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오비] 변칙적 애착 궤도와 범우주적 살별 프로토콜_01
우리는, 졌다.
공화국은 손쓸 틈도 없이 무너졌고, 그 공화국을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지키려 한 제다이는 역설적이게도 공화국의 의장인 펠퍼틴을 살해하려 한 역명을 쓰게 되었다. 은하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제다이는 한 순간에 ‘반역을 모의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전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클론 트루퍼들에 의해 처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간 제다이가 은하계를 누비며 수 백 년간 쌓아온 찬란한 명성과는 달리 무척이나 비참한 몰락이었다.
-야만적인-블라스터의 총성과 끔찍한 비명이 울리는 전장은 그간 겪어온 전쟁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블라스터의 총구가 제다이를 향해 있다는 점과 분리주의자가 아닌 제다이가 단말마를 내지르고 있다는 점만 빼면. 제다이의 상징이자 무기인 광선검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블라스터의 불빛 속에서 주인을 지키지 못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제다이들은 은하계 이곳저곳 뿔뿔이 흩어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도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포스를 사용하고 광선검을 다룰 줄 안다고 해도, 사방에서 날라 오는 블라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점점 좁혀오는 제국의 포위망 속에서 살아남은 제다이들은 끊임없이 포스를 향해 물었다.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 학살은 끝이 났는지.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상은 이 숨 막히는 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스는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도망치고, 살아남으라는 원초적인 생존법만 일러줄 뿐이었다. 이 끔찍한 학살 속에서 자신들의 동료가 몇 명이 죽었고,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는 물론 학살이 끝났는지 조차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사실은, 빛나던 영광은 추락했고 명예는 얼룩졌다. 유일하게 남은 치욕과 오욕은 살아남은 제다이들을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그들의 숨결이 이 광활한 우주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 * *
“…다녀왔단다.”
‘어서 와요, 마스터.’
“….”
오후 1시 17분. 벤은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무도 없는 허공에 인사를 하고 동굴 구석에 놓아둔 네모반듯하게 깎인 나뭇조각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벤이 머무르는 동굴이 사막 한 가운데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누군가가 이 이질적이고 기묘한 모습을 봤다면, 안 그래도 ‘미친 벤 영감’이라 불리는 평가가 더욱 안 좋아질 게 뻔했다. 물론 살짝 미친 벤 영감이 그 평가에 신경 쓸 리 만무했지만.
죽은 지 오래된 물고기처럼 생기도 감정도 없는 눈으로 나뭇조각만 바라보던 벤은 귀가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 몸을 움직였다. 만약 그가 굶주림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깊게 뿌리내린 나무 마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 이 동굴에 머무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사흘을 굶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저녁 막바지에 허기를 느낀 벤이 간신히 -약간 상한-반타 우유를 마신 덕에 숨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오후 2시 20분. 그는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대충 아무 곳에나 던져두었다. 거친 모래바람 속을 거닐었던 탓에 낡고 헤진 외투에서 모래 먼지가 일었다.
‘당신이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둘 줄은 몰랐네요.’
예전이라면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세탁기에 넣거나 그도 여의찮으면 힘들어도 손빨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 세탁기라는 문명의 이기는 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급품이었다.
더구나 사막은 원체 물이 귀한 터라 옷은 고사하고 씻을 물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씻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했다. 때문에 벤의 몸에서는 자와족도 진저리 칠 만큼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고, 만날 생각도 없었다. 벤은 몹시 우울했고, 때문에 지쳐 있었다.
‘마스터.’
한때, 협상가로 이름 날리던 시절에는 상대와 눈을 마주하며, 그의 눈을 읽고, 목소리와 행동의 변화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기분을 띄워주기 위해 노력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려워졌다. 현재 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고기를 썰고, 그 고기를 조금 훔쳐낼 뿐이었다.
지금의 벤은 상대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제 몸보다 훨씬 큰 후드를 뒤집어쓰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기에 벤에 눈에는 오로지 모래가 흩날리는 사막 바닥만이 시야에 잡혔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다고 해도 2초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 남의 눈을 보고도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행위는 그의 평판을 더욱 깎아 먹었지만, 벤은 그런 평판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벤은 우울했으니까.
