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ㅇㅅㅇ

[6화] 토끼탈은 마냥 귀엽지만은 않습니다 <clean ver.>

맄즁


평연소일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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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은 속이 울렁거려서 문이 닫힌 상가 건물 앞에 주저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코로 숨을 몰아쉬었더니 아까보다는 안정이 되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질어질한 시야로 글자가 잘 안 보여서 한참이나 들여다봤지만 아직 리키에게 전화가 없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숨에 알코올 냄새가 섞여 나오자 다시 토기가 울컥 치밀어 올라와서 바지를 잡고 쥐어 뜯었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당장이라도 눕고 싶었다. 제발 좀 빨리 와달라고 속으로 빌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후로 10분 정도 더 지났을 때 마침내 지웅의 앞에 차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지웅형."

"웅..."

"You ok?"

하나도 안 괜찮아서 고개를 내저었다가 다시 입을 꽉 막았다. 침을 삼켜 토기를 애써 억눌렀더니 반대로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리키는 손을 뻗어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고는 천천히 차로 이끌었다.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줘가며 차에 올라탄 지웅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그렇게 메스꺼운 속을 달래가며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떠보니 이미 침대 위였다. 심지어 해가 너무 쨍쨍해서 충전기에 꽂혀 있는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토요일 오전 11시 27분. 어제 회식에서 그렇게 술을 처마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팔과 다리를 쫙 뻗으며 기지개를 켜다가 어젯밤에 집에 어떻게 기어 들어왔는지 차분히 떠올렸다. 끔찍한 숙취 때문에 필름이 드문드문 끊겨 있어서 하나씩 이어보는데... 그대로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리, 리, 리키야... 어제 형이..."

"It's ok."

부엌에서 콩나물국을 끓이는 건지 콩나물탕을 끓이는 건지 여튼 무언가를 창조해내던 리키가 어색하게 웃었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했지만 지웅이 전혀 안 괜찮았다.

"차는 어떻게 했어...?"

"car wash했어요."

리키가 끓여준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하며 지웅은 어제 일을 곱씹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남자친구의 차에다 그런 짓을 저지르고는 그대로 다시 쿨쿨 잠이 들어버리다니. 완전히 개진상 짓이었다. 콩나물을 뒤적이며 눈치를 보자 리키는 오히려 지웅의 속이 괜찮은지 걱정을 해왔다. 그럴수록 지웅은 죄책감에 더욱 어깨를 움츠렸다.

망할 허과장 새끼는 술자리에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느니, 예쁜 여자는 꽃과 다름없다느니, 개소리를 지껄여대는 전형적인 개꼰대 여미새였다. 이미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로는 성에 차지도 않았는지 이번에 새로 입사한 스무살 직원한테까지도 눈독을 들였다. 환영회라는 핑계로 열린 회식 자리에서도 굳이 옆에 앉히려고 들길래 지웅은 냉큼 그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과장님 한잔 받으시죠-"

도끼눈을 뜨는 허과장에게 능청스럽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 직원이 여기에 앉았다가는 얼마나 술이 먹여질까 걱정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리키랑 동갑이기까지 하니까 신경을 안 써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술인 허과장을 1대1로 상대하다보니 완전히 꽐라가 되어버렸다. 택시를 잡아주겠다는 동료들을 다 돌려보내고는 리키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착하게도 정말로 차를 끌고 와준 리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빌지는 못할 망정 울렁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리키야... 어떻게 하면 너의 소중한 페라리에 그런 짓을 한 형을 용서해줄래...?"

"Um, 저 괜찮아요."

"정말?"

“녜."

평소라면 이것저것 걸고 넘어지며 본인만 만족,물론 나중엔 대부분 지웅도 같이 만족해하지만,하는 것들을 잔뜩 요구할 텐데 오히려 괜찮다고 나오니 지웅은 더더욱 미안해졌다.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꿀물을 원샷하고 거의 빌듯이 물어본 후에야 리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bunny...."

"...토끼?"

리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줍은 듯 웃길래 지웅도 따라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굳혔다.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토끼 코스프레는 좀.... 바로 시무룩하게 변하는 얼굴을 보니 차마 거부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이번엔 잘못한 일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맹랑한 연하남 때문에 머리가 아득해졌던 지웅은 이내 결연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 우리 리키가 원하는데 함 해줘야지.

