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연성

Bar 「 」

VOID 플레이 탁 연성

흘러가는 곳 by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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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팬 시나리오 【 VOID 】(w.myao) 플레이 탁 기반 2차 창작으로, 【 VOID 】 의 전반적인 스포일러 내용을 포함합니다

BGM / https://youtu.be/SX_ViT4Ra7k?si=u7yL-Okmn5SuBuh1


2051년 10월 15일 PM 07:50 / 경시청 『드로과』 사무실 ▶▶▶▶▶▶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VOID」가 도입 된 이래로, 박봉을 주며 부족하디 부족한 인력을 사명감 하나로 움직이던 정부 부처의 직원들은 마침내 숨 쉴 틈을 얻게 되었다. 안드로이드는 인간보다 뛰어난 연산능력과 힘으로 수없이 쌓여가던 일거리를 도왔으며 휴식조차 인간의 절반이면 충분하므로 필요하다면 더 오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최근에는 몇가지 사건으로 인해 안드로이드에게도 권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인간의 여가 시간을 위해 안드로이드에게 과로를 시키는 것이 오래 전의 노예제와 다를 것이 없다며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공공기관에 닿기 까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다만 그러한 정부부처 중에서도 그 어디보다 안드로이드의 권리에 민감하며, 또 남들이 얻는 휴식조차 아까워하며 인간이나 안드로이드나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야 하는 부서가 하나 있으니…….

“후우…….”

사무실에 지친 한숨이 울렸다. 짧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내린 청년이 얼굴을 연거푸 손으로 쓸어내리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쉰 청년이 한 손에는 여전히 얼굴을 묻은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무언가를 찾듯 책상 위를 더듬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옆을 살폈다. 손을 내리자 앳된 얼굴 위로 얼굴을 크게 가로지른 흉터가 드러난다.

시야를 돌리고 나니 원하던 텀블러는 쉽게 잡을 수 있었으나, 그 안을 살펴본 청년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두 시간 전에 공안조사국에서 운영하는 사내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가득 담아왔는데 안은 텅 비어있었다. 아닌가, 세 시간전이었나……? 지금이 몇 시지?

청년이 머물고 있는 곳은 공안국의 안드로이드 사건 전담을 맡고 있는 통칭 ‘드로과’의 사무실로, 한 때 성행하던 안드로이드 사건 탓에 설립되었다. 스무 해 하고도 한 해, 여전히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갈등은 끊이지 않아 일감은 미친듯이 몰려들지만 인력은 일 년 전의 사건으로 대폭 줄어들어 강아지 발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팀을 진두지휘 해야 할 ‘베테랑’이 없다는 점이다. 쿠로다 계장, 입원 중. (희소식: 최근 상황이 좋아져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기대해볼 만 하다는 의견이 있음.) 아카보시 토오야……, 사망. 마이나 라이아, 퇴직. 키세키, 퇴직. 이치하……, 됐다. 키우미 나츠오, 사망. 시로우, 역시 사망. (망할.)

상황이 그렇게 되어 눈물나게도 짧은 머리의 청년, 쿠로다 유이나는 들어온지 1년만에 드로과의 리더라는 영광스럽고도 파격적인 승진을 이루었다. 사실 유이나는 이 자리를 아오키와 후우레츠에게 권해보았지만, 아오키는 “내, 내, 내가 그런걸 어떻게 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라는 말로 거절하고, 후우레츠는 “하하, 이런 자리는 나보다 유이나에게 훨씬 어울리지.” (이 때 유이나는 ‘아니, 나라고 어울리겠어?’ 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고 유연하게 거절했다. 아오키의 파트너 레미에게는 이야기를 꺼내려던 순간에 ‘후후, 말도 꺼내지 마세요.’ 따위의 아우라를 느끼고 제안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요점은 근 일 년간 쿠로다 유이나와 진라이 후우레츠는 정시 퇴근이라는 달콤한 권리를 제대로 누려볼 수 없을 만큼 바빴다는 점이다. 덕분에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마지막으로 커피를 가지러 간게 몇 시간 전인지도 제대로 기억 못할 만큼 정신머리를 빼놓고 다니는 중이지.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8시가 가까워온다. 사내 카페는 문을 닫고도 한참 남을 시간이다. 유이나는 허망하게 텅 빈 텀블러를 내려다보았다. 어쩌지…….