우울은 기생충이다. 거머리처럼 사람에게 달라붙어 그의 모든 기력을 앗아가곤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울은 환시나 환청도 겪게 만들었는데, 그건 조금만 겪어도 벤을 더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모래사장에 서 있는 그리운 모습에 놀라 달려 나가도, 자신을 부르는 그리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도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은 분명 감정을 쏟았는데, 자신을 감정을 받은 이가 사실 현실이 아니라니…. 그 사실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짜증 났다.
그래서 벤은 무시하기로 했다. 아무리 자신을 애타게 불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모래사장에 그리운 모습이 서 있어도 섣불리 달려 나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기 싫었으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 한 가운데에서 쓸쓸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마스터.”
“….”
바로 지금처럼.
애초에 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 무시 말고는 없기도 했다. 하지만 무시도 꽤 힘들었다. 귀에 닿아오는 소리와 시야에 잡히는 인영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상당한 체력을 요구했다. 쓸모 없이 체력을 낭비하는 벤은 점점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금발 머리에 기름이 져도, 얼굴과 몸에 검댕이 묻어도, 옷에서 모래 먼지가 일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벤에게 중요한 건 죽지 않을 정도, 이를테면 자신의 주린 배에 음식을 넣는 것뿐이었다.
물론 주린 배를 달랜다는 말은 빈 속을 채운다는 의미이지 ‘밥 다운 밥’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게다가 벤의 요리 실력은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라 먹고 탈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마스터.”
오후 2시 34분. 검댕이 묻은 낡은 냄비에 거무죽죽한 죽이 끓어올랐다. 덱스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음식이라 그의 음식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괜히 덱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가 만든 죽에서는 입맛을 떨어트리는 쿰쿰한 냄새가 났지만 벤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퇴물이라 여기는 벤은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음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근사한 식사란 사치에 불과했으니까.
“마스터.”
오후 2시 43분. 벤은 동굴 안쪽에 난 작은 구멍으로 나가 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벤은 그곳을 ‘테라스’라고 불렀는데 만약 누군가가 그 말을 들었다면 비웃음을 살 정도로 한없이 초라한 장소였다. 그래도 제법 고도가 있어서 죽에 모래가 들어오지 않았고,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하기엔 이보다 좋은 장소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테라스를 비웃더라도 벤에겐 이보다 완벽한 테라스는 없었다.
지난 밤 거세게 불었던 모래 폭풍으로 모양과 위치가 변한 모래 산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도 모래가 사정없이 날리는 사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일 같이 변하는 경치는 따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연이 만든 광활한 경치를 보고 있으면 잠시 나가 머릿속을 헤집는 잡념을 잊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잡념도 폭풍에 날아가 어딘 가에서 모래 산을 만든다면 좋을 텐데….
벤은 경치를 감상하며 맛없는 죽을 억지로 입에 밀어 넣었다. 텁텁하고 알싸한 맛이 혀를 감쌌지만, 벤에게 식사란, 더 이상 맛을 즐기는 행위가 아니었다. 아마 이보다 더 맛없더라도 벤은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목으로 넘겼으리라.
“마스터.”
오후 3시 12분, 메마른 바람에 모래 알갱이가 파도처럼 흐르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여 그릇의 반을 비워갈 무렵이었다. 쐐액,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타이 시리즈 특유의 엔진 소리였다. 또 은하 제국이 감시하러 왔나 싶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예상대로 타이 시리즈의 스타 파이터가 보였다. 하지만 평소라면 벌써 지나갔을 스타파이터가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이 주변을 정찰하는 것 같았다. 뭔가 불길했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미치광이 영감 벤과 그가 사는 동굴과 흩날리는 모래와 쓸모없는 바위가 다였다.