2주 가까이 지나도록 지웅에게 별말이 없어서 리키는 그 날일에 대해 거의 까먹고 있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빤히 바라보면 웬만해서는 다 들어주는 편이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토끼는 좀 선을 넘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기대도 안 하며 강의를 듣던 리키는 핸드폰 화면에 알림이 뜨자 교수의 눈을 피해 카톡을 확인했다. 발신자가 我的❤️로 되어 있어서 리키의 입가에 바로 미소가 지어졌다.

리키야

올때 🥕🥕🥕

당근? 심부름을 시키는 건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바로 저번 주말에 장을 보면서 당근을 분명히 샀었다. 혹시 지웅이 기억을 못하는 건가 해서 냉장고 맨 밑칸에 넣어뒀었다고 알려...

리키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앉았다.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순간 쏠렸다가 다시 흩어졌다. 리키는 책상 밑으로 다리를 달달 떨어댔다. 온갖 기대감이 밀려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웅에게 바니걸 코스프레까지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메이드옷은 가능하지 않을까. 거기에 토끼 머리띠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고... 시계를 보니 지웅이 퇴근하려면 적어도 3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바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지만 토끼 머리띠를 쓴 지웅을 생각하니 힘이 났다.

저 anticipation 해요 😎

사랑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두❤️

리키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는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행복과 기대로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서 결국 책상에 엎드렸다. 마음같아선 이대로 소리를 지르며 강의실을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사회적 최면, 아니 체면을 위해 애써 참았다.

속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집까지 달려와서 주차까지 완벽하게 시켜놓은 리키는 계단을 두칸씩 급하게 뛰어 올라갔다. 그 사이 머리를 열심히 굴려 계획을 세웠다. 일단 지웅이 퇴근할 때에 맞춰 작고 소중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오늘 밤에 고생할 테니까 몸이 노곤노곤해질 때까지 어깨를 주물러줘서 피로를 미리 풀어주고. 열심히 섹스를 한 후엔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삼계탕을 시켜서 먹고.

오늘도 엘리베이터의 부재에 대해 욕을 3개 국어로 내뱉은 리키는 도어락을 급하게 누르고는 바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얼른 계획을 실행시키려는데 현관 앞에 지웅의 신발이 놓여져 있는 걸 보고는 멈칫했다. 지금 보니 거실엔 불도 켜져 있었다. 일찍 퇴근한 걸까? 오늘의 event를 위해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리키가 입을 열었다.

"지웅형?"

"......."

“Come here."

보아하니 안방에 있는 건 확실한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를 않았다. 부끄러워서 그런걸까. 리키가 히죽 웃으며 문을 노크했다. 이번에도 조용하길래 한번 더 두드리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이야아아- 소리를 내며 리키에게 달려들었다. 두툼한 물체가 아직 상황파악을 못해 멍하니 서 있는 리키에게 퉁 부딪치더니 혼자 뒤로 나동그라졌다. 리키는 시선을 내려 아래에서 버둥거리는 거대한 토끼탈을 바라보았다.

"...그게 bunny예요?"

"왜애 토끼 맞잖아. 헝헝헝."

나 좀 일으켜종. 손을 뻗는 토끼를 가만히 지켜보던 리키가 결국 무릎을 굽혀 지웅의 몸을 감싸서 들어올렸다. 서서 보니 더 거대한 탈에 파묻힌 지웅이 귀엽게 웃고 있어서 결국 리키도 웃음이 터졌다.

"귀엽지."

"녜. 형 so cute."

키스를 하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하자 지웅의 귀가 통통 튕겨서 리키의 머리를 때렸다. 지웅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리키의 입 안으로 삼켜졌다.

"으음-"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혀를 감싸다가 리키는 슬쩍 손을 내려 지웅의 통통한 엉덩이를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익숙한 살덩이 대신 말랑한 인형탈만 만져져서 결국 리키가 입술을 떼며 웃어댔다. 지웅은 민망하게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형 옷 좀 벗겨주라."

상황이랑 대사만 놓고 보면 충분히 야한 내용인데 깜찍한 꼴로 그러고 있으니 그저 우습기만 했다. 리키가 폭신한 탈을 벗기자 지웅이 낑낑거리며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솔직히 안에 바니걸까지는 아니더라도 메이드복 정도는 기대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맨몸이라거나. 그러나 지웅은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서 리키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따라와봐."

지웅이 손목을 잡아끄는대로 따라갔더니 안방 침대에는 하얀색 토끼 머리띠가 놓여져 있었다. 입을 가린 리키가 들떠서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안 할 줄 알았어요."