곤란한 상념을 깨듯 드로과 사무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퀭한 눈으로 앉아있던 유이나가 흘끔 문가를 확인하자 익숙한 외양의 선글라스를 쓴 쾌활한 청년, 진라이 후우레츠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의 파트너에게 답 인사를 한 유이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뒤로 산뜻한 보랏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들어오는 청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이나는 작게 침음을 흘렸다. 보랏빛 머리카락의 청년, 무라사키 렌은 성격이 모나지 않고 싹싹하며 열정적이었다. 비록 매우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과를 다 제치고 인력난인 드로과에 들어올만큼, 안드로이드 매칭적합률이 0.1 퍼센트 이하의 최악의 확률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으나 굴하지 않고 혼자서도 열심히 일을 해내고 있으니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그와는 별개로 유이나는 무라사키 렌이 다소 불편했다. 다른 문제가 아니고.

“오, 선배님! 벌써 일을 끝내신건가요? 역시 경시청 17대 1의 전설……!”

“제발 그런 말은 삼가주세요…….”

그래, 바로 저런 점! 렌이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내며 ‘역시 선배님!’ 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유이나는 어디 구석에 숨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마이나 라이아였다면 네가 뭘 아는구나, 하며 어울려주었겠지만 뻣뻣하고 올곧은 성격의 유이나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유이나가 도움을 청하듯 후우레츠를 올려다봤지만 그의 충실한 파트너는 선글라스 너머로 웃음 지어 보일 뿐, 전혀 수습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럴 때마다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 얄미운 녀석.

어느새 듣도 보도 못한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렌을 보며 유이나가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자, 잠시간 그 순간을 구경하던 후우레츠가 살짝 끼어들어 파트너를 구해주었다.

“아, 유이나. 급한 일은 다 끝난 것 맞지?”

“응? 아아, 그렇지……. 오늘 넘겨야 할 것들은 다 했어.”

‘왜?’ 라고 묻는 듯한 시선에 후우레츠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아니, 최근에는 간만에 좀 여유가 생겼으니까. 술 마시러 가자고. 안 간지 오래 되어서 우리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거야. 아오키씨랑 레미씨한테도 얘기해뒀어. 시간 낼 수 있대.”

“술? 오늘?”

내키지 않아 묻는 것은 아니었다. 유이나는 주류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동료들과 기분을 내며 마시는 정도는 좋아했다. 다만 후우레츠가 가자고 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해도 되느냐고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것에 가까웠다. 유이나의 시선이 잠시 렌에게 머무르는 것을 본 후우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몇 달 일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무라사키 렌은 떠들기를 좋아했지만 일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킬 줄 알았고, 자기 판단력도 충분했다. 거기에 드로과를 쉽게 그만두지도 않을 태도니 슬슬 가르쳐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선배님들의 단골 술집이 있나 봅니다?”

“아, 그럼요. 거기 바텐더랑 아주 잘 아는 사이인데, 실력 좋아요. 렌씨도 어때요, 갑작스럽긴 하지만 괜찮아요?”

“저야 물론 영광입니다!”

몇 마디 대화에서 날카롭게 핵심을 찌른 질문을 하던 때는 언제고, 금세 드로과의 신입 청년은 그 제안을 덥썩 좋다고 받아들였다. 흠, 보통 직장 상사랑 술 마시러 가자는 제안을 받으면 내키지 않을텐데 이건 여러모로 대단한 점이지. 후우레츠가 잠시 렌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자기 자리로 걸어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차키를 챙겼다.

“자, 가자. 아오키씨랑 레미씨는 벌써 기다리고 있어.”

