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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설 분리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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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혼모 밑에서 태어나 쌍둥이 누나 다르시와 함께 3곳의 입양·위탁 가정을 거쳤으며, 수많은 폭력과 학대를 건뎌온 인물입니다. 나기를 선인으로 태어났으며, 사정이 어려워져도 무지했기에 남의 것에 손은 댈 지언정 강도 높은 범죄에까지 연루된 적은 없습니다. 마지막 입양 가정이자 양부모인 로웰 부부에게 입양된 이후 바르게 메사추세츠주에 바르게 정착했으며, 많은 것을 늦깎이로나마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흔줄을 넘겼고, 이후에 라이라라는 이름의 아이를 막내로 맡이해 딸처럼 길렀습니다. 산림청에 취직도 했고, 여느 때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다가 악몽의 주일을 맡이했습니다. 직장에서 비상 소집 명령이 떨어져 나가려던 중, 제3의 누군가에게 뉴욕 외곽의 도로변에서 각성탄을 맞았고, 그 자가 쓰러진 핼시언을 할매네에 맡기고 떠났습니다. 마탄을 맞은 건 23일, 그로부터 3일 뒤에 깨어났으나 집에 바로 가지 못하고 악마 사냥하는 법을 짧게 배우다 폭우가 끝난 28일, 집에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핼시언을 맡이한 건 몰살당한 양부모와, 다르시, 부부가 키우던 강아지 메이의 시체였습니다. 하급 악마에게 빙의된 라이라가 벌인 짓이었단 걸 핼시언은 확인했습니다. 허나 바로 제압하지 못하고 공격 당하게 되고,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 사이의 난투 끝에 핼시언은 목과 날개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결국 라이라는 핼시언이 걱정되어 따라왔던 다른 네피림에 의해 사살되었고, 종내에 현재에 이르러 모든 악마들을 멸절시키리란 목표만을 가진 이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악한 짓도 서슴치 않겠다 맹세했습니다.


출생부터 마지막 가족에게 이르기까지….

Keyword; 입양아, 가정폭력, 반복적인 파양, 육체적·정신적 학대, 성적 학대, 혈육과의 강제적 이별, 집단 살해, 마귀 들린 자

1970년, 6월 3일. 핼시언 로웰. 그는 가난한 미혼모 아래서 쌍둥이 누나인 다르시와 함께 태어나 만 세살 때 오리건주에 있는 한 부부에게 입양됐다. 교육 받지 못했고, 가진 것이 없었던 친모는 자기 아이들이 부유한 부모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살기를 바라며 양부모에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달라는 약속을 받고 난 뒤에 입양을 보내주었지만, 양부모들은 그들을 때리고 학대했다. 파양을 두 번, 입양을 세 번 겪고 나서야 겨우 좋은 양부모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이미 몸과 정신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핼시언은 친모와 떨어져 지내기 전부터 그것을 힘들어했다. 다르시는 핼시언보다 무던한 편이라 적응을 비교적 빠르게 했지만, 핼시언은 환경이 바뀔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며 적응을 힘들어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보면 입양을 보내는 것보단 힘들더라도 친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맞는 판단이었지만, 두 아이를 홀로 감당하던 어린 미혼모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 아이의 소망이었다.


이미 4명의 친자녀가 있던 첫 번째 양부모는 종교적 선교의 차원에서 3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첫 번째 양부모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의 중산층 기독교 가정에서 아이를 여러명 입양하는 것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첫 번째 양부모는 입양한 아이들을 굶기지는 않는 대신, 가죽벨트로 때리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지하실에 가둬두곤 했다.학교에 제대로 보내주지 않는 건 덤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그들 부부는 친자식들이 좀 더 커서 대학에 들어갈 시기가 되자 매사추세츠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핼시언과 다르시 남매를 지역의 사회복지기관에 맡기고 갔다.첫 번째 입양이 실패하고 두 아이는 사실상 버려졌으나, 입양기관이나 사회복지기관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매사추세츠주가 남매의 후견인이 됐긴 했지만, 당시엔 그들과 비슷하게 버려진 입양아들이 많았다. 핼시언은 다시 친모에게 돌려보내지길 원했지만, 남매를 인계받은 사회복지사들은 그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첫 번째 입양이 실패한 이후 두 번째 가정으로 보내졌을 때는 그래도 더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았다. 그러나 두 번째 양부모는 사이코패스나 다름 없었다. 첫 번째 양부모도 그들을 학대했지만, 그 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양부는 잔혹하고 교활한 사람이었다. 다르시에겐 잘해주는 척하며 성적 학대를 일삼았고, 핼시언에겐 목을 조르고, 양손을 묶어둔 채 방치하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물고문을 하거나 엄동설한에 내쫓는 등의 온갖 육체적 학대를 일삼았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재미로 즐겼다.


