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취중진담

“류청ㅇ….”

“응.”

“청우야….”

“하하, 왜요, 형.”

“혀엉….”

몇 번인지 세기도 어려울 만큼 박문대는 류청우를 불렀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선 혀가 다 꼬여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발음으로 몇 번이고 불렀다. 그때마다 류청우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 부름에 전부 대답해주었다. 질 나쁜 장난을 참아주는 건 성미에 맞지 않지만, 이건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이건 박문대가 자꾸만 유예하는 며칠 전 고백에 대한 답일 게 분명했다. 그것도 긍정적인 뉘앙스의. 스스로 말할 수 있게 기다리는 것 정도야 그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아해”

것 봐. 문대 너도 나 좋아하잖아.

류청우는 확신이 있었다. 제가 보내오는 관심에 얼굴을 붉히고, 가벼운 스킨십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받아주는 게 호감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러니 박문대가 좋아한단 제 고백에 답을 주지 않았어도 괜찮았다.

“다시 말해줘요.”

“조아해애, 류처ㅇ.”

다 뭉개진 발음으로 제 이름을 부르며 좋아한다 말하는 박문대 때문에 류청우는 뒤늦게 술기운이 올랐다. 예상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서두르지 않고 타이밍이 생기길 기다린 자신이 대견했다.

우연히도 오늘 둘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전부가 숙소를 비웠다. 몇은 스케줄이 있어서, 또 몇은 가족과의 식사로 오늘 숙소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박문대는 숙소 한 쪽 벽에 걸어둔 멤버 각각의 일과표를 보다가 입술을 씹었다. 류청우와 박문대의 일정만 비어있는 표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류청우는 어쩌면 오늘이겠구나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박문대는 멤버들이 하나 둘 숙소를 떠나는 중에도 제 방을 지켰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비어버린 소주병과 맥주캔 한 무더기. 잔뜩 취한 박문대, 평소보다 솔직해진 박문대, 좋아한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박문대.

“그럼 우리 사귈까? 형도 나 좋아하고, 저도 형 좋아하는데, 어때요?”

류청우는 손을 뻗어 박문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활동이 끝난 지 꽤 돼서 염색모 위로 검게 뿌리가 자라났다. 그것마저도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으응, 안 돼.”

사랑스러운 박문대는 미운 말을 단호하게 내뱉었다. 류청우는 머리칼을 빗어주던 손을 거두었다. 왜 자꾸만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좋아하는데 왜. 우리가 아이돌이라서? 같은 그룹이라서?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왜요? 왜 안 된대 자꾸.”

단호한 안 된다는 말에 심술이 났다. 그래서 따져 물었다. 그러다 돌아온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연애도 안 해봤고….”

하하…. 정말 투정이구나. 다시 류청우는 제 앞의 남자가 귀엽게 느껴졌다. 키도 몇 센치 차이 안 나고, 무뚝뚝한 표정이 대부분인 그가 대체 왜 귀여워 보이는 걸까, 하다가도 이런 모습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건 좋은데. 다 내가 처음일 거 아냐. 또?”

“넌 잘생겼는ㄷ, 난 아니ㄱ.”

“나한텐 문대도 잘생겨보여. 형 인기도 많으면서.”

“그건 박문대가…. 그리고 류청우 너는, 모옴,도 좋고.”

“하하, 좀 부끄러운데. 몸은, 음, 운동 같이 할까?”

“으응, 좋아. 너무 힘들게는 말구우.”

유도신문 끝에 드디어 좋다는 말이 나왔다. 턱을 괴고 박문대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던 류청우는 본론을 제시했다.

“그럼 나랑 만나줄 거야?”

“아니이, 안 돼.”

거절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끈기와 인내는 류청우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였다.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이상 류청우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고작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더더욱 만나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니 무조건 지금 승낙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고 류청우는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형도 나 좋다며. 그런데 왜 안 돼? 나도 형 좋아해. 엄청.”

“그치만 네가 왜 날 좋아해….”

믿음을 덜 줬나.

류청우는 자신이 그에게 했던 수만 가지 플러팅을 떠올렸다. 처음 사랑을 고백한 이후로 참지 못하고 매일매일 좋아한다, 사랑한다 속삭여주었는데. 박문대에게 조금 더 확신을 가질 시간이 필요한 걸까, 고민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아쉽지만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다. 어차피 박문대는 자신을 좋아하니까.

