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카자

유언

식재료 관리는 요리의 기본이다. 후루야는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었기에 구입한 식재료의 손질, 보관,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척척 해냈다. 훌륭한 요리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도 싸고 질 좋은 재료 앞에선 발이 묶였다. 신선한 야채일수록 소비기간이 짧다. 1인 가구의 크나큰 단점이었는데, 그렇다고 장기 보관가능한 레토르트 제품으로 식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후루야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냉장고에 최소한 재료로 채우는 게 맞지만, 어째서인지 타임 세일이 붙은 싱싱한 채소를 보면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했다. 단점을 극복할 방법은 한 사람 몫을 더 만들면 된다. 때론 예상 식비가 늘어났지만, 시들거나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 2인분으로 소비하는 편이 더 이익이었다. 게다가 오래 홀로 지낸 사람치고 후루야는 종종 넘치는 요리 욕구를 참을 수 없어 과도하게 만들었기에 식사 면만 봤을 때, 2인 가구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식사준비는 전적으로 후루야 몫이었다. 동거인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지만, 식사를 ‘때우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다 요리 실력은 형편없었다. 후루야의 뛰어난 요리 실력이 요리 발전을 저해한다는 불평을 했었으나 후루야는 동거인 요리를 맛보고 실력 향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아침 식사는 적당한 포만감을 줘야 했고, 위에 자극적이지 않아야 한다. 후루야는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를 중요히 여겼다. 재료나 시간을 아끼기 위해 후루야는 전날 오후부터 메뉴 선정에 고심한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아침까지 만드는데, 국의 경우 넉넉하게 끓일 수도 있고 저녁 장을 보면 다음 날 치까지 봐올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때가 없었다.

동이 틀 기미는 보이지 않고 밖은 끝없이 어두웠다.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자 집 안은 싸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후루야는 후드 지퍼를 목까지 채워 추위를 조금이라도 피해본다.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을 억지로 깜빡이며 렌지에 불을 킨다. 아무리 후루야라도 계절이 바뀌면 힘겨웠다. 오늘 뭘 먹으려고 했더라. 계란말이. 생각 사이로 몇 시간 전 읽은 용의자 보고서가 빼곡하게 떠오른다. 잠적한 지 4년. 최근 중국에서 밀항. 부족한 수면은 생각을 가로막았다. 오이감자샐러드. 불현듯 떠오른 단어가 목구멍을 치고 나왔다. 신호탄을 받은 후루야는 움직임에 막힘없다. 감자칼을 움직일 때마다 서걱서걱 껍질을 뱉어낸다. 주방에서 규칙적으로 탄생하는 소리는 후루야를 편안하게 했다. 미리 만들어두면 좋았으련만, 카자미는 찐 감자로 만든 따끈한 감자샐러드를 좋아했다. 끓기 시작한 국을 내려놓고 불 위로 찜기를 올려 적당한 물과 뽀얀 감자를 넣는다. 냉장고를 열자 겨울과도 같은 한기가 후루야를 덮친다. 오이와 당근을 꺼내는 것으로 아침 재료 준비는 끝.

“잘 잤어?”

하로는 앞발을 쭈욱 내밀며 크게 하품하는 것으로 대답한다. 사람도, 동물도 계절 변화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하로는 어느새 밥그릇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눈뜨면 밥부터 찾는 덕에 후루야는 일손을 멈추고 빈 그릇에 사료를 채운다. 푹 숙인 머리를 몸통까지 슥슥 쓰다듬으며 후루야는 계절의 한기를 잠시나마 밀어내본다. 하로는 거스를 리 없는 사랑을 받으며 쉴 새 없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일어나는 찰나, 시선이 절로 컴컴한 방 안에 잠시 머문다. 침대는 이미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 후루야는 어둠 속에 미련을 가졌다. 들릴 리 없는 숨소리를 버릇처럼 찾는다. 미련을 털어내고 한껏 온기를 채운 그는 아침을 마저 준비한다. 수전에 손을 대자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차디찬 물에 거침없이 손을 밀어 넣으니 정신이 번쩍 들며 잠이 달아난다. 카자미는 다른 사람보다 추위를 배로 타면서 세수는 꼭 찬물로 했다. 물기를 닦아내면 온도에 적응하지 못한 코와 볼이 새빨개져 있어 후루야는 장난을 참지 못하고 코를 꼬집어 보곤 했다. 카자미는 결국 끈질긴 손길을 받아주며 ‘차가워요. 후루야 씨’하고 투덜대며 식탁 한자리를 앉아야, 했는데.

후루야는 차마 식탁을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찜기에서 뿜어내는 하얀 김, 손을 무한히 적시는 얼음장 같은 냉기, 까드득 사료가 부서지는 소리. 작은 공간에 새겨진 감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안에 후루야가 찾는 목소리는 증발한 지 오래였다. 아침 인사와 찰박대는 물소리, 이따금 쑥스럽게 껴안아주는 등의 온기 같은 것들. 그래서 후루야는 영화처럼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야 했다. 희뿌옇게 사라져 가는 눈빛을. 카자미는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후, 루야, 씨.”

