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택틱스 1

셀프구원이 안 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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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펜슬 런칭을 축하드립니다!

+ 일부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인류에게, 인간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는 당장은 알 수 없다.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는 재앙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축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축복일지 재앙일지를 결정하는 건 인류의 몫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인류가 아닌, 인간 개인의 문제도 똑같다.



6호선 삼각지역에서 내려서 13번 출구. 출구에서 나와 정면으로, 그러니까 큰 도로를 따라서, 6호선 녹사평역 방향으로 쭉 걷는다. 횡단보도 한 번, 두 번, 세 번. 조금 걷다 보면 곧 왼쪽에 전쟁기념관. 거기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중학생 때만 해도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범하게 군대를 다녀오신 아버지도 국방부는 가본 적 없다고 하셨으니까. 그 앞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가봤어도.

대한민국 국방부 건물을 지나 5분 정도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당연히 국방부 건물이 있는 입구를 지날 때 막는 사람이 있다. 신발을 한 쪽만 벗고 양말을 살짝 내려 발목을 보여주고 민증을 보여준다. 민증이 아직 없다면 학생증이나 청소년증도 상관없다. 그러면 들여보내주고 길 헤매는 것 같으면 안내까지 해준다. 혼자 갔든 함께 갔든 그 건물 앞에 도달하고 나면 누구든 심호흡을 들이쉬게 된다.

[ASG 대한민국 센터] [서울 지부]

Association of Sentinel and Guide 대한민국 센터 서울 지부.

그게 오늘 세림의 목적지였다.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기운을 받는다는 핑계로 대학교 도서관이 궁금해 몇몇 아이들과 서울에 위치한 명문대학교의 도서관에 무작정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꼭 그때가 생각나는 풍경이라고 세림은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당연하게도) 학생증이 없어 내부를 잠깐 보기만 하고 나왔지만. 다른 정부 부처 건물도 전부 이런 식으로 생긴 걸까. 법원이라든가. 평생 가본 적 없어 잘 모른다. 애초에 갈 일이 없어야하는 게 맞고.

널따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는 피곤해보이는 성인 여성이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데스크 안쪽에 무언가 정리하고 있는 성인 남자도 보였다. 한 명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성은 기계적으로, 하지만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묻는다. 뭐 때문에 오셨어요?


"이거 때문에요."


세림은 가방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내들었다. 안에 든 건 입영통지서였다. 보내진 날짜는 약 6개월 전. 입영 날짜에는 오늘의 날짜가 적혀있다. 장소로는 ASG 대한민국 센터 서울 지부. 그 아래로는 평범하게, 님 6개월 뒤에 군대 가셔야합니다. 안 오면 강제로 데리러 갈 거니까 순순히 제때 오세요. 짐은 이렇게 저렇게 하고 아무튼 오세요, 라는 내용이 공적으로 정갈하게 프린트된 공문. 그리고 마지막 즈음에 적힌 문장. 자세한 사항은 입영 당일날 알려드립니다.

직원은 공문을 한 번 훑더니 신분증 주세요, 한다. 그러면 세림은 아까 꺼내놓았던 민증을 내놓는다. 여성은 자리에 앉아 PC를 몇 번 조작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공문을 회수해가고는 사원증 같은 것을 하나 준다. 파란색 줄에 민증보다는 학생증 같이 생긴 것이 딱 사원증 느낌이다. 생각보다 군대라는 느낌은 없는 카드를 목에 건다. 들고 다니기는 번거로우니까. 몇 번 더 키보드를 두드린 직원이 민증을 돌려주며 여기요, 한다. 그러면 세림은 그걸 받아 지갑에 잘 넣는다. 곧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림이 보는 방향에서 데스크의 오른쪽을 가리킨다. 꼭 공항 게이트 같이 생긴 큰 문이 하나 있다. 그 앞에는 정수기, 커다란 TV, 시계, 쓰레기통 등등이 있는 휴게공간. 직원은 휴게공간 쪽을 가리키며 저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한다. 그러면 세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 감사합니다, 한다. 직원은 따라서 네, 하며 도로 자리에 앉는다.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세림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휴게공간의 길고 폭신한 의자에 앉는 순간까지 웃지 못했다.

여기에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올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세림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내내 이렇게 뚱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세상이 잘못되었고 운명이 얄궂게 군다고 해도 여기에 오고 앞으로 마주할 사람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달갑지 않다고 해도 누군가는 인연이 될 것이다. 얼굴을 좀 더 펴기로 마음먹으며 세림은 목에 걸었던 카드의 뒷면을 살펴보았다. 정사각형 QR 코드 아래에 스캔 시 안내문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라고 고딕체로 적혀있다. 그러고보니 직원이 카드를 건네주며 시간 날 때 QR 찍어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타이밍을 잘못 잡은 건지 아무도 없는 휴게공간에는 말 붙일 사람 하나 없어 세림은 핸드폰 카메라를 켜 QR 코드를 찍어본다. 곧 제법 아기자기한 색감의 페이지로 넘어간다. 이거 그래도 명색이 군대인데, 이렇게 아기자기한 페이지여도 되나. 국방부 산하 조직이라면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디자인의 페이지에는 정사각형 두 개가 떠 있다. 왼쪽은 [웹으로 보기], 오른쪽은 [PDF로 보기]. 잠시 고민하다 세림은 웹으로 보기를 누른다. 정말로 필요한 내용은 아마 직접 전달해줄 테니 여기에는 상황 파악을 위한 간결한 정보만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약 30초 후 깨닫는다. 

ASG 대한민국 - 서울 지부 16기 센티넬 가이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세림은 말없이 스크롤만 죽죽 내렸다. 쓸모있는 내용이라고는 첫날의 간략한 일정표였다. 일정표보다는 일정 순서, 가 더 적합할 정도로 순서만 적혀있는 일정표는 꼭 앞으로 펼쳐질 생활의 한 장 요약 같기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고 그 순서도 대강 알 수 있지만 언제 일어날 지, 어떻게 일어날 지는 알 수 없음. 그치만 대강 알고 있으니까 됐다. 뭐 그런 느낌의.

