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우마무스메 / 맥테이] 수증기 속의 마음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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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 향긋한 홍차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메지로 가의 집사가 우려낸 차를 찻잔에 따르자, 마음이 진정되는 향이 방안을 채웠다. 고풍스러운 메지로 가의 저택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향. 메지로 맥퀸이 그에 맞는 완벽한 예법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분한 티타임을 즐기는 맥퀸의 마음은, 그러나 요동치고 있었다.

애써 평상심을 가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메지로 가에서 긴 세월을 보내온 집사의 눈에 맥퀸은 명백히 수심을 품고 있었다.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맥퀸을, 집사는 잠자코 지켜보았다. 주인의 걱정은 집사에게 있어서도 근심거리였다. 그러나 함부로 주인의 의중을 떠보는 것 또한 집사의 본분에 반하는 일. 그러니 집사는 맥퀸이 스스로 말을 꺼내기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찻잔을 떼어낸 맥퀸의 입술로부터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단순히 따뜻한 차를 마셔 몸이 풀린 탓에 나오는 한숨은 아니었다. 집사의 짐작대로 어떤 걱정이 맥퀸을 괴롭히고 있었다.

"할아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집사에게 맥퀸이 말을 꺼냈다. 집사가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아가씨."

"할아범은 만약 호감을 느낀 상대가 있다면 어떻게 다가갈 건가요."

집사는 조용히 대답을 골랐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이유가 맞았다. 명문가의 아가씨라고 하지만, 메지로 맥퀸 역시 사춘기의 소녀. 연애와 같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맥퀸은 강하게 의식하는 상대가 있었다. 몇 번인가 이 저택에도 찾아왔던 소녀. 아가씨에게 달리는 이유를 준 라이벌. 언제까지나 곁에서 함께 달리자고 약속한 상대. 토카이 테이오. 분명 그 소녀가 맥퀸의 걱정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리라.

하지만 역시 넘겨짚어서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집사의 본분에 어긋나는 일. 집사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답했다.

"호감을 느낀 상대에게는 온 정성을 쏟는 것이 지당하겠지요. 호감을 드러내는 일은 적어서도, 또 지나쳐서도 안 된다고 이 집사는 생각합니다."

"저도 동감이에요. 항상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어째선지 그 아이는!"

갑자기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은 맥퀸이 소리쳤다.

"그 아이는 왜 저를 피하는 거죠?! 제가 그렇게 부담스럽나요?!"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넘쳐흐른 홍차를 집사가 닦아냈다. 맥퀸이 헛기침했다. 부끄러운지, 아니면 흥분한 탓인지 맥퀸의 얼굴이 살짝 붉었다. 집사가 묻지 않아도 맥퀸은 중얼중얼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건의 시작은 약 한 달 전이었다.

-

기숙사에서 학교로 오는 등굣길, 가로수가 늘어선 길에는 낙엽이 깔렸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맥퀸은 느긋한 발걸음을 옮겼다. 색색의 나뭇잎을 사박거리며 길을 걷다 보면, 앞에서 높게 묶여 흔들리는 포니테일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갈색 포니테일과 경쾌한 발걸음이 오직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쿡쿡 웃으며 맥퀸은 그 뒷모습에 다가갔다.

"이제 등교하시나요?"

"삐에에에!"

말을 건 것과 동시에 제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소리 지르는 테이오를 맥퀸이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윽고 돌아본 테이오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해쓱했다. 살짝 불쾌한 감정을 숨기고 맥퀸이 물었다.

"테이오, 왜 그러시나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그런 말만 남기고 테이오는 재빨리 뛰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맥퀸이 붙잡을 새도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맥퀸은 갈 곳 없는 팔을 내리고 테이오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아니 인사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혹시 어제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었을까요? 곰곰이 고민을 해봐도 전날은 팀 스피카의 트레이닝이 있어서 저녁까지 합동훈련을 하고 함께 노을 진 하굣길을 걸었을 뿐이었다.

설마 그때 테이오가 있어서 든든하다고 말한 게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부담스러워하기에 맥퀸과 테이오 사이에 쌓인 인연은 굳건한 것이었다. 맥퀸은 그날 솔직하게 느낀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었다. 단지 노을에 물든 테이오의 얼굴이 평소보다 붉었다는 것만이 떠올랐다.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그렇다면 테이오의 반응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차피 테이오와 맥퀸은 같은 반이었다. 지금 피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해서 반에서도 계속 질색하며 피해 다닐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요, 저와 테이오의 사이인걸요. 고작 이런 걸로 사이가 틀어질 리가…

있었다.

테이오는 반에서도 맥퀸만 보면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도망치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아예 맥퀸이 다니지 않을 법한 길로만 다니는 듯이 눈에 띄지조차 않았다. 처음에는 오기로 따라다녔던 맥퀸도 점점 지쳐서 풀이 죽었다. 무언가 중대한 실수를 한 게 분명한데 그게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저는 어째서 테이오에게 미움받은 걸까요…."

