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솔 / Memory

CatSol by 하르

1.

콜 캐서디는 잭 모리슨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66번 국도에서 도둑질이나 하며 살 줄 알았던 인생이 한순간에 변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가브리엘 레예스에게 잡혀서 꼼짝없이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썩겠다고 했는데.

“운 좋은 줄 알아라. 애송아.”

“…그게 뭔 소리야?”

“넌 이제부터 우리 팀이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캐서디는 오버워치 내 블랙워치의 팀원으로 가브리엘 레예스 밑에서 요원으로 자랐다. 왜 자신을 블랙워치 요원으로 뽑았느냐는 말에 레예스는 건방진 호구 놈이 그러길 바랐다며 이를 갈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리 없었다. 그렇게 블랙워치에 적응한 지 몇 달이 지나고 난 후였다.

“레예스!”

임무 정산을 위해 오버워치 본부로 레예스와 함께 왔을 때, 잭 모리슨이 그들을 불렀다. 멈춰선 레예스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던 그 모습. 캐서디는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보시다시피 잘 살아있다. 잭 모리슨.”

잭 모리슨. 캐서디는 옆에서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만 움직였다. 둘의 대화는 가벼운 안부에서 최근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일까지 다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캐서디는 모리슨을 바라봤다. 웃고, 인상 쓰고, 당황해하고. 금발과 벽안, 조각 같은 얼굴이 인간의 모든 표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자네가 콜 캐서디로군. 난 잭 모리슨이라고 하네.”

“에? 아예. 처, 처음 뵙겠습니다. 콜……캐서…디….”

캐서디는 더듬으며 인사하더니 모리슨이 악수를 청하려고 뻗은 손을 뚫어지게 보기만 했다. 악수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는 캐서디를 보며 레예스가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세게 쳤고, 그는 놀라서 곧장 손을 뻗어 모리슨의 손을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우리에겐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했어.”

“아……예,예…….”

“앞으로도 여러모로 잘 부탁하네. 캐서디.”

“애새끼 뒤처리는 내가 하는데, 왜 얘한테 잘 부탁한대?”

옆에서 보고 있던 레예스가 불평했다. 그러자 모리슨이 악수하던 캐서디의 손을 놓고 레예스를 보며 어린 제자를 질투하면 쓰나. 레예스. 하고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캐서디에겐 그것마저도.

모리슨이 자리를 떠나고 남은 캐서디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먼저 간 레예스는 캐서디가 따라오지 않자 다시 그에게 다가와서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프잖아!”

“그렇게 보면 뭐라도 될 줄 알아? 꿈 깨. 저 새끼 임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레예스의 표정에 감출 수 없는 분함이 느껴져서 캐서디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정말 명백한 질투였다.

2.

그날 이후로 잭 모리슨을 다시 만난 건 바쁜 레예스 대신 임무 보고를 하러 갈 때였다. 죽어도 레예스 본인이 가겠다고 했지만, 보고에도 데드라인이 있다. 늦어지면 안 되는 임무 보고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처음 만난 대화에서 캐서디는 자신을 블랙워치에 있게 레예스를 설득한 사람이 모리슨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했구나. 그런 영웅에게 인재라고 불리다니 어쩐지 신나기도 했다. 다시 그 남자를 만난다니.

캐서디는 사령관실 문 앞에서 심호흡 한 번 하고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여전한 금발과 벽안이었지만, 이번엔 제복이 아닌 평상복이었다.

“아, 캐서디. 무슨 일인가?”

방으로 들어온 캐서디를 보며 모리슨이 반갑게 인사했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캐서디가 정신을 차리고 손을 이마까지 들고 경례한 후 그에게 다가가 보고할 서류를 건넸다.

“레예스 대장님을 대신해 임무 보고 드립니다.”

“…아, 레예스가 지금 임무 중이었지. 그래.”

모리슨은 서류를 들춰보며 내용을 확인했다. 내려다보는 눈에 눈썹이 꽤 길다는 것을 알았다.

“자네는 잘 지내나?”

“네? 아 네 뭐.”

“레예스 밑에서 힘들진 않나?”

“아…….”

“그 반응은. ‘뭔가 있지만, 사령관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지.’ 하는 반응인데.”

“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하. 내가 입은 무거우니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 관계가 너무 얕군. 그렇지?”

웃으며 하는 말에 캐서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관계 개선이 필요하군.”

“…아하하. 네. 사령관님.”

“캣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나?”

“네. 사령관님.”

“잭이라 부르게.”

“…잭.”

캐서디가 그렇게 부르자 모리슨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캐서디는 그 순간의 미소도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3.

오버워치와 블랙워치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결국 블랙워치가 반란을 계획하기 시작했을 때, 캐서디는 블랙워치를 떠나기로 했다.

“캣.”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오버워치 본부를 나오는 도중에 부르는 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잭 모리슨이었다. 블랙워치에 대해 말해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생사를 함께 한 동료였다. 캐서디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에 대답했다.

“사령관님.”

“오랜만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건가? 하하.”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하니까요.”

“다음에 같이 술 한잔하지. 내가 사는 거니 걱정하지 말고.”

