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Dance

캣솔

xox by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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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이야기인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가 곧이어 몸속 깊은 곳, 꺼진지 오래라 여겼던 이름 모를 감정에 불이 붙었음을 깨달았다. 그리운 향수를 느끼는 동시에 진절머리가 났다. 오버워치는 언제나 자신의 이중성을 엿보게 하는 곳이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라 장담할 수 있는 만큼 동시에 가장 큰 추락이기도 했다. 정작 떨어진 건 캐서디가 아니었음에도. 하지만 결국 그 이름을 다시 들추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제 제가 한량처럼 떠돌며 평화를 지키는 시늉을 하고 다니기엔 나이를 꽤 먹어버린데다가 하필이면 부탁한 인물이 도저히 거절 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탓이다. 아나 아마리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그가 넘겨준 파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펴봤다. 서늘한 새벽바람과 함께 네모난 오렌지빛이 캐서디의 얼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벌써 동이 텄나. 다음 행선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닫으려는 순간, 꺼져가는 정신을 깨우려는 듯 패드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개인적으로 추적하던 조직에 관한 정보였다. 메시지에 담긴 암호를 보면 그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정보원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피곤한 손짓으로 얼굴을 느릿하게 쓸어내린 남자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무법자 캐서디로써의 마지막 임무가 정해진 셈이다. 화면을 두드리니 지도가 뜨며 붉은 점이 점등했다. 

밀라노라. 정장이 필요하겠군.

여러 지역에 잇따른 테러에도 미적지근하게 굴던 국제사회가 파리 침공으로 심각성을 깨달은 것인지 하나둘 관련 성명을 내기 시작했다. 그가 눈여겨 보던 조직은 직접적으로 널 섹터와 관련된 자들은 아니지만 널 섹터의 옴닉중 일부 부품을 취급하는 회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봤자 회사와의 연은 깊지 않을 거다. 굳이 따지자면 하청업자들이겠지. 큰 기업이 대놓고 할 수 없는 물밑 작업을 대신 해주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들의 새로운 흔적을 이탈리아에서 포착했고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밀라노 외곽에서 열리는 후원 행사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널 섹터의 침공이 가속되는 도중 잠잠했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점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었다.

원대한 뜻이 있어 그 조직을 추적한 건 아니었다. 현상금으로 간간이 벌이를 하던 중 수배된 인물 하나를 쫓다 조직의 내막을 알게 돼 더 파보았을 뿐이다. 무엇 하나 물면 끝장을 볼 때까지 놓지 못하는 오랜 버릇이었다. 물론 오버워치의 재소집을 제쳐두고 신경 써야 할 만큼의 의미를 갖진 못했는데, 최종적으로 캐서디가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 이유는 메시지 마지막에 덧붙여진 한 줄 때문이었다.

-76로 추정되는 인물 목격. 주의 요망.

*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늘어진 천장을 보며 목을 꽉 조이는 넥타이를 매만졌다. 벽에 금이라도 발라놨는지 사방이 아주 번쩍번쩍해 눈이 멀 지경이었다.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셔츠나 아무런 기능도 없이 불편함을 한 겹 더할 뿐인 드레스 베스트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침공의 피해를 본 마을 주민들을 위한 행사라더니 홀 안은 사치스러운 차림의 갑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엔 우스꽝스럽다며 비웃었지만 마스커레이드 행사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 배를 불리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을 자들이 위선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비죽임을 숨길 자신이 없었다.

캐서디는 지나가던 웨이터에게서 샴페인 잔을 하나 집어 들고 천천히 회장을 둘러보았다. 아직 눈에 띄는 점은 없다. 거래란 것도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없었고, 확실한 건 이 행사의 주최자와 연관이 있다는 것뿐. 목적도 타겟도 정확하지 않은 막연한 임무다. 캐서디는 마른 입술을 잔에 대고 한 모금 머금었다. 이런. 빌어먹게 달잖아. 술로 불편함을 달래보려던 계획은 금세 틀어졌다. 

맛대가리 없는 샴폐인을 홀짝이며 내부를 세 바퀴쯤 돌았을까, 회장의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주최자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녀는 옴닉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며 소리 내던 기업의 간부였다. 스피치의 내용이야 뭐, 진부했다. 피해입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혐오와 폭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힘을 모을 때입니다.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회장에 울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이자 캐서디는 벽에 기대어 가면 아래로 눈을 바삐 움직였다. 무대 오른쪽 커튼 뒤에 움직이는 검은 인영이 눈에 밟혔다. 웨이터 차림에 왼쪽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단번에 캐서디가 쫓던 수배서의 인물임을 알아봤다. 부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눈짓을 하는게, 주변의 웨이터 두 명 또한 같은 무리인 듯 했다. 평소의 찰캉이는 부츠 대신 매끈한 검정 구두가 벽에서 떨어졌다. 움직일 때였다.