일정표와 안내문에 따르면 몇 십 분 정도 기다리면 숙소까지 이동하는 버스가 올 것이고, 그러면 그때까지 모인 사람들과 함께 그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면 미리 부쳐놓았던 짐이 있고, 간략하게 짐을 확인하고 같은 방을 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방송이 나오면 지정된 시각에 지정된 장소… 그러니까 운동장으로 모인다. 세림은 잠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복기하다 목에 걸린 카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앞면. 박세림Park Serim, 센티넬, 16기, 20XX.02, 한 줄 짜리 바코드, 그 옆에 ASG 마크.

뒷면. 아까 찍은 QR 코드, 아까 본 안내문, 그 아래에 작은 사이즈의 폰트로 적힌 세 문장.

* 이 카드는 양도, 대여, 판매가 불가능합니다. 적발 시 불이익을 받습니다.

* 이 카드는 모든 ASG 센터 내 한정, 신분증과 같은 효력을 지닙니다.

* 이 카드를 분실 시 즉시 ASG 센터에 신고하고 재발급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대략 6개월 전 날짜(아마 카드의 발급일자다), 구석에 ASG KR.

그래도 잃어버리면 재발급은 해주는 구나, 생각하며 카드를 손에서 내려놓은 세림이다. 발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한 사람이 건물 내부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데스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팔자 좋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은 아닐 텐데…. 가만히 그 사람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아 맞다 웃기로 했지 하면서 입꼬리 당겨 웃다가 문득 모든 게 새삼스럽고 아득해지는 세림이었다. 그래도 웃음은 여전히 걸린 채였다. 응, 웃어야지. 웃으면 좋은 일이 온댔어. 포지티브 포지티브.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정수기에서 작은 종이컵으로 물을 두 번 원샷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오니 아까 그 사람이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세림은 벌떡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머리 길이가 짧아서 남자인가 했는데 여성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태평해 보이고 좋게 말하면 밝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는 줄 알아서 긴장했다, 생각보다 건물이 넓고 군사시설이라는 느낌이 안 난다, 이 카드를 받으니 회사원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같은 가벼운 스몰토크를 나눴다. 역시 사람이랑 대화하니 기분 전환이 된다고, 세림은 생각했다.


잠깐 기분 전환이 되었다고 해서 오늘 하루를,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을 전부 기분 좋게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까의 여성분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통성명까지 했는데도 버스에 올라타니 도로 심란한 기분이 된 걸 보면. 버스는 10분에 한 대씩 와서 5분 가량 정차해 대기한 후 숙소로 이동한다. 다른 사람이 기사에게 물어보는 걸 세림이 지나가다 들어서 알게 되었다. 대략 15분에 3대씩,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14번, 그리고 정말 마지막 차 한 번. 마지막 버스에 타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지각 처리. 첫날은 안내할 사항이 많으니 무조건 제 시간 안에 도착해야하고, 지각 시 받는 불이익은 센터 측에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아까 본 웹페이지에 쓰여 있었다. 물어보면 다들 알려주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세림이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영락없는 일반 군대의 모습이었다. 소위 군색으로 통하는 칙칙한 초록색, 카키색 등의 컬러가 많지 않다는 점은 달랐다. 다른 부대는 이전에 일반 군부대였던 것을 바꿔서 쓰고 있지만 서울 지부와 가장 가까운 이곳만은 여러 용도로 쓰던 건물을 페인트칠 새로 하고 내부와 시설만 조금 바꿔서 숙소, 그리고 훈련장 등으로 쓴다고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수도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배정받길 원한다는 문장도 있었다. 이왕이면 새 건물이 깨끗하고 좋을 테니. 내부 청소는 어차피 우리가 하겠지만요.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렇게 말했었는데, 세림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어차피 청소는 우리가 할 텐데 뭐. 외벽 청소까지는 안 하더라도.


세림은 9시 20분 즘에 버스에서 내려 숙소… 그러니까 앞으로는 생활관이라고 불러야할 이곳에 9시 30분 즘에 도착했으니 집합까지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었다. 세림이 앞으로 머물 곳은 기존 군대 생활관 건물보다는 학교 기숙사에 가까워보이는 고층 건물 8층의 806호였다. 낮은 건물보다는 신식이고 깨끗해 함께 들어온 다른 사람들도 여기가 숙소라니 좋다며 연신 다행을 표했다. 그렇다 해도 내부는 군대 내무반과 거의 같아서 10명이 함께 생활해야 했고, 개인 공간도 크지 않았다. 짐을 너무 많이 부치면 둘 곳이 없을 테니 간략하게 필요한 것과 옷가지 몇 개만 부치라던 말은 사실이었다. 계절마다, 기분마다, 날씨마다 다른 옷을 즐겨입기를 좋아하는 세림에게는 슬픈 일이었지만 어차피 여기를 아예 나가기 전까지는 외출할 일도 많지 않을 테다. 여차하면 필요한 물품을 중간에 택배로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 정 불편하면 가족에게 연락해 보내달라고 하면 되겠지. 아니면, 휴가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휴가 때 들러서 갖고 와도 되었다.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하고 나니 20분이 지나있었다. 집합 시간까지는 아직도 2시간이 남아있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일찍 왔다며 잠시 후회했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딱히 해야 할 일도 없고 핸드폰도 수거해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 중 한 명은 이미 짐 정리를 끝내놓고 둘러보러 갔는지 자리에 없었고, 한 명은 함께 들어와 서로 각자의 짐 정리를 했는데, 방금 전에 말없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7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려니 어쩐지 잠이 오지만 자고 싶지는 않아 세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나간 사람을 잠시 기다려보고, 돌아오면 같이 나가자고 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혼자 나갈 심산이었다. 서 있는 채로 몇 분 가량 핸드폰을 보았지만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림은 나가기 전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방 밖으로 나섰다. 


