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밖 세상

사샤앤 1

학교 배경, 퀸카x찐따, 좌우고정, 약 일방적

2021. 7. 작성

"...앤."

맙소사. 심장이 마구 뛰고 있다. 쿵쿵쿵쿵. 온몸이 경직되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미친 것 같다. 

"떨지 마."

속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앤을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속삭인다.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폭신한 입술이 천천히 앤의 입을 포개더니 점점 세게 눌러온다. 입술과 입술이 진하게 서로를 누르고 있다. 이 열기, 이 뜨거움 때문에 앤은 환장할 것 같다.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눈앞이 새하얗고 얼굴은 터질 것만 같다. 

입이 벌어지는게 느껴진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틈 사이로 무언가가 들어온다. 따뜻한 혀가 들어와 천천히, 뱀처럼 교활하게 앤의 입속을 탐한다. 짜릿,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동시에 뱀이 앤의 혀를 붙잡아 감싼다.  혀와 혀가 맞닿아 뒤얽힌다. 진하게, 진득진득하게. 너무 좋았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간지러운데 놓고 싶지 않았다. 아찔했다.

"흐" 

신음이 새어나왔다. 앤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사실 입에서 나왔는지 코에서 나왔는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머리가 안 돌아갔다.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한 건 단 몇 가지뿐이었다. 지금 눈앞의 사샤가 미치도록 매혹적이라는 것. 사샤의 체리향 틴트는 정말 놀랍도록 황홀한 맛이라는 것. 그리고, 앤과 사샤는 이제, 전과 같은 친구 사이로 절대 못 돌아간다는 것.

"좋아?"

입술이 마침내 떨어지고 타액으로 끈적해진 혓바닥을 빼내며 사샤가 능글맞게 묻는다. 입안에 감도는 아쉬운 군침을 삼키며 앤은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맞는지 잠깐 동안 고민한다. 사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느라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사샤가 피식 웃는다. "괜찮아. 대답 안해도 다 보여."

부드러운 손 하나가 앤의 달아오른 뺨을 감싼다. 

"앤 너 진짜 귀여운 거 알아?"

저게 무슨 소릴까. 귀엽다는 건 보통... 그럴 때 쓰는 말 아니야? 내가 알아들은 뜻이 맞나. 맞다면 언제부터? 줄곧 나를 그렇게 생각해왔단 건가? 그런 거면 나 진짜 눈치 없었..

잡생각은 그만하라는 듯, 사샤가 슬그머니 앤의 손을 잡더니 다리를 꼬고 앉은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물어보고 싶은 것, 확인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앤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입이 감히 떼어지지 않았다. 이 순간이 끝날까 불안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 들려오는 소리라곤 사샤와 앤, 둘의 숨소리가 다인 고요하면서도 야릇한 풍경. 늦은 오후의 쨍한 햇살이 사샤의 등 뒤에서 흩뿌려져 나타나는 후광, 그 하얀 빛을 등지고 책상에 걸터앉은 사샤. 그리고 그 앞에 엉거주춤하지만 사샤가 키스하기 딱 좋은 각도로 서 있는 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해서, 너무나 심장을 설레이게 해서, 앤은 이 상황이 가능한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랐다. 이 간질간질함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쓸데없는 자기 말 몇 마디로 마법 같은 순간이 깨지길 원하지 않았다.

사샤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앤의 얼굴이 다시금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사샤가 사랑하는 앤의 모습이었다. 쉽게 당황하고 이렇게 쉽게 얼굴을 붉히는 게 귀여웠다. 마음껏 키스해주고 싶었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얼굴 이곳저곳에, 몸 이곳저곳에 내 거라고 표시를 남기고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앤의 모든 부분에 자기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모든 부분에.

