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키네코

유서

사키네코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큰 감사를 먼저 전합니다.

우주를 연구하면서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긴 삶을 풍요롭게 채울 수 있던 것은, 저를 기억하고자 모여주신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우선 저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모든 재산 목록은 저의 하나뿐인 가족인 미우라 사키에게 남깁니다.

그녀라면 분명 지혜롭게 사용할 것이라 믿습니다.

장례식은 짧고 간결하게 치뤄지길 원합니다.

저는 다시 우주로 돌아가 별이 되는 것 뿐이니, 슬픔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에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충분히 행복했으니, 부디 여러분들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미우라 네코

이하의 내용은 미우라 네코의 친족인 미우라 사키에게만 공개할 것.

제가 먼저 간다고 모든 걸 포기하지 않기로 한 약속, 기억하시죠?

당신에게 남긴 재산은 원래부터 당신의 것이었으니 부디 어떠한 죄책감 없이 자유롭게 쓰시길 바랍니다.

저의 유골은 태워서 당신의 이름이 가장 밝게 빛나는

그 모래 언덕 위에 뿌려주세요.

나는 당신이 나를 떠올리고 추모할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길 바랍니다. 당신은 무뎌지셔야만 해요.

저의 목소리와 촉감과 이름마저 잊어 버려야만 합니다.

간곡히 바라건대, 저를 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그것은 애초부터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나의 이기심으로 당신을 붙잡아 내 곁에 두었으니, 이제 당신은 저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당신과 나의 자전의 횟수가 달라질수록 나는 내 중심을 놓아주지 못하는 나에게 심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했던 짧은 시간이 내겐 제일 빛나던 시기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모든 생물에게 있어 죽음은 평등한 명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이 슬퍼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겠지요.

사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합니다.

사키... 나의 여리고 상냥한, 밝게 빛나는 별.

당신은 의연해져야만 합니다.

나는 당신을 썩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몇번이고 죄를 시인하겠으나, 당신을 살리지 말라고 한다면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오랫동안 슬퍼했지요. 역설적이게도 저의 슬픔 또한 당신과 같아서 제가 당신에게 남기는 유언은 모순뿐입니다.

친애하는 나의 사키... 살아가세요.

시간이라는 잔인한 흐름이 결국 우리의 과거를 지워나간다 하여도, 당신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만은 저와 약속한 거예요.

제가 당신에게 잊지 말아달라 부탁할 것은 그것 뿐입니다.

그리고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당신의 이름으로 빛나는 별이 사그러들 때,

내 이름을 기억해 내도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

그때는 내 곁으로 와도 좋아요.

당신이 웃으며 별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미우라 네코

유서 宥恕

명사

  1. 너그럽게 용서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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