그는 다르시, 핼시언 남매를 제외하고도 여러 인종의 아동을 입양하거나 위탁해서 키웠지만,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게다가 좁은 집에 부부의 친자녀 2명을 포함하고도 항상 10여 명의 아이들이 집에 있어 위생 상태도 심각했다. 그들이 아이들을 입양해댄 건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때문이었다. 두 남매를 비롯해 한번 입양에 실패하거나 학대의 경험이 있는 아동은 ‘하드 케이스’로 따로 분류되어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그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1억 원 이상을 벌었다. 그들 부부는 아이들이 먹을 음식은 마트 할인 쿠폰으로 사온 시리얼따위로 떼우도록 하면서, 지원금으로는 스포츠카를 사서 타고 다녔다. 


그 집에서는 부부의 친자녀를 제외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와서는 안 됐다. 크리스마스도, 추수감사절도, 생일도 없었고, 여느 또래 아이답게 웃고 떠들며 친구와 노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두 부부의 아동학대 사실이 이웃의 신고로 외부에 드러나기 전까지 지옥은 계속 됐다. 친자녀를 제외한 아동들은 사회복지기관으로 돌아갔고, 이들 부부는 강간, 강간 미수, 학대, 폭행 등의 건으로 기소됐으나 3개월이란 짧은 투옥시간 끝에 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그렇게 17세가 되었다. 세 번째 가정으로 입양가게 되기 전엔 결국 누나와 헤어지게 됐다. 누나와 헤어진 후 각기 다른 가정으로 보내졌다. 세 번째 만나게 된 가정엔 그렇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들은 학대하는 부모는 아니었다. 불임으로 인해 오래도록 아이를 가지진 못했지만, 이제와서 어린 아이를 키우긴 힘들어 조금 나이를 먹은 아이를 찾는 부부였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핼시언은 그 가정에 입양될 수 없었다. 


