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문어
친구라는 건 배신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함께인 거야.
검은 문어가 그리 말하며 씩 웃었다. 나는 널 배신하지 않을거야. 거짓말 하지 마세요. 형 변덕을 제가 하루이틀 봐요? 검은 문어는 왜 자길 못 믿느냐고 핀잔을 늘어놓는다. 배신하면 안 돼요. 당연히 안 해. 내가 널 왜…. 검은 문어가 잠깐 말을 멈추는 탓에 파란 문어가 고개를 든다. 잠깐 표정이 지워진 낯이 어색한 듯 더없이 익숙하다. 그래도 율이 네가 날 배신하는 건 이해 해 줄게. … 무슨 의미예요? 그냥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의미를 모르겠어서 하는 소리잖아요. 이상한 실랑이가 지속된다. 자기를 왜 배신할거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서율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체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배신하지 않는다며? 근데 왜….
검은 문어는, 그의 동료이자 친한 형인 임윤후는 그를 두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배신이고, 그간 쌓아온 신뢰를 전부 심해 밑바닥에 처 박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왜 간거지? 그가 올라가기 전에도 비슷한 대화를 했었다. 지상으로 올라간다는 윤후 형의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의 웃음이 수상한 걸 좀 더 일찍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말 한 번 했다고 진짜로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날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왜 한거지? 이건…… 율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빛조차 더이상 접근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 그가 혼자 서 있었다.
혼자.
지상으로 올라온 윤후는 특유의 말재간으로 여러 오징어 친구를 사귀고 햄버거를 세 개째 먹고 있었다.
맨날 한낮마다 여기 서 있는 이유가 뭐야?
누굴 좀 만나기로 해서.
너는 문어고 여긴 지상인데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
응. 곧 올라올거야. 길어봤자 일주일이거든.
가끔 너는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니까.
오, 왔다.
누가... 엥? 문어?
윤후가 율을 반갑게 맞이한다. 율은 부신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모든 것들을 바라본다. 지상이다. 해가 눈부시고, 따뜻하고, 여유롭고, 안전한…… 율은 깊은 바닷 속처럼 검은 그의 친구를 바라본다.
배신한 거 맞잖아요. 형이, 날, 두고... 갔잖아요.
무슨소리야, 지금도 나랑 같이 있잖아?
날…나를 버리고 올라왔잖아요.
아니. 나는 널 데리고 올라온 거야.
원하지 않았어요.
원했을 걸? 네가 바란 모든 것들이 여기 있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지상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 올라와요.
내가 있잖아. 나는 네가 따라올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날 배신해도 괜찮다고 말 했어.
만약 그랬으면요?
네가 날 배신한 것에 약간 슬펐을지도? 윤후가 과장된 몸짓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한다.
왜 선택지가 내가 배신하거나 아닌 것밖에 없어요?
나는 절대로 널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완전히 외통수다. 이 시꺼먼 문어는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대화를 끌고 나간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율이 친구지. 검은 문어가 파란 문어의 손을 잡는다. 이제 여기에 같이 있잖아. 시린 눈 안쪽이 아프다. 날 배신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형도 절 배신할 수 있잖아요. 윤후가 웃는다. 그럴 일은 없어. 신뢰도가 하나도 없는 말인데 율은 햇빛의 온기에 아무것도 신경쓰고싶지 않아졌다. 그에게 화를 내기엔 여긴 너무 편안했다. 나는 언제나 널 위해서 움직일거야. 설령 네가 날 배신하게 되더라도… 그러니까. 반대라니까요? 율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곱씹다 쓰러졌다.
엥?
기압 차가 심해서 그래. 나도 처음 올라왔을 때 기절해서 다시 가라앉을 뻔 했자너
그랬어? 난 그냥 네가 잠을 많이 자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있고.
얘는 이제 어떡해?
과자네 집에 두면 될듯. 가는 길에 먹을것 좀 사가면 봐주겠지.
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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