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로리오] 갈로! 너, 연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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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거리는 소리를 내곤 곧바로 타이핑하는 데 여념이 없는 갈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미가 아이나에게 어떤 말을 수근거렸다. 그러자 아이나도 끄덕였고, 둘의 수근거림을 들은 루치아가 동의의 뜻을 내비치자 배리스도 그제야 그들의 대화에 꼈다.
버닝 레스큐 전원이 아예 갈로를 빤히 응시하는 동안, 갈로 티모스는 자신한테 오는 시선일랑 꿈에도 생각 못 한 채로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파란 머리카락 아래로 늘 씩 웃던 표정이 텀을 두고 시시각각 움직였다. 한 번은 그가 으레 짓는 표정처럼 훗 하는 미소가 지나갔고, 그 다음엔 양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고 골똘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고 나선 히죽거리는 요상한 웃음을 연신 짓더니, 곧 다시 진지하게 무언가에 열중했다.
갈로가 그러기 시작한 건 하루이틀 사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거 좋지 않아? 라던가 이거 괜찮다! 식으로 감탄사를 뱉는 일이 생기더니, 이후에는 그런 걸 발견하면 사진을 찍다가, 사진을 찍은 핸드폰으로 지금처럼 무언가에 열중하는 등 단계적으로 행동이 추가되었다.
“연애다. 틀림없이 연애야.”
루치아가 고글을 번뜩이며 말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락활동 및 여가활동을 위해 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고, 그런 활동에 열중하면 말수가 적어지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나 행동에 집중하지 않게 될 확률이 88.2% 가량에 육박하기 때문이지.”
“뭐…… 연애까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랑 교류하는 데 열중하는 건 확실해 보이지.”
“응, 절대로.”
레미와 아이나가 합세하여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다만 아이나는 자기가 짐작하는 인물이 맞을지 섣불리 확신하지 못했다.
아이나가 짐작하기에 갈로가 저렇게 열중할 만한 인물은 이제와서는 딱 한 명 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 명이냐고 대놓고 묻고 싶지가 않았다. 아이나도 보았으니까, 혼을 불태우고자 하는 사람이 봐야만 했던 과거를, 극복해야만 했던 현재를.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빙하처럼 굳히던 두 사람을.
그 광경들을 본 입장에서, 가볍게 농담으로라도 너 요즘 연애하니? 같은 말을 꺼내는 건 왠지 좀 경솔하단 생각이 들었다. 설령 둘이 정말 연애를 한다 하더라도 둘 사이의 신뢰나 감정은 보통의 그것보다는 훨씬 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이나 뿐이었는지 (물론 그럴 만하긴 했다. 버닝 레스큐는 시끌벅적한 곳 아니던가.) 비니가 핸드폰을 드디어 내려놓은 갈로 앞에 펄쩍 뛰어들어 척, 하고 솜방울만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똑같은 포즈를 취하며 벌떡 일어난 루치아가 말했다.
“갈로! 너, 연애하지!”
갈로는 에? 하고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레미는 저렇게 직접적으로 물을 필요는 없는데…… 하고 이마를 짚었다. 아이나는 침을 꿀꺽 삼켰고, 배리스는 갈로가 무슨 대답을 할지 기다리며 눈을 멀뚱거렸다.
“자, 잠깐…… 연애? 갑자기 뭔데?”
“변명하지 마라! 너의 최근 행동은 이제 갓 썸을 타기 시작한 사람들의 98.5%와 일치하니까!”
“뭐야? 뭔데? 내가 뭘 했는데??”
“너 말야, 최근 핸드폰 보는 시간이 늘었잖아.”
“화면에 대고 히죽거리고 눈썹을 찌푸리고 가끔 뭔가 중얼거렸다.”
“뭣…….”
“하아……. 너 말이야, 너무 티가 난다고.”