입소식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이뤄졌다. 군대 입소식보다는 꼭 학교 입학식 같았다. 

한 번에 꽤 많은 인원이 입소하기에 입소식은 두 번으로 나뉘어 이뤄졌는데 그 중 세림은 1차, 그러니까 더 일찍 하는 식에 참가했다. 엄청나게 큰 운동장에 몇 명인지 가늠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서서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끝나기 전에 대략 백 명 정도 단위로 모였는데, 들어보니 앞으로 훈련을 받거나 휴가가 돌아오거나 할 때 쓰일 순서라는 듯했다. 그 순서는 공평함을 위해 나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센터에 등록한 순서대로라고도 했다. 그렇게 정한다고 해서 공평해지는 건가 싶었지만 나라가 그렇다니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이순으로 하는 것보다야 나아보이기는 했다. 

입소식이 끝나고 나서는 숙소, 그러니까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다음 입소식이 끝날 때까지 각자 짐을 정리하거나 같은 내무반 사람들과 자기소개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면 되고, 입소식이 전체 종료되면  생활관에서 중식을 먹고 그 이후부터는 자유시간이었다. 물론 석식 시간에는 당연히 다시 모여서 먹어야하고. 얼렁뚱땅 돌아가면서도 시간이나 순서는 딱딱 정해져 있는 게 과연 군대는 군대구나, 싶었다. 이것을 군대가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딱히 감이 오는 이름이 없는 탓도 있었다. 일단은 군대의 대체였으니. 앞으로 1년 6개월을 함께해야할 사람들과 처음 같이 먹는 중식은 그다지 맛이 없었지만 세림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밥은 잘 먹고 다니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배가 고팠던 탓도 있지만.

중식을 먹고 나서는 같은 내무반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지내게 될 부대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대부분은 훈련 시 쓰이는 건물이었고, 생활관 건물이 여러 채 있고 아주아주 넓은 운동장과 드물게 편의점이 보였다. 편의점은 이전에 군대에 있는 PX와 비슷한 역할이지만 엄청나게 싸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평범한 편의점처럼 보였다. 상주해있는 직원도 일반인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가 저 자리에 서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외에는 사령탑으로 보이는 아주 높은 건물이 몇 채 있었는데, 국방부 관계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군인들, 그러니까 우리들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겠죠. 누군가가 그리 말하자 세림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반기를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고는 볼 게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부대 치고는 주변에 보이는 게 없다는 점. 눈에 띄는 거라곤 사령탑 건물과 거의 사령탑과 맞먹을 정도로 높게 지어진 생활관 건물 몇 채. 높은 생활관 건물일수록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래요, 누군가 말했다. 일반 군대와 달리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높게 지은 거라나. 무너지지는 않겠으나 저렇게 높은 곳에서 살면 정말로 좋으려나, 의구심이 들었다. 펜트하우스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을 테니까. 고층 아파트 살던 사람이면 괜찮을지도. 실없는 생각들이었다.


하루 전체를 실없는 생각으로 채웠다.

꼭 다시는 안 올 것처럼 주어진 자유시간 동안에는 크게 할 일이 없었다. 내무반 사람들끼리 떠들거나 방구석 폐인처럼 하루종일 핸드폰 보거나. 맥북이나 패드 같은 휴대용 PC는 가져올 수 없었기에 별다른 취미거리를 가져온 사람이 아니고서야 모두가 핸드폰에 몰두해있었다. 어쩌면 앞으로 이렇게 느긋하게 핸드폰 볼 시간 따위는 없으리라는 걸 예감해서였는지도 몰랐다. 핸드폰의 자유가 보장될 뿐 어쨌든 여기는 각 잡힌 군대니까. 세림은 하루종일 봤던 축구 경기 영상을 또 보고, 하이라이트 보고, 안 봤던 거 보고, 그러다가 알고리즘에 뜬 전혀 상관없는 스포츠 경기 영상도 보고, 동물이 나오는 다큐도 보고, 노래도 듣고, 그랬다. 그러다보면 석식 시간이 다가왔고 기계적으로 일어나 줄을 서고 석식을 받아 해치우고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또 핸드폰을 만졌다. 그러면 곧 점호시간이었다.

불침번을 설 필요가 없는 것은 좋았다. 세림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자다가 깨우면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자다가 한 번 깨면 다시 쉬이 잠들지 못해서 하루 전체를 망치고 마는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에 흔하고 그런 사람과 같은 방에서 지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일 테다. 비상사태가 아니고서야 외부의 방해 없이 푹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은 정말로 그냥 군대보다는 좋았다. 그런게 가능한 것 역시 센티넬의 능력이라고 했다. 특수한 안개 능력을 가진 센티넬이 모든 생활관에 조치를 취하면, 대부분이 잠든 사이 움직임이 감지되면 그 센티넬이 알 수 있다 했다. 자다가 깨서 화장실을 가는 정도의 움직임도 포착해서 번거롭기는 하지만 침입자를 바로 잡아낼 수 있어서 몇 년 전부터 계속 그런 식으로 야간 경비가 돌아간댔다. 물론 물리적 경비 시스템도 구축은 되어있다. 사람보다야 느릴 뿐. 어쨌든 세림도, 그 누구도 자다가 강제로 일어나야하는 일은 없었다.

점호를 끝마치고 자리에 누웠지만 곧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다. 정신은 피곤한데 몸은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냅다 스쿼트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세림은 그저 눈을 감았다. 사람은 눈 감고 있으면 잠 온댔어…. 가만히 눈을 감고 내무반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여보지만 또 실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

이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 것도 어쩔 수 없는 생각. 세림은 생각을 지우려 낮에 본 축구 경기를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축구에 대해 생각하니 더욱 더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고야 말았다.


5%의 확률로 운이 나쁘면 꿈과 커리어를 한순간에 포기해야 하는 시대였다.


시작은 약 5년 전, 세림이 15살일 때였다.

