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맥레예] you are my everything
맥크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웃는 것도 같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가 웃으며 대답하면 좋겠다는.
그대로 세상은 둘만 남은 채 모두가 사라져버렸다. 맥크리의 말은 금방 멎어들었다. 레예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불길하게 소리를 감췄다. 그는 그렇게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로 맥크리를 보고 있었다.
가끔은 생각이 너무 많아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무거워 뉘이고도 계속된 빼곡한 생각 중에서 맥크리가 건져 올린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 있는 선택지도 없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그도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없었다.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다 마신 빈 캔을 손 안에서 굴리던 레예스는 피곤한 듯 눈을 잠시 감았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그의 모든 것이 보였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 깜빡임, 시선이 자신에게서 자신의 뒤 그 너머로 이동하는 것, 천천히 감기는 눈과 그 안의 대답까지도. 아, 모든 걸 알게 됐지만 맥크리는 여전히 그 자리였다. 세상은 잠시 뒤집힐 듯 울렁였을 뿐 변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난 네 전부가 되기 위해 네 옆에 있는 게 아냐."
레예스는 평소와 같았다. 조금은 무기질 덩어리 같았고, 조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단단하게 빚어낸 작품처럼 맥크리의 앞에 있었다.
그에게서 떨어지는 말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맥크리에게 그는 결국 웃어보였다. 눈이 조금 접히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목소리는 위아래로 내려가며 가벼워졌다. 더 이상으로는 어느 말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반짝거렸다. 여전히 맥크리에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와, 구려."
치글러는 그렇게 말했다.
맥크리가 가져온 술의 포장을 벗기고 라벨을 쭉 읽던 치글러는 빠르게 병을 땄다. 대충 눈에 닿는 비커를 잡아 세 개를 늘어놓고 어느 눈금에 맞춰 따랐다. 수 년의 경력을 가진 바텐더는 아니었지만 경력이 깊은 과학자다운 움직임이었다.
"대체 언제적 고백 멘트야?"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시대가 무슨 상관이야...."
하, 맥크리의 말에 치글러는 헛웃음 지었다. 그녀는 비커 셋에 술을 반 쯤 따라놓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였다. 뭔가를 조금씩 옮겨담고 있었다. 섞고 있었다.
눈이 반 쯤 죽어있는 그녀에게는 차마 피곤해보인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치글러에게 훔친 출입증으로 연구실에 들어온 맥크리는 포장된 술을 흔들어보였고, 기분 안좋으니 놀아줄 생각 없으니 돌아가라던 치글러는 맥크리가 이대로 방으로 돌아가면 슬프게 울지도 모른다는 말에도 알 바아니라는 자세를 고수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술을 보고 결국 들어오라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컵은 왜 3개야?"
"이제 한 명 더 올 거라."
그녀가 굉장히 수상한 갈색 병에서 장갑을 끼고 스포이드로 떠 비커에 두 방울씩 떨어트리는 액체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맥크리는 걱정조차 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마셔도 되는 거긴 한가, 마셨다간 죽으면 어떡하지 싶었을 뿐이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비명소리도 들린 것도 같았다.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이려는 맥크리를 눌러 앉힌 것은 치글러였다. 곧이어 뭔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린지는 안다. 에어샤워하는 소리였다. 맥크리가 재밌어보인다고 해보려했지만, 들어가면 오염된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었다. 어차피 에어샤워로 씻으면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그러니까 오염 된다는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치글러는 아니었다. 그래도 치글러는 친구였으니 에어샤워기가 오염된다는 소리까진 하지 않는다. 누구였냐면,
"빌어먹을."
"마셔요."
"고마워, 닥터."
모이라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치글러의 비커를 받아들었다. 비커인 걸 확인하고 조금 의문인 표정이었지만, 곧 안쪽에서 나왔을 때처럼 기분 나쁜 표정으로 돌아왔다.
"비명은 왜 질러요."
"짜증나서."
"그럼 그럴 수 있지."
흰 가운과 무덤한 대화 사이에서 유일하게 따듯한 색을 가진 맥크리는 괜히 훌쩍였다. 치글러는 곧 맥크리에게도 잔을 돌렸다. 납작한 비커, 길쭉한 비커, 네모난 비커는 각각 주인의 손에서 투명한 액체를 불길하게 반짝였다.
"근데 아까 넣은 건 뭐야, 마시면 죽는 거 아냐?"
"마시고 죽으면 죽는 걸 넣은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니네."
치글러가 대답하고 털어넣었고, 모이라가 뒤따라 맞장구치곤 홀짝였다. 맥크리는 미심쩍은 눈을 감추지 않고 마셨다. 술맛은 그대로였지만 넘김과 잔향이 좋았다. 뭘 넣었냐는 의심은 호기심을 변했지만 피곤한 그녀들에게 뭔가를 묻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맥크리는 호기심과 함께 한 모금 더 삼켰다. 비커 내려놓는 소리에 무섭게 모이라는 물어왔다.
"얜 왜 여기 있어?"
"차였대요."
"누구한테?"
"그, 왜."
"아."
"네."
"그렇게 개처럼 낑낑거리더니 고백하긴 했나? 뭐라고 했는데?"
맥크리는 진심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질문을 받은 건 자신이 아니었다. 모이라는 그에게 직접 물어본 적 없었다. 딱 두 번을 제외하고.