“음, 정말 거절인 거야? 그럼 좀 슬퍼지는데.”

“나 같은 게 널 어떻게 거절해.”

식탁 위에 엎드려 있던 박문대가 번쩍 고개를 들고 말했다. 답답하다는 듯 손까지 써가며 말했다. 내내 그의 술주정을 웃으며 들어주던 류청우는 얼굴을 굳혔다. 어쩌면 이게 진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게 널.

류청우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또 화가 났다.

“…너 같은 게 대체 뭔데.”

아니, 조금 슬펐다.

사실 꽤 많이.

박문대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꿈뻑거렸다. 정신을 차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류청우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취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따져 물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박문대의 말에 멍하니 멈춰섰다.

“나느은, 류건우느은, 너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잘생긴 것도 아니구, 부모님도 안 계시고….”

손에 쥐었던 빈 맥주캔을 내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느릿느릿 끊이지 않는 그의 거절을 더 듣고 싶었다. 가슴을 죄어오는 그 슬픔을 더 알고 싶었다.

“나는 공무원 시험도 실패했고오, 완전 별로인 데도 겨우 취직했어. 사진도 포기했고, 완전 밑바닥이라아, 돈,도 없어서 너랑 만나면 잘 못 해줘. 맛있는 것도 못 사주고, 좋은 곳도 못 가고오, 또-”

“내가 다 할게. 내가 다 사주고, 형 가고 싶은 곳도 데려가고, 또 운전도 내가 할게. 형은 아무 것도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제발 나랑 만나자, 응?”

“왜…? 너는 왜 나한테 잘해줘?”

“형은, 실패했다고 하지만 나는 알아, 형 노력했을 거란 걸. 결과는 안 좋았을지 몰라도 열심히 했잖아, 그렇지? …네 상황에서 네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게 대체 뭐가 있어? 단순히 위로로 하는 말 아니야. 부모님 사고도, 공무원이란 직업을 택했던 것도, 사진을 포기한 것도, 그냥…. 다 꾹 참고 살았잖아. 형이 뭘 잘못했어…. 그냥 날 이용해도 좋으니까, 형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제발 나랑 만나자, 건우 형. 나는 형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음 좋겠어. 왜 형한테 잘해주냐고?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형이 좋아. 아주사 때도 멋지다고 생각했고, 데뷔하고 나서도 줄곧 너 보면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 계속 지켜보고 싶었고, 옆에 서고 싶었어. 대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울컥 감정이 쏟아지려는 걸 겨우 누르고 끝을 맺었다. 긴 사랑 고백을 하는 동안 박문대는 정신을 차렸는지 이젠 얼떨떨한 표정으로 류청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벌건 얼굴이긴 했으나 더이상 눈을 감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벌어진 입을 잠깐 다물었다가 다시 질문했다.

“날 사랑하는 이유가, 혹시, 더 있어?”

박문대의 물음에 류청우는 몸을 일으켰다. 성큼성큼 박문대의 옆으로 걸어가 손을 쥐었다.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박문대의 손을 제 심장 가까이에 대어주었다.

“형이 그렇게 말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아마 나는, 형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건우 형을 사랑하는 것 같아. 나랑 사귀자, 문대야. 내가 잘할게.”

박문대는 대답 대신 몸을 기울여 류청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말캉한 아랫 입술을 살짝 머금자 입술이 벌어졌다. 그리고 벌어진 틈새에서 두툼한 혓바닥이 튀어나와 박문대의 입술 안으로 파고들었다. 깊이 파고들어 입천장부터 고른 치열을 훑고는 혀를 얽었다. 박문대의 손은 여전히 류청우의 가슴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있었다. 그러나 류청우의 손은 박문대의 팔을 쥐고 허리를 감싸 당겨, 그를 자신의 위로 올렸다. 박문대는 짙은 입맞춤에 정신이 나가있느라 류청우의 무릎 위에 올라온 줄도 몰랐다. 류청우는 찬 바닥에 앉아서 이제 막 연인이 된 그를 끌어안고 그의 슬픔을 탐하였다. 겨우 고개를 빼꼼 들이민 그의 슬픔을 놓치지 않겠는 듯 맹렬히 옭아매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 ..+ 1

댓글 0



추천 포스트