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 거북이들 외전 1. 드디어 마지막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쓰다 말았음

비망록 by 샐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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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집에 자리를 잡자마자 김수혜는 뚜껑이 덮인 불판 위로 풀썩 엎드렸다. 전석영은 의자에 앉아 벽에 붙은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제 스캔을 끝냈는지 재빨리 이모님을 불렀다. 저기 이모님, 소주 두 병에 맥주 한 병 먼저 주시고요, 고기는 5인분이요. 삼겹살, 목살, 안심 1인분씩 하고 한우 2인분으로요. 전석영은 나와 김수혜와 상의 하나 거치지 않고 쏜살같이 주문을 마쳤다.

“이 누나가 경험을 해봐서 하는 소린데,”

그에 아랑곳 않고 김수혜는 말문을 툭 텄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재수는 하지 마라. 그거, 인간이 할 짓이 절대 아니야. 주위에서 재수하겠다는 인간 있으면 무조건 뜯어말려.”

초록 병과 갈색 병이 먼저 나왔다. 이모님이 술병을 놓으며 김수혜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학생, 곧 있으면 고기 나올 건데. 나오지도 않은 뒷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김수혜가 고개부터 빠꼼 들더니 이내 상체를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나를 가리키며 타깃을 좁혔다.

“안시현 너 동생 있댔지. 몇 살이라고 했더라?”

나는 재빨리 계산을 시작했다. 어, 시윤이랑 나랑 3살 차이 나니까….

“올해 고2.”

“열심히 하라고 그래. 계열 나눠지는 그 순간부터 열심히 해야 돼. 고3 때 가서 1년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 고2 때부터 시작이야. 그로부터 2년만 바짝 하면 되는 거야. 고2에서 고3까지 2년이랑 고3에서 재수까지 2년이 뭐가 다르냐고 할 인간들도 있을 텐데, 달라 씨발. 존나 감정의 차원이 달라. 주위에 다른 애들 대학 가고 나만 수능 공부하는 느낌, 진짜 좆같아. 박탈감이랑 열등감이 얼마나 심하지 알아? 늬들은 현역으로 간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나 진짜 재수하는 동안 주어진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의 의미와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거 아니니.”

“그래그래. 그래서 정시 결과 발표 났다는데 어떻게 됐냐?”

큰 접시를 가득 채운 고기가 나왔다. 전석영은 김수혜가 엄청나게 뱉어낸 충고와 투정을 대충 끊어 마무리 짓고 우리에게 소주를 한 잔씩 따라 주었다. 김수혜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나군은 후보가 49번 이랬으니까 땡이고, 다군은 안정권으로 넣어서 일단 합격은 했는데 나 거기는 가기 싫어. 그리고 가군은,

“후보 2번이라는데 될지 모르겠다.”

“될 거야. 어이구, 수고 많이 했다. 자 짠 하자, 짠.”

나는 김수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소주가 가득 든 내 소주잔을 들었다. 한 명이 행동에 나서니 나머지 둘도 우르르 잔을 손에 쥐었다.

“근데 뭘 위해서 짠 하냐?”

전석영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오늘은 김수혜가 메인이니까…

“야 김수혜, 너 가군 가고 싶지?”

“당연히 다군보다야 가고 싶지.”

“좋아! 그럼 김수혜의 가군 추합을 위하여, 로 하자. 어때?”

전석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싱글거리는 김수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김수혜의 가군 추합을 위하여!”

건배! 김수혜의 합격 기원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듯 우리 셋은 우렁차게 외쳤다. 어쨌거나 이 만남의 주인공은 지난 1년간 빡세게 달려온 김수혜였다. 평소 같았으면 큰 소리 내지말라고 면박을 줬을 것이었지만 . 식당 안의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킨 김수혜는 크으, 하고 소리를 내더니 실실 웃으며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대학 생활은 어떠냐? 좋냐?”

아마 대학은 현재의 김수혜에게 환상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겠지. 현실을 가르쳐 주마. 나는 혀로 입술을 슥 훑었다.

“좋긴 뭐가 좋냐. 맨날 자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엉? 그렇게 대학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댈 때는 언제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김수혜 씨.”

전석영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지, 그렇지! 요 녀석, 전부터 든 생각이지만 사귀고 나서부터는 나랑 아주 죽이 척척 맞는다. 나는 전석영 눈앞에 양 손바닥을 가져갔다. 눈치 하난 빠른 전석영이었다. 곧 내 양 손바닥에 자신의 양 손바닥을 짝 맞부딪혔다. 얼씨구, 콧방귀를 뀌며 김수혜는 도끼눈으로 우리를 아주 고깝게 쳐다보았다.

“주인공 내버려두고 지들끼리 아주 신났어요. 연애하니까 그리 좋디?”

“너도 연애해 봐라. 우리 심정 이해하지.”

“암튼, 왜 자퇴하고 싶은데?”

김수혜에겐 좀 진지하게 들렸나 보다. 장난 식으로 말한 건데.

“일단 과제가 존나 많고요. 자살하고 싶어지는 양이다 진심.”

“그치 그치. 야, 게다가 우리 학교 장학금 완전 짜. 아주 그냥 염전을 해도 되겠어.”

“개그가 구려요, 안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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