불안함에 뒤틀리는 속을 부여잡을 때쯤, 꽤 떨어진 하늘에서 삼각꼴 모양의 거대한 함선이 눈에 들어왔다. 벤의 몸이 덜덜 떨렸다. 눈앞에 있는 함선은 벤의 끔찍한 기억 속 배경 중 하나이자 지금도 잊을 만하면 꿈에 나왔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감각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실 타투인에서도 제국의 함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일반 수송선이나 왕복선, 타이 스타파이터가 대부분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행성 하나를 통째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스타 디스트로이어 계열은 타투인 같이 별 볼 일 없는 행성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특히 임페리얼급 스타 디스트로이어 계열의 데바스테이터 호는 더욱이. 데바스테이터 호를 이끄는 주인은 이 은하계에 있는 행성 중 타투인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행성이자 그가 싫어하는 모래가 흩날리는 행성을 혐오했다. 그런 그가 여기로 올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벤은 서둘러 그릇을 챙겨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숨겼다고 해서 불안이 사그라지진 않았다. 벤은 내용물이 튀든 말든 댕그랑, 그릇을 대충 던져 놓았다. 벤은 동굴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의미 없는 걸음을 반복했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걸리적거리지만 가만히 있질 못했다.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었다.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스프의 쿰쿰한 냄새가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었다. 까득까득, 손톱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당장 게워내고 싶었다.
봤을까? 아니 못 봤을 거다.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약하지만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다. 모래가 가득한 사막에서, 점처럼 보이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보았더라도 무시할 터였다. 누가 사막 한 가운데에서 사는 미치광이 영감에게 신경을 쓸까! 자신의 포스만 누른다면, 자신의 포스만 지운다면 그는 지나갈 수도 있었다. 벤의 소망에 불과 했지만.
한참을 서성거리던 그때, 포스를 타고 흘러온 목소리에 벤은 분주하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췄다.
“마스터.”
그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공기가 목을 옥죄는 느낌이다. 슬금슬금 등을 타고 올라오는 불길한 감각이 벤의 목을 조름과 동시에 벤의 포스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쳤다. 벤은 불안한 듯 제 목을 긁었다. 정돈되지 않은 거친 손톱에 긁힌 피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벤은 자해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지금껏 환청이라 치부했던 목소리가 사실 환청이 아닌 진짜 목소리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호흡이 흐트러졌다.
아니, 아니야. 환청이다. 이건 늘 듣던 환청이다. 손톱 끝에 힘을 주고 목을 찌르며 자신을 타일렀다. 동굴에 도착했을 때도,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두었을 때도, 과거를 떠올릴 때도, 환청에 시달렸던 과거를 떠올릴 때도, 죽이 끓어오를 때도, 테라스에 앉았을 때도, 타이 시리즈 특유의 활공소리가 들렸을 때도, 방금 전도! 전부 다 환청이다! 환청이어야만 했다! 환청이지 않으면….
“마스터, 내가 왔어요.”
두 번째로 들린 목소리에 벤은 자해하던 목을 놓았다. 목덜미가 따끔거렸다. 목덜미를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로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을 뿐, 사실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들렸던 이 목소리는 절대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환청이 아니라는 사실을. 도대체 언제부터 환청이 아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잡힐 수는 없다.
벤은 힐끗, 동굴 구석에 자리 잡은 나뭇조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가 바로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이오피의 등에 올라타 사막을 내달렸다. 로브를 챙기지 않아서 모래 알갱이가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때렸다. 작열하는 두 개의 태양이 뿜어내는 뜨거운 태양열에 피부가 아릿했다. 하지만 벤은 멈출 수 없었다. 이오피의 고삐를 동아줄 마냥 꽉 잡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마스터”
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삶은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영양분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자신을 내던질 리 없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머리는 헛된 소망을 부둥켜안으며 가설을 내놨다. 혹시 물자를 보충하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미드림도 아닌 아우터림에서, 그것도 척박한 사막 뿐이라 개발조차 어려운 타투인에 저렇게 무식하게 큰 함선을 끌고 오겠는가? 타투인이 아무리 물자의 보고라고 해도 저 함선을 채울 수 있는 식량은 물론 함선 부품조차 없을 터였다.
자신의 가설에 자신이 반박하는 동안 하늘에서 레이저 발사음이 들렸다. 벤의 바로 뒤를 날고 있던 타이 파이터에서 쏜 레이저였다. 바로 벤을 노려도 될 텐데 레이저는 그와 떨어진, 하지만 피해는 줄 수 있는 곳에 떨어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리며 모래가 솟구쳤다. 벤이 타고 있던 이오피는 땅이 거센 기세로 울리자 발이 꼬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위에 타고 있던 벤은 어쩔 수 없이 이오피의 등에서 뛰어올랐다.
