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솔 / 재회

CatSol by 하르

미안하다.

우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캣.

그것도 두 번이나.

눈을 떴을 때, 콜 캐서디는 마른 짚단 위에 너저분한 담요를 덮고 누워있었다. 끝까지 애 취급이지. 그렇게 이를 갈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서 짚단 위에 내려왔다. 두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허벅지에 통증이 느껴졌다. 역시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다.

간밤의 전투에서 캐서디는 유령을 봤고, 그 유령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흐려지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 있는 캐서디를 유령은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치료도 해줬다. 결국, 유령이 아니었던 거야. 치료받은 오른쪽 어깨를 잡으려고 팔을 드는데 왼쪽 손이 없다. 그제야 제 의수가 아작이 난 걸 알아차렸다. 으으.

아아! 젠장! 잭 모리슨!

캐서디는 마구간에 가득 울리도록 소리쳤다.

의수 얼마 전에 교체하셨잖아요.

박살 난 캐서디의 왼쪽 의수를 보며 앙겔라 치글러는 인상을 썼다. 캐서디는 애써 그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게다가 몸 상태도 완전…….

다친 상태를 말하려는 그때, 치글러는 캐서디의 상처를 유심히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솔져를 만났어요?

뭐야 당신도 봤어? 그 양반 어디 있어? 어디서 만날 수 있어?

유령의 이름을 언급한 치글러의 팔을 멀쩡한 손으로 잡아 흔들며 추궁했다. 꽉 잡힌 오른쪽 팔이 아파서 그 손을 쳐내고 한 발짝 떨어져서 말했다.

나도 몰라요. 그저 저희가 도둑맞은 생체장으로 치료한 흔적이 있어서 물어본 거예요.

도둑질? 그 인간이?

오버워치의 무기와 비품을 훔쳐서 갱단이나 탈론을 죽이고 다닌다더군요.

캐서디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치글러는 캐서디에게 줄 의수를 점검하며 흘리듯 물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일까요?

……글쎄.

삼킨 말과 함께 시가를 태우고 싶었다.

의수를 받고 캐서디는 곧장 유령을 봤던 장소로 다시 향했다. 벌써 며칠이 흘렀기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싶었지만, 달리 찾아볼 곳도 없었다. 왜 이렇게 찾고 있는 걸까. 내가 그를 봐서 어쩌고 싶은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걸 알리지 않은 것도 화가 났고, 그런 주제에 여전히 블랙워치의 애송이 취급하는 게 싫고, 마지막에 흘린 사과도. 캐서디는 입에 문 시가를 태우고 연기를 내뿜었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 그때 알고도 도망쳐서 미안하다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하라고.

그래 나는 당신에게 용서받고 싶다. 오버워치의 그 누구보다 당신의-.

다시 올 줄 알았지. 콜 캐서디.

붉은 석양이 걸린 언덕 위. 캐서디가 홀렸던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바이저를 쓴 얼굴엔 그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은 상황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들고 있는 펄스 소총을 캐서디에게 겨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늦었군.

……왼쪽 팔이 완벽하게 아작난 덕분이죠.

그러게 왜 망설였나.

내가 아는 사람일까 봐.

누굴 말하는 거지?

잭 모리슨 사령관.

탕. 펄스 소총의 탄환이 캐서디의 옆을 지나 바닥에 꽂혔다.

날 보고 그렇게 말한 인간들은 다 죽었어.

그래서 저도 죽는 겁니까?

……왜 날 찾는 거지?

내가 본 게 유령이 맞는지 확인하려고요.

캐서디의 대답을 들은 그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펄스 소총을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바이저를 벗었다. 선명하게 남은 흉터와 흰 머리. 잭 모리슨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얼굴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됐나?

그대로네요. 잭.

모리슨은 인상을 썼다. 그럴 리가 있나. 자신도 어떤 인간인지 방황하고 있는데, 네가 뭘 알고. 순간적인 울분이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감정을 삼키고 다시 바이저로 얼굴을 감췄다.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군. 전하는 말에 돋친 가시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대로 사라져버리려는 유령을 캐서디는 단숨에 달려가서 붙잡았다. 어깨를 붙잡히자마자 들고 있던 무기로 캐서디를 겨눴으나 짧아진 거리 탓에 왼쪽 팔과 의수의 이음부에 총구가 닿았다.

떨어져.

충분히 위협적이었음에도 캐서디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붙잡았던 어깨에서 이번엔 그의 바이저로 손을 뻗었다. 뒤로 물러서려는 만큼 다가갔다. 캐서디의 큰 손이 그의 얼굴을 다 가렸다가 바이저와 함께 시야에서 벗어났다.

할 말이 있어요.

목숨을 걸 만큼?

버릴 수도 있어.

모리슨은 캐서디를 한껏 노려봤다가 팔에 닿은 총구를 밑으로 내리고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캐서디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캐서디를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캣.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앞에 서 있는 그에게 쏠렸다. 웃기지도 않게 심장이 뛰고 가슴 언저리가 저렸다. 이렇게까지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단 말인가.

사과하지 마.

그 순간 모든 감정은 땅으로 떨어졌다. 저지당한 사과에 입에 담아둔 말이 시가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자네가 사과할 것도, 내가 사과받을 것도 없어. 그냥 그런 일인 거야. 유령은 그렇게 말하더니 캐서디가 들고 있던 바이저를 뺐고, 다시 쓰려고 했다. 그 바이저가 다시 얼굴을 가리기 전에 캐서디는 그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럼 나한테 왜 사과했어요?

…….

왜 미안하다 했느냐고.

그는 캐서디의 다그치는 말에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자신을 황망하게 보며 잭 모리슨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목숨까지 거는 걸 보고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야 했지만, 오버워치와 블랙워치 사이에 있었던 너에게만은.

그 순간 캐서디의 의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손목을 잡아 올리고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럴 만했으니까.

그가 들어 올린 새 의수를 보며 캐서디는 잠시 놀랐다가 이를 갈며 그를 노려봤다. 아니 지금 그게. 오오. 하나님 맙소사! 뭔가 더 굉장한 욕을 하려고 했으나 간신히 씹어 삼키고 잡힌 의수를 휘둘러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그도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캐서디의 손을 쳐냈다.

이제 그만 잊어. 자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었잖아.

도망친 일이죠.

그러니 더더욱-.

당신도 못 잊는 걸 내가 어떻게 잊습니까?

나와 네가 같을 수 있나.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렇게 생각했다니 살짝 놀랍기도 했다. 하. 콜 캐서디. 레예스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잭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한 손으로 캐서디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내가 죽은 건 자네 탓이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자네한테 받을 사과는 없어. 모리슨은 그대로 캐서디를 지나쳐 그에게서 멀어졌다. 순간적인 사과에 사고회로가 멈춘 캐서디는 그가 멀어지기 직전에야 겨우 몸을 움직였다. 다시 바이저를 쓰고 있는 그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품에 안았다. 방심하는 사이 이제는 자신만큼 큰 남자가 자신을 안아버리자 모리슨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캐…ㅅ-.

그래도 할 거예요.

……캣.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잭. 어린아이 같은 고백에 모리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린 각자의 죄책감을 안고 그 시간에 멈춰있구나. 자신을 힘껏 끌어안은 그의 어깨에 그저 이마를 대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당신을 용서합니다.

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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