입술은 이마의 굴곡을 타고 천천히 키스하며 미간으로 내려왔다. 앤의 홍당무가 된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샤의 눈길에 더 부끄러워진 앤은 눈을 꽉 감았다. 사샤는 개의치 않고 두 눈두덩에 가볍게 키스했다. 눈 밑 애교살에 키스하고, 미간에, 코뼈에 키스했다. 콧잔등을 혀로 간지럽히자 앤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드라운 볼에 사정없이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사샤는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애의 얼굴에 자신의 흔적을 맘껏 남기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자기가 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앤 본인에게 확실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더불어 오늘부로 앤은 이제 자기 거라는 걸, 아무도 넘보지 못할 완전한 사샤 웨이브라이트 소유라는 걸 확실하게 할 생각이었다.

코 밑을 키스하고, 마침내 윗입술에 다다르자, 앤은 조금 전에 짧게 맛봤던 사샤의 틴트 바른 입술 맛을 떠올리며 또다시 군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사샤가 얼른 키스해주길 바랐다. 아까처럼 혓바닥을 밀어 넣어서 입을 거칠게 탐해 주길 바랐다. 한 번만 맛보기에는 너무나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사샤는 그 이상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입술을 떼고 고개를 뒤로 뺐다. 앤은 당황과 실망이 애처롭게 뒤섞인 얼굴로 사샤를 올려다봤다. 

"왜." 입꼬리를 장난스레 올리며 사샤가 묻는다.

"더 해줬으면 좋겠어?" 

앤은 자존심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귀는 이미 빨개질 대로 빨개져 있다. 

"흠." 시선을 돌리며 능청스럽게 딴청을 피운다. 일부러 앤의 애를 태우려는 듯. 저 나쁜 놈.. 

자기 마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사샤가 얄미워 순간 확 먼저 키스해버릴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금방 접는다. 감히 그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앤은 실전 경험이 없는 탓에 키스하는 방법에 대해 잘 몰랐고, 사샤가 해주는 건 확실히.. 좋았다.

결국 키스에 있어 주도권이 없는 앤은 그저 더욱 빨개진 얼굴로 한번 더 강조하기를 택한다.

"....해줘. 키스."

사실 조금 더 놀려먹으려고 했으나 솔직히, 방금 건 사샤가 거부하긴 너무 귀여웠다. 그대로 사샤는 고개를 들이밀어 앤의 말랑한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었다. 끈적한 입술이 다시금 맞닿으며 눌러붙었다. 어느새 혀는 이미 진득하게 얽혀 있었다. 앤은 황홀하게 적셔오는 쾌감을 만끽하며 눈앞의 사샤를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매혹적인 애였다니. 원래 예쁜 친구란 건 알고 있었지만 사샤가 이렇게까지 매력적이었나. 눈앞의 감은 눈과 긴 속눈썹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환상적인 맛은 앤이 이제껏 맛본 어떤 디저트와도 비교할 수 없이 달았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사샤가 유명한 덴 이유가 있었던 거다.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학교의 여왕. 퀸카. 여신. 그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과장 없는 진실이라는 걸 똑똑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사샤의 이런 면을 자기가 지금까지 몰라 봤었다는 게 앤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소꿉친구인것치고는..얘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구나. 사샤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럼 이제..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둘은.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걸까.

"하아......"

처음보다 훨씬 더 오래 이어진 키스는 둘의 숨을 차게 하기에 충분했다. 입술을 떼어내야 함을 자각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아쉬움은 여전했으나, 이번은 확실히 아까만큼 아쉽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어내며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앤은 친구의 눈을 바라보았다. 깊고 푸른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심장해 보였다.

"..사샤, 난 잘 모르겠어. 이게 무슨..뜻인지. 그니까, 아까 귀엽다고 한 거 말이야, 나한테. 그.. 내가 잘 이해한 게 맞다면, 어..."

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랑, 이...키스랑. 다.. 이게 뜻하는 건.."

"널 좋아해."

앤의 동공이 커졌다. 사샤는 싱긋 웃었다. 선명한 파란색 눈동자엔 오직 한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널 좋아해.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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