포스를 사용해 제법 높이 뛰어올랐다. 오랜만에 몸이 붕 뜨는 감각에 살짝 무서웠지만, 아래에 깔린 푹신푹신한 모래와 간만에 깨어난 본능 덕에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벤은 뒤를 돌아 이오피를 바라보았다. 벤이 타고 있었던 이오피는 한쪽 다리가 꺾인 채 모래사장에 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를 수습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벤은 눈을 꾹 깜빡이곤 뒤돌아 뜀박질했다.
아카니, 라는 미련 덩어리의 이름을 붙여준 이오피를 두고서.
빨리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푸석푸석한 모래에 발이 자꾸만 빠졌다. 한 발 간신히 빼내면 다른 발이 빠지는 건 물론 안 그래도 두려움에 힘이 없는 다리는 평소보다 배는 더 힘들었다. 전 모래가 싫어요. 그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벤을 뒤쫓는 타이 파이터는 다시 레이저를 쏘지 않았지만, 다행이라고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레이저를 쏜 타이 파이터 외에도 다른 스타파이터가 데바스테이터호에서 쏟아졌다. 곧장 벤 쪽으로 날아온 전투기는 그의 사위를 에워싸고, 벤의 속도에 맞춰 기만하듯 날고 있었다. 그 상황은 포식자가 피식자를 먹기 전에 가지고 노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날아오는 전투기에서 벗어날 수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벤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허억…. 헉,”
제 다리로 뛰는 상황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감각은 폐가 터져버릴 것 같은 괴로움에 무척이나 불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투인에 정착하고 약 한 달 동안 벤은 제대로 수련조차 하지 않고 하루하루 동굴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냈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마을에 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조금씩 팔아 돈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일주일 치 식량을 샀다. 그러다 거리에서 옛 제자를 연상케 하는 남성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굉음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미치광이 벤 영감이라는 별명도 그때 얻은 것이었다.
최근엔 간신히 우울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와서 일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일상을 보내는 건 아니었다. 딱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동굴로 돌아오면 멍하니 모래 산을 보거나 동굴 구석에 있는 나뭇조각을 보는 게 다였다. 그러니 근육이 내리고 체력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다.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세가 우스꽝스럽게 무너졌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다리를 멈추고 싶은 충동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지만 그때마다 머리 속에선 도망쳐야 하는 이유가 붉은 빛과 함께 불길하게 반짝거렸다.
“마스터”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저 목소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 * *
베이더는 모니터의 띄워진 작은 인영을 바라보다가 크게 확대했다. 깨짐 하나 없이 확대된 모습을 보자마자 베이더는 감동하듯 온 몸을 떨었다. 옛 스승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난 지 정확히 5년. 그동안 대답 없던 포스가 알려준 좌표는 정확했다. 그 5년 동안 왜 자신의 부름에 포스가 응답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했지만, 짐작이 가는 이유조차 얻을 수는 없었다. 물론 옛 스승을 시야 가득 담을 수 있는 지금, 그 이유가 무엇이던 상관없었다. 그저 포스를 향한 깊은 감사만이 남아있을 뿐.
오랜만에 보게 된 옛 스승은 무척이나 더러웠다. 옅은 금빛을 띄는 머리카락과 수염은 오랜 시간 관리를 받지 못했는지 푸석푸석했고, 거친 모래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된 탓에 모래알이 엉켜 있었다. 뽀얗고 보드라웠던 피부 역시 오랫동안 씻지 못한 것처럼 꼬질꼬질했으며 걸치고 있는 옷 또한 넝마라 부를 정도로 꾀죄죄했다. 그 어느 누가 보더라도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더러운 모습이었다. 베이더의 옆에서 곁눈질로 보고 있던 장교 또한 모니터에 띄워진 남자의 더러운 모습에 놀라 속으로 경악을 삼켰다. 저런 남자를 왜 제국 이인자씩이나 되는 베이더가 애타게 찾고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베이더는 모니터에 비친 그 더러운 모습을 물끄러미, 또는 멍하게, 혹은 집중하며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푸석하고 모래와 같이 엉켜 있다고 해도 머리색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햇빛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웠다. 피부 또한 먼지와 검댕으로 더러워졌어도 하늘을 닮은 파란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설령 그가 이보다 더 더러워졌어도 베이더는 그 모습조차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옛 스승과 떨어진 5년이라는 시간은 베이더의 눈에 씐 콩깍지를 더욱 두껍게 만들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검은 갑주와 투구를 쓰고 있는 베이더의 숨이 희열로 거칠어졌다. 무스타파에서 제 옛 스승을 어이없게 놓쳐버린 뒤로 단 한 번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를 잊기 않기 위해, 그를 되찾기 위해 그를 다시 제 품에 안기 위해 틈만 나면 그의 포스를 복기했다.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이 미칠지도 몰랐다.
