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간병라이더

감기가 심했다. 열이 펄펄 끓었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필 오늘, 아빠가 가게 일로 자리를 비운 탓에 엄마가 가게를 봐야 했다. 형은 내가 눈을 뜨기도 전인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엘 간 터라 내가 아픈 것도 모를 터였다. 이렇게 아플 때 아무도 나를 살펴주지 못한다는 것이 어쩐지 서글퍼 눈물마저 날 것 같았다.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삼켰지만 어차피 이 집에는 나 뿐이다. 차라리 시원하게 울어버리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 몸, 등장!”

문 너머에서 등장한 것은 모리사와 치아키였다. 그래도 한심하고 불쌍하게 질질 짜고 있는데 들어온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가여.”

그렇게 인사했다. 하지만 모리사와 선배는 히죽거리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잘은 몰라도 어쩐지 신이 난 기색이었다.

“후후후, 아픈 동료를 두고 돌아갈 수는 없지. 이렇게 차갑게 거절하는 것도 그거지? 사실은 내가 옮을까봐 걱정해주고 있는 거지? 역시 자애의 그린이구나!”

“으아아! 아냐! 시끄러워! 머리 울린다고!”

소리친 나는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눈 앞이 어지러운 것이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만 같아 나는 내 이마를 짚어 머리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목 뒤가 뻐근한 것이 잠깐만 긴장을 늦추면 머리가 똑 꺾여 떨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가슴을 부풀리는 새처럼 으쓱대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돌아갈 수 없다! 타카미네의 어머님께서 타카미네의 간병을 내게 일임했다! 이 모리사와 치아키에게 말이다!”

“으, 으으, 엄마 진짜…….”

이런 날에는 모리사와 선배가 아니라 좀 더 조용하고 상냥한…… 사람을 떠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우리 엄마까지 알고 있을만큼 가까운 지인이 내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부터 선택의 폭이 한없이 좁았다는 거다. 그 사실에 조금 서러워졌다. 모리사와 선배는 나의 비통함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들뜬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직 식사도 못했겠지? 어머님이 죽을 끓여두셨다고 했다! 가져오지!”

“으, 됐어여……. 입맛도 없구…….”

“아플 때일수록 식사를 거르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바람처럼 사라진 선배는 죽을 준비해왔다. 야채가게랍시고 이것저것 집어넣어 끓인 죽은 식욕이 없는 머리로도 충분히 맛있게 보였다. 그렇다고 식욕이 돌아오는 건 또 아니지만. 나는 멍하니 죽이 올려진 트레이를 붙들고 바라보다, 스푼을 집어 죽을 담아 올렸다. 그대로 입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모리사와 선배가 소리쳤다.

“안 된다, 타카미네! 내가 먹여주겠다!”

“에엑…….”

“꽤 뜨거워보이니 말이다.”

그제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정신이 들었다. 감각도 멀쩡하지 않은 몸이다. 모리사와 선배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무렇지 않게 먹고 내일 아침 양치를 하려는 순간에야 비로소 입 안이 다 헤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겠지. 나는 얌전히 모리사와 선배에게 트레이를 돌려주었다. 감기에 걸린 탓에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모리사와 선배가 떠멱여주는 것을 받아먹어야만 했으니 그리 즐거운 식사는 아니었다. 그래도 먹어야 된다니 별 수 없이 먹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헌신적이었다.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리사와 선배의 모습은. 무례한 비유지만, 마치 강아지 같다. 명령을 기다려 수행하고 그 뒤에 돌아올 칭찬을 미리 기다리는 것처럼 모리사와 선배는 들떠있었다. 식후에 먹도록 되어있는 약을 받아 삼킨 나는 모리사와 선배에게 물컵을 돌려주고 침대에 몸을 눕히며 퉁을 주었다.

“아픈 후배를 앞에 둔 사람치고는 엄청 신나보이는데요.”

“음? 그, 티가 났나? 미안하구나!”

모리사와 선배도 자신이 들떠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불퉁하게 그의 솔직한 사과를 받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머쓱하게 제 뺨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보통 간병을 받는 쪽이었거든.”

그러고보면 그랬다. 건강해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잔병치레도 심한 편이고, 연습 중에 쓰러지지를 않나 무대 내내 버티다가 끝나자마자 탈진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어릴 적에는 더욱 심했을 테다.

“뭐, 간병을 해줄 상대도 없었고 말이다!”