훈련이 없는 날이었다. 세림은 식탁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저녁 메뉴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범하게 맛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채널을 돌리다 멈춘 뉴스 채널이었다. 아마 10번 대의, 공중파는 아닌 채널. 9시보다는 이른 시각이지만 뉴스를 하고 있었다. 앞에 속보나 특보가 붙지도 않은 채 앵커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고 평범하게 떠오른 헤드라인.

['나는 마법사다' 미국 들썩이게 한 영상… 진짜? 가짜?]

어떤 미국인이 올린 쇼츠 영상이 화제라는 내용이었다. 마치 마술처럼 아무 장치도 없이 불을 붙이고, 불길을 키우고 줄이고 하는,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영상.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의 진위를 가리려 미국인을 중심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영상을 돌려보고 나눠보고 프레임 단위로 멈춰보고 역재생해보고 하고 있단다. 언뜻 보기에는 정말 마법 혹은 마술처럼 보이는데, 마술이라기엔 트릭을 모르겠고 마법이라기엔 웬 21세기에 마법이냐 하면서 댓글에서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전문 영상 편집가에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까지 모여서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내고 있고, 글쓴이는 진짜 합성이나 편집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기자는 말한다. 해외 네티즌들의 가설과 추측을 몇 개 번역한 결과를 보여준 뒤에 아직 진위는 아무도 모릅니다… 라는 말과 함께 해당 뉴스는 끝났고, 부모님들 중 누구도 그 뉴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실 세림도 원래라면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 테지만, 이상하게 그 뉴스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었다. 이상하게도.


2개월, 세림을 포함한 모두가 그 뉴스에 대해 잊어갈 때 즈음.

훈련을 막 마치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온 거실, 저녁을 먹고 난 후 부모님이 틀어놓은 9시 뉴스. 이번에는 속보는 붙지 않았지만 특보가 붙은 헤드라인이었다.

[특보] [미국에서 자칭 '마법사' 자연발화 후 사망… 사상자만 25명]

2개월 전보다는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이었다. 쇼츠에 영상을 올리며 자신을 마법사라고 칭했던 그 미국인이 자신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마법'을 부리던 중 꼭 누군가가 불을 던진 것처럼 전신이 불타기 시작했고, 그 불길이 커지며 주변 사람들까지 휘말려 마법사 본인을 제외하고도 무려 9명이 사망하고 16명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행히 다치지 않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마법사의 몸이 아무런 매개 없이, 꼭 신체 자체가 매개라는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급하게 소화기를 가져와보고 물을 뿌려보기도 했지만 불길이 쉬이 잡히지 않았으며, 소방차가 도착하고 난 후에는 이미 사고가 벌어진 후라고 했다. 마법사의 몸에 붙은 불길은 소방차가 오고 나서야 겨우 진압되었는데, 불이 꺼지고 난 자리에는 오직 재만이 남아있었다는, 제법 소름이 끼치는 보도였다.

냉장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자리에 서서 그 뉴스를 끝까지 보았던 기억이 있다. '마법사'의 발화 원인도, 시체는 어떻게 된 건지 아무도 아는 게 없으며 긴급하게 과학수사대가 불이 꺼진 자리에 남아있던 재를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결과는 나온 바가 없단다. 사망자의 유족들은 절망하며 진상 규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멘트가 나올 때 즘에 세림은 2달 전 보았던 뉴스를 다시금 떠올렸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정말로, 예감이 좋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나자 '마법사'에 대한 뉴스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마법사'는 그저 시작이었을 뿐, '마법사'의 등장 이후 2개월간 전 세계 각국에서 자신이 초능력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유럽의 한 국가에서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아마 '마법사'의 자연발화로 인한 사고 같은) 해당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켜보기도 했으나 산 채로 연구하지 않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적이고, 대부분이 신체검사 같은 것에 협조적이지 않았기에 아는 사람들끼리만 무슨 일 나는 거 아니냐고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방치되던 '마법사'와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마법사'의 죽음으로 인해, 정확히는, '마법사'는 정말로 자연발화했으며 현장에는 누구도 불을 던지거나 주변에 가연성 물질이 없었다는 조사 결과로 인해 말 그대로 불이 붙었다. 또다른 마법사, 혹은 초능력자가 '마법사'와 같은 식으로 언제 어디서 주변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할 지 모른다는 공포가 조금씩 퍼지자 처음 연구를 시도했던 유럽의 국가를 중심으로 특별 연구팀까지 꾸려지며 그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약 2주의 연구 끝에 그들이 실제로 일반 인간과는 다른, 신인류 혹은 돌연변이라는 결론과 함께 그들에게는 '센티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개월쯤 지나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질 때 즘에는 더 충격적인 사실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약 한 달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센티넬들은 가히 100%에 가까운 확률로 '마법사'처럼 언젠가 자신의 '초능력'과 신체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폭주'라 명명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그럼 그건 잠재적 괴물 혹은 범죄자 아니냐며, 하나도 빠짐없이 색출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양심껏 자신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고백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들, 그리고 센티넬의 위험성을 생각해 느리게나마 모든 국가에 자진신고제가 도입되었다. 아직은 부실한 제도였다. 말 그대로 '자진신고'라서 본인이 잘 숨기고 혹여나 들켜서 주변인이 신고하지만 않는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3개월, 연구팀은 무려 세 달간의 연구 끝에 자진신고제를 대체할 방법을 찾았다. 그게 센티넬 검사였다.

센티넬 검사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피검사와 비슷했으나 센티넬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었다. 검사는 여태 자진신고한 센티넬이 대부분 10대라는 이유로 전 세계의 10대들에게 반강제로 시행되었다. 아이들의 의사는 없었다. 방치했다간 또 무고한 사람들이 죽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게 전 세계, 그리고 국가들의 통일된 의견이었고, 아이들은 발언권이 없었다.