2050년 12월 11일 AM 11:20 / 스패로우 본부 ▶▶▶▶▶▶

Bar 「SPARROW」는 도쿄도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술집이다. 그리 큰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입소문을 알음알음 타고 인기가 퍼져나간 탓에 항상 사람이 북적거리고는 했다. 바의 이름이 한때는 딥웹에 소문처럼 돌던 테러범죄조직과 동일했기 때문에 사실은 그 범죄조직과 연관이 있는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그 때문에 자극을 추구하는 여러 사이버 렉카나 SNS 인플루언서들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도심화학테러사건 범인으로 체포된 리봇사의 CEO 아리마 신지의 여죄를 밝히던 중 안드로이드 연쇄 살인과 파괴 사건에도 관여했음이 밝혀지자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뉴스나 신문을 제외하고도 사람이 2인 이상 모이면 그 어느곳에서나 아리마 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동안 우연이라고 치부되었던 여러 사건도 아리마 신지가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돌며 범죄조직 ‘스패로우’ 도 사실은 리봇사의 악덕을 숨기기 위해 없는 소문을 냈을 뿐인 유령 조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향간에 떠도는 말 중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중이 그 말이 옳다고 여겼다는 점이 중요했다. 거기에 스패로우의 리더라 떠돌던 저화질의 이미지에 찍힌 백발의 청년 또한 그 바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더 이상 물어뜯을 거리를 찾지 못한 렉카들은 바 스패로우에 발길을 끊었다. 다만 한창 범죄조직과 연관되어 화젯거리가 되었을 때, 호기심에 찾아왔던 유명인들이 그 바의 술맛을 마음에 들어하며 여기저기 소문을 낸 덕에 바에 손님이 끊기는 일은 없었고, 단골도 생겼다. 바에 찾아오는 이들은 범죄조직 덕에 상관 없는 고생을 했다며 바의 주인장을 다독이며 위로했고, 젊은 주인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경쓰지 않는 건 당연했다. Bar 「SPARROW」는 정말로 ‘범죄조직 스패로우’ 랑 연관 있는 곳이 맞았으니까.

물론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대단한 무언가를 저지르는 곳은 아니다. 단지 학대로부터 도망친 안드로이드나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고,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안드로이드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건을 조사하러 다니는 것 뿐인 일종의 비영리 안드로이드 권익 단체다. 다만 그 일 중에 몇몇은 사소하게 공권력을 침해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범죄조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고, 이미 아리마 신지에 의해 스패로우=테러조직이라는 소문이 퍼져버려 어쩔 수 없었다.

본래 스패로우에서 무언가를 운영한 적은 없지만, 1년 전 리봇사 사건 후 안드로이드의 권리 주장이 늘어나며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 안드로이드들의 탈주가 늘어났다. 도망친 안드로이드가 궁지에 몰려 범죄에 손 대지 않도록 데려오고 돌보는 역할은 아직까지는 스패로우의 몫이었다. 이제 막 권리라는 이야기가 나온 참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안드로이드가 늘어나면 관성적으로 폐기처분이라는 형을 내릴 무심한 기성세대가 수두룩하고, 정부부처에서는 그것에 대응한 인력을 제대로 증원해주지도 않는다. 공안국의 드로과 하나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스패로우는 드로과의 짐을 함께 부담하기 위해 그런 길 잃은 안드로이드를 조직에 흡수하고 있었고, 곧 조직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어느 안드로이드가 말했다.

“이대로는 1년 내로 파산입니다.”

“엉? 그, 그래?”

얼떨떨한 얼굴로 흑발의 청년이 되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꺼낸 새하얀 머리카락의 안드로이드는 ‘그런 반응일 줄 알았다’라는 듯한 태도로 청년의 눈 앞에 자료를 들이밀었다. 인간은 얼마 없고, 안드로이드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정도 인원을 여태까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늘어날 조직원의 수를 예상하면 어쩌고저쩌고. 폭력을 당한 안드로이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교체를 위한 부품을 생각하면 어쩌고. 흑발의 청년, 마이나 라이아에게는 숫자가 들어간 부분은 죄다 외계어처럼 들렸지만 요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돈이 부족해요.’

“지금까지의 운영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인력이 있다고 해도 바깥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는 건 아시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죄다 도망친 안드로이드인데 나가면 알아볼테고,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인간에 종속되어있다는 인식이 강하니까 지급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을테고.”

