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키네코

백일몽

꿈을 꿨습니다.

핵심 가설만 이야기하자면 ‘아무도 그 기차에 타지 않는 것’ 이라 할 수 있겠군요. 결국 기후 변화는 막지 못하고 도시는 황금빛 모래에 침몰되어갔지만, 당신은 그 기차를 타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주제는 당신이므로, 주된 배경이 여전히 인간들에게 절망적인지에 대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요. 당신은 백야를 보러가지 않았어요. 당신은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재앙을 맞이하지만, 당신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안에서도 당신은 꿋꿋이 서 있습니다. 앞으로 걸어갑니다. 당신을 뒤따르는 많은 위성들이 보여요. 이곳의 당신은 태양빛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까지, 여전히 내가 아는 후지와라 사키였습니다.

우리가 만나기도 했었을까요?

나의 무의식이라는 것은 뻔뻔하게도 내 궤도에 당신을 포함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나는 당신이 내민 손을 잡습니다. 그 기차 위에 있는 것이 아닌, 약간 서늘한 것도 아닌.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강인하고 아름다운 손입니다.

우리는 이 넓은 황금빛 바다를 횡단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입니다. 별이 가득한 사막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습니다. 캔맥주는 미지근했고, 당신과 나는 오랫동안 과거의 일을 나눴습니다. 당신은 희망을 참 많이 나열했습니다. 어쩐지 나는 울고 싶어지더군요. 꿈 속임에도 그랬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우리 곁의 사람들이 줄어들고 늘어나다 다시 줄어듭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국제기구가 세상의 절망이 끝났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합니다. 당신과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습니다. 서로의 눈동자 안에 비쳐진 모습이 비슷합니다.

그래요. 시간은 공평합니다. 당신과 나는 똑같이 늙어갑니다.

‘너를 만나서 참 좋았어.’ 당신의 주름진 손을 내가 잡습니다. 같은 주름진 손으로. 당신은 늙어도 여전히 아름답네요. 내 말에 당신이 미소지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쭉 이런 풍경을, 당신의 이 얼굴을 바랬을까요? 저는 평생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었던

노년의 당신을 말입니다.

그 안에서 나는 당신이 눈을 감는 것을 지켜봅니다. 슬퍼하지 않은 채, 곧 따라가겠노라 약속합니다. 맹세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요. 우리의 유속은 같은 속도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우주의 한 찰나, 난 그 순간을 당신과 공유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빛을 꺼트려 사라집니다.

현실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애타게 깨웠나 봅니다. 걱정 마세요, 사키. 잠깐 잠에 들었을 뿐입니다. 보세요, 제대로 일어났잖아요. 꿈까지 꾸었다니까요. 제 뇌가 아직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증거입니다.

그제야 당신이 설핏 웃습니다. 소녀의 외형을 하고 있음에도 당신의 웃음이 복잡한 것은, 함께 겪어왔던 시간의 무게를 혼자 감내했기 때문인가요?

나는 여전히 부드러운 당신의 뺨을 주름진 손으로 쓸어봅니다. 만물의 것은 중력을 가지고 있기에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저주로 인해 한 시점에 박제된 채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건가요.

우주라는, 그 공허한 공간에 매료되었음에도 나는 고독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나 또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내민 손을 잡은 것이 그 반증이지요. 오래 전 추억을 곱씹는 것처럼 나는 꿈을 털어놓습니다.

‘정말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 가설이 의미 없음을 알고 있기에 당신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사키,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어떠한 이론만이 유일한 진리인양 외치는 미친 학자처럼 나는 한마디를 뱉어내고.

그때의 당신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당신을 살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함께 가족으로 살아간 나날이 행복했습니다.

쥐어 짜선 뱉어내고, 늘여놓고. 당신이 다시 울음을 참는 연습을 할 때까지. 계속 같은 시간만을 가리키는 고장난 시계처럼.

“나를 구해줘서 고마웠습니다. 후지와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해 줘야지…”

그래요. 아직 우리가 탄 기차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쪽의 속력이 점점 느려질지언정, 아직은 우리의 상대성 이론은 특수하지 않기에 특별합니다.

“잘 부탁해요. 앞으로도.”

“응… 앞으로도… 계속.”

계속.

나는 그 황금빛 사막 아래, 당신과 서 있는 꿈을 꾸겠지요.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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