두근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다리던 리키에게 지웅이 슬그머니 머리띠를 씌웠다. 리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리자 과장되게 칭찬하며 입꼬리를 당겼다.

"아이, 예쁘다."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었지만 지웅이 좋아하니까 리키는 차마 머리띠를 벗을 수 없었다. 아쉬워도 지웅의 깜찍한 토끼 분장을 봤으니 그런대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시 입을 맞추며 엉덩이에 손을 내리자,

"What the...?"

골 사이로 무언가가 만져졌다. 리키는 동그랗고 푹신한 것을 더듬어대다가 그대로 지웅의 몸을 밀어 넘어뜨렸다. 침대로 쓰러진 지웅의 옷을 정신없이 벗기자 속옷을 입지 않았어서 그대로 맨살이 드러났다. 엉덩이 사이에 있는 복실복실한 하얀색 털뭉치를 보자마자 리키의 코가 뜨거워졌다.

그렇게 정사가 끝나자마자 지웅이 머리띠를 벗어 던졌다. 원래도 정력 넘치는 연하남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허리가 아작이 나는 줄 알았다. 결국 리키의 요구대로 토끼 꼬리를 하루 종일 하고 있느라 배앓이를 했으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자꾸만 쪽쪽 입을 맞춰대는 리키를 보며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회사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리키의 말을 이번만큼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인적 드문 골목에 대놓고 한참을 쪽쪽거리다가 서로 아쉬워하며 차에서 내렸다. 아픈 허리와 얼얼한 아래 때문에 어기적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온 지웅은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겨우 앉았다. 모니터 밑에서 키보드를 빼내다가 그 위에 놓인 상자와 편지지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더니 일찌감치 출근해 있던 스무살짜리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니 어느정도 감이 왔다. 한숨을 내쉰 지웅은 편지지를 펼쳤다.


금요일에 정말 감사했어요ㅠㅠ 오늘 점심에 선약 없으시면 제가 밥이라도 꼭 사드리고 싶어요!! 전에 편의점 가셨을 때 딸기맛 포키를 많이 사시길래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같이 드려요!


딱히 고백하는 내용도 아니고 호감을 직접적으로 표시하지도 않았다. 그냥 회식자리에서 호의를 베푼 선배에 대한 감사 정도로 보일만 했다. 그러나 직원의 빨개진 얼굴을 보아하니... 지웅은 어린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었다.

"딸기맛 포키. 고마워요. 이거 여자친구가 좋아하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그쵸. 하긴 여자친구가 없으실리가 없죠. 너무 축하드려요?"

당황해서 이상한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제야 한숨을 내쉰 지웅이 과자를 가방에 챙겨넣었다. 일단 우리 리키 주긴 줘야지.

아까 직원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지만 지웅은 이미 활짝 웃고 있었다. 역시 김지웅 아직 안 죽었다니까. 리키를 놀려줄 마음에 잔뜩 신나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hey ricky

wassup

형 오늘 고백 받았다ㅎ

이게 바로 Jiwoong's class

오졌다 ㅇㅈ? 

답장이 돌아오지 않아서 지웅은 혹시나 리키가 또 삐졌을까봐 조마조마해졌다. 지금이라도 뒤늦게 사과를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던 도중. 카톡으로 웬 사진 하나 보내졌다. 무심코 카톡을 열었던 지웅은 그대로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사진)

이거 보여줘

미쳤어?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하며 잔뜩 성이 나있는 무언가를 쥔 사진. 주말 내내 실컷 맛본 리키의 것을 사진으로 또 보니 그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얼얼한 골을 문지르며 이마를 싸맨 지웅은 서둘러 사진을 삭제했다. 심호흡을 하며 진정을 하고 나니까 제대로 사진을 못 보고 지워버린 게 조금 아쉬웠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슬쩍 카톡을 보냈다.

리키야

몇장 더 찍어봐ㅎ~

ok

기다려 😎

연달아 보내지는 사진을 확인한 지웅은 슬며시 화장실로 향했다. 가뿐한 얼굴로 사무실에 돌아와서 콧노래를 부르며 업무를 일찍 시작했다.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아주 최상이어서 지나다니는 직원들이 신기하다며 몇마디 던지며 지나쳤다. 주말동안 몸에 좋은 거라도 했냐는 질문에 주말에도 하고 아침에도 했죠, 그냥 웃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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