복지기관도 믿을 수 없다 생각한 핼시언은 찾아오는 사회복지사들을 피해 거리를 전전하는 걸 선택했다. 배운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17살 소년이 길거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한 눈 팔고 있는 관광객의 지갑이나 가방을 노리거나, 잠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다른 노숙인들의 텃세를 피해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매일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도둑질을 하다 붙잡혀 두들겨 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결국 절도죄로 기소되어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뒤에 누나인 다르시의 행방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 사이 누나인 다르시는 뉴욕주에 있는 괜찮은 가정으로 입양을 가 제법 좋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은 핼시언은 히치하이킹을 거듭해 뉴욕으로 머무는 지역을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거리에서 다르시를 닮은 사람을 보게 됐을 때 핼시언은 반사적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동생을 알아본 다르시가 핼시언을 쫓아가 붙잡았을 때 핼시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남매는 다르시가 새로 입양 간 가정의 부엌에서 늦은 화포를 풀 수 있었다. 다르시는 늦게나마 열심히 교육을 받고 있다며. 핼시언 너만 괜찮다면 자기와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보겠다 말했다. 다르시가 세 번째로 입양간 가정은 나이 든 선교사 로웰 부부가 은퇴 후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의 꿈을 지원해주고 싶다며 5명 정도를 입양하거나 위탁 받아 보살피고 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 입양자였던 부부와 똑같은 선교라는 단어에 처음엔 공포심이 들었다. 그러나 집에 머무는 동안 편하게 있으라며 배려해주는 노부부의 손길과 목소리는 처음 겪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핼시언은 전처럼 어린 아이로서 로웰 부부에게 다가가진 못했으나, 무뚝뚝한 아들처럼 로웰 부부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못다한 교육은 홈스쿨링으로 대체했고, 겨우 고등학생 수준의 교육까지 마쳤을 무렵엔 벌써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갔다. 그동안 핼시언은 가정 기독 학교의 선생님 노릇을 하는 로웰 부부의 보조를 맞춰 때론 조교로, 때론 학생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해나갔다. 그 집은 항상 따뜻하고, 웃음이 넘쳤다. 화목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핼시언은 지금의 양부모가 정말 자기 친부모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모시며 살았다. 그동안 핼시언 다음으로 입양되어 들어오는 아이는 더 없었다. 먼저 있던 아이들도 다 성인이 되어 도심으로 꿈을 펼치러 나갔고, 변호사가 된 다르시는 뉴욕의 한 로펌에서 시니어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항상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이 적적해질 무렵, 부부가 한 아이를 입양해왔다. 핼시언에게도 손녀뻘되는 나잇대의 여자 아이였다. 노부부가 다니는 성당에 신실한 신자인 여성이 변고를 당해 아이를 배게 되었고, 배가 태가 날 정도로 부풀었을 땐 이미 중절 수술을 할 시기를 놓쳐 낳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가정에 입양 보내고 싶진 않으니, 믿을만한 사람인 노부부에게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해왔다고 한다.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던 노부부는 아이를 보내달라 했고, 결국 그 세 살 배기 여자 아이가 로웰 가의 막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그 시기엔 집에 오는 사람이라곤 신문 내지는 우유 배달부나, 우편 배달부 정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집안 풍경이 삭막하고 허전해지고 있었기에, 맑은 웃음을 터트리는 꼬마 아이의 등장이 모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이름은 친모가 불러준 이름인 리오라로 정해졌다. 리오라, 나의 빛이란 뜻이다.




리오라 로웰. 그게 지금부터 핼시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질 자의 이름이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결혼도 하지 못한 핼시언에게 리오라는 자식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됐다. 나이가 벌써 여든을 넘겨 거동도 힘들어진 노부부 대신 핼시언이 리오라의 양육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만한 아이는 돌봐본 적이 없어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아주 어릴 적 자기보다 어린 애들을 조그만 손으로 돌봐주던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차근차근 하나씩 아이 키우는 법을 배워갔다. 밝은 갈색의 단발머리, 앙증 맞은 손발, 웃을 때 뺨에 패이는 사랑스러운 보조개. 그야말로 리오라는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 같았다. 그런 아이마저 점점 나이가 들며 여자 ‘아이’보다는 ‘여자’ 아이로, 또 나아가서는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받기를 원하게 되었을 땐 조금, 아주 많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핼시언은 리오라의 아빠로, 리오라는 핼시언의 딸로 함께 성장했다. 법적으로 리오라는 로웰 부부의 자식이긴 했지만, 마음으로 키워 낳은 자기 자식이나 다름 없다고 남 몰래 말하고 다녔다. 핼시언은 자기가 가진 것은 별로 없었지만, 리오라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했다.


그동안 핼시언이 노부부의 밑에서 기본적인 교육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기른다며 킥복싱과 크라브 마가를 배우기도 했다. 물론 로웰 부부는 사람을 향해 폭력을 쓰는 것엔 끝까지 반대했다. 또 양부인 게일 로웰은 한때 오지 등반이 취미였던 산악인이자 육군이기도 해, 핼시언에게 험악한 지형에서의 운신법, 로프 매듭법 등의 여러 서바이벌 전략과 기술을 알려주기도 했다. 또 총기 다루는 법이나 동물 손질하는 법까지 전수해주었다. 양부에게 배운 걸 기술 삼아 나중엔 산림청에 산림자원 관리인으로 취직하기도 했다. Catskill 주립공원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리오라를 키우는 건 양부모의 지원을 받기보단 스스로 하고 싶어 열심히 일을 했다. 나중엔 매사추세츠의 집을 정리하고 다르시가 있는 뉴욕에 넷이 지내기에 좋을 크기의 집을 구해 이사를 갔다. (*다르시는 주로 자기 집에서 지내지만, 가끔 놀러올 때 지내기 편하라고 별도로 방을 마련해주느라 집을 조금 크게 구했다고 한다.)




