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맥리퍼] 고백
원문(링크)(2017.07.09)
*지금 읽어보니 그뭔… 같은 이야기라서 다시 읽어봤는데 아마 제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를 들으며 집에 와서 썼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사한테 일생일대의 고백 갈겼더니 너무 차갑게 차여서 번아웃 온 요원이 은퇴했는데 은퇴한 사이에 상사가 살인멸구 당했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거 같네요. 그뭔… 그럼 이렇게 쓰면 안되지; 싶으시죠? 그러면 직접 쓰시면 됩니다. 2017년의 저는 이게 최선이었다네요.
맥크리는 고백했다.
사랑이나 연민, 동정. 그 당시 느끼고 있던 감정이 아닌 그에게 숨겼던 것들. 나는 당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안타까운 과거를 가진 자도 아니며 그저 살고자 거짓말로 과거를 지어냈을 뿐이라고. 나의 이름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며 나는 당신이 전부 파멸시킨 그 단체의 구심점이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의 가브리엘 레예스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말을 처음으로 내뱉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다만 그때에 관련하여 안심이 되거나 후회가 되는 것은 그 고백의 끝에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곁에 있기 위해서였다는 진실을 덧붙이지 않은 것이다.
가만히 퍼트리고 있던 시선을 모았다. 이것은 그 고백과 같은 선상에 있으리라. 생각으로 넘치는 머릿속은 움직여야한다는 사고를 하는 것에도 지쳐있었다. 마디마디가 내려앉아 묵직한 손을 겨우 움직여 기록을 재생시켰다. 화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끼익. 간이의자의 끝이 리놀륨 바닥을 눌러 긁는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이 반대편에 있는 것은 가브리엘 레예스였다.
신원 재생 시스템이란 것은 그런 것이었다.
오버워치를 나가겠다고 이야기하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두 번만 생각해보라. 세 번 더 생각해도 정말로 나가겠느냐. 그러한 구질구질한 면담이 이어지고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한 뒤 밟게 되는 허술한 프로그램이었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 하는 일이 별 것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스포츠를 보거나, 동물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 없이 듣고 앉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단 한 장으로 정리된 프로그램을 펄럭이며 시간낭비라 투덜거리자 잠든 줄 알았던 치글러가 조용히 말한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시간 낭비를 버텨야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제시.’
이사는 불규칙했다.
맥크리는 온갖 기밀 유지 계약서와 인수인계로 한동안 밀어붙여졌고, 그 와중에도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시간낭비는 이어졌다. 다음 이동 시기가 내려오면 메세지 드릴게요. 짐 정리를 좀 도와드릴까요? 그렇게 물어오는 친절한 어조의 말에도 삐뚤게 반응할 만큼 피곤해진쯤이었다. 이제 막 세 번의 이사를 막 마친 상태였다. 이사라고 해봐야 옮긴 것은 몸과 24인치 캐리어를 반 채운 정도의 짐을 옮겼을 뿐이지만. 웬 개를 8마리나 기르는 대가족 운영의 하숙집에서 작은 아파트로, 도심에서 외곽으로. 이전의 집들에 비하자면 지금의 집은 아담한 정원도 있었고 뒷마당도 있었다. 캐리어를 옷장에 넣어놓고, 텅 빈 냉장고를 한 번 열어봤다가 닫고, 앞마당에 나가 우체통을 괜히 한 번 열어보고 닫자 어느 새 고즈넉하게 해가 저물고 있었다. 조용한 동네다. 정을 붙이고 살자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의 아늑함이 감돌았다. 정신없는 사건들과 무의미한 활동의 나열에 맥크리는 머릿속의 의문을 어느 덧 잊어버린 채였다. ‘오버워치가 아니라면, 반드시 평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앙겔라?’
레예스의 실종.
그의 공백은 컸다. 새하얗게 뚫려버린 그의 빈자리에 불안이 잉크처럼 번져 들어갔다. 정보에 밝은 사람이나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어딜 가나 존재했고, 레예스와 가까웠던 그들이 복도 한 가운데에서 귀와 입을 가까이 하고 속닥이는 것을 목격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맥크리는 그 안에 속하지 못했다.
