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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익사

이 개새끼들아

아비규환 by 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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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가 되어 오체가 분시된 그날의 고등어는

마젠타 비명을 내지르고 그대로 익사했다

찰나의 단말마도 아름답지 못하면은 응당

도마 위에 오를 것을 각오함이 마땅한 처사

듣는 이 없다면 파동에서 그칠 것이 비로소

측정 가능한 언어의 자격을 갖추게 된 날에

쩡쩡 빛나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오색찬란 컨텍스트는 유언을 정조준하고

혓바닥은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으며 춤을

추었다 침을 튀기며 몸소 사어를 대리했다

이를테면 고등어 몸은 매끄럽고 통통하며

등에는 녹색을 띤 검은색 물결무늬가 있고

배가 은백색이라거나 생후 이 년이면 몸의

길이가 사십 센티미터 정도의 성어가 되며

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는 것처럼

지극히 체계적으로 어질러진 근거를 두고

죄목을 지어 붙이며 저 울음은 위선이라고

외친다 주워먹지 못할 궤변은 토사물처럼

쏟아졌고 숭고하지 못한 끝은 외로되었다

死魚가 남기고서 떠난 말은 간단했다 다만

사랑받고 싶었다고 비린내 나는 몸뚱이를

향취에 절이지 않고서도 오롯하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그러나 해체되고

왜곡된 색의 변명은 死語에 지나지 않을 것

진정 바라는 게 있었더라면 그 따위 소음을

내지 말았어야지 횟감으로 태어난 주제에

감히 소리를 내니 칼을 맞지 후안무치한 것

본래 이 세상은 평등하게 비정한 법이거든

독백을 끝으로 유리 회칼은 생선 창자 끼어

붉게 찌든 치부를 박박 닦으려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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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못 던질 정도의 죄는 회칼에게 없었다

이 칼은 원칙이 폐사한 이 세상에서 정의를

바로세우는 성사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피끓는 다크 히어로 상식을 정의하는 본능

거룩하고 거북한 계몽 아래 입술을 끊었다

루머를 해명하지 않은 죄로 눈깔을 뽑았다

눈앞을 분간치 못한 죄로 아가미를 뜯었다

물위 호흡을 탐한 죄로 지느러미를 잘랐다

걷지 못해 흐느적거린 죄로 비늘을 벗겨서

소금을 치고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저민다

주방장은 다만 주어진 도리를 다할 뿐이다

시퍼렇게 나뒹구는 잘려나간 혓바닥을 본

뒤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통곡한다 슬퍼도

불의의 주둥이는 도려내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리라 고통은 예술의 뮤즈 또는 에센스

잔뜩 벼린 옳음을 골백 번 반추하던 연인은

재난 영화를 탐닉하며 혀를 섞는다 요컨대

신파만큼 농밀한 포르노는 없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고 눈물로 호소하던

회칼 하나가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말한다

묵념조차 어설픈 저 넙치의 작태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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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그리 개소리입니다 아니 사람의 소리입니다 까뒤집힌 입 안을 입술이라 부르는 종은 지구상에 인간뿐입니다 두산백과에서 고등어의 생태를 긁어오고 치덕치덕 발라놓자면 무슨 시인이라도 된 줄 아나 봅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일을 비인간적이라고 부르는 건 무슨 오만일까요 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를 셀 줄 모르는 작자는 참회록을 또박또박 읽습니다 겸손이라도 하면 뭔가 깨우친 것 같으니 고귀해 보이긴 합진대 악은 지극히 평범하며 내로남불은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입니다 토사물이 분수를 알아봤자 자아정체성이 확립된 토사물 말고 또 무어가 되겠습니까 이해가 안 되니 외우기라도 하는 것이지요 한 짝의 귀라도 남아 있다면 기꺼이 따라합시다 다함께 하나에 주제를 둘에 알자 하나 주제를 둘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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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소멸을 바라기에는 저지른 과오가

너무 많습니다 허나 단 한 가지 고백하자면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 있는 곳에는 발도 붙이지 않을 겁니다

이 나라의 교육은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아직 나는 용서하는 법을 알지 못하니까요

인과응보란 건 얼마나 편리한 허상입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렵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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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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