기운 없이 중얼거린 맥퀸이 식은 홍차를 단번에 마셨다. 아가씨, 그건 술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테이오가 맥퀸을 피하는 일이 맥퀸에게는 큰 상심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집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집사가 맥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메지로 가의 온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

"온천?"

"예, 온천에서 느긋이 몸을 풀다 보면 해결책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긴장이 풀려야 비로소 사고가 유연해지는 법이니까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준비해 주세요. 이번 휴일에 확실히 고민을 해결해야겠어요."

아직 확신이 안 서는 듯했지만, 그나마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그런지 맥퀸의 얼굴에 생기가 조금 돌아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집사도 준비할 것들을 복기했다. 이 계획이 테이오 님과 아가씨의 사이를 더 가까워지게 해주기를. 결연한 표정으로 맥퀸도, 집사도 각오를 다졌다.

-

휴양지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고용인들에게 맡긴 맥퀸은 먼저 온천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정말 온천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결책이 떠오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복잡한 감정을 녹이고 싶었다. 탈의실에 들어선 맥퀸이 하나둘 옷을 벗었다.

온천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맥퀸의 마음속에는 테이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평소와 같은 기운찬 얼굴,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얼굴, 상심해서 기운이 없는 얼굴,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나 맥퀸을 향해 믿음직스럽게 웃어 보였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맥퀸에게 질린 듯이 경악하던 최근의 얼굴이 떠올라버렸다.

맥퀸이 볼을 부풀렸다. 정말 무슨 짓인가요. 내가 당신에게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오히려 그래서인가요. 문득 떠올린 가정에 괴로워지기 전에 맥퀸이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은 부정적인 생각부터 떨쳐내야겠죠.

그렇게 맥퀸이 탈의실에서 온천으로 가는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엑, 맥퀸?!"

"테이오?!"

동시에 문고리를 잡은 테이오와 맥퀸의 눈이 마주쳤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맥퀸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테이오가 문고리를 놓고 뒤로 돌아 그대로 도망치려고 했다. 상대의 등을 보면 쫓고 싶은 것이 우마무스메의 본성. 반사적으로 맥퀸도 테이오를 쫓아 달렸다.

"왜 맥퀸이 쫓아오는 거야?!"

"그야 당신이 도망치니까죠!"

탈의실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추격전은 맥퀸이 테이오를 뒤에서 끌어안아 넘어뜨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맥퀸에게 붙잡힌 테이오가 몸을 뒤집어 맥퀸을 밀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맥퀸은 테이오를 꽉 끌어안고 절대 놔주지 않았다. 붙잡힌 뒤에도 한동안 몸싸움을 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로 맥퀸과 테이오의 눈이 마주쳤다. 테이오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보지 마…."

맥퀸이 쓰라린 표정을 지었다. 정말 온몸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 같은 테이오의 태도에 맥퀸은 깊게 상처 입었다. 상심한 목소리로 맥퀸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제가 싫으신가요?"

"엑?"

"제가 싫어서 그렇게 저를 피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당신은 그런 내 호의가 싫어서…."

"그럴 리가 없잖아!"

테이오가 강하게 부정하자 맥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이오를 쳐다보았다. 얼굴을 가렸던 팔을 풀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던 테이오가 말했다.

"맥퀸이 싫은 건 절대 아니야. 오히려 좋은걸! 좋은 건 분명한데, 요즘은 어쩐지 맥퀸만 보면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왠지 초조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데 어쩔 줄 모른다니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나아지고 나면 다시 맥퀸을 보려고 했는데, 맥퀸을 상처입혀버렸네. 미안…."

큰소리로 부정하던 테이오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가듯 작아졌다. 테이오는 이제 붉어진 얼굴을 다시 가리고 작게 우는 소리로 신음했다. 맥퀸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테이오의 말을 맥퀸이 곱씹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건 마치…. 마음속에서 정리가 끝난 맥퀸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할아범. 덕분에 고민이 씻은 듯이 해결되었네요.

내려다보는 테이오의 얼굴은 정말 홍조로 가득했다. 얼굴 뒤로 보이는 귓볼까지 빨갰다. 맥퀸이 테이오의 양손을 모아 잡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잘 알았어요. 일단 테이오, 우리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요?"

"시, 신혼여행? 갑자기 무슨 소리야?!"

"걱정 말아요. 메지로 가의 영향력이면 동성결혼도 아무 문제 없어요!"

"결혼?! 왜 갑자기 그런 얘기가 되는 거야?! 이유를 모르겠어!"

온천에 들어가기도 전인데 따스한 기운이 둘 사이에서 피어났다. 이제 완전히 고구마처럼 익어버린 테이오가 비명을 질렀다.

"누가 나한테 설명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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