탈퇴 의사를 제출했던 밝혔던 오전이었다.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새하얀 궤적을 그렸다. 낮은 각도로 떨어지는 빛, 그 안은 결벽적으로 말끔하다. 먼지 조각이라도 부유하며 반짝일 법도 한데 맥크리가 이 기지에 근신하게 된 기간 동안에도 그런 장면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맥크리는 난간에 상체를 기대 팔을 휘휘 흔들었다. 레예스는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너도 많이 아플걸. 그런 메시지를 담담히 담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레예스. 돈 좀 있어요?”
“왜, 삥 뜯냐?”
“아니, 그냥.”
난간에 반쯤 매달린 채로 입에 물고 있던 막대 사탕을 꺼내들었다. 레예스보다 먼저 시선을 돌려, 1층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오버워치 관두면 뭐할 거예요?”
“내가?”
“응.”
“흠,”
“관둔다면.”
“.......”
그는 좀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난 뭐하지, 술집이라도 차릴까?”
“잘 어울리네.”
“오고 가면서 한 번씩 들려주기도 좋고. 그쵸?”
“돈은 있냐?”
“나야, 뭐. ...여기 뭐 보조금 같은 거 안 나와요?”
“나올 리가.”
“? 그럼 이거 왜함?”
맥크리의 말에 레예스는 소리 내서 웃었다. 거의 떨어질 것 같이 보이는 지 맥크리의 뒷춤을 잡아끌어 복도 한 가운데에 내려놓을 때까지도 웃음소리는 멎지 않았다.
“알아봐줄 테니까 걱정 마. 여차하면 내가 좀 보태줄테니.”
“오, 형씨, 돈 좀 있나 본데?”
“난 50년전부터 보조금 나오거든.”
그리고 호출 벨이 울렸다. 기억 속의 레예스는 주머니에서 호출 메시지를 확인하고, 맥크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돌아섰다. 그러고선 방금 전 맥크리와 걸었던 복도를 홀로 거슬러 올라갔다. 손에 달랑달랑 들고 있던 막대 사탕을 입에 다시 넣으며, 자신은 술집이냐 편의점이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삐삐. 삐삐. 이번의 파트너는 새였다. 신원 재생 시스템의 부가 서비스인, 사회성 기르는 서비스였다. 맥크리는 겨우 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사회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매번 각각의 집에서 자신을 반기는 동물와 마주 할 때마다 조금 삐딱해졌다.
가득 차 있는 모이통에 새로 모이를 쌓았다. 새장의 옆에는 분명 ‘새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메뉴얼이 있었지만 맥크리는 무시하고 돌아섰다. 삐삐. 맥크리가 자신의 전부를 들고 방으로 왔을 때까지만해도 있는 것 같지도 않던 새가 삐삐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그러거나, 자신이 낯설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한 번 그 새카만 눈을 들여다봤다.
지금으로서는 술집이니 편의점이니 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었다. 수술을 하기로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몸도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들려줄 사람도 투자해줄 사람도 없으니. 답답함은 생각을 게으르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그저 이 멍청한 프로그램과 감시가 끝나 오버워치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맥크리가 손톱만한 칩을 발견한건 새의 모이 봉투에서였다. 돌아서서 적당히 아무데나 던지려던 봉투에 새하얀 테이프로 적당히 붙어있는 것은, 그리 오래 전에 붙여 넣은 것도 아니었다. 끈적거리지도 않고 말끔하게 떨어졌고, 테이프 주변으로 먼지가 들러붙어있지도 않았다. 좋고 나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의도된 것이다. 어째서지? 칩을 기기에 연결해 프로그램으로 연 뒤에야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깊게 파고든다. 이런 식으로의 접근은 너무 비효율적인데. 중얼거림처럼 생각은 느리고 흐리게 흘렀다.
그렇게, 리놀륨이 긁히는 소리로 시작했다. 맥크리는 의자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았다. 눈을 감자 레예스의 사무실 바닥이 종종 이런 소리를 냈다는 것이 떠오른다. 눈의 건너편에 레예스가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서류를 보고 있을 때처럼 약간 몸을 기울이고, 입을 연다. 말하기 싫은 것을 말할 때처럼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문을 틀었다.