덧붙인 것은 어쩐지 슬픈 이야기다. 가까운 지인이 얼마 없어 모리사와 선배에게 간병을 받게 되고 만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타카미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타카미네가 내게 기대준다는 게 즐겁기도 하구나.”

모리사와 선배는 정말 기쁘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심통이 나 재빨리 찬물을 끼얹었다.

“별로 선배에게 기대고 있는 건 아닌데요.”

“음, 그런가!”

모리사와 선배는 내 무정한 대답에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내 쪽이 신경쓰였다. 여전히 그린 것처럼 웃고 있는 선배를 흘끗거리며 살피던 나는 결국 희미한 목소리로 선배에게 부탁했다.

“……포카리, 가져다 주세요.”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좋다!”

모리사와 선배는 시끄럽게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섰다. 방 안이 고요해진다. 나는 긁히는 목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은 된다. 그 누군가가 하필이면 시끄럽고 짜증나는 모리사와 선배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자고 싶다. 선배가 있으면 잠들 수 없을 것 같으니 자리를 비운 지금 빠르게 기절해버려야 한다. 완전히 기절해버리면 아무리 모리사와 치아키의 존재가 시끄러워도 깨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의식을 놓아버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너무 추웠다. 분명 열이 심한 탓일 테다. 웅크려 제 살에 파고들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오싹했다. 잠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우으…….”

마른 목을 긁고 신음이 새었다. 아픈 와중에도 그 사람의 인기척만은 확실히 느껴져, 나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는 모리사와 선배가 서 있었다. 모리사와 치아키. 열이 많은 남자였다. 더운 날씨에는 오히려 도망치고 싶을 정도의 온기였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투로 손짓했다. 아마 나의 신음을 듣고 당황한 것이리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내가 먼저 말했다.

“거기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여.”

“뭐?! 아무말도 안 했다만!”

“으, 머리 울리니까 조용히 해요. 당신은 얼굴만으로도 시끄럽다구.”

모리사와 선배는 우물쭈물 다가와 내 얼굴을 살폈다. 이내는 포카리를 앤드테이블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내 이마를 짚을 요량이었겠지. 나는 희미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의 손바닥이 가만히 이마를 짚었다. 포카리를 들었던 탓에 차가운 물방울이 조금 스며 있었다. 분명 기분 좋은 손길이었지만 으슬으슬 떨리는 몸은 다른 것을 원했다. 모리사와 선배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 많이 아픈가?”

많이 아팠다. 지금의 나는 열병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래서 제정신이 아닌 행동을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내 이마를 짚은 모리사와 선배의 손목을 쥐었다. 나의 악력에 놀라 선배가 흠칫 몸을 무르는 데에도 망설임은 생겨나지 않았다. 이 사람의 침묵을 바랐고 동시에 이 사람의 온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내가 취할 행동은 하나 뿐이다.

“타, 타카미네?!”

모리사와 선배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데에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내게 다가온 모리사와 선배의 팔을 끌어당겼고.

“으, 으아아……!”

모리사와 선배가 상황을 파악한 것은 그가 그대로 중심을 잃고 내 위에 엎어진 채 버둥거리게 된 다음이었다. 조금 무겁지만, 그보다 더 다정한 온기가 있어 괜찮았다. 참을만 했다. 여전히 버둥거리는 선배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께에 머리를 기대며 희미하게 속삭였다. 마른 숨에 목이 긁혔다.

“가만히…….”

“으, 음!”

나를 배려한 것인지 모리사와 선배는 입을 합 소리가 나게 다물었다. 역시 따뜻하다. 나는 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의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마주 안지 않았다. 저는 매일 끌어안는 주제에 안기는 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지.

안 되겠다. 조금 더 밀착하고 싶다. 따뜻한 살갗에 보다 파고들고 싶다. 살과 살이 깊이 맞닿았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모리사와 치아키의 온기가 필요했다. 여전히 온몸이 서늘했다. 조금 심통이 나려는 찰나에 등 뒤로 마른 팔이 닿았다. 어쩐지 어색한 움직임이었다. 모리사와 선배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투정을 부릴 기력이 영 없었다.

그래도 그에게 안긴 다음에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싸오는 것에, 두통을 견디기 힘들어 찌푸렸던 미간도 슬슬 풀어졌다. 어느새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기 시작한 손길 또한 기분 좋다. 덕분에 금세 잠들 것처럼 눈이 감겼다.

하지만 그러고도 바로 잠들지는 못했다. 그 이유야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 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고 움직임도 큰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심장소리까지 시끄러울 줄은. 덕분에 오싹한 한기는 어느 정도 가셨지만 잠들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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