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제연
회심의 일격 빙글빙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알리면서. “미레야.” 남자가 할 말은 분명 그것밖에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보랏빛 눈동자. 다른 곳을 볼 때는 시린 자수정을 떠올리게 하면서, 저와 마주하는 순간 부드러운 제비꽃의 색을 띠
“미레야. 아, 이렇게 부르는 게 아닌가?” 어둠 속에서 남자의 보랏빛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그것은 미레를 본능적으로 움츠리게 만들었다. 어렸을 적 괴담으로나 들었던 침대 밑 괴물을 목도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물론 남자는 침대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서있었던 지라 좀 다른 이야기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눈이 선명하게 웃
방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누워있던 짓큐 미츠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라, 불이 꺼진 방 안은 어두웠지만, 그는 도검남사. 단도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둠 속에서 물체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눈은 가지고 있었다. 어둠에 적응한 그가 보랏빛 눈을 빛내면서 내려다보는 것은 침대에 누워자고 있는 이 방의 주인이자, 그의 주인이다. 그녀의
미레는 취미는 그림 그리기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좋아하는 걸 그리고 싶은 법이다. 그렇게 해서 미레가 자주 그리게 되는 대상은 짓큐 미츠타다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미레는 짓큐 미츠타다를 좋아하기에.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정신을 차리면 시선은 짓큐에게 닿아있곤 했다. 몇십 번을 눈으로 덧그렸을까, 몇
보통 미레가 원격으로 혼마루에 접속하는 것을 종료하면, 짓큐 미츠타다는 미레의 곁에 나타나지만, 내번 당번일 때는 예외였다. 시스템적으로 24시간 동안은 내번 업무에 매여있게 되기 때문에, 게임을 꺼도 혼마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레는 평소와 달리 홀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발치에 둥글게 몸을 말고 잠들어있는 집안의 터줏대감이 있는지라
막 머리를 감고 나온 미레는 기분이 좋았다. 새로 산 동백 헤어오일 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욕실에서 나온 그녀를 서늘함이 덮쳤다. 내일은 하루종일 비가 온다더니 벌써부터 날씨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가디건이라도 걸쳐야지, 하고 방으로 향하려던 그녀의 시야에 소파에 걸쳐져 있던 커다란 사이즈의 져지 상의가 들어온 것은 순전히 우
"나 오빠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뭐든지.“ "오빠는, 내 방에 있는 오빠 닮은 물건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 미레의 말에 짓큐는 음, 소리를 내고는 미레의 방 안을 한바퀴 휘 둘러보았다. 저를 닮은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족자(동생들의 그림이 그려진 것들도 있다). 작은 그림. 제가 조금 귀여운 모습으로 그려진 손바닥만한 그림을
꽃샘추위도 물러나고 봄이 오긴 온 건지, 차갑지 않은 비가 내려 하늘이 구물구물하고 습한 날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미레는 지친다는 얼굴로 신발을 벗자마자 거실 한 쪽에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쓰고 있던 모자도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버렸다. 보통 외출에서 돌아오면 이렇게까지 지치지는 않았는데, 날씨 탓인지 유독 피곤했다. "많이 피곤해
미레의 책상에 인형이 또 늘어났다. 남자, 짓큐를 닮은 인형이다. 사실 그로서는 손바닥보다 작은 개나 늑대의 모습을 한 인형이 어디가 그를 닮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미레가 그렇다니 그런 거지,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레의 인형들에 대한 짓큐의 감상을 말하자면, 그냥 좋았다. 자화자찬을 하듯 저를 닮은 인형들이 좋다기보단, 인형을 둘
오사카성은 대체로 평이한 난이도의 전장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90층 이후로는 그것도 아니었다. 고속창에 스친 상처에 당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무 번째가 되는 걸까, 상관 없지만이라는 말이나 중얼거렸지만 그것을 지켜본 이에게는 지독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짓큐 미츠타다는 제 옆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츠바키의 머리카
※ 마왕짓큐x츠바키의 얼렁뚱땅 로판 ※ 라미레(@ Lamire_touken)님의 가내드림에 대한 적폐날조 3차 창작입니다 가신들이 멋대로 추진한 결혼식날이 오고야 말았다. 공국의 주인의 결혼답게 식은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짓큐의 기분은 최악을 달렸다. 이런 소문 나쁜 대공에게 팔려오듯 시집 온 영애도 제대로된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여 짓큐는 신부의
에 이어지는 짧은 후일담입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밝은 햇살이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츠바키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곁에 누워있는 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직은 덜 깬 잠을 몰아내려고 두어번 눈을 껌뻑이던 츠바키의 귓가에 하하, 하는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뜬 츠바키가 옆에 누운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유키님." 츠바
감기에 걸렸다. 환절기면 으레 생기는 일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것은, 겨울에서 봄이 되는 정도로 기온이 심하게 변하는 것도 아닌데, 환절기는 환절기라고 미레의 머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어제는 멀쩡했는데도, 문득 아, 감기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예상치못한 일은 아니었으나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 푹
"나, 가질래?" 뜬금없는 짓큐의 말에 미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여느때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미레가 좋아하는 보랏빛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미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물론, 나는 네 것이지만." 미레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짓큐는 그제서야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
"왔어?" 이제는 제 집인 것마냥 귀가한 미레를 반기는 짓큐다. 뭔가 만들고 있었는지 앞치마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다녀왔다고 말하고 나서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미레는 식탁에 앉아 열심히 요리 중인 짓큐의 뒷모습을 즐겁게 구경했다. 짓큐는 혼마루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이런 순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귀가하기 전에는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