"헤이, 거짓말쟁이."
너는 지금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예상하건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 너는 영리해.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지. 난 너의 그런 점을 좋아했어. 네 형편없는 거짓말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그러나 좀 둔한 구석이 있더라고. 생긴 건 가십 덩어리처럼 생겨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눈치를 챈 뒤에도 너 혼자만은 눈치를 못 채는 것들이 많았어. 예를 들면, 지금도 네가 모르고 있을....
...네가 여기를 나간다면, 뭘 할 지 작성하는 게 있었지. 너는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썼더군. 평범하다는 것,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겠지. 사람을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마시고,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옷을 입고, 지난 옷들은 옷장에 집어넣고?“
목소리는 침착하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본이라도 적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막힘없이 흐른다. 그 미약하고 안온한 고저에 눈을 살며시 떠봤다. 당연한 일이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레예스가 물어왔었다.
“어째서?”
“레나도 같은 걸 물어봤는데.”
“궁금할 이야기긴 하지.”
“영웅은 나랑 안 맞는 거 같거든요. 시끄러운 것도 싫고, 어디 얽매이는 것도 싫고.”
“거,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당신 옆에 있잖아, 계속.”
“.......”
“당신 눈치도 봐야하고,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희망을 걸어야하고.”
레예스의 손이 테이블의 위를 작게 한 번 쓰다듬었다. 미세한 테이블의 상판에 손끝이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다.
“무엇보다 내 무언가가 남들의 희망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희망을 갖는 것도 지치니까. 당신에게 뭔가를 더 바라고 싶지도 않고.”
끝이 짧게 깎인 손톱은 손끝이 더 둥글게 보이게 했다. 테이블 위에 가만히 놓여있던 레예스의 손이, 시선에 닿자 움켜쥐어져 동그란 손톱이 손아귀 속으로 사라졌다.
“영웅이라는 단어는 거창하지만 실속은 없지. 그저 내가 하는 일이 마침 남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것만으로도 붙여지는 이름이야.”
“그렇게 간단하게도 붙여질 수 있는 칭호라면, 가브리엘.”
맥크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허벅지에 올려놨던 손을 한 번 돌리며 들여다봤다. 자신의 손과 그의 손은 닮은 듯 다르다. 자잘한 흉터, 둥근 끝. 불룩 튀어나온 마디. 그러나 손가락은 그의 것이 좀 더 길고 뻗어있는 느낌이다. 별 것 아닌 말에도 기분은 쉽게 서글퍼졌다. 진심으로만 이루어진 목소리가 슬프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맥크리는 슬쩍 웃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요.”
레예스는 표정 없이 눈을 마주쳐왔다. 불가능한 일이다. 말을 내뱉고 난 뒤에는 웃는 것이 좀 더 쉬워졌다. 한숨에 섞어 웃음을 떨쳐내고, 맥크리가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가브리엘 레예스는 자취를 감췄다.
“...네게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야 했어. 바깥에는 오버워치 요원들을 찾아 제거하는 단체가 있거든. 네게 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 내가 직접 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가 말하는 이에 대한 것은 이제는 맥크리가 더 잘 알리라. 건너편의 레예스가 발음할 때마다 머릿속에 피어나는 존재는 바로 지난밤에 찾아왔다. 일정보다 더 빠르게, 서둘러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맥크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그림자였던 것이 스멀거리더니 하나로 맺혀들었다. 커다란 굉음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팔의 반이 날아간 뒤였다. 추억처럼 고통은 뒤늦게야 찾아왔다. 레예스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제거되어야했을 텐데, 어째서 살아있는 지는 모르겠다. 맥크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했다. 순식간에 방 안에 가득 찬 존재감,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것 같던 발소리. 피와 함께 느리게 퍼지는 타는 듯한 고통.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닥의 피가 눈으로 들어와 온통 시야가 붉었다. 그 존재는 한참 맥크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쉬어있는 목소리가, 뒤로 넘어가는 정신 속에서 희뿌옇게 떠다녔다.
