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카자

#후루카자_전력_180분 <재채기>

너도 좀만 나이 들어봐. 멀쩡하던 몸이 여기저기 난리 날걸. 특히 험한 일만 하는 경찰에게 더 찾아오지. 오랜만에 공안 선배는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해댔다. 종종 어른에게 들었던 말이지만, 카자미는 실감하지 못하는 나이였다. 다만, 능숙하게 선배 아직 젊잖아요, 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선배는 마흔을 찍고 공안에서 다른 지역 수사 1과로 자리를 옮겼다. 본인은 몸이 남아나질 않아서라지만, 수사 1과도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 테러로 동료를 여럿 잃었을 때 선배는 더는 못해먹겠다, 하고 술에 취해 중얼거렸던 일을 카자미는 여전히 기억했다. 얼마 전에 너도 죽을 뻔했다면서. 제가요? 카자미가 영문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왜, 주차장에서 죽을뻔했다며. 잘 구운 은행을 우물우물 씹었다.

아.

카자미는 멋쩍게 이마를 만졌다. 뜻하지 않게 나온 행동이었다. 줄곧 맥주잔을 쥐고 있던 탓에 이마에 찬기가 느껴졌다. 일반 형사라면 알리 없는 정보인데. 선배는 옛 동료의 생사를 캐묻고 다녔을 거다. 운 좋게 폭발이 닿지 않는 거리여서 몸뚱이는 지켰지만, 반동으로 날아가 머리통부터 처박힐 뻔했다. 이래저래 죽을 운명에 상사가 손을 뻗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을 뻔했다. 카자미는 정보의 출처를 캐묻는 대신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어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몸 좀 사려. 그러다 나처럼 오래 못 견딘다.

어떻게 사려요. 잘 아시면서.

닭꼬치 더 시킬까요? 그리 묻자 선배는 미닫이 문을 열었다. 문 건너 소란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선배는 여전한 목청으로 여기 닭꼬치 세트랑 맥주 두 잔!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는 동안 카자미는 손목을 들어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 후 길목에서 본 호텔에서 묵고 첫차로 복귀하면 되겠군. 남은 하루를 계획했지만, 카자미는 두 시간 뒤에 선배 집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카자미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 하루 묵은 갈증을 해소했다. 아찔할 만큼 차가운 온도가 식도로 넘어가며 더위를 조금 잊게 했다. 아직 날은 봄이건만 여름만치 더웠다. 느슨하게 풀린 셔츠에 손가락을 끼워 흔들었다. 미지근한 바람을 의자해 남은 땀을 임시방편으로 식혔다.

요새 만나는 사람은 없어?

선배는 남은 풋콩이 있는지 뒤적인다. 카자미는 맥주를 마시려다 멈췄다. 벌써 다 먹었나? 선배가 중얼거리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럴 시간이 어딨 어요.

소개해주랴?

선배 주변에 여자도 없잖습니까.

그 말을 기다렸는지 선배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연애―그러기엔 사귄다고 하기 뭣한―에 기분 좋게 꺼낸 대화 주제는 맥주가 오기 전에 사건으로 변질됐다. 갑자기 바뀐 주제에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받아친다. 새로운 주제를 던져도 도돌이처럼 사건으로 돌아온다. 경찰에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선배는 몇 년 만에 찾아온 연애보다 몇 달만에 검거한 연쇄 살인마에 더 흥을 올리고 있었기에 카자미는 당연히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 앞에 운명처럼 단서가 등장하는 찰나 문이 드르륵 열렸다. 시선이 모였다. 일시적인 침묵을 사이에 아르바이트생이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닭꼬치세트와 맥주 두잔 시킨 거 맞으시죠? 이제 갓 성인이 됐으려나, 얼마 전이 입학식이었겠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던 카자미가 맥주잔을 들었다. 맥주잔은 손바닥이 얼얼할 만큼 차갑게 얼어있어 잠시 술에서 깬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카자미는 문득 잊고 있던 말을 뱉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겼어요.