악몽의 주일이 시작된 그 날. 그때까지도 핼시언은 본인이 네피림이었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로웰 부부와 그의 아이들을 제외하면 이제까지 접촉했던 이들은 대부분이 일반인이거나 범죄자였으니까. 뉴욕에 정체모를 마기가 퍼지기 시작할 무렵, 하늘에 붉은 달이 떴다는 기상 이변 소식에 급하게 회사에서 호출이 들어왔다. 숲에 있던 보호종 동물과 새들이 달아나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도시 밖으로 나가려고 교외 지역으로 나가던 순간 도시가 어떤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떤 재난이 닥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도로는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거나, 가족에게 가기 위해 모인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니까 도로 위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단 뜻이었다. 차라리 차를 돌리고 리오라의 곁을 지키는 게 나을까, 운전대를 붙잡고 고민하던 사이에 정체모를 괴물들이 도로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빠르게 차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뒤엔 도망치려다가 서로 엉켜 사고가 난 차량들이 서로 경보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창을 열어 소지하고 있던 총으로 괴물들을 쏴보았지만 놈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알이 저 괴물을 지나쳐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총알’이 무언가를 뚫지도 않고 ‘지나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은가? 결국 차를 버리고 도주하기 위해 내렸지만, 괴물의 움직임이 한 발 빨랐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역겨운, 아주 끔찍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라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며 주마등이 스쳐갈 무렵이었다. 도망치는 인파를 거스르며 나타난 누군가 괴물을 향해 총을 쏘았고, 이내 끔찍한 비명과 함께 괴물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다, 고 생각했다. 분명 내가 쏜 총은 맞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핼시언에게 총을 겨누었다. 뭐라 말을 붙여볼 틈도 없이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이 제 심장을 관통했다. 


바싹 마른 입이 다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뜬 건 그로부터 3일 뒤였다. 밖에는 폭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강파른 인상의 할멈이 얌전히 있으라며 엄포를 놓았다.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는, 가족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으나, 할멈에게 붙잡혔다. 무슨 노인네 힘이 이렇게 쎈 거지? 당혹스러웠다.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래.” 하며 노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본인이 만든 안전지대와 주변 상황에 대해서. 그러니까 할멈 말의 요지는 당장 자신의 상태론 나가봤자 ‘악마’들 밥이나 될 것이란 뜻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도 나름 기본적인 총기 사용법 정도는 배웠다며 설득하려 했지만, 마총도 꺼내지 못하는 놈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나서지 말라며 핀잔을―욕설이 아주 구수했다― 들었다. 


그때 강건해 보이는 사내도 등장했다. 할멈은 그를 똥개라 불렀다. 이 녀석한테 기본적인 것 좀 가르쳐보라는 말에 부루퉁한 얼굴을 한 똥개가 고개를 돌려 핼시언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에게서 기본적인 마총의 사용법을 배웠고, 제 등에서 솟아난 날개가 어떤 모양인지도 처음 보게 되었다. 네피림이라는 존재를 얼핏 들어보긴 했지만, 그야말로 집시나 다름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거의 다 사라져가는, 환상 속의 종족. 이걸 종족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아직 인간이란 다른 점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장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 지원 나가야 된다는 말에 가족들 생사부터 확인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고민하던 할매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직접 보고 생각하라며, 뉴옥 도심의 풍경을 스스로 보게 이끌어줬다. 


