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레님네(220호)

[짓큐미레] 회심의 일격

예고를 하고 하면 그게 암살이냐 해치우고 나서 세레머니를 하는 게 진정한 암살인 것이다

 

 

 

 

 

 

 

 

 

 

회심의 일격

 

 

 

 

 

 

 

 

 

 

 

 

 

 

빙글빙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알리면서.

 

“미레야.”

 

남자가 할 말은 분명 그것밖에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보랏빛 눈동자. 다른 곳을 볼 때는 시린 자수정을 떠올리게 하면서, 저와 마주하는 순간 부드러운 제비꽃의 색을 띠어서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하는 그 눈. 여느 때와 다르게 장갑을 끼지 않고 드러낸 맨손. 들고 있는 적흑의 바람개비에 가려져서 모양을 알 수 없는 입술. 너른 어깨너머로 살짝 모습을 보이는 꽁지머리는 연한 보라색 머리끈으로 묶여있다. 넉넉한 소매 사이로 드러난 양팔의 모습이 상이하다.

 

“내가 준 머리끈……”

“잘 보이는 곳에 하고 싶어서.”

 

이걸로 머리를 묶어버리면, 나는 못 보잖아.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아도, 분명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옅은, 웃음소리.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 왼쪽 손목에는 그녀가 만들어준 머리끈이 팔찌처럼 걸려있었고, 그 아래에 자리하는 화상 흉터가 남자의 창백한 피부 때문에 유독 도드라졌다. 반대편인 오른쪽 팔은 흉터 없이 깨끗했지만, 그 위로 한껏 선연하게 돋아있는 핏줄이 그녀의 마음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팔의 단단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아마 몰랐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어쩐지 멍하네. 열이 있을까?”

 

허리를 굽혀 그녀의 이마를 덮는 손의 열기가 선명했다. 남자가 걸치고 있는 유카타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사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내뱉는 숨결이, 맞닿을 것만 같이 가까워서, 그녀는 괜히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돌렸다. 옅은 보랏빛이 도는, 회색 빛깔의 단순한 무늬의 유카타. 혼자서 평소 복장이라든가, 피부색 같은 걸 고려하면 좀 강렬하고 화려한 무늬나 옷감이 어울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냥, 무명의 옷감을 걸치고 왔더라도, 그녀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구나. 남자의 발치까지 시선을 내렸던 그녀는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단순한 무늬, 평범한 옷감 같은 게 아니라…얇은 옷감 너머로 옅게 비치는 실루엣에, 방금 저가 무엇을 보았나 싶어진다. 아니, 대체 누굴, 어떻게 꼬시겠다고 이런 옷을 입고 온 거야! 싶어서 머릿속이 카오스가 된다.

 

“웬 바람개비야?”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다른 화제를 찾아 질문하면, 아, 이거. 하고 들고 있던 바람개비를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그제야 보이는 입 모양은, 예상대로 웃고 있다. 이어 말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조금, 밝아진 것 같다.

 

“내가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야화는 사람도, 사람이 아닌 것도 좋아하거든.”

“나와?”

“어디에나 있어.”

“…오빠랑 떨어지면 안 되겠다.”

“그럼, 잃어버리지 않게 손을 꼭 잡을까?”

 

맞잡은 손이 뜨거웠다. 웃음소리가 닿는 귓가가 뜨거워진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목구멍 안이 간지러웠다. 혼자만 어지러운 심정이 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미레는 남자, 짓큐의 팔에 꼭 달라붙었다.

 

“손 가지고는 안돼.”

“그것도 그렇지. 아예 안고 다닐까?”

“이거면 돼, 이거면.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그치만 난 그것도 좋은데.”

 

 

발걸음을 옮기며, 재잘거리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재잘거린다는 표현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미레는 제 앞에서는 즐거운 듯 말이 많아지는 남자에 대해 알고 있다. 사랑스러운 사람. 남자가 있으니 불꽃놀이같은 건 보지 않아도 괜찮은데. 하늘에 피어나는 불꽃보다도, 반짝거리는 별보다도, 미레에게는 남자가 더 예뻤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가 나고, 연기 냄새가 나고, 사람들이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불꽃 터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온몸을 울려오는 가운데에서도, 제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곁에 있는 남자에게 들릴까봐, 미레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또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제비꽃 같은 부드러운 눈동자 속에, 그녀가 비치고, 피어나는 불꽃이 비친다.

 

하늘 같은 건 보지 않아도 좋아, 저 눈동자만을 계속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제비꽃은 한자로 이야초(二夜草)라고 쓴다고 한다. 두 개의 밤이라는 뜻으로, 꽃이 너무 귀엽고 예뻐 바라보는 데에 하룻밤도 모자라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틀 밤이 뭐람, 저 눈동자를 바라보는 데에는, 평생을 다 써도 모자랄 것이다.

 

빙글빙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사랑이 전해지는 방향을 알리면서, 열기가 전달되는 방향을 알리면서.

 

짓큐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그렇듯이, 만개하는 야화의 하늘 아래 있는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도, 분명 영원히 잊을 수 없겠지.

 

“예쁘다.”

 

그 짤막한 감상에, 짓큐가 잡고 있던 손을 단단히 고쳐잡았다. 깍지를 낀 손 사이에는 한 치의 여유도 없었지만, 놓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이러면 절대 손을 놓칠 일이 없겠구나, 싶어서 기꺼워졌다.

 

“나한테는, 너만 예뻐.”

 

꿀을 바른 듯한 목소리로, 그가 덧붙였다.

 

“…그래도, 내년에도 같이 보러오면 좋겠다.”

“응, 그러자. 꼭 그러자.”

 

그렇게 또 한 걸음, 미레의 여름은 짓큐 미츠타다가 되었다.

반짝반짝, 하늘을 수놓으며.

뱅글뱅글,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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