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위소병] 내 쥑쥑이 .... ╯︿╰
도위한테 쥑쥑이를 돌려주세요 녹림왕
+2024.01.19 이전완료, 이게 뭐지?
“찌익-찍!”
“옳지, 욘석. 간식이 더 먹고 싶다는 거냐?”
“가주님, 그 작은 것한테 간식을 그렇게 먹이시면, 나중에는 살이 뒤룩뒤룩 쪄서 굴러다닐지도 모릅니다….”
알았다. 내 주의하마. 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이 훤히 보이는 가주님을 보며, 남궁가의 시비 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다정한 성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엄하고 위엄있는 면도 있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훌륭히 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남궁도위가 흐물흐물하게 변해버린 이유는 남궁세가에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의문의 생명체, 그래. 지금 가주님이 물고. 빠시고.. 크흠. 있는 저 들쥐의 탓일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함께하면 마음이 풀어지고 고약했던 성정도 부드럽게 변한다는 말을 종종 듣기는 하였으나. 아니,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 물론 근래 몇 달 동안 가주님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고, 가주님의 측근인 남궁명 대주께서도 가주님의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이니, 행실에 주의하라 이야기를 해오시긴 했었고. 그리하여 세가 내에서 가주님의 기분을 풀어드릴 방법이 없을까 말이 오고 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타개책이, 저 들쥐라고? 좀 귀염상이면 모를까. 남궁도위가 그리 한 달가량을 애지중지 하고 있는 저 쥐는 보통의 쥐와 달리 갈회색 빛이 아닌 흰 빛 털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 오히려 주방에 가끔 기어 다니는 놈들이 더 귀엽다 생각될 정도로 처음엔 삐쩍 골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흘겨보는 듯한 눈매를 하여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시비들 사이에서도 별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똑똑하다는 점 하나를 빼면 정말 좋아 보이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가주님이 좋아하신다면, 그걸로 마음에 좀 위안이 된다면 그로 좋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쪼금. 쪼오끔은 귀여울지도 모르고. 영은 여전히 저 쥐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금세 표정을 갈무리한 후 그럼 남은 간식은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하며 수려한 얼굴이 시무룩해서 아쉽게 저를 보는 남궁도위를 무시한 채 총총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영이 자리를 떠나자, 남궁도위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애착 쥑쥑이. 아소를 귀여워하기 시작했다. 도위는 제 손 위에 오른 작은 쥐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으며 아소에게 말을 걸었다. 작은 흑진주처럼 콩 박힌 눈에, 살짝 뻣뻣하지만 길이 들어 만지는 맛이 있는 흰 털, 그리고 누군가를 닮은 듯한 왼쪽 눈 아래 까만 눈물점까지.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 면이 없었다. 누구하고는 다르게.
“아소야, 역시 간식이 좀 부족하지 않았느냐? 아이들을 불러서 조금 더 내오라고 할까. 응?”
도리도리, 남궁도위의 말을 듣자마자 아소가 고갯짓했다. 녀석, 역시 똑똑하다니까. 흐뭇하게 웃는 남궁도위는 저쪽 동네 푸줏간에서 일하는, 우리 멍멍이가 천재예요 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던 진 씨 어르신과 다르지 않아 보였으나. 그 외모가 실실 풀린 입꼬리와 흐늘흐늘하게 늘어진 눈매 등등을 전부 압살해. 만약 어떤 처자가 지금 앞을 지나갔더라면 혹시 지금 저한테 청혼하셨나요? 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아소, 그러니까 남궁도위의 맬렁맬렁 쥑쥑이이자 본업 녹림왕인 임소병에게는 그리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휴, 저 얼굴 보면 홀리지, 큰일 난다. 도망쳐! 하고 쪼록 남궁도위의 팔을 타고 바닥까지 내려 탁자로 도망친 임소병은 아소야! 또 어디 가는 거냐! 하고 부르는 도위의 말을 무시한 채 문틈 사이로 몸을 욱여넣었다.
아침밥을 먹고 외출 –남궁도위의 말로는 가출이라 한다-를 감행하였다 밤에 돌아오는 것은 임소병이 제 맘대로 정해둔 흰 쥐로써의 일과였으며. 임소병이 남궁도위와 함께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을 그나마 인간답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임소병의 의사가 없는 뽀뽀를 당하는 것은 약과며, 온종일 손에 쭈무럭당하며 몸의 온갖 곳을 희롱당하는 것이 불 보듯이 뻔하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지조를 지키기 위한 임소병만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싫다면 아예 도망치면 되는 거지 왜 꼬박꼬박 출석 도장 찍어가며 죽치고 있느냐, 아니면 도대체 왜! 남궁세가에서 반려 쥑쥑이가 되어 살고 있느냐와 같은 것 말이다. 그치만 소저, 저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단 말입니다! 찌애-쮜이! 하며 희고 비루먹은 쥐가 울부짖었다.
