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마

[사두하람] 인정

백업용 by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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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영이 나란히 기울어 쓰러진다. 사막의 고운 모래 입자가 반동해 튀어오르며 코와 눈을 간질이는 탓에 하람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늦은 밤부터 새벽 내도록 이어진 대련으로 홧홧해진 온몸의 열기는, 서늘하고도 아늑한 사막의 품에서 조금씩 식어간다. 모래 먼지가 차츰 가라앉으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서녘으로 옮겨간 보름달, 그 말간 빛에 질세라 자신을 태우는 수많은 별. 밤하늘이 이다지도 밝았던가. 하람은 넋을 놓은 채 그 광경을 눈에 가득 눌러 담는다. 광활한 초원의 하늘을 수놓는 작은 빛이 아름답다. 뺨을 간질이는 찬바람은 기묘하게도 따스하고 등을 받치는 거친 모래가 푹신하다. 그 모든 것이, 애틋하고 그리웠다.

턱끝까지 차올랐던 숨은 단숨에 안정을 되찾는다. 살과 옷을 흠뻑 적셨던 땀이 마르며 옅은 한기가 돈다. 슬 돌아가야지. 상체를 일으켜 앉으려는 순간 저릿한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더니, 이내 온몸으로 퍼지며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샌다. 아물 새도 없이 상처가 벌어진 것은 물론, 이어진 근육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통점을 마구잡이로 두드린다. 고통에 일순 하람의 몸이 굳는다.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려보았자 잦아들기는 커녕, 저들끼리 뭉치고 흩어지며 온 뼈와 근육을 즈려밟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통을 받아내던 하람은 무언가에 끌려 뒤로 넘어진다. 시야가 다시 뒤집어지면 다시 별천지다. 나란히 쓰러진 채 가시지 않는 전투의 여운을 만끽하던 사두가, 하람의 팔을 잡아당겼다. 반짝 눈을 뜨면 눈동자에 담긴 젤라의 주술이 빛난다. 그 눈동자가 굴러 자신을 향하는 순간, 하람은 짐승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야생에서 비롯한 사냥 본능. 숨이 꺼질 때까지도 꺾이지 않을 호전성. 금방이라도 다시 덤벼들 것만 같은, 타오르는 눈빛. 꺼지지 않을 불꽃. 이토록…. 아름다운 짐승이라니. 숨을 마시고 뱉는 것조차 잊어버린 그를, 가만 바라보던 사두가 이내 픽- 웃는다.

—미련하기는.

—…….

머릿속을 헤집으며 반박할 말을 찾던 하람은 끝내 침묵했다. 짧은 사두의 말에는 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짐승조차 깊이 잠든 새벽, 급하게 돌아가야만 할 이유는 없다. 대련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잠시 머무른다고 위험할 것 역시 없다. 그러니 내달리는 숨과 놀란 근육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쉬어가면 된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이끌지 않아도 된다. 신음 한번 내지 않으려 깨물었던 입술이 따끔거린다. 쓰러진 채 아픈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하람은 따라붙은 의문을 곱씹는다. 호시탐탐 저를 노리는 상대에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센 척이라도 하려던 건가. 사두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은 맞지만…. 그런 싸구려 감정과는 분명 결이 달랐다. 그는 그저,

—네가 실망할까봐.

아주 작은 걱정이 일었을 뿐이다.

하람은 한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까슬한 모래알이 피부에 들러붙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의 진실한 대답. 그것이 일종의 인정으로 느껴진 탓이다. 생명의 불꽃을 찬미하며 제 영혼도 불태워줄 것을 요구하는 이의 마음은 애진작에 알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이상의 무게가 담긴 친애. 제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를 마쳤음에도 상대 또한 온전히 손에 넣고 싶다는 욕심. 함께 있을 미래를 그리는 기대. 그리고 언젠가부터, 하람은 제 행동을 돌아보고 살피기 시작했다. 그 애정에 보답하고자 했다.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두는 대답 대신, 누운 채 크게 웃었다. 정말이지. 눈이 부시구나.

동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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