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
아르트만이 벨드린의 미래라 다행이야. 벨드린만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BGM : 계절범죄
“…….”
침묵한다. 당신이 괜찮을 수 있으면 좋겠다. 펠릭스는 비비안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미 한 번 몰락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랬다. 비비안이 정말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녀의 주변에 있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아르겐의 사람이었더라면 좋았을까? 밖에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날까지 비가 오다니. 이는 좋은 신호만은 아니었다.
‘당신이 아파할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이 자신이 아닌 것이 몹시 아쉽고, 또 안타까웠다. 사실 그가 그녀의 옆에 있어준다고 해도 많은 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벨드린이 아닌 아르트만이다. 아르트만이 벨드린의 내정에 쉽사리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그녀에게 위로를 건네주지 못하는 건 몹시 아쉬웠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감정은 바라서도 안 됐고, 생각해서도 안 됐다.
“예, 당신과 함께.”
처음부터 펠릭스는 벨드린이 아니라 비비안을 봐왔다. 물론, 벨드린을 안 본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벨드린’보단 ‘비비안’을 주목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비비안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은 것은 그녀를 잘 설명하는 말은 ‘벨드린’에 가깝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펠릭스는 말재주가 그리 대단한 편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고민과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어서, 말로 내뱉은 게 얼마 되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기쁩니다.”
그래서, 당신이 약속해준다는 것에 다양하게 기뻐할 수 있어. 생각이 많다는 건 오롯이 한 가지를 오래 파고든다는 것이고, 하나를 오래 곱씹는다는 것이다. 펠릭스는 비비안을 곱씹는다. 그 끝에 있는 것은 기쁨이다.
사실 펠릭스는 비비안의 미래를 알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녀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펠릭스는 비비안이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여겼다. 아르트만이 그랬던 것처럼 벨드린이 휘청이고, 끝내 쓰러진다면. 그 중심에 서 있는 비비안은 말도 안 되는 고통을 얻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조금은 괴로웠다. 마음이 저릿했다. 그렇지만 애써 웃는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아르트만은 처음부터 조롱의 대명사다. 그들은 자신들도 조롱하고 외부인도 조롱한다. 외부인들도 마찬가지다. 펠릭스는 수많은 조롱 속에서 자라났다. 그렇기에 그것을 무시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벨드린은 아르트만의 과거다. 그리고 한 번 그 일을 겪은 아르트만에서 자라난 펠릭스는 그 누구보다 비비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좋습니다. 마침 내년에는 조금 일정을 비워둘 참이니. 제가 아르겐에 가도 좋겠군요.”
당신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나는 얼마든지 나라는 무기를 당신에게 쥐여줄 거야. 당신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니까.
“비가 옵니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할 때가 왔다. 펠릭스는 조금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당신에게. 이 수확제의 끝에서,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할까.
“조심히…….”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와 아르트만을 조금만 더 알고 가.
그것이 분명 당신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지만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가십시오.”
그러므로 말할 것은 이별이다.
그립겠지. 보고 싶겠지. 그렇지만 봄이 다시 오듯, 당신도 다시 올 테니까. 그때만을 바라며 살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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