캐서디가 행동하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검은 손이 튀어나오더니 타겟이 쓰러졌다. 어라? 앞에선 행사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며 감사 인사가 한창이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꼬꾸라진 타겟의 옆에 서 있던 남성이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사라졌다. 뜻밖의 전개에 멈춰있던 몸을 움직여 거리를 좁히려는데 회장의 조명이 전부 꺼지며 암전됐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럼 남은 행사를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빛을 사방으로 반사했다. 순식간에 밝아진 주변에 적응하지 못해 눈앞이 흐릿했다. 시야가 또렷해지자마자 급히 주변을 살폈지만 커튼 옆엔 아무도 없었다. 희한한 일이군.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주최자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당황 어린 얼굴로 주최자 및 그의 최측근들이 자리를 뜨는 것을 보면 분명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 없는데. 캐서디는 애써 머리를 굴리며 다음 행동을 가늠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1분 전엔 이곳에 없었던 한 남성을.

회장을 돌며 각 인물의 착장과 가면의 모습을 충분히 관찰했다.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색의 정장과 검은 가면. 입 주변을 빼면 온 얼굴이 가려지는 가장 흔한 디자인이었다. 그것뿐이었다면 별 볼 일 없었겠지만,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치곤 곧은 자세에 정장이 감싸고 있는 몸이 꽤 튼튼해 보였다. 관리를 받는 고위인사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싶겠지만 망설임 없이 내딛는 걸음걸이에서 확신을 얻었다. 그런 거 치곤 지나치게 딱딱하고 여유가 없지. 마치 군인처럼. 경쾌한 음악에서 잔잔한 왈츠로 바뀐 연주에 맞춰 캐서디가 서서히 인물에게 접근했다. 

"실례합니다." 

인파를 요령 있게 빠져나가던 남자의 퇴로에 몸을 들이밀었다. 자신과 엇비슷한 신장과 체격. 놀랄 법도 한데 태연히 발걸음을 멈추고 용무를 묻듯 고개짓한다.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수년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 패기 있게 붙잡은 거까진 좋았는데. 이제 어쩌지?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남자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남자가 깊은숨을 내쉬며 입을 열려는 순간 캐서디가 선수를 쳤다. 조금은 어색한 움직임으로 상체를 살짝 숙이곤 오른손을 내밀었다. 

"춤 한 곡 하시겠습니까?"

물론 한쪽 입꼬리를 올려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남자에게서 반응이 온다. 왈츠 연주에 맞춰 홀 가운데엔 사람들이 몰려들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굳게 다문 남자가 불만족스러운 숨소리 냈다. 

"미안하지만 전 가봐야 할 거 같군요."

"파티는 막 시작했는데요? 첫 곡은 추고 가셔야죠."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는 걸 곧바로 따라 길을 막아섰다. 남자는 슬슬 열이 받는지 몸을 쭉 펴고 섰다. 

"춤엔 관심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딱 한 곡만 추고 가시죠. 지금 꽤 용기 낸거거든요."

부러 큰 제스쳐로 춤을 신청한 캐서디 때문에 주변의 은근한 시선이 두 장정에게 머물고 있었다. 뻘줌히 허공에 올려둔 캐서디의 손을 바라보던 남자는 춤을 추기 위해 인파가 몰려 가려진 출입구를 보고 또다시 불만족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딱, 한 곡입니다.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캐서디가 허리를 세워 남자에게 바짝 붙어 섰다. 자연스럽게 한쪽 손은 남자의 허리를 감싼다. 불만을 표하려던 건지 잠시 멈칫한 남자가 이내 입술을 다물고 캐서디의 손을 맞잡았다. 예상한 대로 거칠고 단단한 손이었다. 사람들의 대열에 맞춰 선 둘은 마치 힘겨루기를 하듯 손과 팔에 힘을 잔뜩 주며 스텝을 밟았다. 투박해 보이던 남자는 의외로 춤 실력이 있는지 거침없이 발을 옮겼고, 캐서디는 수십 년 전의 기억을 쥐어짜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대참사를 막는 게 최선이었다. 흥. 코웃음을 치는 상대에게 반박하지도 못할 실력이긴 했다. 캐서디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춤에 자신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쪽은 능숙하시군요. 이런 행사에 자주 오시나 봅니다."

"당신이 과하게 형편없는 것이겠지."

"뭐, 부정은 않겠습니다. 바보가 된 기분이네요."

지나치게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이런 대화를 어디선가 나누었던 것 같다. 흐릿한 얼굴의 인파 속에서 자신과 엇비슷한 남성을 붙잡고 춤을 출일이 뭐 얼마나 있다고? 거친 손바닥과 낮고 정돈된 목소리, 능숙하게 제 손을 힘주어 잡아끌어 리드하는 몸짓 같은 것들이. 마치 오래 잊고 있던 꿈을 천천히 떠올리는 감각과도 비슷했다. 물에 번져버린 그림마냥 선명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림 속의 풍경은 어렴풋이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사실 그닥 복잡한 추론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콜 캐서디 인생에 왈츠를 춘 순간은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으니까. 

