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솔 / Accept

CatSol by 하르

잭 모리슨은 눈에 보이는 걸 믿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이번엔 특히 더 그랬다.

쿨럭.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내가 피를 토했다. 잘생겼다고 하는 그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져있고, 깨진 바이저로 보이는 입가의 붉은 피는 현실이었다.

“오버워치가 왜 무너졌는지 알아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아니 무슨 뜻인지 알았으나 그도 해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었다. 솔져를 벽으로 몰고 그 앞에 선 사내는 힘겹게 숨을 뱉으며 피가 묻은 입꼬리를 힘들게 올리고 말했다.

“당신이 죽었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당신이, 죽어서, 망한, 거라고. 그리고 다시 토혈. 솔져의 뺨에 피가 튀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죽어서 오버워치가 무너졌다. 문장이 머릿속에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이고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해했지만 인식을 거부했다. 그 사이 사내의 몸은 천천히 솔져의 몸으로 쓰러졌다. 이윽고 반사적으로 그를 받은 솔져는 다리가 풀려서 두 팔로 그를 안은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손을 들고 그의 등 위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올렸다. 그런 식으로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외에 솔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내, 콜 캐서디의 말은 늙은 잭 모리슨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

[머리를 겨냥해]

가브리엘 레예스가 자신에게 처음 걸었던 말이었다.

[그럼 단시간에 많이 처리할 수 있다]

캐서디는 오버워치가 무너졌을 때, 이 말이 언령이었다고 생각했다.

-

“캣.”

내가 보여? 정신이 들어?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이어지는 질문에 그는 뜬 눈을 다시 감고 싶었다. 젠장. 짧게 한마디 던지자 그제야 상대방이 안심하는 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그의 팔에 연결된 링거액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의 부상 상태를 줄줄이 읊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쳤다. 캐서디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만, 그만. 알았어. 내가 죽다 살아났다는 건 충분히 알았다고.”

“…네가 몰라서 말하는 게 아니야. 나을 때까지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거라고.”

링거액을 보느라 숙였던 몸을 세우고 똑바로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제야 앙겔라 치글러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캐서디는 상황파악이 빠른 사람이다. 그래서 이 반응은 이 이상 그녀의 신경을 긁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고분고분 대답하는 캐서디를 보고 그녀는 침대 위에 올려놨던 차트를 들고 나가려는 반응을 보였다.

“…저 근데 모리슨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확인하고 싶은 걸 물었는데 차트를 든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네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어.”

“…그런데 표정은 왜 그래?”

“쉬어. 캣.”

그녀는 다른 말을 하며 병실 문으로 향했다. 캐서디는 몸을 일으켜 앉고는 다시 불러 세웠다.

“앙겔라.”

문을 반쯤 열었다가 포기한 듯 어깨를 내리고 고개만 돌려서 캐서디에게 시선을 두고 말했다.

“…우리가 무너진 건-.”

나온 말은 캐서디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쓰러지기 직전의 장면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모리슨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야.”

현기증이 일었다. 자신이 모리슨에게 했던 말, 지금 앙겔라가 하는 말이 뒤섞였다.

“잭 모리슨과 가브리엘 레예스와 아나 아마리가 없는 오버워치를 우리가 포기했기 때문이야.”

우리가 포기했어. 캣. 앙겔라는 그렇게 두 번 말하더니 문을 마저 열고 방을 나갔다. 다시 문이 닫힐 때까지 캐서디는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실수했다. 그것도 평생 짊어질 실수를.

-

“모두가 들었지.”

잭의 바이저가 성능이 꽤 좋더라고. 바로 앞에서 말해서 다 들었어. 레나 옥스턴은 병문안으로 사 온 과일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캐서디는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머리가 아팠고, 상처가 욱신거렸다. 다들 들었다고? 오 주여.

“그게 유언이었다면 다시 생각해. 진짜 구리니까.”

“미안하다. 구려서.”

“…탓하는 건 아니야. 잭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했고.”

그 말을 했을 잭 모리슨을 떠올렸다. 미안했던 감정은 또다시 진절머리 나는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가는 캐서디를 보며 레나는 피식 웃더니 계속 말했다.

“죽지 말라고 말하면 될 걸, 넌 꼭 두세 번 꼬아서 말하더라.”

“……뭐?”

“잭을 다시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내가 그 사람을? 캐서디는 무언가 반박할 말을 찾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나오려는 그다음 말은 입안에서 겉돌았다.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다. 답답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면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던 무언가를 깨달을 것 같았다. 나는 잭 모리슨을-.