베이더가 옛 스승의 포스를 복기할 때마다 현 스승이자 자신의 상관인 황제는 처음엔 그를 칭찬했다. 옛 스승을 놓쳤다는 좌절감에서 피어난 분노는 포스의 어두운 면과 잘 맞았는데 황제는 이를 무척이나 기뻐했다. 자신의 부하이자 제국의 황태자로 대접받는 베이더의 힘이 강해질수록 저항군에 본보기가 될 터였고, 이는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의미할 테니까.
하지만 그도 잠시 뿐, 베이더의 오비완을 향한 집착이 날로 커지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제는 황제의 명령을 뒷전으로 밀어버렸다. 베이더가 앞뒤 안 가리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 그로 인한 답답함에 황제는 베이더에게 포스 라이트닝을 남발하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황제의 분노를 받아주기엔 베이더의 힘은 너무 커져 버렸다. 비록 그의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베이더의 힘은 황제의 힘을 뛰어 넘은 지 오래였기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언리미티드 빠와’를 가볍게 튕겨내는 것으로 응대했다.
제 옛 스승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베이더는 늙은이의 노망에 쉽게 어울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황제가 이번 휴가를 준 이유도 그를 단단하게 잡아줄 고삐를 잡아 오라는 뜻이기도 했다. 즉, 이번 휴가는 휴가를 빌미로 한 <오비완 케노비 생포 작전>에 지나지 않았다.
황제는 베이더에게 오비완 케노비를 약속했지만, 그의 곁에 오비완을 남겨 두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오비완의 세치혀가 내뱉는 간악한 말에 겨우 손에 넣은 포스의 아들이 다시 포스의 밝은 면으로 넘어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곁에 오비완이 있었을 때가 황제의 말을 가장 잘 들었던 시기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상태로 두는 것보다 불안한 고삐라도 채워 두는 게 훨씬 나았다.
“마스터.”
베이더는 다시금 익숙한 호칭을 포스에 흘려보냈다. 타투인 상공에 진입했을 때부터 애타게 불렀던 자신의 목소리가 그의 옛 스승에게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스는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편이었으니 아마 잘 전해주리라 확신했다. 자신은 포스의 현신이자 포스가 점지한 선택받은 자였으니까. 그렇기에 휴가를 받은 첫날 포스가 오비완이 어디에 있는지 꿈을 통해 알려준 것 아닌가.
모니터 속 남자가 몸을 파득거렸다.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옛 스승은 잠깐만 파득일 뿐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져도, 달리는 폼이 점점 무너져 내려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치 사람의 다리로 이 거대한 함선을 따돌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베이더는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더 반항해봤자 소용없다는 경고임을 알려주며 강하게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있는 힘을 쥐어 짜내어 달렸다. 그 모습은 마치 고양이에게 도망치는 쥐와 닮았다.
“…고양이 같은 짓은 그만둘까.”
베이더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더 몰아봐야 조금 있다 있을 침대 사정만 더 어려워질 뿐이다. 베이더는 제법 인자했다. 자신의 옛 스승에게 침대에서 움직일 힘 정도는 남겨둬서 나쁠 것이 없으리라 판단했다. 아무렴, 5년 치를 다 받아내야 할 텐데.
“괴롭히는 건 여기까지다. 내가 직접 내려갈 테니 전용기를 준비해. 소대도 하나 풀어 두는 게 좋겠군.”
“베이더 경. 옛날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제다이 마스터입니다. 소대 하나로는….”
“뒷방 늙은이가 뭘 할 수 있겠나? 반항해봤자지.”