내색하지 말아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대는 기다렸단 듯이 다시 코웃음을 쳤다. 여전하군.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가 빠른 움직임으로 팔을 돌려 캐서디의 팔을 꺾어 뿌리치려 했다. 터져 나올 뻔한 비명을 이 악물고 삼킨 캐서디는 죽을힘을 다해 손을 쥐어 버텼다. 

"아직 곡이 안 끝나서요. 약속이잖습니까."

"...그래 딱 한 곡이랬지"

"애프터 신청도 기꺼이 받겠습니다만"

"미안하지만,"

그쪽이 내 타입은 아니라서. 

 상대가 고개를 잔뜩 붙여 캐서디의 귓가에 속삭인다. 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유로우시네요. 농도 하시고."

"너야말로 이런 파티에서 춤출 여유가 있나 보지."

"누군가 제 타겟을 먼저 쳐버린 덕분에 말입니다."

"…자네가 연관 될 만한 일은 아닐 텐데. 따로 할 일이 있지 않나."

공기 빠진 풍선 같은 대화가 오가던 중 캐서디가 이를 악물었다. 불이 붙었던 가슴 속 응어리가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화르륵 타올랐다. 가장 먼저 느껴진 감정은 분노였다.

"다 알고 계신 겁니까?"

상대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이미 대답이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겁니까. 차오르는 원망 어린 말들을 삼키는 게 고작이었다. 남자의 앞에서 콜 캐서디는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된다. 갱단에서 잡혀와 매끄럽고 차가운 유리로 된 집무실에서 그를 처음 마주했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 사실조차 원망스러워 검은 가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너머의 표정은 읽히지 않는다. 그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연주에 맞춰 발을 옮겼다.

"지금이라도…"

"농담이 과하군."

깊은 한숨이 캐서디의 말을 끊었다. 아나 아마리와의 대화 이후부터 캐서디를 짓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몸집을 불려 그를 깔아뭉겠다.

"우스운 건, 당신의 행보이지 않습니까. 감정에 휩쓸려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라더니."

"아나와 이야기하지 않았나. 다 끝난 얘기로 알고 있는데."

캐서디가 한 발짝 다가가면 남자는 뒤로 한 발 멀어진다. 상대를 여기 붙잡고 있는 건 가볍게 쥐고 있는 손과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왈츠 곡뿐이었다. 캐서디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들에겐, 우리에겐. 잭 모리슨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천천히 멈춰선 캐서디가 가면 너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 할 수 있어요."

아나와의 대화로 마음을 굳힌 건 사실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단단히 땅을 딛고 살아온 날은 극히 드물었지만, 캐서디는 언제나 자신의 쓸모를 알아보는 곳은 기막히게 찾아냈다. 그게 그림자 속인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적어도 오버워치에서 잭 모리슨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으로 내일을 꿈꾸게 만든 사람이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콜 캐서디에겐 큰 깨달음이고 변화였다. 무슨 짓을 해도 잭 모리슨 같은 사람이 될 순 없겠지만 그를 가까이서 되도록 오래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지,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도 그 빛을 조금은 나눠 가질 수 있게 될지. 잭 모리슨은 그런 존재였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만드는 사람. 그랬던 남자가 스스로 진흙탕에 기어들어가 나뒹구는 꼴을 영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는 당신을 통해 지상으로 나왔는데, 정작 당신은 추락해버리다니.

캐서디의 말에 남자는 허리를 곧게 펴고 그의 앞에 똑바로 서서 눈을 맞췄다. 두 시야 사이로 흘러내린 갈대 빛 머리카락이 사락거렸다.

"넌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군."

잭 모리슨은 죽었어.

대답보단 선언에 가까운 어투였다. 캐서디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뇌이듯이. 미리 짜맞춘 것처럼 그가 입을 다묾과 동시에 약속했던 곡이 끝났다. 회장엔 아주 짧은 적막이 내려앉았다가 바로 다음 연주가 이어진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주변과 다르게 두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고 서로를 마주 봤다.

"나는 해야할 일이 있다. 내 손으로 끝내야만하는 일이지."

"진작 놓아야 할 과거에 얽매여 있는 건 아니고요?"

언젠가 잭 모리슨이 콜에게 건넨 말이었다. 과거에 얽매여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갱단 시절의 습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방황하던 당시엔 별로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어쩌면 이제는 당시의 잭 모리슨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더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 앞에 서 있는 남성은 기억 속의 남자와 다른 인물이다. 이미 알고 있었을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여기까지 온 걸지도 몰랐다. 아무말 없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천천히 걸어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캐서디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입안이 모래를 씹는 것처럼 텁텁했다. 그는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회장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쩌면 과거를 붙들고 있는 건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군요, 잭. 하지만 그가 변한 것처럼 콜 캐서디 또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나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그 또한 돌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

"…… 나는 적임자가 아니야. 잭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

"잭 모리슨은 과거의 망령을 쫒고 있어요,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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