이제야 맥크리는 긴급한 수술과 치료만 겨우 마치고, 회복기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기지에서 빠져나간 뒤겠지. 프로그램은 어떻지? 적응은 잘 되고 있나? 마지막 날, 모리슨은, 네게 뭐라고 했을까. 모리슨의 표정은 결코 좋지는 않았을 거야. 너는 내게 말했었지. 복종하는 듯 하지만 자유로운 것과 자유로운 듯 하지만 결국엔 몸을 숙여 복종하게 되는 것. 그게 블랙워치와 오버워치의 차이 같다고. 내게는 완전히 맞지도, 완전히 틀리지도 않았지만 맞아, 모리슨은 수가 틀리는 걸 싫어하지. 크게 틀을 짜고, 유연한 작전을 짜, 너처럼. 차이점은 있지. 잭은 예외 상황을 싫어하거든.
대장, 레예스는 어딨어요? 내가 나가는데 코빼기도 보이질 않네. 그렇게 물어봤을까, 너는. 대답은 없거나, 있었겠지. 있었다면 답은 하나 뿐이야. 맥크리.”
모리슨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었다.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 표정이 맥크리의 질문이 끝나자 아주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일그러지는 것 같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표정으로 맥크리가 더 이상 뭔가를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죽었어.”
맥크리는 그 뒤에야 사람들이 때때로 복도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던 소문이 어떤 내용이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모리슨이 알려준 사실만이 머릿속에 담겨졌다.
기지 바깥으로 이송되는 동안, 맥크리는 가브리엘 레예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생각은 단순한 텍스트로 머릿속에 자리한다. 어느 것도 상상되지 않았다. 맥크리는 자신이 그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리는 일도, 그 이야기를 듣거나 떠올렸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동안 문자로 기록되기 딱 좋은 그 문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죽었어. 맥크리는 몇 날 며칠을 그 단 한 줄의 문장을 머릿속에 담았다. 샤워를 하거나, 개를 만지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에도. 배경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총이 오발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그의 비행기가 폭발했거나, 자신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그 난간에서 떨어진 걸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맥크리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단순히 머리 한구석에서 시작된 단 한 줄의 문장이 머릿속을 가득 잠식했을 뿐이다.
“당신은 죽었어.”
“맞아. 모리슨의 말대로, 나는 죽었을 거야. 모리슨에게 듣지 못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건 네게 뒤늦게라도 알려졌겠지. 설마 이 메시지가 네게 처음으로 알려준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네 탈퇴 서류에 사회성 부족과 동료애 결여라고 썼을 텐데.
...몇몇 있었지. 오버워치 탈퇴. 당연히 가능한 일이야. 군과는 조금 다른 기관이긴 하지. 탈퇴와 별개로 전역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전역은 좀 더 많아. 보통, 오버워치를 전역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어디로 갔는지까지는 밝혀지지는 않지만, 꽤 자주 있는 일이지. 네 이전에도 탈퇴를 하고 싶다고 했던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 동료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하는 이유로. 아직도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너는 내게 네가 하고 있을 가게에 종종 찾아오라고 이야기 했지. 생각해봤어.
날씨가 너무 궂었던 거야.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는데, 날씨가 너무 궂어서 너를 찾아갔지. 인테리어는 후질 거야. 네 패션 센스처럼. 날씨 탓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사실은 평소에도 오는 사람만 오는 그런 곳이었지. 너는 너의 바에 앉아서 종종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거야. 수익은 상관없거든. 내 돈을 끌어다 산거라 망할 일이 없을 테니까.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TV라도 보고 있던 네가 나를 보고, 날 반겼지. 수건을 주고, 나는 젖은 구석구석을 닦으면서 네 바에 다가가. 몸을 덥히라고 주는 것을 마시고, 네 엉터리지만 가끔 괜찮은 칵테일도 바에 올라오겠지. 그렇게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 너는 내게 물어봐. 요즘 어떻게 지냈어, 레예스?
“레예스.”
