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더메이드

ㆍ사가마지 ㆍ제로 스포 주의

경첩에 일어난 불그죽죽한 녹가루가 멧돌처럼 맞물려 긁히는 소리와 함께, 녹슨 철문이 닫혔다. 딸깍. 80년대식 똑딱이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 얇은 거미줄이 얽힌 전등갓에 누런 전깃불이 들어왔다.

조명 아래, 밋밋한 모던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은 비루하게 생긴 남자. 병색이 완연했다.

바르르 떨리는 왼쪽 손목, 움푹하게 패인 볼살. 피골이 상접하다는 표현은 지나친 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품이 남는 간소한 남성복, 근육조차 제대로 붙지 않은 팔다리는 적어도 건강한 신체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그의 머리에 감긴, 왼눈 위를 지나며 단단히 감긴 붕대였다. 남자의 눈이 성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어, 마지마쨩"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의 남성이 인사를 건넸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평균적인 키의 일본 남성. 그 주름이 자글자글한 반백의 머리 아래 눈매는 어딘가 비웃는 듯한, 시니컬한 빛을 띄고 있었다. 입가에 달라붙은 가식적인 미소는 그 인상을 한층 오묘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잘 먹고는 있냐? 어째 살이 안 붙는 것 같은데"

웅크리고 앉은 외눈의, 장발의 남성은 대답 대신 가만히 시선을 던졌다. 상처입은 짐승이 동정을 살피듯, 불신 서린 눈빛으로.

사가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가죽 구두의 밑창이 생 콘크리트 바닥을 두드리며, 천천히 웅크린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낮은 자세에 시선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마지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사가와를 쳐다봤다.

주머니에서 빠진 손이 가차없이 뒷통수를 움켜쥐고 테이블에 쳐박았다.

쾅!

"인사를 하면 대답을 하라고 했지!?"

손아귀에 짓눌린 마지마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흘렸다.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사가와가,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그리고 빨갛게 부은 이마를 손등으로 쓸어주며 말을 이었다.

"아직 회복된지 얼마 안 되었으니, 잘 대해줘야지"

괴로워하는 마지마의 눈빛이 허공을 맴돌았다. 어깨를 붙든 사가와의 손아귀에 힘이 실렸다.

"앞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낼 사이잖아. 서로 잘 해 보도록 노력하자"

꽉 그러쥔 어깨에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지마는 얼마 없는 기력을 쥐어짜서 사가와를 노려봤다.

"응?"

사가와의 목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마지마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슬그머니 돌아가는 시선.

"대답은?"

머뭇머뭇, 앙 다문 입술이 떨어졌다.

"알았심더"

훅,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잘 하네, 뭘"

담배갑을 꺼내려다 멈칫, 손이 주머니 앞에서 멈췄다.

"그렇지, 아직도 회복중이었지. 아직 담배는 이르겠구나"

둘 곳이 없어진 손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사가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마지마쨩, 요새 많이 나아졌지 않냐. 젓가락도 쥘 수 있게 됐고, 보조 없이 걸을 수도 있게 됐고"

슬쩍, 마지마를 봤다. 생기 없는 검은 외눈이 그 얼굴을 마주봤다. 마치 어서 다음 말이나 계속하라는 듯이. 사가와는 씩 웃고는,이어서 말을 했다.

"그러니까,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 싶더라고. 알고는 있지? 우리가 자원봉사 하려고 네 재활을 도와준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마지마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우리'라는 건, 시마노를 포함한 것일 터였다.

"솔직히 나는, 마지마쨩에게 꽤 기대가 많아. 재활 의지도 충분하고, 형제 말을 들어보니까 재능도 있는 모양이고. 그러니까 부디 실망시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거기까지 말하고, 사가와는 뒤로 물러났다.

"일어나서 이 쪽으로 와"

시키는 대로, 마지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른 공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느릴지언정, 흔들림은 없었다. 갓 아나구라에서 나왔을 적보다는 분명히, 많이 회복이 되어있었다.

