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지지 않을 편지
원피스 세계관 드림
마리아 나폴레와 소피아 나폴레.
이 둘은 쌍둥이입니다. 나고 자란 곳이 어인섬인지라 어린 시절, 해저의 밖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 나폴레, 저라는 인어는 외모가 출중하다는 핑계로 이웃 주민들이 많이 겁을 주더군요. 전 굴하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별을 가리지 않는, 진짜 해가 비추고 있는 그런 바깥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문득 어인섬이 지겨워졌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왕의 행차 소리, 북적이는 카페, 출렁이는 물결, 하지만... 벗어나면 안 되는, 제한되어 있는 섬.
슬픔을 담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를 듣더니 어머니는 말씀하셨죠. 성인이 되면 한번 쯤 수면 위를 보고와도 된다고. 그 말에 뛸 듯이 기뻐 자신은 안 갈 거라 도리질하는 언니에게 화를 냈습니다. 이 멍청아, 세상이 바로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데 두렵다고 고개만 숙이고 있을 거야, 라고.
언니는, 정말 멍청했습니다. 저와 곧잘 주고받던 노래 또한, 제가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자 그 뒤로는 지루하다는 얼굴로, 저의 노래에 화음만 넣으며 따라할 뿐이었죠. 저는 그런 언니를 곧잘 때렸고 언니는 저의 주먹다짐을 기꺼이 감내하면서도 기어코 혼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내심, 그런 언니가 못마땅했지만 좋았습니다. 마리아는 항상, 언니 소피아가 저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으니까요.
성인이 되었고, 그 동안 마리아와 마리아의 언니, 소피아는 같이 많은 공연을 하며 어인섬에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모두들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저더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기뻤습니다. 반드시 이 섬을 나가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난 3년 뒤, 제 꿈이 이뤄졌습니다.
초청장이 왔습니다. 화제의 인어가수를 샤본디 제도의 축제에 초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언니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분명 언니도 좋아할 거야, 나와 같이 한 번도 바깥을 보지 못한 동지니까. 하고.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언니는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항상 공연이 끝나도 밖을 돌아다니며 마을 어인들과 친목을 다지는 저와 달리 언니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계속 책만 보는 특이한 인어였습니다. 책을 왜 보냐는 저의 물음에 세상이 담겨있다는 알 수 없는 대답을 들려줬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안됐습니다. 전 반드시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바깥 세계를 봐야만 했으니까요.
제 꾸준한 노력 덕에 언니가 결국 수락했습니다. 마리아 나폴레와 소피아 나폴레는 항상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던 우리들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어머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몇 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저라는 동생이 그토록 매달리는데 흔들리지 않을 언니가 아니었습니다.
샤봉디 제도는, 정말, 말 그래도 환상의 섬이었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천국이란 단어를 그대로 옮겨온 듯 했지요. 인공적인 햇살이 아닌 진짜 자신의 따스함을 뿌리는 해가 있었습니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달과 별도 보였습니다. 또한, 그 사이를 메꾸는 아름다운 저녁노을도 존재했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광경들에 흥분하여, 올라오기 전에 언니가 말했던 주의사항들을 다 잊어먹은 채였습니다. 그녀가 제 손을 끌어당기는 듯 했지만 처음 본 놀이기구에 정신이 팔려 그 손을 뿌리쳤습니다.
아아, 너무 기뻐. 나는 여기서 공연을 하게 될 거야. 훗날 세상에 널리 회자될 공연을. 나는 당신들에게 최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가수가 될 거야.
그러던 중, 달려가는 제 눈앞에 어떤 무리가 보였습니다. 무언가 둥근 거품막으로 얼굴을 감싼 남자는 처음 보는 신기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옷은 한 톨의 먼지도 없이 깨끗했습니다. 남자는 손 까딱하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호기심이 들어 그 무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습니다. 주위의 경악은 그때의 저에겐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혹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덩치 큰 남자가 부들거리며 땅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기이한 광경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무리가 가려는 길 바로 중앙에 제가 있었음에도. 뭐냐고 소리를 지르는 인간 귀족의 모습을 정면으로 보았습니다.
추악함.
전 그 단어의 뜻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몸이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고집 센 마리아는 바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해, 난 누군가에게 내 자리를 양보한 적 없어. 심지어 언니에게조차.