베이더의 비웃음 섞인 말에 장교는 ‘고작 뒷방 늙은이에게 데바스테이터 호씩이나 되는 함선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베이더가 쫓고 있는 제다이가 정말 ‘뒷방 늙은이’든 아니든 제다이 한 명에 데바스테이터호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인구가 고작해야 8만명에 불과한 타투인을 사람 하나 살지 않는 행성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일을 꾸미고 있을 반란군이 아닌 ‘뒷방 늙은이’를 위해 시간과 인력을 쏟는다니…. 뒷방 늙은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반란군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목숨은 하나이기에 가치가 있었다. 베이더의 계급은 자신보다 까마득한 위에 있었다. 까라면 까야지. 장교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집에는 토끼 같은 자식 둘과 여우 같은 아내가 있었다. 곧 돌을 맞이하는 둘째의 얼굴을 떠올리면 쓸데없이 말을 놀리기보단 함교를 떠나는 베이더에게 허리를 숙이는 것이 그의 생존율을 보다 높여주었다.
“준비가 끝나면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베이더경.”
함교를 나온 베이더는 쭉 뻗어진 기다란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뒷방 늙은이’를 잡기엔 너무나도 과한 함선이다, 라고. 아마 자신뿐만 모든 이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큰 함선에 수많은 인력을 태워서 타투인에 당도했냐, 라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였다.
이는 옛 스승을 향한 협박이다. 만일 자신을 거부할 경우 타투인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통보였다. 비겁하긴 해도 원래 시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제다이 규율에 충실한 옛 스승은 자신에게 잡힐 바엔 차라리 자결을 택할 사람이다. 그런 옛 스승에겐 타인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비겁한 방법이 가장 잘 먹혔다. 그는 자신의 고통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제다이 였으니까. 은하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제다이 였으니까.
베이더가 제다이 기사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그러니까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자유에 제한을 두는 구닥다리 규율이 너무 싫었다. 그건 아마 다른 제다이들과 달리 아나킨이 9살이 됐을 때 사원에 왔기 때문이라 확신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진 채 사원에서 자란 제다이들은 규율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건 아주 당연한 규율이자 우주의 진리였고 아나킨 스카이워커보다 더 어린 영링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나킨은 규율에 대한 답답함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그 반항으로 인해 자주 어겼다. 그때마다 평의회에 자신의 마스터와 함께 불려가곤 했지만 아나킨은 핀잔 좀 들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규율을 지킬 위인이 아니었다. 어기면 더 어겼지.
규율을 향한 반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줄어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규율에 반감을 가질 예정이지만, 지금은 그 고리타분한 규율이 무척이나 감사했다. 융통성 없는 자신의 마스터는 여전히 다 무너진 규율에 얽매인 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그건 베이더가 한 때 그의 옛 제자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만큼은 무너진 제다이 기사단의 유령이 그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베이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나 지금이나 귀찮은 성격이지만, 그 성격이야 말로 옛 스승을 대변하는 본질이다. 애초에 먼저 반한 사람이 지는 법이라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까지 사랑하는 제 잘못이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이 갑옷을 벗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옛 스승은 자신이 걸치고 있는 이 갑옷을 무척이나 혐오했다. 자신이 처음 이 갑옷을 입고 나타났을 때, 하늘을 닮은 파란 눈동자에 비친 혐오감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 아픈 상처였다. 이 갑옷 아래에 난 흉터는 제 옛 스승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곳에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C-3PO.”
“네 주인님!”
방 한 구석에 있던 금색 드로이드는 베이더를 무균실로 데려가 그의 갑옷을 빠르게 벗겨냈다. 기계로 이뤄진 팔다리를 시작으로 살갗 군데군데에 찍힌 화상 자국이 갑옷을 벗겨낼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공기 중에 드러난 피부가 따끔거리는 탓에 베이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일부러 낫지 않게 내버려 둔 상처와 차갑고 딱딱한 사지는 고통과 상실의 틈새에 심어 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비완을 잃고, 이 화상을 얻었던 5년 전 그날을.
갑옷을 다 벗긴 C-3PO는 그에게 그가 제다이 시절 입었던 옷과 수수하고 다소 투박한 로브를 입혔다. 그가 갑옷을 입은 뒤로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과거의 잔해이자 추억이 깃든 옷이었다. 의족으로 만들어진 다리는 기존의 다리보다 더 길어서 제다이 의복은 C-3PO가 그의 키에 맞춰 수선 해뒀지만, 로브는 수선하지 않았기에 발뒤꿈치에 닿곤 했던 로브의 끝은 발목과 종아리 사이에서 살랑거렸다.