그랬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도심은 온통 파괴되어 있었고, 공공시설이 가동되지 못한 것인지 폭우로 인해 도로변에 쌓인 비가 빠지지 못해 반쯤 물에 잠긴 건물 투성이였으며, 곳곳엔 일전에 도로에서 봤던 것보다 더 흉측하게 생긴 마귀와 악마들이 날뛰고 있었다. 그런 곳을 혼자 뚫고 가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는 건 아무리 생각이 없더라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고집 부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당분간 머물겠다는 말을 노인에게 전했다. 전화를 한 통 빌리려 했으나, 통신 시설도 마비된 거나 다름 없다는 말에 설핏 피어오르던 기대를 접었다. 차라리 이 지옥같은 상황을 종결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자. 그렇게 생각하며 총을 들었다. 핏불과 ‘할매’, ‘똥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족들을 보지 못한지 4일째가 된 날, 드디어 집에 가봐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완전히 돌아가라는 것은 아니었고, 집에 가서―만약에 드물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면― 가족들을 이곳에 피신시키기 위해 탐색을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현관 앞엔 짐승에게 잡아뜯겨진 모습의 동물 시체가 있었다. 목에 채워진 빨간색 방울이 달린 목줄 덕분에 겨우 집에서 기르던 메이의 시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집안엔 반쯤 굳은 혈흔이 낭자해 있었고, 거실엔… 장총을 든 양부가, 부엌엔… 요리를 준비하던 모습 그대로 양모가, 각각 심장가 배가 꿰뚫린 채로 죽어있었다. 신체 일부도 훼손되어 있었다. 이건 절대 인간이 할만한 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리오라, 리오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기 방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는 리오라를 발견한 핼시언은 지금까지 다른 악마들을 쏴죽였을 때처럼 쉽게 총을 쏘지 못했고, 결국 뒤돌아서 핼시언을 발견한 리오라에게 습격 당해 격투를 벌이다 날개를 잡아 뜯겼다. 통증을 이겨내고 리오라에게 한 발 쏴서 맞췄으나, 바로 죽이진 못하고 부상만 입힌 정도였다. 총을 맞고 도망치는 리오라의 뒤를 쫓아 2층의 양부모님의 방에까지 따라갔다. 급소에 다시 한 발 쏘려던 찰나, 이성이 돌아온 것처럼 핼시언의 이름을 부르는 평상시의 리오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빈틈을 만들었고, 그 틈을 노린 리오라 속의 악마가 다시 깨어나 핼시언을 습격했다. 순식간에 악마의 손에 목이 붙잡혀 그 손아귀 힘에 목이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핼시언은 그때 어차피 본인은 가족들이 없는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리오라의 손에 죽는 것이 낫겠다고. 그런 안일한 생각을 마탄 한 발이 꿰뚫었다. 핼시언이 걱정되어 따라붙었던 다른 네피림이 리오라를 죽인 것이었다. 쓰러진 리오라는 어쩐지 평안한 표정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졸리던 목엔 악마의 날카로운 손이 파고들어 피가 뚝뚝 흘렀다. 아무런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죽은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망연히 시간을 보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혈흔이 흥건하게 튄 방안엔 삶의 추억이 가득했다. 뒤늦게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져왔으나 애써 삼켰다. 그렇게 가슴 속에, 마당 뒤편에 가족들의 시신을 모아두고 다함께 묻었다. 뒤늦게 집안을 정리하며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리오라가 이유모를 열병을 앓았고, 다르시는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이곳에 들렀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들 먹일 식사를, 아버지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채.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본래라면 제대로 장례를 치러야하겠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리는 수밖에는. 


그 후 외부의 반응에 관심 없는 것처럼 굴거나, 냉랭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변했다. 무얼봐도 제대로 웃는 법이 없었고, 가끔 환청이나 환영에 시달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거나 누군가와의 대화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한다. 리오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환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날개: 막 각성했을 땐 황금빛 날개였으나, 당시 미숙한 전투 속에서 마귀 들린 라이라에게 통째로 잡아 뜯기는 상해를 입은 후 재생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모양새로 변모했습니다.


그 후 외부의 반응에 관심 없는 것처럼 굴거나, 냉랭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변했다. 무얼봐도 제대로 웃는 법이 없었고, 가끔 환청이나 환영에 시달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거나 누군가와의 대화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한다. 리오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환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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