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키네코

가변의 원리

우주에서 흐르는 시간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 크기와 규모가 한낱 지구에서 자각할 수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못하기에. 광속이 거리로 측정되는 공간이란 그런 것이다. 아득한 시간도 어그러져 버리는 단어에 내가 매료되어 버린건 분명, 내 주변은 너무도 자주 변해버렸기 때문이리라.

고작 100년도 채 다 살지 못하는 인간. 그 중 10분의 1의 시간 동안 내 부모는 3번이나 바뀌었다. 그것이 상처였나? 싶으면, 우습게도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는 그런 과거를 털어놓을 교우관계도 만들지 않았다. 고독은 내게 익숙했다. 우주가 아득히 드넓다는 건 당시의 내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니까. 껍질조차 되지도 못하는 허세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어찌됐든 내 마지막 부모는 좋은 분들이었다. 그 황금빛 모래의 파도 속에서 날 구하고 휩쓸려 돌아가신 분들이었으니까. 제 아무리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이라 주장하던 나도 생명의 위기에선 죽도록 다른 이의 온기를 그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끌어올린 손은, 조금 서늘했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던 아이. 내 성씨는 세번이나 바뀐 거였기에 나 자신에게조차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었다. ‘미우라.’ 후지와라가 부르는 그 이름은 어딘가... 목구멍에서 턱, 막히는 감각이었다. 새까만, 진공 상태의 우주 한가운데에서 불러 주는 것 같았다.

미우라.

흩뿌린 모래알 만큼이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서도, 후지와라의 목소리만이 뚜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감히 그 중력에 기댔고, 그녀의 궤도에 들어가고자 했다. 곁에 있어줬으면 해. 이젠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는 작고 화려한 사막에서,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해. 결국 나는 스스로 껍질을 벗곤 초라한 자신을 드러냈다. 수명이니 생명력이니 하는 것들 따위, 후지와라 사키가 불러주는 내 목소리보다 하찮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기꺼이 나서는 모습이 그러했다. 늘 선생님과 학우들의 신임을 받던 반장. 우리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같이 손을 잡았던 날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처럼. ‘외로움이란 거리가 곧 시간의 단위가 되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지.’ 나는 증명하지도 않을 가설을 애써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오로지 연구에만 매진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후지와라와 나는 그때 목숨을 나누었다. 그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누구도 의심할 여지를 느끼지 못한 비밀이었다. 세상이 멸망했다고 할지라도 인간들은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후지와라 사키는 역시 사람들 사이에 있을때 가장 빛나던 별이었다.

차라리 생존자가 더 나오지 않았더라면… 어린애보다 못한 질투가 튀어나왔다. 내가 그녀의 뭐라고. 제 이기심으로 붙잡아둔 주제에. 실제로 나는 후지와라의 연줄로 이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녀 옆에 있으면 그저 왜행성일 뿐인 나도 그 찬란함을 조금이나마 반사하는 것으로 보이나보다. 모두들 후지와라의 업적을 드높였고, 내 지식을 칭송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거창한 지위도 시설도 필요 없었다.

찬란한 은하수와 내 앞에 앉았던 너. 그리고 약간의 캔맥주면 충분했다. 내게 변하지 않는 것이란 그러했다. 영원히 박제되어 비춰지는 플라네타리움. 이것은 이기심조차 되지 못한 어리광이다. 인간이란 이리도 어리석어서… 나는 후지와라가 어째서 살아 있어주는지 끝없이 상기해야만 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일에 시간을 쏟았다. 잠을 자면 아직 그때의 악몽을 꾼다. 이젠 잠을 잘 수 없는 이를 만들어낸 죄의식인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상념을 깨트렸다. 눈을 꾹 감았다 뜨곤 표정을 가다듬는다. 여기서의 나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그 후지와라 사키가 추천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인물이 서 있는 것에 일순 이곳은 우주가 된다. 아무것도 없이 맑고, 깨끗한 검정.

“후지와라.”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괜찮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마주치는 시선이 짧게 얽혀들었다. 그때의 사막의 모래알보다 선명한 황금빛의 눈동자. 나는 학창시절 아주 잠깐 마주쳤던 후지와라 사키의 눈의 색을 애써 잊으려고 하고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는 역시 변해버렸다. 압력... 기압. 중력.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 못할 짓누름이 나를 덮쳐든다. 사과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되면 정말 나와 그녀 사이의 연결점은 없어져 버린다.

아래로 고개를 떨군 사키의 몸이 미약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서로의 호흡 소리에만 공기가 떨려오는 것 같았다. 원망하려는 걸까. 차라리 그래줬으면 하는 바램도 이기심일까.

“미우라, 우리….”

무엇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나.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한다. 영원할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족족 변해간다. 불변하는 가치라고 했던 우주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변하는 중이다.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허나 그것이 거리가 될 만큼 느리게. 거기엔 인간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이전과는 달라질 뿐이다.

“같이 살까.”

“……”

“하나보다는 둘이… 나으니까.”

금방이라도 떨궈질 것 같은 두 손을 얼른 맞잡았다. 잘 웃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다행입니다. 저도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런 말도 지금 자신과 후지와라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 그때 빌었던 소원은 단 하나였다. 다시 후지와라 사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우리는 지평선 너머의 하늘과 바다처럼 서로를 보고 따라 웃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다도, 네가 추억했던 하늘도, 옛날에 정의하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졌겠지. 황금빛의 바다와 새까만 하늘을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변하니까. 모든 것들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버릴 정도로... 이리도 어렵고 간절하게.

역시 마주 잡은 사키의 손은 아직도 약간 서늘했다. 이 온도차를 나는 쭉 간직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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