C-3PO는 마지막 갈무리로 후드를 깊게 눌러 베이더의 얼굴을 그늘 속에 가렸다. 드로이드의 철제 손이 후드에서 떨어지자 베이더는 바로 개인실로 넘어왔다. 가슴이 초조하고 답답했다. 5년 동안 떨어진 그를 다시 본다는 생각에 심장도 떨렸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 지 그가 개인실로 넘어오자마자 개인실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특별한 기척도 아니고, 자신이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렸던 포스도 잠잠한 걸 보면 부하 중 한명인 듯했다. 베이더가 무심하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스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밖에서 노크를 하려던 참이었는지 장교 한 명이 손을 든 채 굳어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장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자신이 노크를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열린 문에 놀라긴 했지만, 개인실에 있는 베이더에게 보고를 올리러 올 때면 늘 겪어온 일이기에 경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베이더와 함께 있으면 항상 들렸던, 그의 이질적인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음성 변조를 한번 거쳐서 들렸기에 이질적으로 들리는 그 숨소리는 베이더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 숨소리가 전장에 울릴 때면 아군은 든든함을, 적군에겐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런데 마땅히 들려야 할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니…. 처음에는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저 멀리서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렇다면 이건 베이더에게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교는 어두운 방 안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방 안에는 끝이 종아리에 닿는 긴 로브를 걸친 인영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베이더인가?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블라스터에 손을 뻗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중, 베이더로 추측되는 인영이 말했다.
“준비가 끝났나?”
한참을 말없이 서 있는 장교를 흘긴 베이더가 무심하게 툭 던졌다. 음성 변조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목소리는 아직 앳되게 들렸고 제법, 아니 아주 많이 듣기 좋은 미성이었다. 고압적이고 상대를 약간 깔보는 말투만 아니었다면 장교는 눈앞의 남자가 베이더라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말투뿐만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자세 또한 자신이 다스 베이더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장교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베이더경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경례 자세를 취한 채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대답했다.
“네, 넵! ㅁ, 모시러 왔습니다!”
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몸은 주인의 명을 듣지 않았다. 장교의 말에 베이더의 노란 눈은 기다렸다는 듯이 깊고 강렬하게 반짝였다. 마치 야생의 짐승과 비슷한 눈빛에 장교는 서둘러 고개를 떨궜다. 눈을 마주치는 즉시 제 목이 달아날까 두려웠다. 그의 맨얼굴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를 바라볼 용기 따윈 나지 않았다.
개인실을 나온 베이더는 바로 격납고로 향했고, 그 뒤를 장교가 뒤따랐다. 베이더의 명령이 단순 위협에서 포획으로 바뀌자 선내는 매우 어수선했다. 몇몇 스톰트루퍼들은 격납고로, 다른 스톰트루퍼들은 무기고로 향했다. 바쁜 와중에도 호기심이 왕성한 스톰트루퍼들은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누군가에게 시선을 던졌다.
처음에는 이 거대한 함선에 누군가가 침입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뒤에서 그를 따라다니는 장교를 보면 그건 또 아닌 듯했다. 그를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몸을 불렸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후드를 벗기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무리 거대한 호기심이라도 베이더의 명령을 꺾을 수는 없었는지 바로 시선을 거두고, 제 할 일을 했다. 이 작전은 베이더가 가장 집착하는 작전이었다. 그런 작전에서 작은 실수라도 저질렀다간 신경이 곤두서 있는 베이더에 의해 내일이 사라질 터였다.
격납고에 당도하자 타이 시리즈 계열의 스타 파이터 열 대와 왕복선 한 대가 비어 있었다. 자신보다 한발 앞서 지상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이제 곧 그를 품에 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황제를 해치우고 그 옥좌에 앉아 자신과 스승을 위한 제국을 꾸릴 생각이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더는 잃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지상낙원을.
베이더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바로 자신의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시동이 걸린 베이더의 스타파이터는 곧바로 타투인의 상공을 가로질렀다. 허공에 수 놓인 붉은빛 꼬리가 대낮에도 훤히 보일 정도로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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