“예, 그래서……. 이제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거 곤란하게 됐네. 라이아가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빙 꼬았다.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그녀석이 어떻게든 발품을 판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밀수나 밀매를 하는 건 말도 안될 일이다. 그만두었다고는 해도 한 때 경찰이었고, 언젠가는……그래, 언젠가는 부탁받은 대로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할텐데 그런 책 잡힐 일은 처음부터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낫다. 라이아는 사람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소외자에게 어떤 비난까지 가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았다.

“내가 지금 개인적으로 가진 자산으로는……아, 그래. 알았다. 택도 안된다 이거지.”

“예.”

슬그머니 말을 꺼내봤지만 무표정하게(물론 그의 안드로이드는 늘 저 표정이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라보는 시선에 곧 의견을 접었다. 이걸 어떻게 하라고, 시라세 쿄우가, 이 망할 자식. 맨날 나한테 이런 고민거리만 떠넘기고 지만 홀라당 가버리면 다야? 역시 한 대 후려칠걸.

“하……. 모르겠다. 뭐 술집이라도 운영할까? ‘바’라던가…….”

그건 별 생각없이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생각이 쿄우가에게로 흘러간 탓에, 자주 가던 Bar 「CROW」가 떠올라버려서. 문득 십 여년 전의 어느 날이 떠오른 라이아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아니지, 이런 생각은 그만하고. 지금은 대화하는 중이었잖아. 천천히 손에 들어간 힘을 푼 라이아가 참견 많은 제 안드로이드가 쏟아낼 잔소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잔소리는 오지 않고 그 대신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의견이 돌아왔다.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스패로우의 가용 자산 중 도쿄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건물의 지하 층이 있습니다. 쿄우는 이 장소를 안전가옥으로 쓴 모양이지만요. ‘바’라면 오히려 그런 장소가 선호되기도 하니 지금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는 제일 실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바텐더가 있어야 하잖아. 웬만큼 해서는 어렵다고. 할 수 있냐, 키세?”

“그럼요.”

빈말하지 않는 녀석이 그렇다고 하니 그럼 됐지. 라이아는 걱정을 털어냈다.

“그럼 그렇게 하고. 이름은 어떻게 할까…….”

“그냥 ‘스패로우’로 하면 안 돼? 우린 스패로우잖아.”

“바보 니토, 우리를 다 들통나게 할 셈이야?”

라이아가 중얼거리자, 그 때까지 둘의 주변에 앉아서 종이에 도면 따위를 그리며 심각하게 중얼거리던 쌍둥이 남매 중 하나가 고개를 들고 의견을 냈다. 그러자 즉시 반박이 날아왔다. 리토의 말에 니토는 꿍한 표정을 지었으나 더 반박하지는 않았다. 니토도 별 생각 없이 말한 것일 뿐이고, 스패로우가 전면에 드러나서는 안됨을 알았다. 리봇사 사건 때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도심 전체에 뿌려진 감정억제제의 효과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스패로우의 구형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잊어버렸으니 망정이지.

실망한 니토가 “나도 알고 있다구…….” 하고 중얼거릴 때, 머리 위로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근 몇 주간 이제는 익숙해진, 쿄우와는 또 다른 거칠고 애정 어린 손길이 니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아니, 좋은 생각이다.”

“엑, 정말? 니토한테 굳이 맞춰 줄 필요 없어, 라이아.”

리토가 질린 표정을 하며 라이아를 말렸지만, 라이아는 눈썹을 한 차례 치켜올리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응? 아냐, 아냐.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하는 건데? 들어봐라. 지금은 막 아리마가 체포된 시점이니 아직 이면의 사건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거야. 당장 몇 주 전 사건을 수습하기에도 바쁠테니까. 하지만 유이나와 진라이는 상황을 전부 알고 있으니 시간 문제지. 그러니 스패로우의 이름을 걸어놔도 저 문제들이 터지기만 하면 시선은 다 저쪽으로 몰릴거고. 장사는 입소문이 문제 아니냐? 시선이 돌려지기까지의 몇 달 정도, 그 소문의 ‘스패로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로 어그로를 끌 수 있다고.”