“말하지 마. 카자미. 이봐! 구급차는 아직인가?”

“도착까지 십, 이분 예상합니다.”

다급하게 외친 탓에 목청이 찢어질 것 같았다. 폭발의 여파로 먼지가 목구멍을 부유하고 있는 탓도 컸다. 누구도 자잘한 먼지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희망을 하나라도 건져야 했다. 언제나 냉철했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고 아수라장 속에서 부하는 차분했다. 카자미는 먼지를 덮어쓰고 늘어져 있었기에. 상황을 보고하는 부하에게 후루야는 제발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할애하기도 아까워 ‘제발, 카자미. 괜찮을 거야. 제발. 눈 떠. 괜찮아.’ 따위를 중얼거렸다. 청각을 차단하려고 애썼다. 자신의 아래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남자가 가느다란 숨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항상 올곧게 보던 눈은 곧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루야는 이 상황에도 너는 흔들리지 않는구나, 야속한 기분이 들었다. 건물이 으스러진 충격으로 사방은 먼지가 나풀나풀 날렸지만, 카자미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게 벌어진 입으로 겨우 호흡을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먼지를 삼켰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이제 그마저도 미약해지는 것을 느끼자 제발, 제발, 제발, 간절함을 흐느꼈다.

“후, 후루야, 씨.”

“아무 말도 하지 마!”

명령이라기에 비명에 가까웠다. 한마디 뱉는 것도 생명을 깎는 일처럼 느껴져서 지혈만 아니었으면 당장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축 늘어져있던 팔이 움직이더니 후루야의 팔을 붙잡았다. 눈앞에 상대를 담을 힘도 없던 이가 낸 힘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거센 완력에 팔이 타들어 갔다. 카자미는 입술을 벙긋, 벙긋 움직였지만 헛손질처럼 아무런 소리도 뱉지 않았다. 후루야는 홀린 듯이 몸을 숙여 입가에 귀를 갖대 댔다. 헉, 헉, 규칙적으로 숨을 뱉던 카자미가

“내, 내일, 아침, 메, 뉴는.”

까지 말하자 후루야를 속박하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지 말라느니, 일어나라느니 같은 흔한 대사도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후루야는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며 스스로 죽음에 예민한지 잘 알았다. 굳이 손가락을 코 밑으로 대보거나 경동맥을 짚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카자미가 돌아올 수 없는 것을 깨달았지만, 후루야는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찢긴 살점을 눌렀다. 손바닥에 닿은 살은 아직 데일만큼 뜨거웠다. 카자미가 마지막 숨을 토해 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제발, 제발, 제발.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붉은 액체는 끊임없이 손에 뒤엉켰다. 후루야가 아무리 막아도 육체는 마지막 기능을 행하고 바스러졌다. 피의 온도만큼 뜨거웠던 삶이 제 손에서 멈췄다. 죽은 이를 목도하고 후루야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목소리로 ‘카자미.’ 한마디를 뱉었다.

이번에도 후루야는 울지 못했다. 직전까지 눈이 타버릴 만큼 뜨거웠던 눈이 카자미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 한 순간, 냉정하게도 눈물은 빙하의 온도로 사라졌다. 그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제가 아끼는 오른팔을 잃은 충격에 넋이 나가있었다. 하지만, 후루야 답게 장례부터 유품 정리까지 척척 진행해 나갔다.

언젠가 가족들에게 후루야 씨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카자미는 바람은 그의 장례식장에서 이룰 수 있었다. 언젠가 본 사진처럼 해맑게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죽음 하나로 많은 사람의 일부가 뭉개졌다. 한 사람이 가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후루야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카자미가 남긴 마지막 말을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었다. 수수께끼 같은 말을 푸느라 변명해 봤지만, 결국 자신이 차지하고 싶은 이기심이었다. 그래서 유언은 온전히 후루야의 몫이 됐다.

‘아침 메뉴?’

‘뭘 먹자고 했었나?’

‘뭐가 먹고 싶었던 걸까?’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할 예정이었나?’

씹고, 소화시키고, 배출해내기는 커녕, 숨이 사라지기 직전인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문자와 대화를 수백 번 떠올렸다. 아무리 되짚어봐도 카자미가 ‘음식’을 꺼낸 기록은 없었다. 매일, 또 매일 후루야는 비상한 머리를 굴려 추리했다. 그럼에도 답을 알 수 없었고 하루가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다. 그렇게 유언은 일상이 됐기에 아무리 후루야라도 아침은 버거웠다. 양손으로 싱크대를 겨우 붙잡아 무너져내리는 몸을 지탱했다. 틀어놓은 수도에서 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쏟아지는 물이 고요히 누워있는 오이 표면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튀었다. 제 팔에 닿는 후루야는 고개를 숙인 채 수도를 끌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약하게 떨리는 몸 너머로 동이 트고 있었다.

오늘도 카자미가 남긴 아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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