지정된 장소까지 가서 우두커니 선 마지마를 보고, 사가와가 태연하게 말했다.

"좋아, 다음은 옷이다. 입고 있는 거 다 벗어"

일순, 마지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사가와가 눈썹을 치켜떴다.

"말을 못 듣겠다는 거야?"

열렸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약간 튀어나온 입술이 안으로 말려들어가며 얇아질 정도로는, 그랬다. 손이 헐렁한 셔츠의 첫 번째 단추로 향했다.

펄럭, 옷가지가 떨어졌다. 툭, 펄럭.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직 선명한, 화려하게 전신을 수놓은 문신이 드러났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가 휘날리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반야. 낡은 속옷 한 장을 남기고 주저하자, 근처의 락커를 뒤지던 사가와가 짜증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다 벗으라고 말했잖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바르르 떨리는 손 끝에 걸려있었다. 사가와의 다음 호통이 떨어지기 전에, 몸을 가리고 있던 마지막 옷가지가 떨어졌다. 툭.

수치심을 애써 참고 치부를 가리려 애쓰는 마지마를 향해, 사가와가 다가왔다. 팔 안에는 잘 정돈된 옷가지를 한아름 안고.

"좋아, 잘 하고 있잖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새 속옷과 가터벨트를 건넸다.

"우선은 이거부터다. 이제부터 네가 쭉 입을 복장을 건네줄 테니까, 제대로 몸에 착용하는 연습을 하도록 해"

빠르게 받아든 속옷부터 착용한 마지마는, 받아든 가터벨트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미간을 찡그리고.

"입는 방법, 모르것는데"

"뭐... 그렇겠지. 넌 길거리 출신이라고 했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리 줘 봐"

마지마는 머뭇머뭇, 사가와가 내민 손에 가터벨트를 건넸다. 그걸 받아든 사가와가, 마지마의 옆에 무릎 한 쪽을 꿇고 앉았다.

"잘 봐, 한 번 밖에 안 보여줄 거니까. 우선 발 들어봐"

그 말대로 다리를 들어올리자, 아직은 앙상한 발 끝을 탄력적인 벨트가 스르르 통과했다. 가터를 끌어올리는 손 끝이 종아리를 주욱 훑어올리는 감각에 마지마가 작게 몸서리쳤다.

이어서 얇은 드레스 삭스가 야윈 종아리를 감싸며 올라갔다.

사가와가 벨트에서 뻗은 스트랩을 잡아늘여 양말을 고정시켰다. 딸깍, 금속 재질의 고정 클립이 맞물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순간적으로 마지마의 머리에 개의 목줄을 채우는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자, 다음은 네가 해 봐. 제대로 보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알아보자고"

사가와가 몇 발자국 떨어져 턱에 손을 올리고 바라봤다. 마지마는 입술을 꼭 깨물었지만, 느릿느릿 다리를 들어 반대쪽 다리에 가터벨트를 통과시켰다. 전신을 핥듯이 관찰하는 시선을 느끼며,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무릎 아래까지 드레스 삭스를 끌어올렸다. 또각. 클립의 입에 양말을 물리고,허리를 폈다.

"좋아, 역시 금방 배우네"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건네며, 사가와가 웃었다.

"뭐 하고 있어, 나머지 옷도 걸쳐야지. 셔츠부터 시작해"

마지마는 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고분고분 셔츠에 손을 뻗었다.

살짝 속이 비치는 셔츠가 마지마의 알록달록한 몸뚱아리를 감쌌다. 츠노카쿠시(일본식 결혼에서 신부가 쓰는 두건)처럼, 등에 새겨진 반야의 얼굴에 흰 천이 덮였다. 구속복처럼, 단추가 위에서부터 하나씩 잠겨내려갔다.

"가터 하나 더 남았지? 가르쳐주지"

 사가와가 팔짱을 풀고 다시 다가섰다.

"스트랩은 속옷 아래를 통과해야 해. 기억해 두는 게 좋아" 그렇게 말하며, 사가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벨트를 드로워즈 아래로 통과시켰다. "잠,"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놀란 마지마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가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트랩을 셔츠 밑단에 물렸다.