임소병이 남궁세가에 쥐의 모습으로 잠입하게 된 것은 한 달 전의 일로, 요즈음 상태가 안 좋다 못해 빌빌대고 있다는 남궁도위의 얼굴을 보고는 싶은데. 제 인간의 모습으로는 면이 안 선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강행하게 된 일이었다. 그야. 몇 달 전에, 임소병이 남궁도위를 뻥 차버렸으니까. 차마 인간의 모습으로 저 얼마 전에 당신네 가주를 찼던 녹림왕인데요…. 하고 남궁세가에 찾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가주, 저는 녹림왕이고 당신은 남궁세가의 가주입니다. 서로 등에 진 게 많아 이뤄질 수 없는 관계란 말입니다. 뭐 어쨌든 이래저래 많은 이유로 안 됩니다. 꺼지십쇼! 그리고 다음 천우맹 모임 때 봅시다.”
“지금 쓰기 귀찮다고 되게 성의 없이 거절한 거 알고 계십니까?! 저도 이러쿵저러쿵 많은 이유로 기분 상했습니다. 남궁세가로 돌아가서 펑펑 울 겁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여지를 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지금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는 게 가슴이 아픈 것도 같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이게 길어지면 슬픈 연성이 되니까요. 그럼 안녕히.”
대충 이런 대화를 통해 남궁도위와 임소병이 보는 사람도 눈물 흘릴 만한 아린 이별을 한 후, 아무리 작은 쥑쥑이라도 양심이 있지. 자신이 남궁도위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것을 임소병도 자각하고 있었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남궁도위가 꽤 걱정되고 조금은 보고 싶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남궁도위의 소식에 정신을 차려보니 임소병은 쥐의 모습으로 남궁세가의 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대로 가주 침소로 향하게 되었다.
짤막한 네 다리로 남궁도위의 가슴팍 마냥 넓은 장원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경공을 쓸 줄 아는 쥑쥑이라도 버겁긴 하였으나. 어쨌든 임소병은 해냈고. 혼자 목에 고량주를 부어대던 남궁도위와 마주하게 되었다. 실연의 아픔과 도수 높은 술에 취해 평소와 달리 애수가 가득한 눈빛을 하고 늘 단정히 묶고 다니던 머리가 산발을 하여 흐트러진 남궁도위는 자극적이었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풀어진 옷과 그 사이로 보이는 근육으로 인해 떡 벌어진 가슴등은 3n살 어린 (가명이가 보증함) 쥑쥑이에게 너무 충격적인 시각적 공격이었다.
그래서, 임소병은 그 엄청난 남궁도위를 마주하고 꼼짝없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시각적인 부분에 이렇게 약하다는걸. 지금까지는 깨닫지 못했는데. 남궁은 당가보다 치졸하구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뒤에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남궁도위의 손에 임소병이 잡힌 것이다!
쥐의 상태에서는 당연히 부채를 꺼낼 수 없기에 선기를 날릴 수 없고. 그렇다고 내력을 끌어다 장력을 내어 봤자 조그만 손 탓에 별 소용도 없었던 터라. 임소병은 꼼짝없이 남궁도위에게 잡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를 찹쌀떡으로 착각하고 먹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목숨 위협당하기 있쏘?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들려온 소리는 다소 어이없는 소리였다.
“소병입니까…?”
너는 콩깍지가 껴도 너무 심하게 낀 거 아니냐. 어떻게 이 자그마한 소동물을, 좀 깡마르고 약해 보이는 것이 조금 비슷하기는 하지만, 크기가 서른 배는 차이 날 녹림왕으로 착각할 수 있니? 하고 당패가 있었다면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자기 눈깔만 한 콩깍지를 이불 덮듯이 덮고 다니는 남궁도위의 눈은. 내 소병한테도 점이 있는데. 얘한테도 점이 있네. 내 소병도 피부가 흰데, 얘도 희네. 내 소병도 성질머리가 더러운데. 얘도 지금 손 물어뜯고 있네. 그렇다면 이건 소병인가? 애매하게 귀여운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라는 결론을 내어버렸다.
그래서 임소병으로써는 유감스럽게도. 그날 남궁도위는 헌앙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러면서도 손의 쥑쥑이는 소중히 잡아 놓지 않은 채로 밤새 임소병에 대한 험담과 그럼에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한탄을 하며 밤을 보냈다. 비틀거리는 남궁도위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다 정신을 놓아버린 임소병이 눈을 떴을 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어디서 병을 옮겨왔을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쥐가 가주의 처소에 있어선 안 된다는 이유로 시비들에게 몸을 빡빡 씻겨지던 중이었다. (비통함에 찌애액 쮯쮯하고 울었다) 그리고 어영부영 남궁도위의 심리 안정을 위한 반려 쥐가 되어버렸고.
“쮜이, 찌이이.”