검사가 발명되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자진신고제는 곧 검사 후 등록제로 바뀌었고, 센티넬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돌연변이, 혹은 신인류로 분류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센티넬의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신체 반응을 평범한 사람처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 역시 몇 달간의 연구 끝에 센티넬들의 신체 반응을 원래대로 이끌어준다 하여 '가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와 함께 가이드 검사가 발명되었고, 센티넬 검사와 합쳐져 SG 검사로 불리게 되었다. 센티넬과 마찬가지로 가이드도 검사 후 등록이 원칙이었고, 몇 개월 뒤에는 이들을 따로 관리하기 위한 국제기구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즈음에 세림의 센티넬과 가이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늘 그랬듯이 꿈을 향해 달려가고 필드에서 공을 차고, 새 교복을 입고 중학교가 아닌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날들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5%만이 모여있는 곳에선 꿈이 포기 당한 것에 슬퍼할 겨를은 없다. 그래야 했다.


입소식 다음 날 아침, 앨런은 기상나팔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잠자리가 바뀐다고 잠에 못 들지는 않지만 어쩐지 편히 잠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낯선 곳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나고 자란 나라도 아닌, 타지라서 더더욱 그랬다. 당장 이 안만 해도 자신 외에는 죄다 한국인이었으니까. 앨런은 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눈만 뜬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다 시선만 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물의 고층이라 그런지 아침 햇빛이 일찍부터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기상 나팔이 울리기까지 몇 분이나 남았을까. 앨런은 그저 가만히 누워있었다. 머리맡에 핸드폰이 있었지만 딱히 보고 싶은 것도 볼 것도 없어 다시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늬를 바라보고 있자니 앞으로 여기서 보내야하는 시간이 자그마치 1년 반이라는 게 떠올라 잠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어제도 하루종일 걱정을 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타지인이고, 여기는 타지고, 처한 상황도 익숙한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한국에 지내며 한국어가 많이 늘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언어의 장벽마저 있었다면 정말로 겉돌았을 것이다.

걱정을 해봤자 무엇하나. 걱정한다고 모든 게 잘 풀리지도 않는데. 기상나팔이 울릴 때까지 그냥 눈이나 감고 있기로 생각하며 앨런은 다시 눈을 감았다. 몸에 닿는 이불의 촉감이 유난히 낯설었다. 덥지도 않은데 환기가 하고 싶었다. 다시 잠들고 싶었다. 자고 싶었다. 여기 말고 집에서.


입소식 날이 아닌, 그러니까 앞으로 지속될 하루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단조로웠다. 7시에 전원 기상 후 아침 점호를 한다. 간단하게 조깅을 하고 곧장 조식을 먹는다. 조식을 먹고 난 후에는 다 같이 교육을 받는다. 교육의 내용은 점차 바뀔 것이며 지금은 초반이니까 학교 수업처럼 앉아서 듣는 거라고 강사는 말했다. 교육을 3시간 정도 받고 나면 중식을 먹고, 3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고 나서는 오후 교육을 받는다. 오후 교육은 오전 교육보다 1시간 더 길기에 중간에 쉬는 시간이 한 번 있다. 오후 교육이 전부 끝나면 석식을 먹고, 그 이후부터 점호 시간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자유시간에는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동을 하든 부족한 잠을 자든 다른 사람들과 떠들든 청소를 하든, 저녁 점호 시간만 지킨다면 무얼 하든 상관없다.

앨런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가져온 책을 잠시 읽다가, 집중이 안 되어 내려놓고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다가, 끝내는 오늘 교육에서 들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할 겸 외투를 챙겨입고 건물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강사가 오늘부터 하는 교육은 앞으로의 생활에 꼭 필요한 내용이며 두 번 알려주지는 않으니 반드시 내무반으로 돌아가면 다시 생각하고 기억해두라고 일러둔 것을 앨런 나름대로 실천 중이었다. 입소식 이후 첫날이라 그런지 이걸 글이나 텍스트로 옮겨서 정리해봤자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건물 밖은 앨런의 예상보다는 사람이 많았다.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편의점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저처럼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걸으며 부대 안을 다시금 둘러보는 사람도 있었다. 간혹 저들과는 다른 옷을 입은, 누가 봐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기도 했다. 놀라울 정도로 넓지만 놀라울 정도로 볼 게 없어 앨런은 가만히 건물들이나 심어진 나무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에 올려다보았다. 조금씩 걸음이 느려진다. 

늦겨울의 저녁 하늘은 아름답게 어두운 색이다. 서울은 밤이 되어도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더니 정말이었다. 앨런의 눈에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저의 본국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하늘, 그리고 아직 보름달은 되지 못한 밝고 둥근 달. 둥글다기보다는 뭉툭한 모양에 가까운 달은 한낮의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앨런은 자리에 멈춰 서서 밤하늘의 달을 향해 팔을 뻗었다가 곧 손을 내렸다. 내 상황은 이렇게 바뀌었는데 밤하늘과 달은 이전과, 어릴 때와 같은 게 신기하면서도 약이 올랐고,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나는 변했는데 왜 달은 그대로지, 하는 마음과 나는 변했어도 달은 그대로라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렇게 목이 아프도록 달을 바라보던 앨런은 고개를 내려 다시 정면,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변했어도 달은 그대로라 다행이라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두려웠지만 달은 변하지 않았듯 나 자신이 변한 건 아니니까,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나았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도 없는데 우울해져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보다는 안 힘드니까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지내자. 그러면 언젠간 끝나고, 괜찮아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겠지.


'군대'는 정말로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같은 내무반의 한국인들도 그렇게 말했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는 할 만 하고, 이전의 '군대'보다도 너그럽고 자유로운 것 같다고. 앨런은 원래 한국의 군대를 겪어본 적이 없으니 그저 그들의 이야기로만 판단해야 했지만, 이야기만 들어도 공감은 어렵지 않았다. 주변 사람한테 들은 건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을 종합하자면 원래 한국의 군대는 남자만 갔다고 한다. 가기 전에는 머리를 밀어야했고(빡빡이라고 하는 것을 앨런이 이해하지 못해 물어보았다), 지급되는 군복을 필수로 입고 생활해야했으며 입대 시기를 미룰 수도 있었고 아예 면제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핸드폰은 지정된 시간에만 지급되고 사용할 수 있었으며, 월급이 따로 지급되었고,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휴가 일수가 조금 더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슷한 나이대의 같은 성별들끼리만 있으니 부당한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고 군기도 엄청났다고… 한다.