거기에 그 두 사람은 ‘스패로우’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으며, 그들의 전 동료가 이곳을 이어받았다는 사실도 안다. 스패로우에 대해서는 잘 묻어주겠지. 어차피 대부분의 소문은 아리마 신지가 과장시켜 부풀린 것이니 그렇게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유이나는 올곧으니 그 일을 주도하진 못하겠지만, 진라이라면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 경시청 꼰대들은 당장 리봇사와 연관된 자기 치부들을 감추느라 어쩔 줄 모를테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을 마친 라이아가 턱을 괴고 새하얀 머리카락의 안드로이드, 키세키를 올려다보았다.

키세키는 라이아의 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나갔다. 조금 기다리면 곧 키세키가 Bar 「SPARROW」에 대한 여러가지 계획안을 들고 찾아올테니 그때까지 좀 쉴까. 라이아는 기지개를 쭉 펴고 바닥에 앉아있던 니토와 리토를 양팔에 번쩍 안아들고는 시설 안쪽으로 들어갔다.

2051년 10월 15일 PM 09:00 / Bar 「SPARROW」 ▶▶▶▶▶▶

사악, 삭.

조용한 바 안에서는 글라스를 천으로 닦는 소음과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들린다. 술집이라면 이 즈음이 항상 제일 사람이 북적일 시간이지만, Bar 「SPARROW」는 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가게 안쪽에는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는 짙은 흑발의 바텐더와, 바의 카운터 끝자리를 차지하고 않은 젊은 주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필을 손으로 빙글 빙글 돌리던 젊은 주인이 연필을 탁 잡아챈다. 그러자 곧바로 바텐더가 물어온다.

“새로 내어드릴까요, 주인님.”

아무리 가게의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고용인이 쓸 호칭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이라고 호칭받은 이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바텐더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 올려보이고는 다시 바의 정리에 집중한다. 젊은 주인, 라이아는 손에 턱을 괴고 바쁘게 움직이는 바텐더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보니 평소에 스쳐가듯 하는 행동도 ‘자연스러운’ 인간에 가까워졌다.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그런 비언어적 행동을 전부 고려해서 짜여지지 않았다고는 했으나……. 이미 인간들 사이에 섞여 오래 산 지가 스무 해는 훌쩍 넘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아이가 성인을 보고 배우듯이, 키세키도 배운 것이다.

라이아는 언뜻 그를 볼때 쿄우가를 보기도 하고, 코코로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때때로, 많은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거울로 보는 듯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냈으니 그렇기야 하겠지만, 자신을 보고 배웠다는 것보다는 그럴만한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것에 놀란다. 처음 저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이 시간에 경시청에 앉아 있는 대신 바에 앉아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한숨을 쉰 라이아가 들고 있던 연필을 탁 소리 나게 내려둔다. 그러자 다시 바텐더─키세키로부터 즉시 반응이 돌아온다. 의아하게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키세키에게 라이아가 묻는다.

“그 녀석들은 언제 온다고 하던?”

“7시 40분 즈음에 진라이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으니……곧 도착하실 겁니다. 경시청에서 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래? 오늘은 얘네만 받고 닫을거지? 들어갈 때 뭐 달다구리라도 사가자. 요즘 니토나 리토나 안 놀아준다고 토라진 것 같더라. 그거라도 줘야지.”

“네, 문을 연 가게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두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라이아는 다시 턱을 괴고 늘어지게 하품하며 신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키세 또한 다시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자기 일에 몰두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바깥으로부터 말소리와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키세는 걸레질을 멈추고 문가를 바라봤고, 라이아는 신문을 접어둔 채 몸을 일으켰다.

“저기, 정말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선배님? 여기 ‘CLOSED’ 라고 적혀있는데요? 불은 켜져 있지만…….”

“아, 괜찮아요. 우리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닫아둔 거니까.”

“후우레츠, 조금 더 설명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딸랑. 종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어느새 서늘해지기 시작한 계절의 밤공기가 훅 밀려들어온다. 차가운 바람 탓에 귀 끝이 붉어진 유이나가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그 뒤를 따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렌이, 볼을 손등으로 문지르는 아오키, 그런 아오키에게 겉옷을 챙겨오랬지 하고 잔소리 하는 레미, 마지막으로 문을 잡고 있던 후우레츠가 들어왔다. 라이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렌을 한 번, 유이나를 한 번 쳐다본다. ‘얘가 너희가 말한 신입이냐?’ 라고 묻는 듯한 눈빛에 유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왔으면 둘 다 믿을만하다고 검증을 거친 거겠지. 라이아가 비죽 웃으면서 그제야 경계를 풀고 손을 흔들어준다.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잖냐. 어서 와라. 안 춥던?”