"다음은 네가 해 봐"

뻔뻔하게 말하며, 아까 전처럼 뒤로 물러나 감상하는 자세를 취했다. 입을 뻐끔거리며 고민하던 마지마의 입에서, 기어코 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거, 꼭 해야는기고...?"

사가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물론이지. 그게 없으면 셔츠가 삐져나와서, 큰일난다? 이런 말은 들어두는 게 좋아"

마지마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딱히 반항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스륵, 드로워즈 아래를 통과하는 스트랩이 실뱀처럼 살갖을 스쳤다. 기분 나쁜 감촉에 허리를 작게 떨며, 똑같이 셔츠 끝에 클립을 물렸다.

"다음은, 바지"

겨우 헐벗은 거나 다름없는 몰골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하며, 검은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었다. 딸깍, 벨트를 차고 다음은 상의.  화려한 문신이 엷게 비치는 셔츠를, 이번에는 검은 턱시도 상의가 감쌌다.

"타이를 매는 법도 모르는 거냐"

마지마가 보우타이를 들고 머뭇거리자, 사가와는 머리를 긁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슈륵, 마지마의 야윈 목 둘레를 검은 리본이 옥죄었다. 약간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마지마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거야말로 정말 목줄이 아닌가.

"이걸 매고 있을 때는 점잖게 행동해야지. 품위있게"

마치 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처럼, 사가와가 마지마의 눈을 들여다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보기 좋게 리본을 매어놓고는, 아직도 목 둘레의 느낌을 어색해 하는 마지마에게 끈을 하나 더 건넸다.

"머리, 산발을 하고 다닐 수는 없잖아?"

잠자코 받아들어 입에 물고, 긴 머리카락을 한 데 모았다.

"왜 자르기 싫다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 편이 깔끔할텐데"

머리를 묶으며, 마지마는 생각했다. 인사 한 번 답하지 않았다고 머리를 책상에 쳐박던 인간이, 머리카락에 대한 요구나 가터에 대한 불만은 태연히 웃어넘긴다. 언제나 빙글빙글 기분나쁘게 웃으며.

모르겠다. 이 남자는 뭘까.

대충 꽁지머리를 틀어올리자, 사가와가 입을 열었다.

"불편하지, 그 붕대"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장식품을 꺼내, 마지마를 향해 내밀었다.

검은 안대였다.

"붕대보다는 덜 흉하겠지, 그게"

쥔 손을 까딱이며, 어서 받아들라는 듯 재촉했다.

마지마는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안대를 내려다봤다. 잠시 그렇게 내려다보다, 곧 눈을 꾹 감고 붕대에 손을 댔다. 더러운 붕대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움푹 꺼진 눈두덩. 내용물이 없는 눈꺼풀을 손으로 더듬었다. 이제는 정말 없는 거구나. 마지마는 새삼스레 절망했다.

"안 받을래?"

눈두덩에 손을 댄 채 파랗게 질린 마지마에게, 사가와가 짐짓 태평한 태도로 재촉했다. 그 목소리에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얌전히 안대를 받아들고, 끈을 뒷통수에 묶었다.

"자, 이제 이리 와 봐"

사가와가 우아한 동작으로 팔을 휘둘러 방의 구석을 향해 손바닥을 내보였다.

전신거울이 있었다.

그 안에, 마지마가 모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긴 꽁지머리,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낮설게 바라봤다. 사가와는 홀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처럼.

"꽤나 그림이 되지 않냐. 다시 이 쪽을 봐"

자신도 모르게, 순순히 몸을 돌렸다. 어느새 명령에 거스르지 않게 된 광견을 보며, 사가와는 이를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좋아, 너는 이제부터 일을 하나 맡게 될 거다. 차근차근 알려줄 테니, 같이 잘 해 보자고"

그리고는 마지마의 어깨를 턱, 잡고 말했다.

"잘 부탁한다, '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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