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마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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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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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
마르시, 내가 이렇게 얘기해도 너에겐 안 들리겠지? 넌 내 어깨에 기대 세상 모르고 코 자고 있으니까.
귀 옆으로 삐져나온 검은 머리칼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넘겨 준다.
앤의 눈에 비치는 친구의 잠든 모습은 그 어떤 아기보다도 소중하고 연약해 보인다.
마르시..
이왕 이렇게 조용한 곳에 있게 된 거,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해 볼까 해.
있지,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야. 아침에 웃으며 인사하는 너를 볼 때마다, 게임에 집중하는 너를 볼 때마다, 내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주는 너를 볼 때마다 항상 들었던 생각이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야. 하지만 소중한 너에게 언젠간 꼭,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야.
늦은봄의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교정을 벚꽃잎 색으로 물들인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새하얀 꽃잎들이 마치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려는 듯, 벤치에 앉은 둘 위로 흩날려 내려온다.
꽃잎이 코를 간질여 앤은 크크 하고 웃음이 나온다. 앤의 어깨에 기대 자고 있는 흑발의 친구는 자기 머리에 꽃잎들이 한가득 쌓인지도 모르고 있다.
앤은 벚꽃이 마르시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르시,
내가 너를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거야.
네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너는 짐작도 못할거야. 앗, 안 좋은 뜻은 아냐. 물론 너는 똑똑하니까, 농담이 아니라 넌 진짜 내가 본 사람 중 제일 똑똑한 사람이야. 똑똑한 너는 수학도 잘하고, 과학도 잘하지. 국어도 잘하고. 그래도, 넌, 아마, 내가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있을 거야...
마음이 우울한 파란색일 때, 금세 날 따뜻한 노란색으로 채워 주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야.
가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곁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건 아이돌도, 에너지 바도 아닌 너야.
네가 웃을 땐 온 세상이 빛나는 것 같고 네가 슬퍼하면 내 마음도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 찬 것만 같고
네가 힘들어 할 때면 내 가슴이 찢어져. 내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너를 다시 일으켜 주고 싶은 기분이야.
좌절한 너를 다시 저 높은 곳으로 부축해 올라가서, 네가 환한 햇빛을 받으며 다시 그 천사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너의 힘이 돼 주고 싶고, 기둥이 돼 주고 싶고, 버팀목이 돼 주고 싶어.
기둥이랑 버팀목은 같은 말이었던가? 하하! 미안해, 마르마르. 너도 알다시피 국어가 내가 막 잘하는 과목은 아니잖아.
말재주도 없고, 어려운 말도 잘 모르고, 어쩌면 너에겐 난 안 어울려도 한참 안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마르시, 좋아해.
그리고 고마워, 내 옆에 이렇게 앉아 있어줘서. 너의 시간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난 행복해. 그리고 감사해.
너의 존재가 얼마나 축복인지 넌 모르겠지.
고개를 숙여 잠깐 친구가 아직 잠들어있는게 맞는지 확인한다. 콧김을 새근 새근 내쉬며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자고 있는 모습에 앤의 마음이 놓인다. 그저께 늦은 밤, 부모님 일로 서럽게 울며 앤에게 전화를 걸어 오던 마르시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앤은 사랑하는 친구가 다시는 눈물을 흘릴 일이 없었으면 했다. 하지만 집에서의 일은 앤도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이 앤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저 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항상 네가 지금처럼 편안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힘들 때면 지금처럼 내게 기대. 마르시, 널 위해 있는 어깨 없는 어깨, 다 내어 줄 테니까. 비록 항상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도, 네가 내게 햇살이 되어 주는 것처럼 나도 네게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언제나 네가 필요할 때 네 곁에 있을 테니까, 마르시. 넌 말하기만 하면 돼.
산들바람이 다시 한 번 뒤에서 불어온다. 이번엔 앤의 머리에 벚꽃잎을 한가득 뿌리며, 바람은 점심시간의 평화로운 공기를 타고 은은한 꽃 내음새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향긋한 봄 향기에 앤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마르시의 눈가로 천천히 고개를 낮춘다. 그리고 감은 눈과 눈 사이에, 가볍지만 진하게,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입을 맞춘다.
마르시, 네가 얼마나 예쁘고 착하고 귀여운 애인지, 네가 얼마나 세상에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넌 정말 정말 모를거야. 마르시. 사랑해.
마르시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천천히 깍지를 낀다. 사랑하는 친구가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는 이 순간, 가슴이 늦봄의 향긋한 떨림으로 가득 찬 이 순간, 앤은 그저 이 평화로운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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