“…그만 인정해. 캣. 우리도, 그리고 너도 잭이 필요해.”

어떤 식으로든.

-

캐서디가 침대에서 벗어나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완치까진 시일이 더 걸려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건물 내부로 제한되었다. 그동안에도 솔져는 볼 수 없었다. 목숨을 구해줬으면 와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내가 사과할 기회는 있어야지. 당신은 내 말을 듣고도 화가 안 났어? 속으로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앙겔라와 레나에게 들었던 충고가 계속 떠올라서 화도 나지 않았다. 사실 이대로 계속 마주치지 않고, 눈에 안 보이면 그걸로 끝나는 그런 사이 아닌가? 이런 관계인데, 내가 잭 모리슨이 필요하다고 한 거야? 레나.

건물 테라스에서 시가를 피우며 바람을 쐬고 있던 캐서디는 입에 물고 있는 시가를 오른쪽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입에서 뗀 후 머금은 연기를 내뱉었다. 그 연기가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질 때쯤 들고 있던 시가가 스륵 빠졌다. 이윽고 연기가 다 사라지고 시가가 없어진 손가락에 시선을 옮기니 옆에 그가 서 있었다.

“…영감님….”

“……아직 시가를 태울 때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콜 캐서디. 우려와 걱정과 불편함이 한데 섞인 얼굴, 그리고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까지. 캐서디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그 표정을 유지하며 들고 있는 시가를 다시 물더니 한 모금 빨았고, 똑같이 연기를 뱉었다. 캐서디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시가로, 시가에서 손가락으로 이동했다. 뜻밖에 얇은 손이었다. 타는 시가의 끝에서 재가 투둑 떨어졌다. 이 일련의 상황에서 캐서디는 위험신호가 들렸다.

“몸은 괜찮나?”

“네? 아, 네. 뭐 걱정-콜록.”

걱정해주신 덕분…에. 말을 하다가 기침한 자신이 진심으로 창피해서 캐서디는 고개를 돌렸다. 진짜 미쳤냐. 시가 한두 번 피워본 것도 아니고 왜 이래? 차마 다시 정면으로 보진 못하고 곁눈질로 그를 지켜봤다. 그는 절반이 넘게 남은 시가를 난간에 비벼 끄고 있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은 느낌에 캐서디는 왼쪽 가슴을 부여잡았다.

“왜? 어디 아픈가?”

“아뇨! 아니요! 아픈 게 아니라. 그러니까.”

자신이 아파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모리슨이 다급하게 물었으나 캐서디는 뒤로 조금 물러서서 손과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거리가 조금 멀어지자 그제야 마주 섰고, 모리슨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왼손은 왜 그래요?”

붕대를 감겨 있는 손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모리슨은 왼손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한 번 들어 보이고는 별일 아니라고 답했다. 이런 반응이 싫었다. 캐서디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질렸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도대체 당신에게 별일은 어떤 거예요?”

“……나로 인해 상처 입는 모든 일들. 예를 들면 지금의 너.”

지나간 예라면 무너진 오버워치와 레예스까지도. 캐서디의 눈이 커졌다. 황당하면서도 그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네 말이 맞다. 캣.”

모리슨이 입을 열자 그제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네 말이 맞지만, 이럴 수밖에 없어. 캐서디는 어금니를 바득 갈았다. 그게 어쩔 수 없다는 사람이 지을 표정이야? 그게-.

“그러니 너도 너에게 중요한 걸 지켜라.”

나 같은 늙은이 말고. 감정이 터진 건 그다음이었다. 캐서디는 두 걸음 만에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목을 잡아서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게 당겨진 손목을 따라 몸이 앞으로 조금 기우는가 싶더니 캐서디가 자신의 양 뺨을 잡고 입을 맞췄다. 어깨를 붙잡고 떨어지려 했으나 입이 벌어지고 얽히는 혀가 천장을 쓸자 힘이 빠져서 리드하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숨이 차다고 느낄 때쯤 그가 입을 뗐다. 떨어지자마자 모리슨은 그의 손을 쳐내고 뒤로 물러났다. 분노와 상기 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노려봤다. 캐서디는 똑같이 인상을 쓰고 말했다. 어쩌죠? 잭.

“나는 당신이 제일 중요한데.”

캐서디가 그를 잭이라고 부른 건 처음이었다. 이름을 부를 때 캐서디는 인정했다. 레나. 네 말이 맞아. 나는 이 사람이 필요해. 내 정의와 이 사람은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그래서 나는.

“나는 당신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아니 좋아해요.”

말하는 캐서디와 듣는 모리슨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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