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예메르 마중
이번에야 말로 죽을지도 몰라. 발목과 손목에 달린 차가운 금속과 미적지근한 피가 관자놀이 근처에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앙겔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사람들을 돕고 싶었을 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최근 발표한 카두세우스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송사의 요청을 수락했던 일? 아니면 카두세우스 시스템을 계획하던 단계부터? 그것도 아니면 내 연구를 감명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오버워치의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앙겔라는 자신이 이 폐쇄된 더러운 공장 한구석에 묶여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려고 했다. 최근 오버워치가 성공리에 마무리한 작전에 대해서도 최대한 떠올려 보려고 했고, 매번 세간에서 많은 기대를 모으는 자신의 연구의 대해서도 떠올려 보려고 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시작한 연구가 자신을 이런 지저분한 곳에서 고통 속에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니. 앙겔라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얻어맞은 곳들이 제각각 다른 비명을 토해낼 때마다 연구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던 러시아 억양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굳게 닫힌 녹슨 철문 앞을 지나는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앙겔라는 두려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흘째 물 몇 모금 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몸은 소리가 들릴 적마다 빳빳하게 허리를 바로 세우고 근육들의 힘을 주었다. 화난 목소리의 러시아어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대화가 몇 번 들렸다. 말과 말의 텀을 유추하여 볼 때 누군가와 통화 중인 것 같았고, 앙겔라는 피곤한 신경을 겨우 세워 협상과 거래, 유통권, 약 같은 몇 개의 단어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앙겔라는 자신의 연구가 특정 조직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보다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더 평화로운 업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습격 같은 단어를 말하는 성난 고함과 총성이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에 갑시다, 닥터 치글러.
자신이 갇힌 문 바로 앞에서 들린 총성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던 앙겔라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를 믿지 못했다. 감았던 눈을 뜨고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흉터로 가득한 어두운 피부의 남자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레예스? 앙겔라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확신은 없었다. 겨우 힘을 짜내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뱉으면서도 앙겔라는 두 손에 총을 든 남자가 자신이 아는 그 남자인지, 뇌가 제대로 운동할 수 있는 영양분이 없거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만들어낸 환상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총을 내려두고 –아마 열린 문 앞에 쓰러진 누군가에게서 가져왔을 열쇠로- 손과 발을 묶은 것을 풀어줄 때에야 그가 자신이 아는 가브리엘 레예스가 맞다고 생각했다. 맙소사, 세상에, 가브리엘 레예스가 지휘하는 팀이 나를 구하러 왔다니. 앙겔라는 그의 존재를 확신하고 난 뒤에는 그것에 안도를 느껴야 할지 두려움을 느껴야 할지를 알 수 없었지만 앞에 있는 남자는 앙겔라의 그런 생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앙겔라에게 손을 내밀었고, 앙겔라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배고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남자는 그런 앙겔라를 내려다보면서도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전으로 앙지는? 하고 묻는 제 동갑내기 친구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무사해. 그 말에 앙겔라는 비명을 삼켰다.
이건 포스타입에 썼던 2017 년도 글인데 언젠가 다음 편을 짧게 써 보고 싶기 떄문에 일단 백업.. 오버워치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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