아이나가 한숨을 쉬며 마지막 못을 콕 박자, 갈로는 켁 하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본인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의식 자체가 없던 듯했다. 갈로 티모스 다웠다. 어쩔 수 없단 듯 아이나가 짧게 덧붙였다.
“뭔데? 고민이 있으면 말해 보던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루치아가 온 가게에 다 들릴 정도로 연애고민~~!! 이란 말을 대뜸 소리쳤다. 버닝 레스큐들은 그렇다 치고 갈로의 얼굴이 시뻘개진 건 당연했다. 레미는 그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잠깐 잠깐 잠깐! 일단 아니거든, 연애?!”
“거짓말 마라! 너는 요 근래 마음에 들고 관심이 가는 걸 보면 우오옷- 하는 소리를 내더니, 아예 사진으로 찍어다가 그걸 가지고 누구에게 전송하거나 이야기하는 양 손놀림을 빨리 했지! 이게 어딜 봐서 연애가 아니란 것이냐!”
“그, 그건 확실히……. 아니, 그보다 너네 그걸 다 보고 있었냐?!”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네가 시도 때도 없이 그러잖아…….”
그, 그, 그 정도였나.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는 갈로 옆으로 동료들이 와다다 몰려 앉았다. 비니가 어디선가 안경을 주워 와 안경알을 번뜩이며 치켜올렸다.
갈로는 이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난감해했지만, 떠듬떠듬 하다가도 천천히 말을 뱉었다. 아이나는 흥미로웠다. 어쨌든 뭔가 의식하고는 있었나, 싶어서.
“그…… 아니, 별 게 아니고. 그냥… 내가 아는 어떤 누군가가 있는데…… 그 녀석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그러니까 어딘가에 구경가거나 어떤 장소에서 휴식을 취해 보거나 하는 일이 별로 없던 것 같아서. 그렇다고 내가 안 그래도 바쁜 그 녀석을 잡아다 이리저리 끌고 갈 순 없으니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보여주고 있을 뿐이고……. 그런데 이게 그, 그, 여, 연애적 행동인가……. 나는 딱히 녀석에게…… 감정적으로든…… 짐을 지우는 행동이면 하고 싶지 않은데.”
레스큐 전원은 갈로의 변명 아닌 설명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배리스가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섬세한 녀석이 아니지 않았냐. 하지만 그 말은 레미에게 막혀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이나는 잘 했다는 듯 레미와 눈짓을 교환했다.
갈로는 최근 너무 짧은 시간동안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한 인간이 그렇게 단번에 극렬한 사건에 휘말리면 회피하고 싶을 법도 했다. 그런데 갈로는 그러지 않았다. 외면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전부 마주한 채로 전부 제 것으로 흡수했다. 연료를 집어다 삼키는 불길이라도 된 것처럼. 그 과정에서 비뚤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 정신력은 과연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 갈로가 혹여나 맞을 역풍은 모두가 내심 걱정하는 바였다. 배리스가 하려던 말의 의도도 그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쪽이라면, 상당히 얌전하고 섬세한 휴식이지 않은가, 갈로 티모스라는 녀석에게 있어서. 언젠가 이그니스가 툭 뱉기도 했다. 녀석의 시야가 좀 좁아지는 일이 생겨도 좋겠다고. 다들 끄덕였다.
일동이 저마다 무언가 한 마디씩 얹으려고 할 때, 갈로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외쳤다.
“아니, 잠깐! 그만! 여기까지 해! 이, 몸은 볼일이…… 아니, 더 생각을 해야겠어……! 섣불리 상담하고 싶은 화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간다!”
그리곤 누구 하나가 잡을 틈도 없이 쌩하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갈로의 뒷모습은 참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보며 버닝 레스큐 전원은 시선을 교환했다. 실로 좋은 변화고 성장이 틀림없다, 고. 루치아는 곧바로 이그니스에게 보고하기 위해 통신기기를 꺼내들기까지 했다. 아이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조만간 뭔가 더 소식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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