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 나의...
해수면의 깊이를 따지는 일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https://youtu.be/COcuU8LKawk?feature=shared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지구의 해수면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고, 대부분의 섬나라는 물에 잠겼으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건물 위로, 산 위로 올라갔다. 이젠 땅을 밟을 수 없다. 평평한 바닥은 죄다 콘크리트 혹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었으며 흙은 오직 가파른 산만이 남았다. 하지만 올라가지 않았다. 이미 아파트 11층 높이를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지쳤으므로 여기서 만족하자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했다. 해수면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언젠가 다시 우리를 삼킬 것임에도 게으름을 피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물에 잠기기 시작한 지구를 멸망 1일 차라 가정했을 때, 연이안서와 안시은이 고립 된 지 87일 째의 이야기이다.
연이안서는 망원경을 두 눈에 대고 저 너머의 생존자 캠프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고, 물고기와 남은 식량을 먹으려는 새들만이 가득했다. 연이안서는 새들의 수를 세었다. 자신이 좀 더 똑똑했다면, 아니 아버지 서재에 꽂혀있던 생물도감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저 새가 어떤 새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는 것이 전혀 없으므로 수를 셀 수밖에 없었다. 둘, 넷, 여서엇, 여덟, 여얼. 총 열 마리였다. 새가 부럽지는 않았다. 잠긴 지구 위를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질투하지도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을 질투했다. 열 마리나 모여있다는 점. 그럴 때마다 연이안서는 새가 되고 싶었다. 잡생각을 지우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면 바로 안시은이 있었다. 사실 아직 바다에 빠져 죽지 않은 이유는 전부 안시은 덕분일 것이다.
연이안서가 본 안시은은 단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약한 사람. 단단함과 약함은 공존할 수 없었음에도 안시은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다. 안시은은 잔뜩 젖은 가방 지퍼를 열어 식량을 꺼낸다. 연이안서도 그녀를 도와 식량을 꺼냈고, 가장 높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가방을 걸어두었다. 이럼 태양과 좀 더 가까워 빠르게 마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면서. 사실 이미 지구의 해수면이 높아지고 금방이고 깊은 바다로 잠길 수 있을 때부턴 다 소용이 없었다. 날이 춥든 덥든 물에서 올라오는 물기가 숨을 막을 정도로 허공을 메웠기에, 필요는 없었지만 나름의 쇼였다.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비정상의 삶을 금방이고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것 같아서. 애써 정상이라고 서로 세뇌를 한 삶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안시은은 딱딱한 바닥에 앉아 물품을 정리한다. 본래라면 사람들이 구두로 밟고 다녔을 곳. 창문 너머 땅을 바라보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은 눈을 질끈 감았을 곳을 안시은은 마치 땅바닥에 앉듯이 행동했다. 그 옆 연이안서가 따라 무릎을 모아 앉는다. 평상시엔 말도 없으면서 시은이 탐사를 다녀온 날에는 유독 연이안서는 말이 많아졌다. 가뜩이나 지친 사람 붙잡고 혼자 쏟아내는 말이 짜증 날 법도 한데 안시은은 묵묵히 들어줬다. 그렇다고 반응을 하거나 중요한 질문이 아닌 이상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오늘도 재잘재잘 말을 이어가던 연이안서였다. 표정은 항상 밝았고 시은 옆에 앉아 일을 도우며 입은 쉴 새가 없었다.
연이안서는 표정 하나 안 바뀌며 평상시 말하는 것처럼 말을 꺼낸다. 하지만 문장 구조 자체가 이상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음에도. 고립된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힘든 기색 하나 없던 사람이 불쑥 뱉는 말에는 이상하게 물기가 서려 있었다. 분명 탐사를 다녀온 건 안시은임에도, 연이안서가 다녀온 것처럼. 꼭 금방이고 지구와 함께 잠겨버릴 사람처럼...
-있잖아요, 언니. 언니는 탐사 다녀올 때 바다랑 무슨 이야기를 해요?
-바다가 오늘도 저한테 언니를 지켜주겠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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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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