앨런은 그 말들을 그저 눈만 깜빡이며 들었다. 어색하게, 모든 말을 알아들은 척 그렇구나, 힘들었겠네요, 그래도 우리는 다행인 거네요, 하고 맞장구만 쳤다. 누군가가 미국은 어때요, 물어보았지만 미국에서 군대를 가본 적이 없었고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기에 죄송해요, 저도 잘 몰라서, 하고 대답해야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짧게 아하, 하고는 원래 하던 얘기로 돌아갔고 앨런은 또 멍하니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만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 이라. 정말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조용히 피어오르는 의문을 슬쩍 치워두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같은 내무반이건 아니건, 사람들의 '원래 군대' 이야기도 2주 정도가 지나고 나서는 레퍼토리 고갈로 빈도수가 급격히 줄었다. 새로운 환경, 공간, 상황에 차차 적응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2주 동안은 오전이고 오후고 앉아서 수업처럼 교육을 받았다. 꼭 운전면허 학원 가면 처음에 듣는 수업 같다고 앨런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앉아서 듣는 교육의 3할은 앨런을 포함한 모두가 여기에 있는 이유와 목적, 3할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내용들이었고 나머지 4할은 여기에 모인 모두에게만 당연한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흥미가 없어보였고 심지어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마지막의 내용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데다가, 대놓고 자는 게 아니라면 별 말 없이 넘어가서였다. 그도 그럴 게, 종종 강사도 지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지루한 교육은 그렇게 끝났다. 듣는 동안 할 게 없어 앨런은 나눠준 노트에 기억해야할만한 것들을 정리해 적었다. 정갈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글씨로 가득한 노트의 한 켠에는 낙서나 잡담도 많았다. 우리 집 고양이들, 한국에 처음 올 때 탔던 비행기, 여기 처음 오던 날 탔던 버스, ASG 로고. 스스로도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을 때는 교육에 집중했고 필기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형광펜도 쓰고 싶었지만 그런 건 주지 않았기에 할 수 없었다. 형광펜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단지 심심했을 뿐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듣는 교육이 끝나고 난 후에는 지나다니면서 밖에서만 본 훈련소 건물의 내부 훈련실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전형적인 대학교 강의실처럼 생겼던 이전 교육 장소에 비하면 훨씬 넓고 탁 트인 공간이었다. 그때부터는 분위기가 조금 살벌해졌다(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빡세졌다). 강사…가 아니고 교관들의 눈빛부터가 달랐다. 그런 흉흉한 눈빛을 하고선 가장 먼저 한 게 스트레칭과 국민체조인 건 조금 의외였다. 

거기서는 호신술을 비롯하여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배웠다. 아직 추위가 가시려면 한참 남은 한국의 2월, 어떤 날은 다 같이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고 팔굽혀펴기도 했다. 처음에 교육에 집중하지 않았던 몇몇은 이게 무슨 똥개훈련(이라는 말도 앨런은 처음 들었다)이냐고 불평했으나 이게 교육 때 말했던 기초 체력 단련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대개 군말 없이 따랐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는데, 앨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솔직히 진짜로 지루하긴 했으니까. 교관들의 날카로운 눈빛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병을 부리는 사람들에게만 향했지만 모든 교관들의 기본적인 눈빛 자체가 날이 서있었다. 꼭 모두를 감시하는 것처럼. 체력 단련은 첫 교육과 비슷하게 2주 정도 이루어졌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운동하니 밥맛도 살아나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다고 말을 바꿀 즈음이었다. 앨런이 보기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처음에는 불평하고 의심하고 투덜거리다가도 어느 정도 적응되면 수긍하고 잘 따랐다.

그렇게 어느덧 1개월이 지나 시기상으로 봄이 왔을 때 첫 신체검사가 이루어졌다. 군대에 들어와서 첫 신체검사였지만 그 누구도 낯설어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전에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거부했다.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이루어질 신체검사 역시 첫 교육에서 안내된 사항임에도 그랬다. 나쁜 기억이 떠올라서 싫다, 이미 한 적 있는데 왜 또 해야하냐, 역시 여기서도 나를 괴물 취급하는 거 아니냐, 나는 멀쩡하다. 첫날 그렇게 몇 십여분간 반발하던 몇몇 사람들은 단체로 다른 곳으로 인솔되었고 검사실 안에 남은 사람들부터 검사가 진행되었다. 인솔되었던(끌려갔던) 사람들은 10분 정도 후에 다같이 돌아왔는데, 따끔한 경고라도 들은 것인지 모두 저항 없이 검사에 응했다. 그러고 보니 태도가 불량하면 불이익이 있다고 했었다. 처음 몇 번은 경고 수준으로 넘어가지만, 횟수가 누적되거나 강도가 심하면 휴가 일수나 외출 횟수가 깎인다. 심한 경우에는 전역이 뒤로 미뤄진다. 아마 이걸 한 번 더 일러주지 않았을까. 

신체 검사는 며칠 동안 이루어졌다. 인원이 많아서였다. 검사실은 세 개가 있고 검사 자체도 금방 끝나는데도 며칠은 걸렸다. 대신 신체검사가 이루어지는 며칠 동안은 따로 교육이나 훈련은 없고, 검사 결과와 함께 센터에 소속된 의사의(의사가 아니라 연구원일지도 모른다) 조언에 따라 운동을 하거나 훈련을 더 하거나 하면 되었다. 별다른 조언이 없다면 통으로 자유시간인 셈이지만 부대 밖으로 나가는 건 금지였다. 만약 결과가 영 좋지 않다면 추가 검사를 받아야했다.

