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예외는 있다
아침 러닝도 잊은 3월 17일의 오후, 뉴인치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한 대리석 외관의 고상한 갤러리 건물 최상층에는 <라베른 갤러리>의 주인인 에드가가 따스해진 햇살이 들이치는 와중에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필시 서류라도 들여다보다 농땡이라도 피우고 싶어진 것이다. 지금 자신이 프랑스에 있었다면 이 햇살을 만끽하며 남편 상사가 초대한 연말 파티에서 춤추던 유부녀가 이탈리아 발음이 능숙한 미중년과 결국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그 다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을텐데, 그리 아쉬워하며 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해 진 다음에나 퇴근하는 삶이라니, 미국인들은 역시 인생을 즐길 줄 몰라..."
테이블의 시가렛 케이스를 더듬어 꺼내고는 장미 꽃잎으로 필터를 감싼 담배를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실내 흡연을 금지한다는 법령부터가 이해가 가지 않은 탓에 '그럼 내 건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한 마디로 소방 시설을 개조해버린 것이 이 개연성이었으며, 담배를 즐거워할 줄 모른다면 예술을 즐길 줄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요즘에 별 일 없지?"
"갤러리요? 지난 달 매출이 22만 유로인데 아무래도 없는 편이죠?"
"미국인 다 됐어, 까뮈... 곧 있으면 볼 캡도 쓰고 다니겠는데."
손 끝으로 페도라를 걸친 머리를 가리키곤 손짓한다. 창 밑으로 깔린 자가용을 가리키는데, 그 중에도 블랙과 화이트로 꾸민 경찰차를 가리켰다.
"사이렌도 안 켰잖아요, 여기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왜 사람 다니는 길에 공무차량이 다녀?"
"요즘 할렘가 쪽 인구조사를 제대로 한다 그러더라고요? 그런 거 아닐까요?"
"허어-..."
최근 치안이 별로인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뒷골목 탓이었나? 이 세상에 총칼이 난무하지 않는 뒷골목을 가진 도시가 몇이나 된단 건지, 새 시장은 그 결벽적인 부분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에드가, 할렘 쪽에 건물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렇긴 하지."
"그럼 그쪽으로 연락 오는 거 아니에요?"
"로비 샹들리에만 보고 기절할텐데, 그 청교도인들..."
가볍게 까뮈와 손뼉을 마주치며 킥킥 웃더니 마저 담배를 피웠다. 질낮은 농담, 진한 담배와 독한 술. 가벼운 일탈을 즐기기 위해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그린듯한 일상과 지루함. 탈선을 위한 배경이다.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꽃잎은 신선하기 그지없고, 인구조사란 명목의 전화는 울리지 않는다. 햇살은 어느 곳에도 공평하게 닿는다고 하지만 뒷골목의 그늘은 높다란 이 석재 건물과 달리 이르게 찾아온다.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멜랑콜리를 느끼는 것이 사치인 부류와 외로움의 상징인 부류는 섞일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불균형을 해결해야할 갈증을 에드가는 느끼지 못했다. 그야 정치인도 아닌걸. 그는 그저 누군가를 착취해 얻었을지도 모를 자유를 향유하는 관음을 즐길 뿐이었다. 그러니 그는 속한 채 속하지 못한,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이방인이다.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까뮈, 이번 휴가는 동행을 하나 데려갈까싶은데..."
"저는 애인 이미 있어요."
'너는 말을 해도 꼭...' 나무라듯 말해도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다.
인생은 꼭 장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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