젠장, 내 꼴이 이게 뭐야! 가주는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임소병이 네발로 달리며 중얼거렸다. 한 달 동안 오고 간 게 운동이 되어서인지 처음에 산과 남궁세가를 오가며 헉헉대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흙을 박차며 달리는 모습이 안정적 이어 보였다. 하지만, 이 생활을 계속 지속할 수는 없다. 남궁세가와 산채들이 가까웠다면야 몇 달, 혹은 년 단위로 이 낮남밤녹 생활을 이어갈 수가 있었겠지만 임소병이 관리해야 할 산채들은 전국에 흩어져있고 황산의 산채에 머물기 위한 핑계도 이젠 슬슬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합비를 떠나는 순간, 아소도 사라지는 거니, 가주는 상심하겠지. 문득 드는 생각에. 임소병은 재게 놀리던 발을 멈추고 우뚝이 섰다. 쥐의 모습으로는 말도 할 수 없으니, 잘 있으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것이다. 괜히 그 모습이 가슴 한편에 걸리고 속이 답답해서. 짧은 손으로 임소병은 제 복슬한 가슴을 툭툭 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의 흰 쥐는 무사할 것이라는 걸 알리며, 그리하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을까.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은 할 수 없다.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것과 동시에, 인상 깊은 일이어야 한다. 임소병은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녹림의 본질은 산적, 그렇다면? 훔치면 된다. 내가 아소를 훔쳐 가는걸, 남궁도위에게 보여주면 되겠구나!
나사 빠진 결론이었고, 애초에 그렇게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면, 처음부터 얼굴에 철판 깔고 남궁세가 들어갔으면 다 해결되는 일 아니었나 싶었지만. 산적은 이미 지나간 일에 크게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런 연유로, 다음날, 남궁도위는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소중한 반려 쥑쥑이를 어깨에 올리고 비겁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성질 더러운 짝사랑 상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기 때문에, 남궁도위는 눈을 비비고선 뺨을 벌게질 정도로 쫙쫙 때려보다 임소병에게 물었다.
“이거 꿈입니까?”
“나를 본 게 너무 좋아서 꿈인가 생시인가 분간이 안 되는 거라면. 생시 맞습니다. 기쁘죠?”
“딱히 기쁘지는 않습니다만…. 그보다. 그 어깨 위의 쥐, 아무리 봐도 익숙한 쥐인데요. 좀 자세히 보여주시면.”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남궁도위를 슥슥 피하며, 임소병은 어깨에 있던 쥐를 냉큼 소맷자락 속으로 집어넣었다. 당연히 중원엔 분신술 같은 술법은 없었기에. 임소병이 자신과 비슷한 체구의 들쥐를 먹이로 계약해 대역으로써 고용한 것이었다. 아소가 산책하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마치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남궁도위이기에, 자세히 보면 눈치챌 것이 틀림없으니 숨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수상해서일까, 미심쩍은 얼굴로 임소병을 보던 남궁도위는 임소병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사적인 욕망은 완전히 배제한 채, 자신의 소중하디소중한 반려 쥑쥑이를 찾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는 담백한 손길이었다. 지나치게 간지럽다는 게 문제였지만. 남궁도위는 더듬더듬 임소병의 몸을 훑어나가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남의 쥐를 이렇게 막 데려간다는 게 상도덕에 맞는다고 생각합니까!”
“힉, 흐. 지금 이 꼴을 누가 보면 큰일 날 거라고 생각은 안 합니까 가주?! ”
“안 합니다! 녹림왕 같이 수상한 사람을 검문하려고 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하면, 이해해주겠지요! 아, 이건가. 아소야. 거기 있니?”
“미친, 어딜 만져! 그건 XX. 내 녹림왕이라고!”
그렇다기엔 너무 작고, 말랑한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남궁도위의 머리를 재수 없다는 명목으로 임소병은 후려갈기려 하였으나. 제 머리를 만져오는 남궁도위의 손이 그보다 빨랐다. 보송하고 조그만, 소동물의 귀가 임소병의 머리 위에 달려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진짜 귀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순식간에 임소병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자신의 아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지이익, 쥣.”
이거 개판 났네, 보수는 나중에 주방 구석에 뿌려 주쇼! 하고 대역이 물러난 후, 그대로 시간을 보내던 임소병과 남궁도위의 대치는 남궁도위의 한 마디로 마무리되게 되었다.
“내, 내 쥐.”
“찌?”
“제, 어여쁜 아소가, 성질도 나쁘고, 꼰대에다가. 열받지 않는 구석이 없는 녹림왕. 이었다고요.”
그게 문제입니까? 지금 내가 쥐라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남궁도위한텐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았다. 자신이 물고 빨고 했던 쥐가, 사실 짝사랑 상대였다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고 임소병은 허공에 물어보았지만 임소병에게 대답해줄 조상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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