앨런은 신체검사가 시작하고 이틀 차에 검사를 끝마쳤다. 별다른 조언은 없었다. 신체적으로 문제는 없고, 아직도 적응이 힘들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말한다고 해서 센터 측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괜찮다고 말했다. 남는 시간에는 훈련실에서 운동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가져왔던 책도 읽고 핸드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3월은 아직도 춥고 꽃이 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신체검사가 모두 끝난 날, 앨런은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폰으로 연락은 자주 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문자나 메신저를 주고받았고, 주말에는 통화를 했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있고 점호 시간도 있다보니 얼굴을 바라보며 마주앉은 것처럼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십 분 남짓한 시간도 앨런에게는 충분했다. 원래도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앨런이지만, 여기 들어오고 나서는 유독 더 가족 생각이 났다. 아직 완벽히 적응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였다.

편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마친 날마다 쓰기로 했다. 건강을 걱정하니 신체검사 결과를 꼬박꼬박 알려줄 겸 편지를 보내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문자도 할 수 있고 통화도 할 수 있는데 굳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편지만이 전할 수 있는 어떤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래 고민하고, 타이핑이 아니라 직접 쓴 글씨만이 전할 수 있는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문자나 통화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전해지지 않을 어떤 마음을. 어떤 외로움을. 어떤 공허함을.

다 쓴 편지는 잘 접어 편지 봉투에 넣은 후 옷 사이에 끼워두었다. 내일 남는 시간에 담당자에게 전달하면 끝이다. 그 뒤에는 담당자가 알아서 사전에 지정했던 주소로 편지를 보내주고, 답장이 오면 전달해준다. 점호를 마친 후 자리에 누운 앨런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년 5개월.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이전과 같은 얼굴로 비행운을 바라보게 될 수 있을까. 여태 해온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후회하고 싶어서 한 선택은 하나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어떤 선택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른이 된다는 거랬다.


비행기가 뜨기 딱 좋은, 드높은 하늘이 펼쳐진 가을. 꿈을 한순간에 포기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17세, 앨런이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가이드 검사 발명 후 SG 검사의 개정과 국제기구, 그러니까 지금의 ASG의 출범 이후 센티넬과 가이드들은 세계에, 사람들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자연스럽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일반인들은 그들을, 특히 센티넬을 두려워했다. ASG와 각국 정부가 센티넬과 가이드는 그저 일반인과 몸, 그것도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 내부 신체 기관이나 피의 흐름 같은 것이 조금 다를 뿐 여태까지의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누군가는 그들을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배척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끝나고 검사가 발명되었어도 왜 그들이 일반인과는 다른 건지 명확한 이유를 밝혀낸 연구팀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다름에 이유가 없을 때 돌연변이라고 불렀으므로 그들은 돌연변이였다. 이유가 있었다면 진화나 적응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센티넬에게 향하는 시선은 더더욱 곱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주어진 능력과 마법사가 온몸으로 보여준 폭주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ASG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일반인들을 달랠 때, 그 불안감에 정말로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중국에서 한 센티넬이 테러 시도… 인근 경찰이 연행]

중국에서 시작한 센티넬의 테러 시도는 소문처럼, 밀수품처럼 다른 나라로 퍼져나갔다. 다행히 테러를 시도한 센티넬들의 능력이 대개 강하지 않거나 제어가 미숙해 많은 사망자가 나온 적은 없지만 일반인도 가이드도 아닌, 센티넬이 테러를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에겐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테러만큼 언급이 되지는 않았지만 절도, 상해 등 다른 범죄 시도가 꾸준히 발생한 것도 한몫을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센티넬들의 범죄 시도를 우려했고, 결국 ASG는 짧은 고민 끝에 본래 있던 기술인 베리칩을 활용, 모든 센티넬에게 이를 심기로 결정했다.

베리칩은 이전에도 위치 추적, 프라이버시 침해, 전자 감시 등의 논쟁거리를 동반하고 있었기에 센티넬들은 곧장 부당함을 표했다. 센티넬이라는 이유만으로 베리칩을 심어야한다는 건 당연히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타당했고, 실제로 몇몇 인권 단체에서는 센티넬들을 두둔했지만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닌 일반인의 수는 세계 인구의 90%를 훌쩍 넘었기 때문에 다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ASG의 결정이었다. 세계 인구의 10%도 안 되는 센티넬들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10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ASG가 예상하지 못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는 것. 센티넬 베리칩 의무 이식 도입 이후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중동의 분쟁 지역에서 몰래 센티넬과 가이드를 모아 상대 지역을 공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격 시도를 알아챈 직후 인근 여러 국가가 저지해 전쟁으로는 번지지 않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센티넬과 가이드를 병력으로 쓸 때의 위험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차치하더라도, 센티넬을 전쟁 병력으로 쓴다면 일반 군대보다 더 위협적인 군대가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당시 17살이었던 앨런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17세의 앨런이 짐작하지 못했던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러한 위험성이 세계적으로 거론될 즘이면 누군가는 이미 그것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끝마치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우스운 사실은, 국제사회도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나머지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예상은 했어도 대비책을 세울 시간이 없었다. 그러므로 인구가 가장 많으니 자연스럽게 센티넬과 가이드도 가장 많았던 중국에서 센티넬로만 이루어진 군대를 꾸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사실상 통보를 했을 때 국제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누군가는 인권과 자유 침해를 이유로 규탄했고 누군가는 일반인과 다른 그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동조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도 중국의 병력은 점점 더 위협적으로 커져만 갔고 그에 따라 몇 국가들은 진작에 같은 방식으로 센티넬과 가이드를 병력으로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였다. 한 쪽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따지는 동안에도 어떤 센티넬은 폭주를 했고 어떤 일반인들은 다쳤으며 어떤 가이드는 생판 처음 보는 센티넬을 진정시켜줘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누군가는 센티넬과 가이드의 등장을 재앙이라 불렀다. 치료제 없는 바이러스, 분란의 씨앗, 인류를 갈기갈기 찢어놓기 위해 악마가 내린 선물.

