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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이 마르셸을 다시 만난 건 여름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참다못해 건조기를 샀던 날이었다. 세상이 다시 물에 잠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바짝 마른 옷을 입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잠깐 편의점에 나갔을 때, 한 손으로 음료수 캔을 따던 마르셸을 만났다. 오른팔에 깁스를 한 그는 반쯤 정신이 빠진 것 같았다. 원래도 그렇게 정신을 잘 차리고 살던 건 아니었는데, 퉁명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몸에 잔뜩 붙은 거즈나 그 위를 감싼 붕대와 함께 잊혔다. 갑자기 사라졌던 마르셸은 그렇게 갑자기 돌아왔다. 사실 제인은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바꿨던 건 마르셸이 쓰던 칫솔이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고 곰팡이가 필까 봐 빨간색 칫솔을 파란색으로 바꿨었다. 어쨌든 좀 정신이 빠진 마르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밥도 먹이고, 옷도 갈아입히고 그랬다. 자기가 다 할 수 있고, 멀쩡히 하는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핀잔이나 주면서 그걸 다 해줬다. 그래야 마르셸이 또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무서워서였다. 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세상이 다시 홍수 속으로 잠길 만큼 비가 오고, 그와 함께 따라온 습도는 몸을 깊게 눌렀다. 어쩌면 마르셸의 뇌도 습기가 잔뜩 찼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엉망이 됐을 거다. 지금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저게 진짜 내가 알던 마르셸이 맞기는 할까. 제인은 저게 사람이 아니라 솜으로 가득 찬 미라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져서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귀를 타고 규칙적으로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박동과 함께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제인의 집엔 시계가 없었다. 예민한 성정의 마르셸이 초침 움직이는 소리를 견디지 못해 히스테리를 부렸던 탓이다. 초침이 울리던 소리처럼 배수구를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창틀 때렸다. 마르셸은 그냥 고장 나버린 거야. 시계가 그렇듯, 그냥 잠깐 고장 나버린 거지. 제인은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르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떠났을지도 모른단 생각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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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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