그럼 수고하게. 그는 캐서디의 어깨를 두어 번 치고는 지나쳐 갔다.

“잭.”

캐서디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몸조심하세요.”

걱정을 건네는 말에 모리슨은 씩 웃더니 “고맙네.” 하고 말했다. 다시 멀어지는 그를 보며 캐서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캐서디가 블랙워치를 떠나고 그들의 반란이 반쯤 성공했다는 소식에 잭 모리슨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왔다.

결국, 죽었구나. 그 사람.

“한 번 더 봤으면 좋았을걸.”

인디애나의 어느 옥수수밭 언덕에 놓인 그의 비석을 보며 캐서디는 저 혼자 중얼거렸다. 가져온 하얀 꽃다발을 던지듯 무덤가에 두고는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입에서 나온 시가의 하얀 연기가 그의 얼굴을 가렸다.

4.

잭 모리슨을 솔져:76이라는 인물로 다시 만난 건 지브롤터에서였다. 몰락한 오버워치의 잔해. 그곳에서 캐서디는 유령을 만났다. 하얗게 센 머리,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야윈 몸, 그런데도 변함없이 시선을 끄는 존재.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했다. 부르려는 말이 나오다 다시 들어간다.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초연함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붙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어쩐지 그대로 통과해버릴 것만 같았다. 사라지지 마. 나는. 당신이.

“……캣.”

그 순간 손이 멈췄다. 뒤죽박죽인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러줬던 잭 모리슨이 떠올랐다.

“잭……모리슨.”

“그리운 이름이군.”

“어, 어떻게.”

더듬거리는 캐서디의 말을 듣고 픽 웃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붉은 바이저를 벗고 눈을 마주했다. 이마에서부터 뺨까지 뻗은 긴 흉터와 나란히 입술에 남은 짧은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보니 죽지 못했군.”

“왜-.”

살아있다고 알리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당황스러움, 의심, 미안함, 그리고 반가움을 한꺼번에 느끼는 상황은 어떤 말도 입에 머금은 시가 연기처럼 사라지게했다.

“자네가 말이 없으니 이상한데.”

“……전.”

“잘 지냈나?”

예전처럼 물어보는 안부에 캐서디는 최대한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술 한잔 사주겠다고 하신 건 잊지 않으셨죠?

5.

그 후로 캐서디는 때때로 모리슨과 함께하게 되었다. 잭 모리슨과 함께라니.

하지만 함께하는 설렘도 잠시. 캐서디는 그가 매우 위태롭다는 걸 깨달았다. 지키려는 신념 외에도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자신을 절벽에 내몰았다. 오늘도 여러 번 그에게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고 소리쳤다. 몇 번인지 기억도 안 날 때쯤 모리슨도 화를 냈다.

“내가 알아서 해! 거치적거리니까 저리 비켜!”

임무가 길어질수록 날이 서고 골이 깊어졌다. 이대론 정말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일이 거의 끝나갈 때, 캐서디는 한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이거 놔. 아직 안 끝났어.”

“옛날에도 이딴 식으로 일했어요?”

“네가 말하는 옛날이 오버워치의 사령관이라면 이미 죽었으니까 잊어!”

“그게 무슨 개소리-.”

격해진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그가 캐서디를 뒤로 밀쳐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모리슨을 봤다. 그런데 무너지듯 그가 캐서디의 위로 쓰러지고 있었다. 쓰러지는 모리슨을 반사적으로 받았다. 사고가 멈추고 그가 서 있었던 허공에서 시선을 돌리지도 못했다. 그가 굳어버린 캐서디의 팔을 붙잡고 힘겹게 말했다.

“내 왼쪽.”

캐서디는 허벅지에 맨 총집에서 피스키퍼를 빠르게 쥐고 그가 말한 곳으로 섬광탄을 던져서 상대방을 확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에 맞은 적이 미동도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모리슨을 등에 업고 뛰었다.

6.

그가 눈을 떴다. 쓰러지고 꼬박 반나절이 지났다. 새벽이 막 찾아온 시간이라 방안은 어둠과 적막이 만났다. 그는 주변을 인식하다가 캐서디를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서디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랬어요?”

잔뜩 잠긴 목소리였다.

“……난 잘못한 거 없어.”

그는 미동도 없이 이어서 말했다.

“두 번씩이나 잃을 순 없으니까.”

그 말 앞에 캐서디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그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숙여서 잡고 있는 그의 손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잡힌 손이 움찔하고 반응했다. 캐서디는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한참 캐서디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 낡은 목숨에 의미 없이 정 주지 마.”

캐서디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양팔로 그를 가두고 말했다.

“이미 늦었어요. 잭.”

내 시선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빼앗겼으니까.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반응이 너무 상상했던 그대로라 캐서디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무리에요. 이제 와서 그런 요구는…….”

이어지는 말을 듣고 모리슨은 그의 어깨에 천천히 머리를 기댔다.

“그러니까 죽지 마요. 잭.”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기척이 어깨에 그대로 전해졌다. 캐서디는 가두고 있던 두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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