“죄송합니다, 차가 많이 막혀서요. 오랜만입니다, 마이나씨.”

“아오키는 왜 이렇게 떨어? 감기 걸리겠다, 야. 여기 안쪽으로 와. 여기가 따뜻해.”

“으으……. 훌쩍, 감사합니다.”

비실비실 떨던 아오키가 안쪽으로 들어가고, 레미가 그런 아오키의 뒤를 따라 앉았다. 유이나는 모두의 겉옷을 받아 바의 벽걸이에 하나씩 걸어두었다. 후우레츠는 바짝 얼어있는 렌의 등을 떠밀며 한손으로 끌어안고 있던 개 한 마리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개는 킁킁거리며 바 안쪽을 빙빙 돌더니 라이아에게 후다닥 달려가 옷깃을 물어 당기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라이아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개의 털을 벅벅 쓰다듬어주었다.

“쿠로도 데려왔네? 그럼 니토랑 리토도 데려올 걸 그랬다. 걔네가 쿠로 보고 싶다고 했거든.”

“그럼 조만간 집으로 오세요. 어차피 이번 주말은 다행이게도 비번이거든요, 둘 다.”

“쉬는 날에 후배들 집에 찾아가기엔 양심이 좀 찔리는데?”

후우레츠의 말에 라이아가 낄낄거렸다. 그 사이 바의 카운터에서 나온 키세키가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고, 늘 마시던 것으로 마시겠냐고 묻는다. 키세키가 사람들의 주문을 받는 동안,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얼떨떨해 있던 렌이 ‘후배’라는 말을 잡아채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선배님이 후배라면, 이 분은…….”

그 반응에 라이아가 유이나와 후우레츠를 올려다본다. ‘아직 그것도 설명 안 했어?’ 라는 무언의 질문에 두 사람이 멋쩍게 웃는다. 알아서 자기 소개 하지 뭐. 라이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태연하게 말한다.

“ 아, 원래 경시청에서 일하던 마이나 라이아라고 한다. 한동안은 수사1과에 있다가, 드로과에서도 활동했고. 지금은 뭐, 은퇴했지만. 우리 루키들한테 신입이 들어왔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일은 할 만 하냐?”

“선배님의 선배님이라니, 대선배님이시군요! 저는 무라사키 렌이라고 합니다!”

렌이 언제 긴장했냐는 듯이 눈을 빛내며 방방 뛰었다. 체력도 좋네, 여태 일하다 왔을텐데. 라이아가 웃으면서 의자 하나를 빼주었다. 그러자 렌이 감히 대선배님이 빼주는 의자에 앉아도 될까, 하고 갈등 어린 얼굴로 의자를 쳐다보더니 결국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라이아가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타입인지 딱 알겠군, 이런.

“유이나도 그렇지만 아오키도 많이 고생했겠어.”

“네? 아, 두 분 다 일이 많아서 늘 고생하고 계시죠! 그런데도 항상 일찍 오시고,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푸하하!”

유이나와 아오키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라이아는 배를 쥐어잡고 테이블을 탕탕 쳤다. 그 꼴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아쉬울 지경이다. 좀 놀려볼까? 라이아가 짖궃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쉐이커를 흔들던 키세키가 말을 자른다.

“너무 놀리지 마세요, ……점장님.”

아직 렌의 앞에서는 주인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적당한 호칭을 골라 부르자 라이아는 입맛을 몇 번 다시기는 했지만 말대로 그만두었다. 곧 그들은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일 먼저 라이아의 앞에 깔루아밀크를 두고,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도 늘 주문하던 술과 같이 먹을 수 있는 안주를 내어 준 뒤, 쿠로의 앞에 강아지를 위한 우유를 담은 그릇을 내려둔 키세키가 카운터로 돌아온다.

“무라사키씨는 좋아하는 칵테일이 있나요? 없다면 가벼운 추천 메뉴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네? 음……그럼 추천으로요?”

