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선, 악, 악

검2 수수

단편 재활 by 날치알
12
0
0

"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고도 다양하나,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로우며 척박하고도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프랑스 여류 사상가, 시몬 베유

실제의 악은 지루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낭만적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더라도 실제의 선은 찾기가 힘들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이라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람들을 매혹할 만큼의 선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과연 그 선이 모두에게 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까? 빛이 강해진다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곳에 숨은 그녀가 생각했다.

양수연은 우울한 악을 자처했다. 그의 약혼자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러명을 살리게 했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별 매력없는 이야기였다.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모든 것들을 견주어도 그녀에겐 약혼자 하나만큼의 낭만과 다정을 줄 수는 없었기에.

죽음은 너무나도 가볍다. 손에 남은 거라곤 영정사진 한 장 뿐이었을 때 양수연은 죽음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남을 죽이는 것에는 자신의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 각오는 너무나도 쉬웠다. 그녀는 그 날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은 사람은 사랑따윌 할 수도 없다. 그녀의 약혼자는 그래서 양수연을 홀로 두었다. 죽지 않은 강수혁은 그녀의 곁에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양수연은 사실 살아있었고, 살아있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있었다. 인정할 순 없었지만.

잘 짜여진 사형대 위로 연인이 오른다.

그녀에겐 죽은 연인이 둘이 되었다. 죽음의 무게는 무거웠다.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은 강수혁의 몸이 무거웠고, 그녀를 끌어당기는 죽음이 무거웠다.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잃은 것으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두 명이 되면 어떻게 될 지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게 피곤하고 지쳤다. 그녀를 이 세상에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상상속의 선과 단조로운 악과 낭만을 지닌 악은 모두 바다 아래에 가라앉는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