이란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부터 오건, 시선을 끌게 된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감각. 타키온의 사고에서 이건 상대를 유혹하려는 목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타키온이 눈살을 찌푸리고 카페를 응시했다. 카페는 조용히 사이펀 기구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은은한 향은 사라지지 않고 타키온의 후각을 자극했다. 향 자체는 타키온에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카페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 알 수 없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과학자로서 규명되지 않은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결코 질투 같은 하찮은 감정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납득시킨 타키온이 불확정 요소를 밝혀내기 위해 카페에게 말을 걸었다.

"카페, 앞으로의 예정은 어떻게 되지?"

우려낸 커피를 머그잔에 따라 커피 향을 음미하던 카페가 고개를 들어 타키온을 마주 보았다. 초조한 타키온을 따라오지 않는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가만히 보름달 같은 눈동자를 깜박인 카페가 대답했다.

"이제 돌아왔으니까, 오늘은 쉬려고 해요."

"그러니까 누구랑 쉬려는지 말해보게."

"...이미 쉬고 있잖아요."

"숨기지 말고 약속 상대를 밝히게."

"...벌써 유키노 씨와 만나고 왔고, 그것도 미리 말했어요."

심문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며 타키온이 다시 초조하게 팔을 두드렸다. 밝혀진 사실을 정리해 보자. 카페는 유키노 군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외출 중에 산 향수를 뿌리고 왔다. 향수는 근처에 있는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한 것. 지금 카페는 이과 준비실에 있고, 다시 나갈 예정은 없다. 현재 이과 준비실에 있는 사람은 카페와 자신뿐.

생각을 거듭할수록 서서히 끓어올랐던 열이 내리고 새로운 고양감으로 옮겨붙었다. 타키온의 입술 끝이 씰룩였다. 하지만 검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종 결론에 이르기 전에 타키온이 카페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카페, 크리스마스의 예정은 어떻지?"

타키온은 짐짓 눈살을 찌푸렸다. 물끄러미 타키온을 바라보던 카페가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전에 제가 타키온 씨도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했을 텐데요."

증명은 끝났다. 도출되는 결론에 타키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카페, 자네는 역시 나를 너무 좋아하는군."

기분이 나쁜 듯하더니, 한순간에 반전되어 홍소하는 타키온을, 입을 살짝 벌리고 바라보던 카페가 말했다.

"전혀 맞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기압이었던 상태가 한순간에 개인 타키온은 손을 뻗어 카페가 가져온 꾸러미를 풀었다. 안에서 나오는 쿠키는 설탕이 잔뜩 뿌려진 달콤한 것과 담백한 것이 섞여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타키온은 달콤한 쿠키를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머그잔 뒤에서 바라보는 카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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