어떤 아주머니가 재빨리 다가와서 저를 가리고는 연신 사과했습니다. 그러고는 제 머리를 땅에 처박을 기세로 숙이셨습니다.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를 손을 쳐내려던 순간,
탕-! 탕-!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머니가 옆으로 스르륵. 잠을 자는 듯이 그렇게 엎어지셨습니다.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밝아진 시야에 들어온 건 진심으로 웃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요, 그 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 세계를 창조한 귀족들의 후예. 천룡인이라 불리는 자들이었습니다.
허나 그때는 그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귀족이라면, 왕궁에서 보던 어인들로밖에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있는 힘껏. 신고 있었던 신발 한 짝이 벗겨졌고, 인어다! 하며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서, 오지 않으면 아주머니를 완전히 죽여 버리겠다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허나,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인질로 삼고 있는 여자는 나와 상관없는 인간이었을 뿐더러 저 자의 손에 잡히면 어찌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담벼락 구석에 숨어 덜덜 떨었습니다. 밖에서 인어, 인어를 찾아. 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세상구경 따위는 머릿속에서 없어진 지 오래였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되려고 했나 봅니다. 그 기나긴 시간 속에서 어렴풋이 음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나의 꿈. 내가 바라왔던 세계. 그것들이 이미 산산이 깨져버린 상태에서. 저는. 노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닌 채 공연장의 뒷길을 통해 허겁지겁 달려 온 저를 보며 언니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걱정을 담아 저에게 물었죠. 무슨 일이니, 마리아. 그 말에 눈물이 나오더군요. 알 수 없는 설움. 꿈이 깨져버린 것에 대한 분노. 절망.
언니. 노래하기 싫어. 하고 싶지 않아.
저가 그리 말했습니다. 언니, 소피아는. 너무나도 바보 같아서. 제가 왜 그러는지 이유도 듣지 않고 저를 달래며 알겠다고 했습니다. 장난 하냐는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언니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노래는 해야만 했습니다. 여기까지 데려오면서 썼던 비용과 시간들. 그들이 그걸 포기하면서까지 하등생물인 인어의 개인사정을 신경써줄 리가 없었으니까요.
그때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 저를 보고 언니가 말했습니다.
네가 화음을 맡아, 마리아. 그러면 괜찮을 거야. 라고.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아니, 차라리 그 대기실에서 바로 언니의 손을 잡고 아무도 우리들을 찾지 못할 심해의 어인섬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쳤어야 했는데.
말했어야 했는데. 누군가를 피해 도망쳐왔다고. 아주머니를 거리낌 없이 죽여 버린 인간을.
그때는 그 잔인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었습니다. 아둔한 마리아는 그저 언니가 제안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공연장까지 수색할 리가 없다는 어리석은 확신을 가지고, 조금씩 밀려오는 불안감을 모조리 외면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중앙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언니에게 모든 조명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어두운 제 쪽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언니의 노래는, 저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아아, 소피아. 나의 언니.
언니는. 저 때문에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이었군요.
고집 세고 욕심 많은 마리아. 어렸을 적에 언니의 노래를 들었었다면 질투에 눈이 멀었을 게 분명합니다. 분명, 또 그녀를 때렸거나 소리를 지르며 울었거나 둘 중 하나였겠죠.
난 대체 무슨 인생을 살아온 걸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극도로 몸이 떨려왔습니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 넣던 화음을 급히 중단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언니의 음정이 일순 흔들렸지만. 잠시 뒤의 소란으로 인해 제가 저지른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천룡인이 공연장에 들어왔습니다. 저를 찾던 중에 언니의 노래를 듣고 들어온 것이었죠. 그가 외쳤습니다.
저 인어를 잡아.
저 인어를 잡아서 내게 데려 와.
속절없이 언니가 끌려갔습니다. 공연장의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게 들려왔지만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대기실에 들렀던 관리자에게 매달렸습니다.
왜 그들을 저대로 가게 내버려두는 거예요. 소피아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당연히 내쳐졌습니다. 허튼 소리 하지 말라고. 살고 싶으면 당장 짐을 싸서 어인섬으로 돌아가라고. 저는. 그 말을 듣고서.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나, 마리아는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불이 켜지지 않은 캄캄한 집이 절 반겼습니다.
항상 책을 읽겠다고 자신의 방을 밝혀놓은 소피아. 밤 늦게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고 돌아오는 저에게는 언제나 그 불빛이 돌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였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마침내. 바깥에서 무엇을 잃고 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소피아.
나의 언니.
멍청한 인어는 언니가 아니라, 바로 저였던 것을.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