고개를 끄덕인 키세키는 다시 선반에서 몇 가지 병을 꺼내기 시작했고, 잠시 주의가 두 사람에게로 돌아갔던 일행은 이야기하던 주제로 돌아왔다.

“아무튼, 지난 삼 주간은 정말 일하다가 안드로이드도 과로사하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올 시간을 못 냈어요.”

“그래도 내가 일을 줄여주잖냐?”

“아, 그렇죠……. 마이나씨와 키세키씨가 없었으면 오늘도 사무실에서 자야 했을걸요.”

“일을 도와요? 은퇴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대화를 듣던 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라이아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씨익 웃었다. 아오키가 설명해야할지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달싹거리자, 라이아가 대충 손을 내저었다.

“우린 말이야, 정보조직도 겸하고 있거든, 병아리 군.”

“저, 정보조직이요?”

렌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유이나와 후우레츠는 설명을 이어가는 라이아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데리고 온 것이다. 일하다보면 그들이 어디에서 ‘경시청에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를 얻었는지 설명하기 곤란하니, 차라리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라면 알려주는 편이 낫다.

라이아의 설명대로 Bar 「SPARROW」의 목적은 첫번째로는 조직 운영을 위한 안정적인 수익처 때문이었으나, 두번째로 기대하는 효과는 떠도는 정보의 정리와 규합이 있었다. 스패로우 본부로 들어오는 정보를 포함해서,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나 술자리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흘리는 이야기 속에는 분명히 작은 진실의 조각이 숨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아 또한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수사 목적으로 쿄우가와 함께 이런 외곽의 술집에 자주 찾아가고는 했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분석해서, 경시청에서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유이나와 후우레츠에게 넘기고, 이쪽에서 해결해야할 일이 있다면 스패로우가 해결하는 식으로 근 일 년간의 일을 담당해왔다. 경시청 상부가 알면 경을 칠 일이긴 하지만, 그러게 빠릿빠릿하게 인력을 증원해줬어야지. 여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이 비밀스러운 협력관계는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라이아는 스패로우에 관련된 뒷이야기는 빼놓은 채로 적당히 가공을 곁들여 경찰을 은퇴하였지만 후배들을 돕기 위해 이런 곳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설명을 전했다. 스패로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더 두고 본 다음이 좋으리라는 판단 아래의 행동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렌은 제 앞에 잔 하나가 놓여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신이 나서 외쳤다.

“세상에! 그런 굉장한 일을 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름이 웬 범죄조직이랑 같아서 혹시 스패로우의 리더가 세운 곳은 아닌가 의심했는데, 저의 결례를 용서해주세요!”

“크흡!”

사레가 들린 유이나가 콜록거렸다. 후우레츠는 웃음을 꾹 참는 듯한 얼굴로 유이나의 등을 두드려주며 옆에 있던 휴지를 몇 장 뽑아 건네주었다. 아주 정확한 추리였다. 유이나가 곤란한 얼굴로 라이아가 뭐라고 말할지 걱정하며 고개를 들자, 라이아는 예상대로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하하하! 스패로우가 뭔지 알아?”

“예! 경시청에 들어오기 위해 이런저런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접했습니다. 사건이 과장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여러모로 신경 써서 봐야 할 점이…….”

“크흡, 큼, 어어 그래, 그래서?”

라이아가 맞장구 치자 렌의 수다는 끊어질 줄을 몰랐고, 안색이 창백해진 유이나는 어쩔 줄 모르며 스패로우의 수장 앞에서 스패로우에 대한 음모론을 진지하게 토의하는 후배를 말려야할지 고민했다. 후우레츠를 돌아보니 이미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의 대화를 즐기고 있는 것 같고, 아오키는 속이 쓰린 얼굴이다. 레미는 그런 아오키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유이나가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하려는 듯이 바 안쪽에 있던 키세키를 보았지만……. 키세키는 유이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소리 없이 입을 벙긋댄다.

‘포, 기, 하, 세, 요.’

……그래. 모르겠다. 언젠가 말할 때가 오면 잘 설명해주겠지. 유이나는 이제 조금 익숙한 체념을 받아들이며 잔을 홀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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