첫 번째 질문은 캐나다 작전에서 맥크리가 모이라 대신 날아온 건물 파편에 치 였을 때, 죽었나? 였고 두 번째 질문은 왜 자기가 옆에 있는데도 직접 묻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왜 가장 멍청한 사람에게 내가 질문 해야하지? 였다. 혹시 요즘 모이라의 기분이 나쁜 거냐 치글러에게 물었을 때, 그 때 이미 거의 대답하는 옴닉이 되어있던 그녀는 영혼 없이 기분이 아니라 성격이 나쁜 거라 대답했었다.
이번에도 치글러는 대답했다.
"언제적 멘트야?"
치글러와 똑같은 모이라의 말에 맥크리는 애꿎은 치글러를 바라봤다. 뭘 봐. 너. 어쩌라고. 그러게. 첫 잔은 이것저것 넣었지만 두 잔째부터는 순수한 술병의 술만 돌려졌다. 다행히 치글러가 이것저것 넣었던 건 죽을 만한 건 아니었던 지 셋 다 멀쩡했다. 조금 취기가 오르는 걸 제외한다면.
"가브리엘은 이미 가브리엘이잖아?"
"그래서?"
"네 전부가 가브리엘이면, 가브리엘인 가브리엘은 네가 굳이 필요할까?"
맥크리의 눈은 게슴츠레하게 모이라를 보고 있는데, 치글러는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없는 싸이코패스들."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공격성을 보이는 건가?"
"그러게. 제시, 가서 체성검이라도 받아봐. 뭔가 부족할지 몰라."
"체성검?"
"체내성분검사. 아니면 뭔가 많은 걸지도 모르지. 뭘 기대했었어? 사실 그렇게 우울해할 일은 아니잖아. 되려 당연하다 싶을 정도지."
잔은 금방 채워졌다. 가장 마지막에 잔을 비운 모이라에게 치글러는 할 일이 남았느냐고 물었고, 모이라가 이러저러한 것들이 남았다고 작게 대답하자 작은 눈금 두 개 정도만 채워줬다. 술병을 쥔 그녀는 맥크리에게만은 후했다. 맥크리의 바로 오른쪽에는 이해심 깊은 사이코패스였고 그 옆은 그냥 사이코패스였다.
"그런 멍청한 사랑은 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야, 제시 맥크리."
"로맨틱하다고 생각했어."
모이라가 맥크리의 이름을 말했다는 것은 이제와선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선택한 다음의 말이었다. 사실 당신과 영원히 있고 싶다는 말이나, 당신의 모든 걸 알고 싶다거나,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도 놀랍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보다도 그 말을 골랐던 이유는 순전히 맥크리 자신이 그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낙담한다는 건 틀린 말이다. 높이 올라간 만큼 추락하듯 딱 기대 했던 만큼이다. 맥크리가 잔을 비우자 다시 술은 채워졌다. 이번에는 치글러가 일어나더니 첫번째 잔처럼 무언가를 꺼내 술에 섞어줬다.
"자애롭네."
"원래 자애는 절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 거 몰랐나요, 닥터."
"뭐...이번에는 재밌는 가설이라 해줄까."
모이라와 치글러가 그렇게 주고 받는 동안 맥크리는 조금 서글퍼졌다. 취기는 얼굴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머릿속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 마음과 함께 내려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맥크리가 차라리의 심정으로 비커를 들자 모이라는 일어서서 조언했다.
"가브리엘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걸 많이 가졌고, 언제나 가질 수 없는 걸 원하지. 그러니 그보단 커져야 하지 않겠어?"
"그때 말이야."
맥크리는 말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그의 자그마한 행동들, 시선의 움직임, 눈의 깜빡임, 움직이는 입술의 모양, 감정을 입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맥크리에겐 그에 대해서는 어려울 일이 없었다.
"약물 걸렸던 거, 정말로 마약은 아니었어. 아마 알콜 검사를 속이는 물약이지 않았을까?"
정답이나 정답에 아주 근접한 답이었을 것 같았다. 그때 술에 취하지 않은 것도, 그뒤로 사격장에 가서 총 쏘고 결국 잡혀 피까지도 뽑았지만 혈중 알콜 농도가 0으로 나온 걸 떠올려보면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 뒤로 맥크리는 자주 생각하게 됐다. 생각은 다양하다. 정말로 그렇게 구린가,진심을 말하는 건 잘못된 걸까, 진심이 아니라 다른 말을 했어야 했던 걸까. 그때 그에게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던 걸까,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새로 가진 것도 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잃은 채 맥크리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 그를 알게 되는 일에는, 그리고 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중요한 사실이었지만 이제와서는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그 물약은 알콜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관심함과 무덤함의 얻게 되는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맥크리는 웃었다. 생각은 이제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어쩌면 그 약을 그에게 이 말을 하기 전에 먹었더라면 나는 그를 사랑하는 상태에서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
"일어나, 나랑 가자."
"......."
"당신은 내 전부야."
그리 나쁘진 않았다.
여전히 맥크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사실 뿐이었다.
1) 모이라와 치글러는 같은 박사지만 모이라가 선배일거라고 생각했고
2) 사실 비커에 술마실 사람들이라고 생각은 안하고
3) 마지막에 사랑해까지 덧붙일까 했지만 역시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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