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아라카와 마사토가 마지막으로 눈을 뜬 것은 수술실 밖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우선 놀란 것은 땅을 밟고 있다는 실감도, 숨을 쉬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것이었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펑펑 울고 있는 이치반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마사토는 실감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시기심이었다.

자신이라는 반쪽이 죽었는데, 여전히 살아있는 나머지 반쪽에 대한 질투. 여전히 건강한 몸으로, 자신에게는 없는 수많은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이제는 흘릴 수도 없는 눈물을 아낌없이 흘리며, 들이쉴 수도 없는 공기를 양껏 들이쉬고 있는 반쪽에 대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부러움이었다.

자신이라는 무게추가 사라진 반쪽에 대한 부러움. 가벼워진 만큼 더 쉽게 위를 향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공백을 안겨주었다는 이기적인 만족감. 그리고 상실감. 처음으로 느낀, 연결의 단절. 불안.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휘발되고 난 뒤에는, 체념이 남았다.

어차피 이 모든 번뇌, 집착은 더이상 이치에게 닿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는 더이상 이치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깨달음.

이제 이치의 도련님은 오직 기억 속의 존재뿐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이상 이치의 곁에 남아있을 수도, 그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래도, 무언가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찰나의 시간동안이나마 의식을 가지게 된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 이유가 없다면?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완전한 우연이라면?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이, 어쩌다가 잠시 존재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면?

그리고, 정말 그랬다.

아라카와 마사토가 이 찰나의 순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에는 딱히, 의미가 없었다.

그 자신은 알 도리도 없었지만.

분노할 수도 있었다. 허탈해 할 수도 있었고, 어처구니없어할 수도 있었다. 다양한 감정이 찰나의 시간동안 교차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그럼에도 마사토 자신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같은 건 상관 없었다.

아주 잠시지만, 자신이 없는 시간 속의 이치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런 의미도 없고, 곧 사라질 기억에 불과하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라도.

사라지고 있더라도.

자신은 여기 존재하고 있었다.

이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처음으로 보는, 자신의 반쪽이 아닌 이치가 거기 있었다. 펑펑 울고 있는 못난 모습이었지만, 온전히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모습, 모르는 모습. 여러가지를 끌어안고, 마침내 이치반이라는 인간 한 명으로 살아남은, 자신의 반쪽.

그러니까.

그런 이치를 봤으니까, 만족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이치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자신과는 상관 없는 곳에서, 자신은 더 이상 알 방도가 없는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자신을 잊어버려도.

혹은 계속 기억하더라도.

더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더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안심하고 과거의 존재가 되도록 하자.

이제는 거의 희미해진 의식 속에서, 마사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깨달음이 이치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아라카와 마사토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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