정말 몸은 알 수 없다. 평생 알레르기는 커녕 감기도 예의상 걸리던 카자미에게 변화가 생길 줄이야. 꽃이 필 무렵이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을 여럿 봤지만, 카자미는 직접 겪지 않았으니 그리 큰일로 여기지 않았다. 알레르기는 환경과 신체 상태에 따라 생길 수 있어. 상사가 곧은 목소리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여러 번 터졌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후루야는 카자미의 변화를 제일 먼저 눈치챘다. 빈 공터에서 후루야와 접선하던 때였다. 후루야는 어둠 속에 다가오는 인영이 카자미인 것을 확인하고도 예민하게 주변을 살폈다. 후루야 씨.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콧속이 간질간질하고 콧구멍이 의지와 상관없이 벌름거렸다. 참는다, 라는 선택지는 입에서 터진 재채기로 사라졌다. 아, 죄송합니다. 목청을 가다듬지도 못하고 고개를 쳐들자 후루야가 급히 손수건을 건넸다. 죄송, 감사, 실례라는 단어가 뒤엉켜 후루야에게 받은 손수건 위로 터졌다. 한치의 구김도 없던 손수건은 연달아 터진 재채기를 견디지 못하고 너덜너덜해졌다. 맑은 콧물이 흘러내려 카자미는 입을 막은 채 잠시 고민했다. 재빠르게 살을 훔치고 민망함에 손수건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괜찮아?

열몇 번을 토해냈더니 후루야는 안쓰럽게 여겼다. 아직 점막이 간질거렸다. 카자미는 급하게 코를 틀어막았다.

참, 을, 참겠습니다.

나는 신경쓰지 마.

사랑이랑 재채기는 참을 수 없다는데. 후루야는 혼잣말인지 농인지 중얼거리며 가까이 붙어왔다. 숨을 참는 사이 따뜻한 손길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쳤다. 짧은 접촉에 카자미는 쥐고 있던 USB를 순순히 뺏겼다. 당분간 따뜻한 물 마시고 감기 조심해. 몸 관리도 공안의 일이다. 후루야는 차를 끌고 금세 사라질 동안 카자미는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었던가. 상사의 우려와 당부 덕분인지 한동안 별일 없이 지냈는데 후루야를 만나자 예외 없이 점막이 간지러웠다. 다행히 손수건을 꺼내 민첩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너 꽃가루 알레르기 아냐? 후루야는 막 베이커가 상가사람들과 꽃놀이를 갔다 왔다며 조금 미안한 투로 가설을 말했다. 너를 만난 날 몇 번은 공원을 산책했었고. 포와로 마스터가 꽃가루 알레르기에 효과본 약을 들은 적이 있어. 내일 알려줄게. 카자미는 낯선 병명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보고를 재채기에 섞어 겨우 얘기하는 통에 다른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세상에 그를 걱정하는 사람은 후루야 하나란 사실을 깨달은 건 꽃이 다 떨어질 무렵이었다. 후루야를 만날때면 일을 진행하지 못할만큼 재채기가 터졌다. 카자미는 난생처음 받은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고 결과지는 후루야가 추론했던 꽃은 물론 카자미가 의심한 강아지―그 외 동물까지―의 관련 수치는 낮았다. 봄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원인을 의학적으로 찾을 수 없었지만, 덕분에 자신이 세운 몇 가지 가설에 확신을 가졌다.

* 후루야 외의 사람 앞에서 재채기가 나오지 않는다.

* 후루야가 존재하지 공간에서 재채기가 나오지 않는다.

병명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워도 원인은 후루야라고 확신했을 때, 카자미는 자신의 추리를 삼키기로 결심했다. 후루야가 카자미를 부르면 카자미는 막 터질듯한 숨을 꾹 참았다. 후루야의 체취, 음성, 웃음은 점막에 빠져들었다. 후루야가 목숨을 살려준 날이던가, 그 후였던가, 아니면 한참 전일지도 모른다. 카자미는 꽃이 피기도 전에 스스로가 먼저 피어낸 마음을 끝까지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참다 보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기에. 하지만, 그 마음은 바람을 타고 숨결을 파고들었다. 꽃이 다 지는 순간에도 후루야는 멈추지 않고 카자미를 불렀다. 그래서 카자미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랑이랑 재채기는 참을 수 없다던데.

봄볕같이 웃었던 그 순간을 자꾸 되뇐다. 이 현상을 참을 수밖에 없는 감정이 결국 터져 나오는 건지, 유해하다 판단하고 토해내는지 알 수 없지만. 카자미는 이 마음을 그저 계절성 알레르기로 치부해야 했다. 휴지로 코를 힘껏 풀었다. 그런다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빠져나올 리 없는데도.

카테고리
#기타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