앨런은 사실 이런 이야기에 온 관심을 쏟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16살, 진로를 위해 한국행을 결심한 형을 따라 가족과 다함께 한국에 온 앨런은 아직도 적응 중이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굳이 따라오긴 했지만 생각처럼 모든 일이 쉽지는 않았다. 본국과는 다른 분위기, 문화, 사람들, 언어, 정서, 태도, 교육.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소화하다보면 하루가 갔고 한 주가 갔고 한 달이 갔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한국에 같이 온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 형에게 솔직하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굳이 여기서 있어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스무 살이 되고 나면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만 해도 앨런은 말한 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SG 검사의 의무 실시는 웬만한 나라는 전부 적용되었다. 나라 이름을 댔을 때 알만한 나라라면 어디든. 올림픽에 나올 만한 나라라면 어디든.

검사 날이었던 금요일은 원래는 가을 체육대회 대비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평범하게 수업이 있는 날을 빼서 하자니 몇몇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했고 체육대회를 취소하고 하자니 학생들의 반발이 심해서 연습 날로 정해졌다. 체육대회에 진심이었던 일부 아이들 빼고는 불만이 없었다. 체육대회 연습이나 SG 검사나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누군가에겐 피곤한 일인 건 같았으니까.

앨런은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3학년부터 시작해 학년 순서대로, 하루에 한 학년씩 검사가 진행되었다. 수요일은 3학년, 목요일은 2학년, 그리고 금요일이 1학년. 검사 결과는 빠르면 주말, 늦으면 다음 주쯤에나 나온다고 하니 아직까지는 어수선하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앨런이 다니던 학교에는 이미 센티넬 혹은 가이드로 밝혀진 학생도 존재는 했으나 그런 학생들은 애초에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으니. 검사를 마친 아이들의 하소연이나 미리 하는 걱정을 들어주는 일은 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으레 하는 신체검사를 받는 마음으로, 학교 차원에서 진행하는 예방 접종을 맞는 기분으로 임했다. 앨런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막상 검사를 받기 위해 선생님 앞에 섰을 때는 엄청나게 떨렸었다. 설마 그 10%도 안되는 비율에 내가 포함되겠어,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검사를 받고 있자니 내가 그 소수가 될까봐 두려웠다. 앨런은 이미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다수'가 아니어서 더 그랬다. 아직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도 못하는데. 너도 언젠가 막 날뛰면서 우리를 죽이는 거 아니냐고 하면 뭐라고 변명하지. 뭐라고 설명하지.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떨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 여기는 대만도 아니야. 여기는……. 검사 끝났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목소리에 잘린 생각(이라 쓰고 걱정)은 다행히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검사가 끝나고 나올 때 칸막이 너머에서 같이 검사를 받던 아이가 별거 없네~ 하면서 반으로 달려 돌아가는 걸 보았다. 그러네, 별거 없네.

앨런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한국인이 아니라는 걸 빼면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설마 10%도 안 되는 그 숫자 안에 드는 사람이 될까. 거기에 들게 된다 하더라도 센티넬은 아니겠지. 만약 센티넬이라면… 가장 낮은 등급이겠지. 최대한 평범을 상상했다. 그래야 지금의 평범한 일상이 깨지지 않을테니까. 특별해지기 싫었다. 특별해져서 모든 게 바뀔 바엔 평범하게 무난하게 지금까지 하던 대로 살고 싶었다.

검사 결과는 문자로 먼저 왔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숨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닌 일반인이라면 문자만 가고 끝이지만 센티넬이거나 가이드일 경우 주소지로 안내문이 발송된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언제까지 인근 행정기관에서 등록을 마치라고 안내 문자와 전화가 온다. 원래라면 일반인들은 모르는 게 맞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퍼진지 오래였다. 발설하면 안 되는 내용도 아니었다. 허위사실 유포는 신고가 들어가면 벌금을 내야하긴 하지만.

평소에 앨런은 핸드폰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지만 검사가 끝나고 문자가 오기 전까지는 어쩐지 초조해서 자꾸만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다. 검사가 별거 없는 거지 이 검사의 결과는 별거 없지 않았다. 센티넬이든 가이드이든 일반인이 아니라면 좋지 못한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센티넬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앨런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도 센티넬에 대한 억압은 더 심해질 것이 뻔했다. 물론 앨런 본인이 센티넬들을 나쁜 시선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된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내게 악의가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악의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건, 앨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검사 날은 기억이 생생한데, 정작 문자를 받았던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쉬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저는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보지 않으니까. 검사 결과 가이드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센터에서 알려드리며 해당 일시까지 인근 행정기관에서 등록을 완료해주세요. 등록하러 가실 때는 신분증을 지참해주시고……. 현실감 없는 문장들이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계속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있던 건데, 막상 기다리던 문자를 받으니 모든 게 아무래도 좋을 듯한 기분이었다. 센티넬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고개를 숙이며 앨런은 그리 중얼거렸다.

등록은 바로 다음 날에 했다. 엄마와 함께였다. 수업은 4교시까지만 듣고 조퇴한 후 집에서 밥을 먹고 갔었다. 형은 일반인이었으니 엄마로서도 등록을 위해 행정기관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앨런이 자신은 일반인일 거라고 믿고 있던 이유기도 했다. 형은 아니었으니까. 근데 왜 나는. 그런 말을 삼키고 있으면 엄마는 손을 꼬옥 잡으며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다독여주셨다. 앨런아, 넌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야. 나는 단 한 번도 이상하다는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는데도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그치만 특별하다고 해도 넌 여전히 너란다. 알겠어요, 엄마. 그때 앨런은 다행히도 가이드인 자신을 금방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형도 가이드라는 이유로 앨런을 다르게 보거나 대하지 않았다. 우리 막내한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마법이 생긴 거야. 가족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앨런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나.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마법을 쓸 수 있는 나.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괜찮았다. 여태까지 그랬듯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17세의 앨런이 짐작하지 못했던 것 중 두 번째는,

세계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가이드를 평범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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