“그냥 편하게 불러. 맥크리. 이젠 아무데도 속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제시라고 부를 테니까. 그러면, 너는 가브리엘, 게이브, 가브, 갭. 그렇게 불러보겠지.”
“가브리엘, 게이브, 가브, 갭.”
“아니, 갭은 너무 건방져. 평범하게 게이브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어. 안 그래, 제시?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봤지. 나는 특별하게 살고 있지 않아, 제시. 나는 나의 평범함 안에서 지내. 오늘도 임무 때문에 들렀지. 시간이 나서, 올 수 있었던 거야. 술은 괜찮아. 어차피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까. 너는 이제 취해도 되겠지? 네가 취하면 가게 문을 닫아주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하.”
“이미 지난 일이고, 우리끼리의 이야기였으니까 우리만 아는 일이겠지. 제시 맥크리. 또 범죄 집단 같은 곳에 들어가면 아주 고기 파이로 만들어버릴 거야. 꽤 골치 아팠으니까. 집단이 아니더라도, 술집에서 약은 팔지 마. 알겠어? 그러면 네가 대답해. 네네, 알겠다니까.”
“...네네, 알겠다니까.”
천천히 그의 죽음이 머릿속에서 첨벙거렸다. 문장의 꼬리가 수면 바깥으로 튀어나와 가볍게 튕겨졌다. 첨벙, 슬픔이 흩어지는 소리는 작지만 분명했다. 작은 물방울로 부숴졌다. 자잘한 공기방울이 문장을 감싸며 맺혀들었다. 그 작은 요동에 모든 것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죽었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왜?”
“네가 말한 평범함,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어.”
“레예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든, 너와 함께 갈 수는 없어.”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오버워치에서 나간 사람은 네 생각보다 많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을 그만 둔다는 일에 책임감을 느껴서 마지막에라도 돌아오지만, 맥크리, 너처럼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기밀이 유지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나?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거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야. 그러나 아멜리의 사건 이후부터지. 맥크리. 이건 나의 일이야. 모리슨과 나에게 주어진 일이지만, 선택을 할 당시에만 해도 모리슨은 물렁하기 짝이 없었거든. 그래서 내가 하게 되었지.“
맥크리는 시선을 모았다.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깊게 흐르고 있던 슬픔은 당황으로 한 순간에 얼어붙는다.
“처음은 괴로웠고, 두 번째부터는 쉬웠지.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여섯 번째도. ...일곱 번째. 그래,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맥크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조용하다. 언젠가부터 새가 우는 소리도 멎어들었다. 맥크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창문 너머는 붉었다. 해가 창틀에 달라붙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 타닥이며 들려오는 것은 새의 날개가 새장에 부딪히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죽게 되었어. 맥크리.”
삐삐. 삐삐. 삐삐. 삐삐삐. 삐삐.
“그러나 나는 너를 찾아갈 거다. 곧. 어쩌면 지금. 그렇게 해야 평화가 유지될테니.”
그림자가 빛을 가로 막으며 기울었다. 인사하는 듯이 구부러졌다가 한 번에 펼쳐지고, 그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몸을 폈다.
“...네가 내게 진실을 말하던 때를 기억해. 그 순간만큼은 잊고 싶지 않은데, 나는, 너를 기억할 수 있을까?”
또 다시 끼익, 의자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재생되고 있던 파일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재생을 마친다는 소리에도 일어나서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맥크리는 뒤를 짚었다. 손바닥과 겨우 치료를 마친 팔꿈치가 번갈아가며 바닥에 닿았다. 존재는 맥크리가 절뚝이며 기어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과 같은 한기가 감도는 존재가, 가브리엘 레예스일 리가 없었다. 삐삐. 삐삐삐. 그는 죽었다. 가면의 눈 두덩이는 새카맣게 뚫려있었다. 삐삐삐. 삐삐삐. 소매 틈으로 보이는 피부색은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려있다.
“제시 맥크리.”
그의 목소리가 말했었다. 나는 죽었어. 라고. 그는 죽었다. 죽었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그 존재는 아주 익숙한 높낮이로 맥크리를 불렀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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